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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0일 3주 예배, 담임목사님의 집전으로 마가복음 9장 33절에서 50절까지 말씀을 나누는 자리
죄와 벌에 대한 말씀 끝에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이 폐부를 찌른다.
목사님은 우리가 행하는 섬김에 대하여 라마 크리슈나의 격언을 빌려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성경 이해의 중요성
-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면 목회가 어렵다.
-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되어 있지만, 성경을 무턱대고 그냥 상식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 고대 유대 구전 문학은 그 당시 사람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의 중요성
-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면 큰 해탈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를 믿어야 한다.
예수의 희생과 인간의 죄
- 조선시대에는 공자와 유학만 잘 공부해도 충분히 살 수 있지만, 예수는 우리에게 다른 가치를 제시한다.
- 예배를 통해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나님께 제물이 된다.
- 창조자는 창조물과 깨닫지 않고, 창조물은 불안과 불안정이 점점 강등되어 죄의 단계까지 간다.
세속에서의 삶과 예수의 가르침
- 세속에서의 삶은 힘들고 고난이 많지만, 하나님의 길을 가기로 결단했다면 세속의 모습을 갖는 것은 큰일이 아니다.
- 예수님은 세속의 현장에서 말씀하셨고, 「서로 사랑해라」이 정도 말씀만 하셨다.
- 예수처럼 살면 좋겠지만 얼른 죽었으면 그렇게 살겠지만 우리에게 그러한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다.
세속과 신앙의 균형
- 세속과 신앙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 신앙에만 집중하면 세속 생활이 소홀해지고, 세속 생활에만 집중하면 신앙 생활이 소홀해진다.
- 세상사는 사람들은 지혜롭게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삶의 본질에 대한 고찰
- 삶은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지상의 세계는 즐겁게 살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우리는 비본질적이지만 선물로 주어진 삶을 유목민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 예수의 가르침은 삶의 본질에 대한 고찰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존재가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것
- 제자들이 누가 제일 높은가를 다투자 그들이 한심해졌다고 말씀하셨어요.
- 강한 물질을 가진 제자라면 그대로 보내지만, 우리는 재해석하거나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겸손을 저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세
-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듣는 자는 배신할 수 있다.
- 하나님을 만나면 부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대해 토를 달라고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 믿음이라는 것은 스승이 하신 말씀을 그냥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아 이거 잘 모르겠다, 안 들으면 이렇게 해야 돼. 이제 한국 신학대가 명망 진창이 된 것은 그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끝까지 아는척 끝까지 갈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 자기 그리고 아무나 들어가는 거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 어중이 떠중이가 신학자가 된 그런 일이 생겨요, 그게 저는 어렸을 때 인제 목회를 하겠구나 그 이제 스토어 공정을 시작했는데 쉽게 안 되더라고!
네 어쩌다 보니까 지난주에 내가 말씀을 전했는데 이 주에 또 말씀 전하니 그것 참 부담되네.
억지로 이제 현재 시대에 육육육이 어찌고 뭐 그럴 듯한데 그 다 헛소리입니다. 의미가 없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나라에 들여가는 거 외에는 몸이 없어요. 같이 갈 때를 그 이제 이 하느님 나라의 예수의 인격에 푹 안기면 다른 것은 관심이 별로 없어져요.
이렇게 그렇습니다. 이제 지난주에도 제가 말씀을 한번 드린 것 같지만 이제 이해 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이 두 가지야 나는 중생을 경험해서 예스처럼 되게 되고 싶은 사람의 극소수가 있고 나머지는 그냥 아무것도 없고 이제 자기들은 이제 다 안다고요 신학 박사로 막 큰 교회의 목사라고 부르면 다 아는 것처럼 합니다.
이 이런 것은 그 자기 수준에 맞게 맞는 게 저렇게 이해할 수가 없어요. 복음이라고 하는 거지?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왜 있으니까 이게 복음 때문에 그래서 작금의 내용이 한국 나라예요? 뭐 하는 나라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시티즌이 되면 돼요. 그거 외에는 큰 해탈과 깨달음을 얻어서 뭐 하늘을 날아가는 거 이런 것이 아니에요 응, 그니까 그 핵심 되는 거만 그 얻은 놈이야.
다른 거 없으면 필요 없어 아무리 어쨌거 이제 물론 그 중생을 경험해서 예스처럼 되고 싶은 자 그래 이야기예요. 나머지는 이제 문화로서의 기독교육 나의 세속적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그런 의미로서 착하게 살고 이것도 꺼 어 어 이런 거 있잖아요. 감사하고 친절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로 그런 걸 위해서 위해서 온 게 아니라 그 전에 많은 선생들이 교사들이 다 갖췄어요.
조선시대는 공자 하나만 통달해서 유명한 유학만 잘 공부해도 다 다 돼요 충분히 살아갈 수 있고 세상에서 훌륭한 사람 분자로 그런데 왜 예수께서 굳이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우리한테 할 말이 없나라고 하면 전혀 다른 가치를 갖고 있어요 에, 물론 뭐 인도나 불교에도 그런 게 있지만 저도 다 그러니까 그걸 우리가 파악을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매주 이렇게 모여서 예를 들어 예수님에 대해서 배우고 공부하기 이야기를 하고 하나의 헌신이죠. 이 시간만이라도 내가 나의 존재를 희게 제삿밥으로 드리는 행위입니다. 그 나를 이렇게 드리는 입장에 이것이 예배인데 그 이제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드리지만 그 예배를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제물로 되는 거예요.
이게 우리 모든 것이 모든 존재가 그니까 나의 모든 전제를 신께 제물로 들인다라고 하면은 이제 나의 욕망은 없는 거죠 그거 왜 쉽게 나를 드린다는 그 영화 영광 영화 아니겠지만, 그 발에 외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게 달리 다른 열심이나 연관이 있는 게 아니다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돼요. 그 벽면이 그 하나님께서 세계를 이제 창조할 때는 하나의 나라의 질서에 맞게 창조를 해요 근데 여기서 뭔가 삐끗하죠. 원죄가 됐든 뭐 사과를 따먹었든 간에 뭔가 이렇게 삐끗하는데 창조자는 창조물은 창조자와 깨닫지 않다.
창조물은 완전하진 않아요, 그 불안 약간의 불안전이 점점 강등이 퍼져서 오늘 예수께서 이야기하는 죄라고 하는 단계까지 간 거죠? 그 아까 장으로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아무 죄가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인간은 그냥 태어난 거예요.
어 까르마에 의해서 근데 그 이제 각종 그 어떤 상념들이 이들이 두 배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향에 맞게 그냥 행동이 되는데 죄가 있네요. 그니까 선을 뭐 찍을 피어가 젓기로 찍으면서 노년도 야간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셨다라고 할 때는 죄에 대한 소극적 가치가 있는데 이것은 안 해야 돼요? 하늘 나라의 전방향으로 진보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이게에 강력한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이것을 안 해야 된다.
발화자 1 (08:29)
이거 죄라고 합니다. 응, 육신을 인제 뭐 썰 없어질 거니까 했더니 그 하나의 나라의 질서와 세계의 질서가 좀 다르게 이렇게 먼저 벌어졌는데 어 그 와중에 이제 이제 하느님의 자식을 아들을 죽이는 단계가 아니라 그리고 우리도 그 세 개의 오다에 맞춰서 살고 있어요. 세계의 질서에 맞춰 살고 있기 때문에 제자는 세 개의 질서를 거부를 하고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택한 자들 일반 신문 하나의 나라의 질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니까 세 개의 질서를 따르죠.
그런 이제 차들이거든요. 예수께서 와서 이렇게 화해하라는 것은 이렇게 벌어진 TV의 질서와 하나의 나라의 질서가 다시 이제 일치하는지 네 그 화해라고 해야 돼. 네 그 그것을 위해서 이제 벌어지게 하는 게 제니까 이 기회를 굉장히 또 높은 부정적 가치로 평가를 하신 것 같고 거기에서 이렇게 좀 희망을 했다 지지자 중에서 다 팔 잘랐다는 분을 본 적이 없어요.
어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까 여러 가지 이제 우리가 이야기했잖아요. 낮아진다는 것에서요.
어 좋은 일 있으면 할게요 에 또 누구든지 높은 자가 되고 저는 낮은 자연이야. 이러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 지금 제자에 있는지 보통 흰자 있는지를 좀 점검을 해보면 아주 좋은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그 결단 속에 있다면 이것은 깨달음을 얻은 거예요, 이 결단 속에 우리가 있다면 세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오다들은 한국의 가치가 없어요? 그렇죠?
세속해서 내가 노래 가야 돼, 뭐 절름발이 집 어제 이렇게 그렇게 되는데 낮은 자 같은 어린아이 같은 자가 되든 중요하지 않죠, 6 마치 내가 이제 어떤 영화의 주인공이 됐어. 네 보통 영화를 하지만 초창기에는 런치하는 고난을 겪지 않습니까, 주인공이 비참한 이런 사람들을 사는 영화가 많잖아요. 그때의 영화배우가 정말 비참해 하는 말이죠, 귀찮아 라벨을 하는 거예요, 그냥 그 그게 하나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 중에 비참한 장면들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서 아휴 그거 먹어야 되지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가기로 결단을 내렸다면 세속에서의 어떤 어떤 모습 잘되는 말이 소녀 네팔 저 아 이런 자의 모습을 내가 갖는다는 것은 이렇게 큰일이 없죠.
물론 세상에서도 포기하고 높은 사람이 되면 뭐 쫌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비본질적이라고 비범죄자 그러니까 예수의 말씀들을 이렇게 보험사를 쭉 보면 이 양반은 그 마을에 하나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세 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세속의 오다에 대해서는 말씀을 하시죠. 그냥 화장 많이 한 게 네 현재 현재 간에 나 친구가 암호 배라 서로 사랑해라 이 정도 말씀만 하셨지 뭐 정의를 위해서 피를 해결하고 바뀌었어라 이런 이야기는 없어요.
에 이분은 이제는 워낙 베르트래 어 천 년만 살다 가실 생각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마을인들을 가지고 초대 교회에서 잠깐 살았잖아요. 공동체증으로는. 그런데 이게 10년 후보까지 깨지게 돼요?
그냥 세속 생활 세속 사회라는 게 생각보다 이렇게 긴 글 흔들리고 어 우리의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의외로 이제 그 강할래 어 그래? 제자들에게 새로운 미션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예수처럼 살면 좋겠지만 얼른 죽었으면 그렇게 살겠지만 안 뭐 안 주어진다.
발화자 1 (14:00)
몇 신냐고요 몇 백 명이나 간다. 그러면 그 세수학자 로봇화에 대한 세속적 질서에 대한 우리의 마인드를 달리 말 예수하고 달린 마을 예수처럼 뭐 평생을 갈 수는 없어요. 긴장 속에서 아나 이제 몸이 타버릴 수도 있어.
그래서 나온 게 이제 수행이라고 합니다 시도원 9월달 이에스 하느님에게 닮아가는 듯 빨리 죽어지지 않고 성령이 갑자기 내일모레 쏟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세속 최소리에서 이제 정해진 목숨만큼 살아가면서 어 슬기롭게 이제 살아야 되는 그 이중 미션의 생일 하나님 뭘 쫓아가야 되는 미션과 이 세 속에서 어 잘 금방 하는 나라가 임하지 않는 상태 속에서 사랑해야 됩니다. 이 이제 두 가지를 시작이에요. 우리가 이에스의 제자들은 예수가 그렇잖아요 우리가 나오려 20 46개에서 한 살 그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격려하자 여기는 나보다 처음이 되어질 거야.
생일이 오시면 어 내 나가서 참 큰일들을 할 거야 이렇게 이루어 하지 않습니까? 미셸 위에서 어렵기 때문이지. 그런 점에서 우리는 어 이 이 셋을 어떻게 찾아가야 될 것이냐 저는 그 문제가 이제 강하게 떠오르게 됩니다 예 이제 이게 시소 같은 것이다 피 속에 우리 에너지의 양을 좀 많이 투입을 하네요 신을 쫓아가는 에너지 약해져요?
또 신에게 원통 몰입을 하게 되면 세속 생활이 얼마나 될 거예요? 이것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추는 게 A 요즘을 살아가는 기자들의 이제 실제지를 어떻게 보면 이게 이것에는 지혜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 주어진 우리의 어떤 입체적 또는 최소적 사랑 이리안 칠팔십 년 이렇게 주어지잖아요.
잠시만요 네 아버지 이렇게 지워져 네 그 이게 굉장히 짧은 시간입니다. 어떻게 지구의 나이로 보면 눈 딱 봐라지는데 아, 물론 계속해서 유래한다고는 하지만 지금 주어진 삶의 한 백 년 이걸 어떻게 할 거냐 그 무늬 없어요. 어 해탈의 경험이나 하나의 나라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 그래서 200년 앞에는 알차례 쳐다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돈 벌거나 아 근데 이제 제자입니다 어 하이 나라를 향해서 가는 자들은 이제 순례자 같은 걸 쓰죠? 200년이 100년의 세월이 어 이렇게 비번질 되겠지? 이제 그냥 이것은 선물로 주어진 것 같기도 하고 하루겠지, 그 어떤 벌로 주어진 것 같기도 한 이 인생이 뭐 화영이 느껴지게 선물로 지으셨어요?
그렇지 이게 이제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이제 우리 과목 또 지상의 세계는 재미로워 즐겨 봐라 하는 선물로 우리가 주어졌다고 믿을 수만 있다면 지상에 이런 삶도 하나의 나라의 삶처럼 살 수 있겠죠 네 그래서 이어서 기도가 되셨던 뜻이 하늘에서 이런 것까지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말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이제 비본질적이지만 선물로 어떤 숙제로 주어진 200년의 삶을에 실례지만으로 또 그 어 어떤 유목민의 마음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 돼요. 침묵의 소리라는 위대한 고대 경전이 있어요.
이제 우리 있는 트렌드들이지 무기 좋죠 보면 영화 세계를 다 가져가죠 그러 그러나 연방에서 떠나 있어라 이렇게 얘기를 삶을 사랑하라 어 맛집이 죽을 거치게 그러나 삶에서 떠나 이 얘는 이제 모순적인 마음에 이런 것도 있어요. 이제 우리가 세척을 하는 나라는 너무 간단해 그렇지만 세속은 독자가 돼 요새 수업을 찾아가는 마음 자체가 엄청 사랑하면서 살아 닥쳐가대 내 마음이 거기에서 떠나 있어요. 이 비본질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의 자세 6 마시 엄청 재미있는 영화를 감상하는 겁니다 이 재밌는 영화를 보면 우리가 빠져들어가잖아요.
그 내용이 그렇지만에 요즘 영화관을 나오면서 바로 저 이 영화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 하루 진짜 없어요. 이런 것처럼 살아가는 거죠 시작 그런 삶을 살아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예수의 가르침은 누가 차이가 없냐 이거를 가지고 이제 제자들이 또 언쟁에 걸렸다. 아이가 이게 다른 검사 보면 만약에 예술 이 혁명에 점검을 해서 말하게 되면 처음이라도 말이야.
어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네 이제 제자들이 이야기하는 누가 제일 높이냐 뭐 하늘에서 어떤 땅에서 누가 제일 높은가 하는 것은 에고에 대한 거죠? 어 이런 것을 그 다투고 했을 때 예술은 어 한심했던 것 같애 하하 스톱 제자리 이 비혼재적인 삶에 대해서 어. 놔버렸기 때문에 너 높은 자가 되려고 하는 바로 그 섬겨라 많은 자라도 돼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강한 물질을 가진 제자라면 이걸 그냥 그대로 보냅니다. 어 그러나 우리가 우리 신앙도 잘 찌르기 때문에 그걸 감당하지 못한다라고 한다면 여기에 재해석을 해야 되고 어 또는 슬기롭게 이것을 받아들여야 되죠.
그렇지 않으면 그쵸 이게 흉내를 많이 내봤어요 그래서 그 경선 이후로 낮아지고 해봤더니 돌아온 게 없느냐 더 많은 그 멸시와 그 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더 조만하게 만든 업체였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죠? 나라 크리스나의 그 글들을 보면 어떤 마을에 개미 한 마리 4 답사 그래가지고 안 만들어요.
그러니까 그쪽으로 애들이 놀러가 가지고 많이 밀리기 때문에 안 맞아요 그래, 그 법사에 있는데 누구도 접근을 안 하는데 그게 외롭죠, 그래서 성자로서 나왔어요, 이름 불러봐요, 그냥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그랬더니 이러지 말아야 돼 그런 거야. 그래서 뱀이 이제 그다음 편은 안 물어요. 계속 안 걸었더니 이제 애들이 와가지고 점점 와서 안 무서워 나중에는 어떻게 됩니까 뱀을 막 뱅뱅 걸리고 다리에서 내려치고 이랬다가 반죽게 됐어요.
성자나 탓이지라고 내가 이러이러한 일을 당했어요. 그때 이제 그만해 그만 하죠 다시 물어라 쉑쉑 소리라도 미안하 아 그러니까 이게 그 지혜라는 삶이 지혜 우리가 존이 되고 섬기는 자가 되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그 섬기는 자들의 겸한을 저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게 일컫는 겁 D에죠 그러나 강력한 열망을 가진 제자는 이렇게 안 해요, 그냥 저는 개발을 해야 돼. 나를 깨부수단 말이야. 이렇게 가버리는데 해석이 의외로 아 하늘나라보다 훨씬 더 복잡한 것이고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적 지혜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영적 지혜를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런 걸 읽으면서 놓친 것 같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예수님은 예수보다 더 남해 그래서 그렇지만 어 끊임없이 시험해야 돼요. 우리는 하나님 말씀이 있으면 그 맛은 그대로 이렇게 닿는 게 제자란이야. 그 말씀 아닌 것 같다는 생각해요.
손으로 찍어라 발을 찍으라 하시는데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자가 제일 좋아하 저는 그랬습니다. 그 제자는 절대 선생을 배신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그대로 듣는 자는 배신할 수 있어요, 예고가 살아있대 예 저 오랜만에 저 길을 이야기도 나름대 항상 그 선서 읽을 때마다 자꾸 달리는데 말이죠. 그 섬진자가 하는 게 뭘까 아 이런 걸 좀 고민하는 대목인데요. 이제 이제 우리 시대에 우리 스타일에 맞게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야만 어 된다 생각이 우리가 세속을 완전히 떠나버리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누가 뭐 부장을 저지른 아무도 관심이 없어져요 이제 그것이 그 진짜 최고의 경제에 이른 제자의 모습들이 있는가 하는 회의를 하고 있어요.
항상 우리는 그 예수님보다 더 더 해야 된다고 자꾸 생각을 해야 되고, 하나님을 만나면 자꾸 그 부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대해 터를 달라고 하는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뭐 개인적으로 생각해요. 이 믿음 없는 자세인지 모르겠지만 믿으면 저는 그렇지 않다, 믿음이라는 것은 할 일이 있던 스승이 하신 말씀을 그냥 그대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미드입니다. 참 저 안 가니까 항상 다시 물어봐야 될 거 같애 이게 맞으니까 이런 식으로 어 그런 계산 절도 스승을 실망시키지 않아요. 네 저도 기대합시다. 네 하늘에 나머지 내가 또 한 일이 응 테레비에 있는 사람 이런 기회를 가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