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령 씨는 '신기원'을 열고 있습니다. 이전 대통령 친인척의 발호와는 양상과 성격이 전혀 다른 행각을 벌이고 있습니다.이전 친인척의 발호는 둘 중 하나였습니다. 이권을 챙기거나 인사에 개입하거나 둘 중 하나였죠. 이런 발호 행각의 동기는 사익 추구였고, 발호 영역은 음지였습니다.박근령 씨는 다릅니다. 손가락에 침 묻혀가며 지폐를 세는 것도 아니고 손가락 까딱까딱하며 회전의자를 지목하는 것도 아닙니다. 양지에서 대놓고 외칩니다. 위안부가 어쩌고, 신사참배가 어쩌고, 내정 간섭이 어쩌고 하면서 정치·사회·역사적인 오지랖을 떱니다.물론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모두에게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친인척이라고 해서 이런 기본권을 누리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표현된 양심이 역사적 사실과 국민 정서에 반할 경우 비판을 가하고 논쟁을 할 수는 있지만, 양심의 표현 행위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이런 원론적인 얘기는 자연인에게 해당하는 것입니다. 한 자연인 이름 앞에 특수 신분·특수 지위가 붙을 경우 양심의 자유는 몰라도 표현의 자유는 엄격히 절제돼야 합니다.박근령 씨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박 씨는 일본 포털사이트 '니코니코'와 특별대담을 가졌습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무명의 자연인에게 쉬 부여되지 않는 '특별한' 표현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궁금증이 싹틉니다. 박근령 씨는 무슨 자격으로 '특별한' 표현 기회를 얻었던 걸까요? 박 씨의 직함을 아무리 검색해 봐도 찾을 수 없습니다. 육영재단 이사장이나 한국여성바둑연맹 총재 같은 직함이 등장하지만 모두 과거형입니다. 박 씨의 현재 직책이 바이오운동본부 총재라는 보도가 있지만 인터넷 검색으로는 잘 확인되지 않습니다. 설령 박 씨의 현 직책이 그것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바이오운동과 과거사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박 씨가 과거사에 대한 '특별한' 표현 기회를 얻은 것과 직책과의 상관성을 논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관련 기사 : 朴 대통령 동생 박근령 "위안부 日 사과 요구 부당")
'언니 덕'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대통령인 언니, 특히 과거사 문제 때문에 일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듯한 대통령 언니 덕에 과거사에 대한 '특별한' 표현 기회를 얻은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니코니코'가 '박근혜 대통령 친동생'이란 점을 고려해 박근령 씨에게 특별 대담 기회를 줬고, 박 씨 또한 이를 모르지 않았다면 그 순간부터 박 씨는 절제했어야 합니다. 한 개인을 넘어 '대통령 친동생'인 점을 가슴에 새기고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신중을 기했어야 합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과거사 문제로 우리와 긴장을 넘어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에서의 처신이었기에 더더욱 그래야 했습니다. 한 개인의 '양심의 표현'은 술자리 토론 거리는 될지언정 정치·사회·역사적인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친동생'의 과거사 발언은 차원이 다릅니다. 정치·사회·역사적인 맥락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정치·사회적인 목적에 따라 이용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마땅히 절제했어야 하고 신중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박 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귀국길에서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식으로 항변하며 또 다시 비뚤어진 역사관을 줄줄 읊었습니다.
박근령 씨의 이런 행각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크나큰 부담이 됩니다. 박근령 씨 이름 석 자 앞에 '대통령 친동생'이라는 특수 신분이 붙는 순간 좋든 싫든 '박근령의 역사관'과 '대통령 박근혜'와의 상관관계는 세간에 회자됩니다. 그렇게 박 대통령 개인에게 부담이 되고, 나아가 국가 전체적으로도 부담이 됩니다.
이런 이치를 모를 리 없기에 응당 박 대통령이 나서서 동생을 단속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최소한 박근령 씨가 '니코니코'와의 특별 대담에서 되지도 않는 역사관을 읊은 뒤에라도 입조심을 시켰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면 박근령 씨가 어제 귀국길에 그런 망발을 했겠습니까?
청와대 관계자가 그랬답니다. 박근령 씨의 행각에 대해 "우리와는 관계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답니다. 박 대통령 본인은 동생 문제가 논란이 되던 어제 페이스북에 휴가 중인 자기 근황을 알리면서 '중국 청년이 보내온 따뜻한 글'을 소개했답니다. "대통령께서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수양을 쌓고 실천해야 한다'고 했던 문구를 제 노트에 적어놓고 있다"는 글이라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일반인에겐 수양을 쌓으라고 고상하게 말했으면서도 입방정을 떠는 친동생에게는 수양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게 있습니다. 정윤회 문건 파동 뒤끝에 열린 신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토했던 날 선 말 한마디인데요. 동생 박지만 씨를 겨냥한 말로 해석된 그 말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영리,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전혀 관계없는 사람과 관계없는 사람 중간을 이간질시켜서 뭔가 어부지리를 노리는 그런 데 말려든 것이 아니냐, 그런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된다."
'바보 같은 짓에 말려들지 않도록 정신 차리고 살라'는 그 말. 지금이야말로 정말 절실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