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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전쟁과 평화 그리고 종교
1. 전쟁의 인과관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려던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쟁 중이다.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전쟁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겠다는 명분으로 하마스를 지원하던 이란에 폭격을 가했다. 이란이 미사일로 맞대응하자 미국이 이스라엘을 편들며 이란의 지하 핵시설을 전면 공격했다. 확전 직전에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중동 지역에서는 늘 전면전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그 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전쟁은 물론 전쟁급 분쟁들이 없었던 적이 없다.
전쟁은 폭력의 전형적인 양상이다. 폭력의 스펙트럼은 넓고 표현 양상은 다양하다. 요한 갈퉁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폭력은 전쟁과 같은 ‘물리적 폭력’, 독재정치·경쟁적 경제 시스템·계급 제도 등에 기반한 ‘구조적 폭력’,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어떤 양상의 폭력이든 거기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구조적 폭력이나 문화적 폭력은 원인을 콕 집어 말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원인은 다양하며,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그에 비해 전쟁과 같은 물리적 폭력은 원인을 규명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워 보인다. 〈유엔헌장〉에서 “모든 회원국은 자국의 국제관계에 있어서 어떠한 국가의 영역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에 반하거나 국제연합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그 밖의 어떠한 방식의 무력 위협이나 행사도 삼가야 한다.”(제2조 4항, 1945.6.26)라고 규정하고 있듯이, 국제법적으로는 전쟁을 먼저 일으킨 쪽에 원인과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무력을 먼저 행사한 쪽에도 언제나 나름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 그 옳고 그름을 법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국제법이라는 것도 관련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전쟁의 책임 소재를 명시하기 어렵고, 법 조항을 적용하기 위한 현실적 논리를 찾기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법은 관례적으로 승자 중심으로 적용되는 데다가 해석 주체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오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전쟁의 이유를 추적해 들어가다 보면, 하나의 원인만이 아닌, 이해관계로 얽힌 복잡한 실타래를 만난다. 오래된 적대성, 구조화된 폭력, 폭력을 정당화시키는 문화적 대응 태도들을 만난다. 물리적 폭력의 일차 원인은 이차 원인 때문이고, 이차 원인은 삼차 원인 때문이며, 그리고 삼차 원인은 사차 원인 등을 거쳐 다시 일차 원인과 만난다. 원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원인으로 이어진다. 축구에서 골을 넣는 선수를 보며 환호하지만, 그전에 도움을 준 선수가 있고, 그전에 패스한 선수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득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골을 넣은 선수만 축구의 주연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전쟁에서 하나만의 원인을 특정하기가 어렵다.
제1차 세계대전을 예로 들어보자.
2. 제1차 세계대전의 복잡성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을 촉발한 계기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하 오‐헝 제국)의 황태자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는 사건이었다. 그 때문에 오-헝 제국과 세르비아의 관계가 더 긴장되었고, 오-헝 제국은 이 기회에 세르비아를 아예 속국화하겠다며 전쟁을 개시했다. 국가 간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는 것은 전쟁의 원인이 저격범 개인의 탓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민족주의적 긴장 상태에 있었고, 국제정치적 상황과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차대전 이전 유럽 주요 나라들은 저마다 제국주의적 팽창의 길에 나섰다. 그 과정에 이해관계가 얽힌 나라들끼리 우호 관계 혹은 동맹 관계를 맺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제국 세 나라는 우호조약(entente)을, 독일제국, 오-헝 제국, 이탈리아 왕국 세 나라는 동맹(alliance)을 체결한 상태였다. 정치적으로는 연합했지만 우호 국가들끼리도 저변에서는 민족 정서에 따른 긴장 관계에 있기도 했다.
오‐헝 제국은 정치적 대타협으로 구성된 다민족, 다언어 국가였다. 남슬라브 민족도 오-헝 제국 구성원의 하나였다. 오-헝 제국의 확장 정책으로 남슬라브족이 대다수인 세르비아는 위협을 느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오-헝 제국의 남슬라브족을 포함한 슬라브족 통합국가 혹은 연합체를 이루고 싶어 했다. 당시 범슬라브주의를 내세우며 슬라브주의의 맏형 역할을 하던 러시아는 이러한 세르비아와 민족 정서가 통했다. 반대로 오-헝 제국은 범슬라브주의의 확장을 경계하며 세르비아, 러시아 등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민족주의의 상황과 정치적 관계 속에서 황태자 피살 사건이 벌어졌다. 심층에서 복잡한 이유가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격 사건 이후 오-헝 제국이 세르비아를 침략하자, 러시아가 남슬라브족 국가인 세르비아를 지원해 참전했고, 러시아와 우호조약을 맺었던 프랑스도 조약에 따라 참전했다. 그에 대응해 오-헝 제국과 동맹 관계였던 독일이 오‐헝 제국 편으로 참전하면서 황태자 피살 사건은 세계 전쟁으로 비화했다. 긴장 상태에 있는 민족주의, 제국주의적 확장, 열강들의 복잡한 동맹 체계 등이 세계대전을 낳은 광범위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자세히 보면 다른 이유도 있었다. 러시아의 범슬라브주의가 전쟁의 공식적 동력이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법도 작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당시 러시아는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로서 영토 확장과 국제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단 참전한 뒤 러시아의 남방 확장에 걸림돌이었던 오스만 제국까지 붕괴시키고, 보스포루스해협을 장악하려는 열망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둘째, 러시아 사회의 불안정성을 전환시키고 내부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 참전했다는 것이다. 여러 해 전에 있었던 러일전쟁(1904~1905)의 패전 이후 내부 혁명으로 토지를 빼앗긴 농노들의 불만, 뒤처진 산업화와 농촌 사회의 빈곤, 전제 군주제도(차리즘)에 대한 비판 등 국내적으로 해결되기 힘든 어려움을 국외로 눈을 돌려 해결하려 했다는 것이다. 범슬라브주의와 같은 민족주의적 정서가 전쟁의 주요 이유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20세기를 전후한 일본에서도 그랬다. 일본이 대동아공영권을 명분 삼아 조선을 침략하고 병합했지만, 메이지 정부 출범 이후 사무라이의 특권을 해체하고 일반 군대로 흡수하는 과정에 쌓인 군부의 불만을 해소하려는 내부적 의도도 있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도 그런 내부적 의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전쟁을 하게 되면 국가는 더 군국주의화하고, 그 전쟁도 나라를 위협하는 적대자와의 ‘정당한 전쟁(just war)’이자 ‘거룩한 전쟁(holy war)’으로 호도된다.
3. 전쟁을 정당화하는 종교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전쟁과 종교의 관계이다. 같거나 비슷한 종교인끼리는 사이가 좋을 것 같지만, 도리어 험하게 싸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종교 전통에 속하는 이들이 서로 전쟁까지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주지하다시피 유럽 지역은 대부분 그리스도교 문화권이다. 1차대전이 벌어지기 전인 20세기 초 ‘우호조약’ 세 당사국의 주류 종교는 그리스도교였다. 영국은 성공회가 국교였고, 러시아는 정교회가 국교 수준의 주도 종교였으며, 프랑스에서는 전체적으로 가톨릭이 지배적이었다. ‘삼국동맹’의 당사국인 독일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절반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오-헝 제국은 주류 가톨릭이 일부 개신교 및 정교회와 섞여 있었고, 이탈리아는 가톨릭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당시는 종교의 세속화가 진행 중이었고, 지식인들 중심으로 교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높아지고 있었으며, 전통적인 교회의 권위는 약해지는 상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한결같이 그리스도교 문화권이었고, 민중의 그리스도교 의식은 여전히 견고했다.
그런데도 이들 국가가 서로 전쟁한다는 것은 종교를 사랑, 자비 같은 긍정적 가치나 이타적 행위 중심으로 보기 힘들게 한다. 사랑, 자비와 같은 이상적 삶도 현실에서는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며, 사랑도 애국주의의 동력으로 작용하게 되는 측면이 더 크다는 뜻이다.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는 교리상의 차이가 거의 없는, 사실상 같은 전통에 속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저마다 자국이 벌인 전쟁을 정당화하려 한다는 것은 종교적 신앙도 민족주의 같은 이념에 비해 미력하다는 뜻이다. 교회가 국가 단위의 살상 행위에 협력할 정도로 국가에 종속적이었다는 증거다. 정교회가 주류였던 세르비아의 슬라브 민족주의자에 의해 가톨릭이 주류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태자가 피살되고, 정교회 전통의 러시아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 편을 들어 참전하고,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가 동맹을 빌미로 살육전에 동참하게 된 것은 종교적 동질성보다 민족의식과 국가주의의 힘이 더 강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민족주의 ≥ 종교’였던 것이다. 이것을 말해주는 사례는 곳곳에서 확인된다.
4. 민족과 국가에 종속된 종교
1) 같은 신, 다른 얼굴
러시아정교회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상대편 참전국인 독일과 전쟁하면서 국민적 단결을 호소하고 전쟁 승리를 위한 모금을 하는 등 애국주의적 자세를 취했다. 독일은 자국을 “메시아적 사명”을 지닌 종교적 세력으로 보았고, 러시아는 자신을 “기독교 국가 중의 기독교 국가”로 여겼다. 저마다 같은 신을 내세워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전쟁에는 승패가 있게 마련이다. 승리를 ‘메시아적 사명’으로 여겼던 독일이 결과적으로는 ‘기독교 국가 중의 기독교 국가’를 자임한 러시아에 패했다. 그러자 독일 교회는 “악마의 하수인이 자신들 속에 있어서” 패전했다는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의 주제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어디가 이기고 졌느냐가 아니라, 전쟁에 종교적 가치를 부여하며 저마다 정당하고 거룩한 전쟁으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전쟁 자체를 정당화하는 데 종교적 세계관이 동원된 것이다.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1차대전 당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러시아의 식민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들 세 나라 모두 그리스도교 문화권이었고, 특히 리투아니아에는 가톨릭 신자가 많았고, 교회가 반러시아 세력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했다. 러시아의 정교회는 타국을 지배하는 행위를 정당화했다. 리투아니아의 가톨릭과 러시아의 정교회는 같은 그리스도교 전통이지만, 이들은 상이한 국가적 상황 속에서 서로 대립했다. 러시아의 교회가 자국의 식민 지배 행위를 비판했다는 기록은 찾기 힘들다. 도리어 자국을 정당화하고 타자를 악마화하는 사례들이 훨씬 많았다. 러시아의 교회와 리투아니아의 교회 중 어디가 옳으냐와 상관없이, 이런 사례들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힘이 종교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트남전쟁 당시 남베트남의 지도자 응오 딘 지엠은 남베트남을 가톨릭 신앙으로 무장시키려 하였으나 공산주의자 호찌민의 주도하에 민족주의 정서로 뭉친 북베트남에게 패하며 무너지고 말았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남베트남에서는 가톨릭 신자가 상대적으로 많아졌지만, 베트남 전반의 오랜 민족의식을 당해내진 못했다.
일본 불교계, 특히 조동종과 일련종에서는 태평양전쟁 당시 자국의 아시아 침략을 성원하고 군대에 전투기를 기증하기 위한 모금 활동을 벌였으며, 전쟁의 최고 책임자였던 황실을 적극 지지하는 등 전쟁에 협력했다. 근대 일본 최고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는 정교한 논리로 천황제를 높이면서 계획적이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쪽으로 나아갔고, 선(禪)을 세계에 알린 스즈키 다이세츠는 선의 철학을 군국주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기도 했다.
2) 반공과 반미라는 종교
한국은 어떤가.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 남과 북에 서로 다른 정권이 들어서고 급기야 전쟁까지 벌어지자,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같은 신앙을 고백하던 남과 북의 교회들이 상대를 저주하며 자기들의 승리를 기원했다. 남쪽의 교회는 6·25전쟁을 성전(聖戰)으로 규정한 뒤 북진통일을 외쳤고, 북쪽의 교회는 미제국주의를 예수 배반자 유다에 비유하고 남한을 악마시하면서 북한의 승리를 위해 무기 대금 헌납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전쟁이 정전협정으로 일시 중단된 이후 참전 19개국이 제네바에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회담을 했지만(1954), 별 성과 없이 끝났다. 유엔의 역할에 대한 이견과 한반도에 주둔 중인 외국 군대의 철수 대상 및 절차에 대한 이견 때문이었다. 유엔은 중국군의 선철수와 유엔군의 후철수를 주장했지만, 공산 진영 측은 한국을 위해 참전했던 유엔은 한반도 통일의 공정한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남쪽의 이승만이 미군에 기대 북진통일을 주장하면서 외국군의 철수 문제는 합의 불능의 상태에 이른 것이다. 북한은 전쟁에서 막대한 피해를 준 미군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 의식을 놓을 수 없었고, 남한은 반공주의자들의 세력과 목소리가 워낙 컸다. 남한에서는 여러 종교가 반공주의를 거의 신앙화했고, 북한의 종교는 반종교적 공산주의 이념에 따라 사회에서 사라져 갔다. 이런 종교의 태도와 정치 상황은 그 이후에도 남과 북의 평화 협상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 종교가 불공정한 국제정치적 환경에 둔감하고 평화마저 자기중심적으로 도모하면서, 한반도는 갈등이 문화화하는 ‘고질적 갈등’의 현장이 되었다.
5. 수단과 목적의 전복
전쟁 같은 국가적 재난 사태에 처할수록 종교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내세우고 자국의 승리를 기원했다. 전쟁을 이유로 같은 종교인끼리 서로 멸시하고 자신의 정당성을 앞세웠다. 종교 본연의 가르침에 어긋나 보이는 이런 현상은 종교의 일시적인 실수나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도 결국 ‘인간 현상’이고, 인간이 ‘진리’라는 것을 자신이 경험한 역사적 상황, 문화적 환경, 인간관계 등에 기반해 해석하고 그에 어울리게 적용하려는 데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사랑이나 자비와 같은 이상적 가치와 태도도 현실에서는 결국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되고 구체화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의 요지가 그렇듯이, 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유전자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며, 이타적 행위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이기성을 위한 수단에 가깝다. 종교도 인간이 집단을 이루며 존속하는 한 이런 현상은 필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종교적 제도의 특징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운영을 위한 제도는 원칙적으로는 보편적인 진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그 공동체의 구성원은 그 제도 안에서, 그 제도와의 관계성 속에서 진리를 이해하고 확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진리라는 목적과 그 목적의 유지를 위한 수단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곤 한다. 나아가 수단이 목적으로 전도되곤 한다. 이것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가 신의 사랑을 선포하며 살았지만, 선포된 신의 사랑이 정말 신의 사랑이려면 그렇게 선포하는 예수가 신의 사랑의 화신이어야 한다는 논리와 적어도 ‘형식’에서는 비슷하다. 그런 논리에 따라 ‘예수’와 ‘신’과 ‘화신’이 거의 동일시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교회에서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교황 무류성(Papal In-fallibility)도 그 사례이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1869~1870)에서 교황에게는 오류가 없다는 입장을 공식 교리로 천명했었는데, 그래야 교회가 2,000년 가까이 전승해 온 진리에 잘못이 없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종교의 개조 대다수가 신격화되다시피 하는 것도 같은 구조이다. 가족이 사회적으로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가족을 엄정한 도덕이나 객관적 법률보다 앞서서 보호하면서 가족 관계가 유지되어 가는 것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종교의 자연스러운 모순이 있다. 종교의 모순이라지만 이때의 ‘종교’는 추상어일 뿐, 엄밀하게는 ‘종교인’의 모순이다. ‘종교’라는 말이 지시하는 최종 지점은 그 종교를 낳은 ‘종교인’이다. 종교도 ‘인간 현상’인 것이다. 인간 현상으로서의 종교가 인간을 구성원으로 하는 사회의 운영이나 작동 방식과 완전히 달라질 수 없는 이유이다. 종교에서 초월적 존재를 전제하고, 초월자와의 근원적 연결성을 선포하며, 그에 따른 궁극적 구원의 길을 제시하지만, 그 구원의 길도 결국 한 사회 안에 사는 인간을 통해서 전승되고 집단을 운영하는 조직과 제도 안에서 운영된다. 선포와 전승 과정에 선포하는 주체와 선포된 진리 간의 불가분의 관계가 형성되고, 구원의 길을 전승하고 유지하는 특정 종단 혹은 조직도 그 자체로 정당해져 간다. 나아가 종교의 자기중심성이 자연스러워지고 자기중심성에 기반한 배타성도 자리 잡는다.
그렇다면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 인간은 왜 세계를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늘 자기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려 하는 것일까의 문제다. 전쟁과 종교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 글에서 한 단계 더 깊게 답해야 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그 과정에서 직면하는 것이 바로 ‘욕망’의 문제다.
6. 욕망 이론과 전쟁의 심리적 원인
집단이나 공동체의 힘이 진리를 직접 인식하는 개인들의 힘보다 센 이유는 전술했듯이 개인들의 인식도 공동체 안에서 타자와의 관계성 속에서 형성되기 때문이다. 개인의 주체적 행위로 여겨지는 그 심층에 이미 집단 내지 사회의 복잡한 관계망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 및 모방 이론은 이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1)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지라르에 의하면, 공동체나 제도는 ‘욕망’을 기반으로 하고, ‘욕망’은 ‘모방’을 통해서 강화된다. 인간은 ‘모방하는 인간(호모 미메티쿠스)’이다. 이때의 모방은 타인과 같아지거나 그 이상이 되려는 욕망의 표현이다. 욕망은 배고픈 이가 음식을 갈망하는 좁은 의미의 욕구와는 다르다. 그다지 배고프지도 않은데 분위기 있는 식당에서 식사하는 어떤 모델(매개자)을 보면서 그 식당에 가보고 싶다거나 실제로 찾아가도록 하는 동력에 가깝다. 욕망은 주체 안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나의 외부에서 그 누군가로부터 빌려온 감정이다. 욕망은 매개자에게서 온 것으로서,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타인의 감정에 의존해 고양시키려 한다.
자본주의도 자본을 향한 어떤 이의 욕망을 모방적으로 욕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고양시키려는 시도들이 모여 형성된다. 인간은 그저 물질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사용자를 상상하며 그가 누릴 것이라고 암시되는 내용에 종속된다. 이런 식으로 인간 욕망의 주체와 대상은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매개자를 통한 삼각형의 관계에 있다. 모방 주체와 모방의 매개자와 모방의 대상은 ‘삼각형 욕망’을 이룬다.
‘삼각형 욕망’들은 기본적으로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형성되면서 동시에 이 욕망들이 중층적으로 얽히며 집단이나 공동체를 구성한다. 종교 공동체도 ‘모방 욕망적’으로 유지된다. 조직 내 누군가의 ‘욕망’―‘희망’이라고 해도 과히 달라지지 않는다―을 모방하기 위해 그의 욕망을 자기 안으로 가져온다. 서로가 서로를 모방하면서 조직을 유지시키는 제도도 형성되고 유지된다.
나의 주체도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며 형성되기에, 그렇게 욕망하는 나의 내면은 나의 것이면서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것이 아니기에 완전히 충족되지도 않는다. 한자어 ‘욕망(慾望)’의 의미 그대로 ‘하고자 하고[慾]’ ‘바라지만[望]’, 하고자 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바라는 대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 하려 하고 바라는 주체가 순수하게 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채울 수 없는 채움의 과정들이 겹치면서 갈등도 생기고 커진다. 같은 문제를 살짝 다른 관점에서 탁월하게 해명한 이들이 프로이트와 라캉이다.
2) 프로이트의 ‘것’과 라캉의 ‘외밀’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욕망의 근본 원인에 대해 말하기 위해 ‘das Ding(the Thing)’이라는 용어를 쓴다. 우리말로 ‘사물’이라 번역하곤 하지만, 딱 맞는 번역은 아니다. ‘그것’이라고 번역하거나 ‘물(物)’이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둘 다 애매한 표현이다. 일본어의 ‘모노(物)’가 비교적 이에 어울리는데, 우리말로는 그냥 ‘것’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나아 보인다. ‘것’은 ‘이’ ‘그’ ‘저’ 등의 지시대명사로 지시는 되지만 포섭되지는 않는다. 프로이트는 das Ding의 사례로 어머니의 가슴을 든다. 어머니의 가슴은 유아 시절 이래 주체가 끊임없이 욕망하지만 결코 완전히 얻어질 수 없다. 유아에게 어머니의 가슴은 원초적인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딱히 그 어떤 것으로 분화되지도 않고 될 수도 없는, 그러나 기억 속에 각인된 ‘타자’의 흔적이다. 이 자아 속의 타자가 ‘것(das Ding)’이다. ‘것’은 주체에게 가장 내밀하면서도 동시에 이질적이고,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근원적 대상이다. 욕망의 근원이면서 결코 완전히 도달할 수 없는, 내부의 외부자이다.
자크 라캉은 ‘것’의 의미를 ‘외밀’ 개념으로 설명한다. ‘외밀(extimité)’은 라캉이 프랑스어 ‘intime(내밀한)’과 ‘extérieur(외부의)’를 결합한 신조어로, ‘가장 내밀한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외부의 것’이라는 역설의 의미를 담고 있다. 주체의 가장 내부에 위치하면서도 동시에 주체에게 외부적인 어떤 지점을 가리킨다. 프로이트의 ‘것’이 바로 그와 같다는 것이다. 주체의 가장 내밀한 곳에 있으면서 동시에 주체의 통제를 벗어난다. ‘것’이 ‘이’ ‘그’ ‘저’ ‘어떤’ 지시대명사로 지시는 되어도 포섭되지는 않듯이, ‘외밀’은 주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외부적이고 이질적인 근원적 실재다. 주체의 핵심인 ‘나’라고 여겨지는 지점에 오히려 외부적이고 이질적인 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주체는 분열되어 있고, 그 심층은 ‘외밀’하다.
라캉에 의하면, 무의식은 ‘외밀’하게 작동한다. 무의식은 주체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욕망을 추동하면서도 주체의 통제 밖에 있다. 무의식은 주체에게 ‘외밀’한 영역이다. 타자의 시선과 인정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이, 시쳇말로 ‘관종’은 외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생활을 외부에 공개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생활 주체인 자신을 확인하려는 SNS의 흐름은 외밀의 사례이다. 그렇게 확인된 ‘나’는 나의 내면이면서 동시에 나와는 이질적이다. 욕망은 ‘외밀’하기에 만족이 없다. 그렇게 주체는 분열되어 있으며, 욕망은 무한히 경쟁적으로 계속된다.
종교도 인간 현상인 한 그런 구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도화한 종교의 경쟁적 지속은 사랑과 자비도 ‘모방’과 ‘욕망’으로 치환시키고 욕망의 산물인 조직과 제도로 잔존하며, 외적 조직과 제도가 개인 신앙의 영역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사랑과 자비 같은 이상적 가치는 그저 이상으로 남고, 현실에서는 사랑과 자비의 가르침을 전승한다는 제도와 불가분의 관계가 된다. 일반적인 의미의 신앙도 주체적인 것 같지만 주체와 이질적 영역에서 활동한다. 그것이 인간 현상이며, ‘종교인’이 ‘비종교인’의 삶의 양태와 근본적으로 달라지기 힘든 이유를 잘 보여준다. 다시 지라르로 돌아가 보자.
3) 희생양 메커니즘과 전쟁의 정치
모방 욕망은 경쟁적이다. 지라르는 상대방의 소유를 자기도 소유하기 위해 상대방을 모방하려는 욕망이 일상화되면서 제도나 문화가 발생했다고 본다. 제도나 문화는 기본적으로 모방 욕망의 소산이다. 모방 욕망이 경쟁적으로 중첩되며 형성된 흐름에 적응하는 이들이 있고 밀려나는 이들도 있다. 적응하는 이들이 집단의 주류를 이룬다. 주류는 주류에서 밀려나는 소수자들을 은폐하면서 주류 중심의 집단이 유지된다. 주류는 밀려나는 이들을 은폐시키는 폭력에 가담한다. 소수 비주류를 주류의 이름으로 가리는 방식으로 그 가담을 정당화한다. 사랑과 자비가 조직의 제도나 주류 질서로 대체되는 것이 이런 식이다. 조직의 주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는 ‘희생양’ 삼아 주류에서 몰아낸다. 그렇게 조직과 제도를 유지해 가는 것이 인류의 오랜 ‘희생양 시스템’이다.
이때 내부의 갈등이 내부의 희생양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갈등이 외부화한다. 그것이 집단 대 집단의 대결로 이어지고 전쟁으로 비화한다. 전쟁은 본질적으로 거대한 규모의 모방적 경쟁과 폭력의 발현이다. 발현 직전에 적절한 계기를 명분 삼아 폭력을 구체화한다. 모방적 경쟁으로 쌓인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적으로 돌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거대한 메커니즘의 한 형태가 전쟁이다. 내부의 개별적이고 적대적 갈등들이 공통의 적을 향한 통일된 적대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의 자원, 영토, 지위 등을 모방적으로 욕망하고, 이러한 욕망이 충돌할 때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 적군과 아군이 명확히 구분된다. 전쟁은 적대성을 조장하고, ‘우리 의식’을 강화한다. 칼 슈미트가 ‘적’을 이질적 타자로 보고, ‘적과 동지의 구별’을 ‘정치적인’ 행위로 규정했는데, 이것은 여전히 유용하다. 한반도에서는 해방 이후 외세에 의한 분단 과정에 통일정부와 단독정부 구성을 둘러싼 대립이 증폭되었고 적대성이 강화되었으며, 전쟁 이후에는 남과 북이 서로를 적대시하는 정치가 자리 잡았다. 지금까지도 국내 정치가 강력한 진영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정치가 문화가 되다시피 했다.
그렇게 ‘정치적인 것’은 피·아를 나누고, 전쟁의 가능성마저 함축하며, 실제 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편들고 이란을 공격하면서 전 세계를 적군과 아군으로 편 가르는 ‘정치적 전쟁’ 혹은 ‘전쟁의 정치’ 행위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일종의 정치 행위로서의 전쟁은 종교의 역사에서도 쉽게 확인된다.
가령 고대 유대교의 십계명 중 여섯째는 “살인하지 말라”이다. 이때의 살인 금지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 윤리가 아니다. 그 계명을 지켜야 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내집단’이다. 다른 신을 믿는 외집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외집단에 대한 살인을 정당화하고 장려하기까지 한 사례가 더 많다. 외집단은 잠재적 위협이자 제거의 대상이며, 그런 이들을 죽이는 것은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집단의 생존을 위한 수단에 가깝다. 이런 계명은 안과 밖, 친구와 적, 나와 남 사이에 뚜렷한 경계선을 전제한, 내집단 중심의 ‘정치적’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의 경전을 계승해 온 그리스도교에서도 내집단과 외집단을 분리하며 외집단을 정복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컸다. 십자군 전쟁의 역사가 그렇듯이, 가령 그리스도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은 큰 틀에서 대립 구도 속에 있어 왔고, 그 대립적 자세는 일상이 되다시피 했다. 적과 동지의 구분에 기반한 종교의 정치적 행위가 외부자와의 갈등을 조장하고 내부자를 결속시키는 방식으로 갈등을 구조화해 온 것이다.
7. 거대한 부정성과 심층종교
이런 구조화된 갈등은 극복의 대상이지만, 갈등 구조가 다양한 평화적 시도들보다 더 큰 힘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근본적인 난제다. 갈등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악순환은 종종 평화적 노력을 집어삼키거나 평화를 흔적으로만 남긴다. 일종의 거대한 부정성(Big Negativity)이 작동하는 것이다. 이 부정성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회와 국가의 속성(idion)이자 형상(본질, eidos)과 같다. 그 속성과 형상은 부정적 반작용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평화를 시도하는 그만큼 폭력도 자라나고 문화화하다시피 한다. 평화가 일부 드러나는가 싶으면 다시 가려지는 식으로 부정성이 세계를 주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야 한다. 종교인 수가 비종교인 수보다 많은데도 전쟁이 계속된다면, 그런 종교를 과연 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폭력에 가담하는 종교가 종교의 전부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그것은 종교이되, 오강남의 표현을 빌리면, ‘표층종교’다. 종교의 층위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현실의 나를 중시하고 이해관계에 따르는 표층종교를 넘어, 진리와의 합일에 근거한 진정한 자아를 추구하고, 타자를 존중할 줄 아는 ‘심층종교’의 차원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같은 현실적 힘에 휘둘리고 이해관계에 종속되는 종교는 표층종교다. 사랑과 자비와 평화를 제도에 대한 헌신이나 자기중심적 배타성으로 대체해 버리는 종교는 표층종교다. 그러나 이 표층종교는 극복될 수 있다는 희망과 실제로 극복해야 한다는 요청도 늘 있어 왔다. 표층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심층에서 빛나고 있는 세계, 즉 심층종교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심층종교가 사람들이 여전히 기대하며 구체화되기를 바라는 종교의 정수이자 생명이다. 사랑과 자비와 평화가 심층종교의 구체적 모습인 것이다.
표층과 심층을 가르는 기준은 사랑과 자비를 가리는가 드러내는가에 있다. 사랑과 자비를 가리는 종교는 표층종교이고 드러내는 종교는 심층종교다. 사랑과 자비라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이웃을 살리고 모두의 생명을 존중하고 불공정을 개선하는 ‘행위’가 심층종교다.
물론 현실에서는 표층과 심층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는 가리고 드러냄의 기준도 상대적이어서 그 경계선을 명확히 긋기가 어렵다. 사랑과 자비마저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물리적 폭력도 불가피한 평화적 행위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상황이라 더 그렇다. 저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국가 단위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다수가 협력하는 평화적 시도가 갈등과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냉전기 유엔에서 제3세계에 파견한 평화유지군(PKO)이 그 사례다. 평화유지군은 한편에서는 지역의 분쟁을 축소하는 데 기여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지의 문화적 문법과 어긋나는 행동 때문에 다른 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하고 지배하다가 힘에 부쳐 철수하자, 탈레반과 같은 더 강력한 극우 정치집단이 등장하게 된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8. 명멸하는 평화와 감폭력
여기서 확인되는 중요한 난제는 사랑과 자비를 드러내는 힘보다 가리는 힘이 훨씬 넓고 깊다는 것이다. 부정적 세력이 긍정적인 노력에 더 깊게 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예수는 사랑과 자비에 기반한 구원의 소식(하느님 나라)을 외쳤지만, 그는 도리어 신성모독과 반로마 반역죄로 사형을 당했다. 부정적 가치가 더 크게 작동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세상은 그것을 알지 못했다”(《요한복음》 1,10)는 성경 구절도 그 빛을 가리는 어둠이 더 넓고 깊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예수는 처참하게 사형당했고, 빛의 일부는 다시 가려졌다. 하지만 어둠이 빛을 가리고 있다는 말은 예수와 그 제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럴 뿐, 예수를 사형시킨 이들과 그 후예는 그 행위를 정당한 법의 집행으로 여긴다. 이들의 관계를 두루 객관적으로 풀기는 대단히 어렵다.
무함마드는 알라 앞에서의 평등을 외쳤지만, 곧바로 그에 대항하는 적대세력이 생겼고, 그들과 불가피하게 전쟁할 수밖에 없었다. 평등이라는 이상보다는 힘에 기반한 위계질서를 당연시하는 흐름이 더 강했고, 신은 한 분이라는 이상적 선포는 기존의 다신교적 질서에 대한 부정으로 여겨졌다. 물론 이것도 무함마드와 그 제자들의 관점일 뿐, 무함마드에게 도전한 세력이 틀렸다고 판단할 만한 보편적인 기준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평화학적 기준이 있을 뿐이다. 이 글에서는 평화라는 기준을 중시하고자 한다. ‘평화는 폭력을 줄여가는 과정’이다. ‘폭력’이 큰 힘에 의해 작은 힘이 원치 않게 당하는 피해라면, 그 원치 않는 상처의 축소와 치유가 평화의 모습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평화이다. 이런 평화적 기준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탈위계적 평등 의식이 더 컸던 무함마드와 그 제자들이 더 평화적이다. 비록 이슬람의 제도화 과정에 그 평등 의식이 다시 어두워지거나 가려지기도 했지만, 평등 지향의 빛이 반짝거려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반짝이는 만큼만 어둠이 옅어지고, 평화는 빛이 비치는 만큼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거대한 부정성과 구조적 폭력 속에서 평화를 경험하는 방식이다.
평화는 기존의 부정성이 축소되는 방식으로 경험된다. 포용은 배제가 축소되는 형태로 경험되고, 사랑은 증오가 희석되는 만큼 경험된다. 자비는 독선이 줄어들거나 사라져가는 식으로 드러난다. 종교에서 선포하는 이상적 가치는 부정적 현실이 변화되는 형태로 드러나고 경험된다. 그래서 ‘평화는 부정성의 축소’ ‘폭력이 축소되어 가는 과정’이다. 요한 갈퉁의 ‘네가티브 피스(negative peace)’를 우리말로 ‘소극적 평화’라고 번역하는 경향이 있지만, ‘소극적’이라는 말은 오해되기 쉬운 번역어다. ‘네가티브 피스’의 본래 의미는 물리적 폭력이 줄어든 상태를 평화로 본다는 뜻이다. 폭력 줄이기로서의 평화이다.
유사 이래 폭력이 전혀 없었던 적은 없다. 그저 폭력을 줄여갈 뿐이다. 평화는 폭력을 빼고 빼서 0으로 수렴시키는 과정, 즉 ‘감폭력(減暴力)의 과정(minus-violencing)’이다. 폭력을 줄이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다. 다른 폭력이 도전해 오기도 하는 불안정한 과정이다. 평화는 불안정한 전이(unstable transition/transformation)를 특징으로 한다. 늘 변형된 갈등과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안정성은 감폭력의 증거이기도 하다. 줄어든 만큼 기존 질서가 흔들리기에 불안정하다. 하지만, 반짝이다 가려지다 다시 드러나는 빛은 안정적이지 않지만, 짙은 어둠을 그만큼 흐릿하게 만든다. 불안정성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부정성은 바위처럼 견고해 보이지만, 바위(rock)도 흔들림(rocking)을 본질로 한다. 평화는 작은 반짝거림들이 명(明)·멸(滅)하는 과정이다. 일체의 폭력이 사라진 정적 상태가 아니라, 견고한 폭력의 구조를 여기저기서 흔드는 불안정한 동적 과정이다. 특정 민족과 국가 중심의 이념을 흔들고,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표층성을 흔들며, 전쟁으로 몰아가는 거대한 부정성을 흔든다. 증오, 무관심, 불공정을 축소시킬 줄 아는, 그만큼 사랑, 자비, 정의를 드러낼 줄 아는 인간의 심층적 역량을 키워 가야 할 뿐이다. 그 심층적 역량으로 거대한 폭력을 흔드는 행위가 바로 ‘종교’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평화를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실천하는 이가 그대로 종교인이다. 신의 이름으로 전쟁에 협조하는 이는 종교인이 아니다. 억지로 명명해 표층종교의 영역에 포함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신을 내세울 것도 없이 전쟁과 살상을 멈추려 개입하는 이가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이다. 다양한 층위의 폭력을 줄여가는 이가 종교인이다. 지구상에 그런 종교인은 얼마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없지 않고 있다는 것이 평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평화학의 토대이자 희망이기도 한 것이다. ■
이찬수 chansuyi@hanmail.net
서강대 화학과를 거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남대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종교로 세계 읽기》 《다르지만 조화한다 불교와 기독교의 내통》 《평화와 평화들》 《메이지의 그늘》 《전쟁에게 평화를 묻다》(공편) 등 1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현재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부회장이며, 가톨릭대에서 평화학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