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8.
직원회의를 했다.

오늘 오슬로(Oslo) 시내투어는 대중교통이다.
베르겐에서 재미를 본 요숙이 주도했다.
요 카드는 베르겐 투어 카드와는 다르게 순전히 교통카드다. 따라서 버스, 트램, 메트로, 페리... 비행기 빼고 모두 프리패스다. 단 24시간내.

일단 버스를 탔다.

핀란드 알파벳을 이제 약간 알까말까 할 때 노르웨이로 건너 와버렸으니 또다시 일학년이다. 그렇지만 종이지도의 여왕과 네비의 달인이 아니던가.
오슬로 성당(Oslo cathedral)으로 왔다.
장기 여행자는 교회와 성당을 자주 찾아야한다. 기도를 자주해야 하는 여행자에게는 모든 신이 가능하다.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이다.
오가는 행인은 많고 거리는 깨끗하고 예쁘다.

물가만 빼고.

걷고 걸어서 중국인 단체가 점령한 Akeshus Fortress(요새)를 지나

오슬로 항구로 걷는다.

오는 길에 자율주행차가 일정구간을 왕복하고 있다. 오슬로 투어카드면 무료승차다. 못 탔다. 사진도 없다. 이래 여행하마 안되제. 쯧 쯧. 마음에 여유가 부족하다.
오슬로 시청이 가까와진다.
구글맵에 영업종료란다. 무신 영업하노?

시청은 한창 공사 중이다. 딱딱한 시청을 예술작품으로 장식하는 것도 좋은 발상이다. 배불뚝이 동상이 웃고 있다.

시청 옆에 노벨평화센터가 있다.
노벨상은 스웨덴에서 주는데 평화상만큼은 왜
노르웨이에서 줄까?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전쟁을 자주했다.
예상 밖으로 지배국가는 스웨덴이었다.
이젠 평화롭게 살자고 비용은 부담하면서 평화상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주게 된 사연이다.
1층에는 환경운동에 관한 노르웨이 아이들의 전시물이 있고

2층에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관한 사진과 이력이 소개되어 있다.
앞서가던 일본인 guide가 강꼬쿠노 다이또료 기무... 머 이런 소리가 들린다. 입구에 들어서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먼저 디스플레이 되어있다. 그의 이력과 sunshine policy가 소개되어 있다.

Food 트럭이 줄지어 있는데 바베큐 냄새가 발을 잡는다. 요숙과 잔디에서 밥 묵는 것에 합의.

잔디에 누워 눈을 감으니 길거리 버스킹이 감미롭다.
아들과 젊은아빠 둘이 청바지에 빨간티를 갖춰 입고 아코디온으로 화음을 맞추는데 제목은 몰라도 화창한 일요일에 잘 어울린다.
...
누워있는 옆에는 잘 생긴 남자가 길거리의 웃자란 정원수를 반듯하게 정리하고 있다. 두어 번 왱하더니 뒤로 물러나 감상한다.
일하는 사이 사이 길가는 아가씨들 보는지 한참 먼 곳 보다가 또 왱~ 한다. 미소띤 얼굴로 참 여유롭다.

일요일이라 시청은 영업종료인데 이 분은 공무원인가? 행위예술가인가?
...
노르웨이는 입헌군주국이다. 엄연히 왕이 있고 왕궁이 있다. Palace로 가는 길.

유럽의 왕궁은 겉만 봐도 알 수 있네.

노르웨이의 왕은 자기나라를 지배했던 스웨덴의 왕자다. 이들 북유럽 나라뿐이 아니다. 친인척인 자기들끼리 전쟁도 하고 왕도 나눠갖는 유럽의 왕들보다는 예쁜 근위병 아가씨에 더 정이 간다

요숙 신나는구나

트램을 타고

비겔란 조각공원으로 갔다.

성이 난 꼬마 손을 얼마나 만졌는지 반들반들하다. 손만 그런거도 아니네.

비겔란 후기의 작품들은 비겔란 공원에 많이 모여있다. 다리, 분수, 계단 등에서 수많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17m 높이의 거대한 화강암 조각상 ‘모놀릿(Monolith)’이 있다. 멀리서는 그냥 기둥으로 보이지만, 많은 남녀가 살아있는 듯 묘사되어 있다. 사람의 인생을 탄생부터 죽음까지 표현한 작품이다.
이 석상 모놀릿은 어릴 적 아버지의 사진책에서 몇 번이나 보았었기에 조각 자체보다 아버지에 대한 회상에 오래 젖었다.

모든 작품 감상이 그러하지 않을까.
우리가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경험 세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 역시 자신의 경험을 벗어나기 어렵다.
경험하지 못한 것은 좀체 상상하기도 어렵다.
내가 감히 논할 바는 아니나,
예술의 역할은 어쩌면 그 경험의 한계를 넓혀 주는데 있는지 모른다. 난해한 그림이나 시를 불평해서는 안되는 이유라고 본다.
바로 그 불편한 지점이 내 경험의 세계가 밖으로 확대되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불편하지만 남의 안목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열린 마음일 때 비로소 성장은 일어난다. 그래야 부딪히며 사는 삶에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여행은 늘 새로움 속에 있다. 주변의 흔한 것에서 새로움이 느껴지는 것은 그 마음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주변이 늘 새로운 까닭은 우리의 삶이 너무나 짧은 탓이기도 하다.
자기식의 옳고 그름과 손에 잡히는 목적지향의 기준 외에는 허용을 하지 못하는 딱딱한 마음 앞에는 그 어떤 것도 새로울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마음의 벽은 결코 쉽게 깨어지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를 부정하는 아픔을 수용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
오슬로는 1952년에 동계올림픽이 있었던 도시다. Holmenkollen의 스키점프 Tower로 간다.
subway 탔다. 여러가지 탄다.

노르웨이는 스키 점프의 종주국이고 Holmenkollen의 스키점프 Tower는 바로 그것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진짜 내려가? 생각하니 온몸이 긴장된다. 젊음과 용기가 없고서야 어떻게 내려가겠나.
...
스키점프대를 보다 보니 내 어깨에 엊혀다니던 배낭이 점프해 버리고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두고 왔는지 도통 알 수 없다. 결국 사진을 조사해 보니 비겔란 공원 카페다.
짚라인을 타고 싶었지만 배낭이 우선이다. 배낭 찾으러 다시 subway타고. buss 갈아타고 또 도보로 비겔란 공원에 영업종료 전 슬라이딩.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 저.. 거시기 내 백팩을 두고 갔는데요..
... (아가씨) Yes~ I have it. (이런 영어 잘 들린다)
아가씨가 얼메나 이쁘던지.
생각해 보면 내 건망증은 역사가 길다.
이번 여행에서만 잃어버린 것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등산화. 구두. 운동화. 치솔 1(1개 오늘 찾음). 겨울모자. 시계. 새로사서 뜯지도 않은 면도기. 조끼. 샴푸. 샤워젤. 수건. 양말 다수....
야 건망증은 있어도 기억력도 있네.(자랑이라꼬)

해괴한 소리 그만하고 자자.
...
2019.7.9.
달오의 일정상 스웨덴까지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상당히 허둥댔다.
오슬로 캠프장으로 다시 돌아와 샤워로 전열을 가다듬고. 어제 못 본 뭉크박물관으로 갔다. 문을 열기도 전에 입구의 줄이 길다.

예전에 대표작 <절규>를 한번 도둑맞은 경험 때문인지 박물관 검색이 공항보다 엄격하다.
다른 작품과 달리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조명을 하지않아 비교적 어두운 곳에 있었다.

아내도 후손도 없이 정신분열까지 겪었던 한 남자의 속마음이 그림으로 전해진다.

...
오슬로를 마감하고
일찌감치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향한다.
러시아로 돌아갈 일정은 시베리아의 눈이 결정한다.
나폴레옹도 아니지만 겨울이 오기 전에 시베리아를 통과해야 한다. 마냥 느긋할 수는 없다.
스웨덴으로 넘어오자 확실히 산과 피요르드가 없어지고 들이 넓어진다. 오늘은 특히 날씨가 좋다. 고속도로 옆 공원이다.

장난하다가 길을 놓쳐 들어선 시골길

노르웨이에서 볼 수 없었던 넓은 밀밭이다.

예약하지 못한 탓에 electricity없이 스톡홀름 첫날 밤을 맞는다.
아듀~
...
2019.7.10.
스톡홀름 시청. 노벨박물관. 아바박물관. 노르딕박물관. 국립도서관. 바사박물관 6개를 이정표로 찍고 출발한다.
직원회에서는 대중교통과 차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으나 차를 갖고 가기로 결정되었다.

멋지다. 스톡홀름을 배경으로 역광의 햇빛 아래 젊음이 빛난다.

여러 도시의 경관 어디나 좋았으나

스톡홀름. 스톡은 통나무. 홀름은 섬이란 뜻이다.

스톡홀름은 스웨덴의 수도이자 14개의 섬과 운하가 있어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 불린다.
그만큼 아름다운 도시라는 말이다. 인정.
유고르덴섬에는 여러 박물관이 모여있다. 가장 일찍 영업종료되는 바사(vasa)박물관부터 찾았다.

바사박물관은 1600년대의 범선 바사호 한 척의 범선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별 기대없이 갔다가 그 크기와 현실감에 놀랐다.
스웨덴의 바사 왕조의 왕이 발트해를 두고 독일과 힘겨루기를 하던 중이라 전함 건조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가 바사호였다고 한다.
당시 최대의 전함이 바사호였는데 1628년 스웨덴의 왕과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수식을 마치고 폴란드로 첫 출항을 나서기 전에 기념포를 쏘았는데 그때 돌풍에 의한 영향이 더해져 중심을 잡지 못하고 침몰했다.
승선했던 30~50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수장되었고 333년간을 바닷물 속에 있다가 1961년 인양 되었다.
발굴 결과 놀랍게도 원래의 모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한다. 그 발굴선이 지금의 바사 박물관이다.

아래는 바사호의 단면이다. 배의 왼쪽은 네덜란드 기술자들이 만들고 오른쪽은 스웨덴 기술자들이 만들었단다.
그런데 이 두 나라의 자가 약간 달랐고 그 결과로 한 쪽이 더 길다. 이 결과가 배의 침몰로 이어 졌다고 한다. 이런거 우에 아느냐고요?
열심히 보고 있는데 익숙한 언어가 들리기에 보니 한국인 단체 관광 가이드의 목소리더라 이겁니다. 일종의 컨닝이지요.
사진의 맨 아래가 벨라스트인 돌을 실은 것이고 그 위에 맥주가 있다. 오랜 항해를 위해 고기를 염장하니 짜고 그 갈증해소는 맥주라야 된다네.

스톡홀름에는 아바(abba)박물관도 있고

바사박물관 옆의 노르딕박물관도 있다.

또 사실 스톡홀름 투어 1순위가 노벨박물관이었는데 주차불가로 들르지 못했다.
물론 노벨과 수상자에 대한 자료가 있지만 요즘은 인터넷이 좋잖아. 생략.

...
요숙과 신중한 직원회를 한 결과는 이와같다.
우리가 참으로 어렵게 스톡홀름까지 왔으니 죽은 박물관 그만 보고 살아있는 박물관이 어떠냐? 좋다. 이렇게 만장일치를 보았다.
스톡홀름 최대의 번화가 Drottning gatan이다.

요숙이 그냥 지나칠리 없다. 최대의 백화점 엥꼬인지 엥카인지를 갔다.

거리의 화가도 보며 즐거운 쇼핑이었다.

집으로.

요숙이 변했다. 카운터에서 로컬맥주가 뭐냐고 물어서 사왔다. 둘이서 의논하며 여행기를 쓴다.

여기는 제법 밤이 있다. 오늘 처음 준비해 온 스탠드를 켜고 글을 쓴다.
아듀~~
스톡홀름 Drottning gatan에서
(7/10 00:30 )
첫댓글 점점 여행 이야기가 농익어 가고,
읽을수록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갑니다~^^
현실을 잊고 현재를 잊고 나를 잊고 또 너도 잊을 수 있는 여행, 여행은 진정 나의
영원한 로망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흥미
진진한 story를 엮어가는 미송과 요숙. 그대들은 진정 행복과 행운의 샘입니다.
두분의 신나는 여행에, 한달동안 끼워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적은 경비와 편리한 교통, 그리고 동반의 감사함을 누렸습니다.
수년내로 북미도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계신것으로 아는데, 샌디에고 부근에 오시면 우리집에 머무르시고, 제가 잘 안내해 드릴께요. 안내가 없어도 더 잘 알고 다니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