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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버섯
생일을 맞아 나를 위해 선물을 주문했다. 모처럼 여러 편의 시집을 구했는데 네 권 모두 시선집(詩選集)이다. 이러한 선집을 가리켜 흔히 ‘앤솔러지’(Anthology)라고 부르는데, 꽃을 따서 묶은 것이란 뜻이다. 그리스어 ‘앤톨로기아’에서 온 말이다. 물론 남다른 시선으로 시를 선택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재능은 아닐 것이다. 한 권의 시집에서 빛나는 시 한편을 선택하는 안목은 나름 눈부신 시 창작과 같을 것이다.
앤솔러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선물로 주고받는 꽃다발은 하나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기쁨과 축하의 의미를 가진 꽃들의 묶음과 위로와 평안을 주는 꽃들의 다발이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슬픔과 애도를 목적으로 한 꽃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튀르키예 말로 ‘세람’은 꽃말로 엮어서 전하는 메시지를 뜻한다. 영국의 작가 메리 워틀리 몬태규는 외교관 남편을 따라 이스탄불에서 살았던 경험을 여행담으로 엮었다. 그는 꽃말 등 자연과 사물의 언어를 사용하는 중동지역 사람들의 흥미로운 풍속을 전해주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갖가지 빛깔의 꽃이며 풀, 나뭇잎, 새, 과일 그리고 새들의 깃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다른 말들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전하고 싶은 뜻에 맞추어 꽃과 풀들을 보내는데, 그렇게 하면 의례적인 무미건조한 편지나 사랑한다는 쑥스러운 편지를 잉크에 손을 오염시키지 않고 생생하게 전달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세람, 곧 꽃말로 감정을 나누는 것을 ‘세라모그라피’라고 부른다.
내가 선택한 시선집들은 독자 일반을 겨냥한 것이라지만 편집자가 자신만의 유난한 주제 의식을 품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비록 내가 손꼽아 좋아하는 시들이 교과서 수준에 머물고, 고작 입시용으로 틀에 박힌 해석에 그칠지라도 돌아보면 한국어로 된 유려한 문장들을 일찍이 사사한 셈이다. 그런 국어교육 덕분에 아직 손으로 시집을 뒤적거리고, 자기만의 표현을 공구리는 버릇을 들였으니 고마운 일이다. 생일 선물로 구한 시집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창비시선 500 특별시선집)이나, <일편단시>(나태주 반칠환 서정춘 윤효 함민복)를 교과서 암송하듯 가까이하려는 마음을 먹은 이유다. 특별한 시인을 유난하게 좋아한 적도 없고, 또 한 사람의 시집을 집중적으로 읽어낼 만큼 인내심도 부족하니 이런저런 선집 취향은 여전히 시를 낯설어하는 초보자들에게 유익한 편이라고 둘러대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집이 대세를 이루는 것은 사실 정상적이 아니다. 시집이든 소설창작집이든 작가는 작품으로 존재한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어 작가들이 겪는 긴 가물은 오래도록 해갈 소식을 듣지 못한다. 기실 작가의 부재가 아니라 독자의 빈곤이 문제다.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의 관심과 애정이 부족하니 그들과 함께 한국어도 메말라가는 듯해 딱하기만 하다.
오래도록 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문학상들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한다. 이상문학상으로 유명한 월간 ‘문학사상’은 초대 주간 이어령의 우상파괴 선언과 함께 문단(文壇)의 문학을 만민(萬民)의 문학으로 바꾼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에 무려 5만 부가 팔리던 월간지가 이젠 500부도 안 팔려 폐간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50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문학의 위기는 한국어의 위기이고, 모국어에 대한 사형선고와 같다.
새벽기도회를 위해 매일 밤 ‘복음서 365’를 쓴다. 남다른 관점의 신학을 일관되게 정리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말 감성으로 비교적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고 정돈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였다. 좀 더 젊었을 때 우리말 성경을 사랑하고, 속 깊은 고백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크다. 이제 요한복음을 마치면 다음 번에는 사도 바울 앤솔러지를 정리하려고 마음으로 서둔다. 바울이 전한 세람인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를 365등분하여 넉넉한 우리말 표현으로 묵상하는 것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듯하다.
‘일물일어’(一物一語)는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의 개념이다. ‘하나의 사물을 글로 표현하는데 꼭 알맞은 말은 하나의 말밖에 없다’는 뜻이다. 좋은 작가는 어떤 사물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잘 분별하는 좋은 눈을 지닌 사람이다. 나이 탓일까, 종종 일물일어는 커녕 새로운 낱말을 임의로 지어내곤 한다. 한번은 전화로 ‘QR 코드’를 말하려는데,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그 검버섯 같은 것 있잖아”라고 둘러댔다. 어쩌면 새 낱말을 배우고 언어를 익히기에 참 좋은 나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