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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추(肉體魄)
손 창 섭
‘성혜 애호원’은 서울 교외의 조그만 산록에 있었다. 불구자 수용소다.
두 다리가 오그라들어 말라붙은 사람, 눈이 먼 사람, 양팔이나 양 다리나, 혹은 한쪽 팔다리가 무 토막처럼 동강난 사람, 팔이나 다리가 비꼬인 채로 힘없이 축 늘어져 건들거리는 사람, 머리와 수족이 24시간 와들와들 떨기만 하는 사람, 네 발로 기는 사람…… 이런 반 인간 아니 3분의 1 인간들이, 신에 대한 원망과, 완전 인간에 대한 질투, 반감, 저주와 자신들의 억울한 운명에 대한 절망을 번식시키는 곳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폐물 인간의 사육장이다. 파괴된 인간 육체의 전시장이다.
이런 기발한 사업에 착수하여 성공을 거둔 원장인 서 목사는 항시 관람객 모집에 근면하다. 부지런히 나가 다니며 곧잘 구경꾼을 모아 오는 것이다.
관람객의 대부분은 유명한 목사나, 외국인 선교사나, 사회 각계의 저명인사나, 시 혹은 보사부 당국의 관리들이다. 간혹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가 덤벼들기도 한다.
일단 폐물 인간의 사육장에 입장한 관람객들은 마치 동물원에 들어온 어린애처럼, 기기괴괴하게 파괴된 인간 육체의 참상에 순진하게 도취한다. 환자(직원들은 피수용자를 그렇게 부른다)들의 얼굴은 보지도 않는다. 그런 건 아예 볼 필요조차 없다. 인간을 보러 온 게 아니니까 관람객들은 각 육체의 흉하게 파괴된 부분에만 감동적인 시선을 붓는 것이다.
‘저것들도 인간의 일원이라 할 수 있을까.’
‘저 지경이 된 바에야 차라리 죽어 없어지지 뭣 하러 살고 있을까.’
‘도대체 저런 것들을 사육할 필요가 있을까.’
겉으로는 동정하는 체하면서도 구경꾼들의 눈은, 기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환자들은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육체는 완전무결함을 새삼스레 다행히 여기고 신께 감사하며 그들은 만족하며 돌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람객들에게서 원장은 기부니 원조니 하는 편리한 명목으로 엄청난 관람료를 뜯어내는 데 능했다. 그 중에서 얼마는 그들 폐물 인간의 사육비에 충당하고 나머지로는 원장 자신과 그 가족들의 배때기에 과잉 지방을 붙게 하고, 윌리스 자가용 지프 차를 장난감처럼 굴리고 궁궐 같은 화려한 2층 양옥을 세우고, 그러자니 가족들은 자꾸만 흥겨워 그 속에서 날마다 둥둥 피아노만 울렸던 것이다.
원장인 서 목사를, 구들은(환자들은) ‘유다’ 라고 불렀다. 애호원 원장으로서나, 하나님의 종으로서나, 인간으로서나 과시 유다적이란 뜻에서다.
그들은 원장에 대해서 불만투성이다. 날이 갈수록 쌓였다. 그렇지만 함부로 폭발하거나 배척하지는 못한다. 원장은 관람료를 뜯어내는 데 수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수입의 일부로 우유죽과 보리밥 덩이나마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되는 터이니 말이다.
우선 살고 볼 일이다. 그들에게도 살아야 할 이유는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자신들의 비참한 육체에 혹시나 놀라운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라서다. 그것은 그들의 너무나 간절한 그리고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그들은 밤이 와야만 비로소 기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은 두더쥐처럼 광명을 싫어했다.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두려워했고 원망스러웠다. 이 세상은 낮이 없이 밤만 계속된다면 다행일 것 같았다. 밝음은 그들의 흉측한 꼴을 여지없이 노출시켜 주기 때문이다. 광명은 그들의 음산한 마음 구석에 최대의 치욕을 반사시켜 줄 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낮에는 방구석에 꾹 처박혀 얼씬하지 않았다. 낡은 이불이나 담요 조각으로 몸을 감싸고, 방 구석구석에 누더기 모양 구겨박힌 채, 풀 길 없는 원한과 저주와 울분만을 반추했다.
그려다가 지리한 낮이 가고 아늑한 어둠이 찾아와 흉한 육체를 싸주어야, 그들은 비로소 약간의 인간다운 활기를 회복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 둘 집을 나와, 가뜩이나 부자유한 몸들이라 캄캄한 속을 엉기듯 하며 뒷산으로들 오른다. 한겨울의 추위도 참아내며.
좀 있으면 산허리나 등성이의 여기저기에서는 차츰 비통한 영혼의 부르짖음이 차디찬 밤공기를 흔들며 울려 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여,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주님이시여, 이 불쌍한 인간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제대로 인간 구설을 하지 못하고, 모든 사람에게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고 있는, 폐물 같은 이 육체에 온전함을 주시옵소서, 하고자 하시면 주님께선 못하시는 것이 없는 줄로 압니다. 장님을 눈뜨게 하시고, 앉은뱅 이를 걷게 하시고, 열두 해나 혈루중으로 고생하는 여인을 깨끗하게 하시고, 심지어는 죽은 소녀를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여, 저에게도 이 가련한 죄인에게도, 당신의 그 불 같은 성령의 힘을 내리시사, 남같이 온전한 육체를 회복케 하옵소서. 건전한 사지를 가지고 뭇 사람 속에 섞 여 그들과 똑같은 자격으로 뛰고 달리며 제대로의 인간 행세를 할 수 있다면 단 하루를 살다 죽더라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한이 없겠나이다. 오오, 주님이시여, 괴롭고 무서운 짐진 사람들과, 천한 사람과, 죄인과, 원수까지도 아끼고 사랑하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시여, 이 한 많은 인간을 긍휼히 여기시사, 제 육체 위에 기적을 베풀어 하나님 아버지께 무한한 영광을 돌리게 하시옵소서. 오, 주님이시여, 절더러 당장, 네 육체가 온전함을 얻었으니 일어나 뛰라 명령하시옵소서…….”
이런 식으로 부르짖으며, 주먹으로 제 가슴을 난타하는 사람, 땅바닥을 때리는 사람,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로 산은 한때 벌집을 쑤셔놓은 것 같은 법석을 이루었다. 그 중에는 기도라기보다 거의 협박조의 어투로 하나님께 대들듯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대체 제가 남달리 무엇을 잘못했기에 그 숱한 인종 가운데서 하필 불구자가 되어야 했단 말입니까? 저는 아담과 이브처럼, 선악과를 따먹은 일도 없습니다. 남을 공연히 미워하거나, 못살게 한 일도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착하고 바르게만 살려고 애썼고,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며 살아보려고 힘써왔습니다. 그러한 제가 왜 이 지경이 되어야 했단 말입니까. 세상에는 저보다 못되고 악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살인 강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소위 유명한 정치가니, 사업가니, 교육자니, 군인이니, 심지어는 당신의 거룩한 종으로 자처하는 목사니, 장로니 하는 것들 가운데도, 이웃과 세상 사람을 해치고, 사회를 망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가 부지기수로 우글우글하지 않습니까. 그런 자들에게는 오히려 멀쩡한 사지와 이목구비를 갖추게 할 뿐 아니라, 주지육림으로 호의호식케 하면서 무슨 연유로 저는 이런 꼴을 만드셨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처럼 무슨 전생에 업원이란 말씀입니까. 그렇더라도 너무 하십니다. 제게만은 너무나 야속하시나이다. 전 참말로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별 잘못도 없는 제가 왜 이런 비참한 굴욕의 육체를 지녀야 한단 말입니까. 주여, 제 육체를 당장 성케 하시옵소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면, 제 몸을 곧 완전케 해주십시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제게도 생각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배반할 것입니다. 그까짓 하나님을 누가 믿는단 말입니까…….”
오랜 세월을 두고, 효과 없는 기도 생활에 지쳐버린 나머지 이제는 신의 멱살이라도 틀어쥘 듯 덤벼들려는 자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꺼져가는 듯한 목쉰 소리로,
“오오 주여, 주여, 말은 하지 않아도 우리의 가슴속을 환히 꿰뚫어보시는 주님이시여, 오오, 우리 주님이시여…….”
만을 연거푸 외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너나할것없이 통틀어 포효하듯 울부짖는 소리로 변하여 밤의 산과 하늘을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산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비통한 신음 소리같이 처절하게 주위에 퍼져 가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간간,
“아, 아, 아, 아…….”
하는 기성이 섞여 말 못할 어떤 요기를 돋우는 수도 있었다. 그것은 정말 사람의 소린지, 무슨 요물의 소린지를 분간하기가 어려울 만큼 해괴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산허리를 이리저리 이동하면서, 멀리도 가깝게도 들렸다.
산상 기도대에 참가하지 않았거나, 혹은 한 걸음 먼저 기도를 마치고 내려온 환자들은 그 소리에 더욱 암담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변하는 것이다. 한편 그들 가운데는 그 기이한 소리를 귀에 담을 때마다 음흉한, 그러면서도 황홀한 안광을 남몰래 번득이는 젊은 축도 있었다.
“아, 아, 아, 아.”
무슨 동물의 비명 같기도 한 그 소리는 환자들의 숙사 쪽으로 점점 가까이 이동해왔다. 그러자 제2동 1호실에 누더기 뭉치처럼 웅숭그리고 누워 있는 환자들 가운데서 슬며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한쪽 다리가 무릎 밑에서 동강난 젊은이다.
그는 방구석에서 자기의 쌍지팡이를 찾아 겨드랑이에 끼고 딴 사람들에게 눈치채이지 않게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숨 막힐 지경의 절벽 같은 암흑은 아니었다. 서너 간 동떨어져 우중충하게 서 있는 딴 숙사의 건물을 어렴풋이 알아볼 정도의 어둠이었다. 그는 언 땅에 쌍지팡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완만한 산허리께로 얼마쯤 올라갔다. 어느 소나무 밑동에 걸음을 멈추고 기대서서 귀를 기울였다. 산봉우리에서 철야 기도에 들어간 모양인 일부 기도대의 처절한 기도 소리가 싸늘한 공기를 타고 흘러내려올 뿐이었다.
이 추위에 산봉우리에서 기도로 밤을 새우려 드는 그들 철야 기도대의 광기를 생각하면 쌍지팡이 청년은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작년 겨울에는 산상에서 철야 기도를 하다가 얼어 죽은 사람까지 있었다. 그들은 자기의 믿음과 정성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의 믿음과 정성이 얼마나 강하고 지극한가를 하나님께 알리고자 혹심한 추위도 무릅쓰고 밥을 새워가며 거의 목숨을 내던지다시피 신에의 통화에만 열중하는 것이다.
‘저런다구 정말 하나님께서 소원을 풀어주실까. 어디 하나님이 있는 것 같지두 않더라.’
쌍지팡이는 그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여전히 귀에 신경을 모으고 서 있었다. 이윽고 오른쪽 산허리의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아, 아, 아, 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굴러나지 않게 조심조심 그쪽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터벅터벅 발소리가 이리로 다가오는가 했더니, 어느새 검은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휙 하고 그의 눈앞을 스쳤다. 재빨리 그는 한쪽 지팡이를 쑥 내밀었다. 그것에 걸려 넘어지길 바라서다. 그러나 늦었다. 검은 그림자는 이미 지나가버린 뒤였다.
쌍지팡이는 당황히 몸을 가누고 위태로운 걸음으로 더듬더듬 그림자의 뒤를 따라보았다. 그러나,
“아, 아, 아, 아…….”
소리는 벌써 저만치서 들리고, 그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쌍지팡이의 걸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때 뒤쪽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무어라고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달려오는 기척이 있었다. 그가 찔끔해서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니 이번에는 흰 그림자가,
“주여, 오, 주여…….”
내장이 스러져 나오듯 비통하게 외면서 앞서 간 그림자의 뒤를 바삐 쫓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뿌연 어둠 속에 전개된 광경이라 환상 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어떤 가책에 몸을 옴츠리며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환자들은 서 원장에 대해서 좀 지나칠 만큼 심한 불신과 반감과 증오를 품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서 원장은, ‘올데갈데없는 참혹한 완전 불구자(원장 자신의 말)’를 팔아서 거두어들이는 막대한 구호와 원조와 기부금품을 가지고 환자들을 위해서는 최소한도로, 자기 집 안을 위해서는 최대한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괴뢰군이 불법 남침하여 서울을 강점했을 때 원장은 이렇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자기 가족과 가재도구만을 자가용 지프 차와 트럭에 싣고 창고 문을 잠가버린 채 감쪽같이 달아나버렸던 것은 환자들로 하여금 격분을 사게 했었다.
하기는 그들도 그냥 남아 있을 수도 없었다. 괴뢰들은 전혀 이용 가치 없는 불구자 같은 것은 아예 죽여 없앤다는 바람에 환자들 자신도 허겁지겁 뿔뿔이 흩어져버렸던 것이다.
9·28 수복 이후 이곳에 돌아온 환자는 반수가 조금 넘는 60명 정도에 불과했다. 나머지 근 50명은 무참히 개죽음을 당했으리라 생각하면 그들은 지금도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은, 원장뿐 아니라, 직원들에게도, 아니 온 세상 사람에게 통틀어 불신과 반감을 품고 있었다. 누구도 그들을 인간으로 인간답게 대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단 한 사람 그들이 깊은 신뢰와 호의와 친근감으로 따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 애호원의 간호 책임자로 있는 신귀임 여사였다. 그들은 여사를 ‘마리아’ 라고 불렀다.
마리아 여사는 백치와 같은 열여덟 살의 딸과 열세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외사촌 오빠인 서 원장 밑에서 마치 노예나 다름없이 혹사당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사는 단 한 마디의 불평도 없이 근 100명에 달하는 폐물 같은 환자들을, 어머니처럼, 아내처럼, 누이처럼 몸을 아끼지 않고 보살펴온 것이다. 온갖 설움과 괴롬과 아픔을 오직 굳은 사명감으로서 극복하면서.
언제나 마음에 못 박혀 있는 아픔은 역시 딸 만실의 일이었다. 갓난애 때 뇌염을 앓아 다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만실은 몸집은 열여덟의 훌륭한 처녀지만, 지능 정도는 불과 두세 살짜리 갓난애에 지나지 않았다. 선, 악, 미, 추의 구별은 물론, 위험과 안전에 대한 판단력조차 거의 갖지 못했다. 공포감도 극히 최소한의 본능 정도로 밖에 느낄 줄 몰랐다. 물론 말은 전혀 못하였고 기쁨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괴로움 같은 기본 감정을 그저,
“아, 아, 아, 아…….”
그렇게 안타까운 외마디소리로밖에 나타내지 못했다. 따라서 표정도 그만큼 단순했고 또한 남의 말이나 의사도 겨우 훈련 잘된 개가 주인의 눈치를 알아차리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밖에만 나오면 아무 데고 마구 싸돝아다녔다. 그러다가 지치면 맨땅바닥에 펄쩍 주저앉아 흙장난도 하고, 누워 딩굴기도 했다. 그리고 누가 보건 말건 장소를 가리지 않고 흰 엉덩이를 내놓고 함부로 대소변을 깔겼다. 그런 때면 어머니는 아닐지라도 보는 사람의 마음이 몹시 민망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외면을 했다.
더구나 아랫도리에 혈흔을 묻히고 태연히 싸돌아다닐 때가 있어서 보는 이의 마음을 더없이 암담하게 하였다.
그런데다가 제법 균형이 잡힌 얼굴 모습과 활짝 핀 몸매에 흰 살갗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이나 모두들 아까워했고 일방 젊은 축의 가슴속을 이상하게 뒤흔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런 형편이라, 대개는 출입문이나 창문에 굵은 빗장을 여러 개 가로지른 방 안에 가두어두었다. 그러나 만실은 나오고 싶어서 하루 종일 발악을 했다.
“아, 아, 아, 아…….”
하고 연방 비명을 지르며 문이나 창의 빗장을 주먹으로 때리기도 하고 발길로 지르기도 하고, 머리나 전신으로 떠다박지르기도(마구 떠다밀어 넘어뜨리기도) 해서, 이마가 깨지고 손이 일그러지고 발톱이 벗겨지는 수가 많았다.
그 꼴이 하도 가엾어서, 하루에 한두 번씩은 외출을 시켜주었다. 낮에는 대개 그 어머니가 데리고 다녔지만 밤에는 혼자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었다.
그려나 어찌 된 일인지 요즘은 밤에도 마리아 여사가 따라다니는 일이 많았다. 거기에 대해서는 구구한 해석과 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제1동 1호실에서다.
대낮인데도 헌 이불과 담요 조각으로 몸을 감싸고, 매지근한 아랫목 쪽에 몰려, 멋대로들 앉거나 눕거나 한 채, 환자들은 만실에 대한 수상쩍은 소문을 지껄이고들 있었다.
“기도대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그걸 막느라고 따라다니는 걸 거야.”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치위버리는 친구도 있었지만,
“아냐, 깊은 이유가 있대.”
묘한 무슨 내막을 언외에 비치는 자도 있었다.
“이유라니?”
“말하자면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거지.”
“보호?”
“왜, 만실의 얼굴이나 몸집이 부쩍 피구, 젖가슴이 커졌잖아. 그러니까 벌써부터 노리고 따라다니는 놈이 있다는 거야.”
그 말에 모두들 이상한 표정을 했다. 누워 있던 축들도 부시시 일어나 앉았다. 한결같이 복잡하게 긴장한 얼굴들이다.
“거 정말야?”
누가 숨 가쁘게 물었다.
“2동에서들은 벌써 죄다 알고 있는데그래.”
모두들 숨을 죽이고, 대답한 사람의 얼굴만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았다. 야릇하게 번득이는 그들의 눈길은 차츰 몇몇 젊은이들에게로 쏠렸다. 비교적 나이 젊은 서너 명의 동숙자의 얼굴을 의심쩍게 쏘아보는 것이다.
“누구래, 그 우라질 자식이?”
감때사나운 친구가 별안간 버럭 고함을 질렀다.
“글쎄 아직 그걸 모른대.”
“어느 놈인지 잡아내야 한다. 그따위 배은망덕하는 악마 같은 자식은 당장 잡아 없애야 한다.”
“2동에서들두 야단이래. 발각만 나면 가만두지 않는다고.”
그들은 모두 형언할 수 없이 침울하고 복잡한 표정으로 입들을 다물어버렸다.
말하자면 그들은 여성에 대해서 인연이 먼 무리였다. 간혹 나이든 사람 가운데는 건장했던 젊은 시절에 결혼 생활을 가져본 사람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청소년이거나, 혹은 나면서부터 불구가 되었기 때문에 여자란 것을 모르고 지내오거나 또 영원히 모르고 지낼 사람이다. 제정신 가진 여자치고, 남자들조차 외면하는 그들의 흉측한 육체에 정을 줄 리는 만무인 것이다.
결국 남녀간에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와 조건은 그 육체인가보다. 그들은 그러한 사랑의 기본 요소요 조건인 육체적 자격을 이미 상실한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여성에 대해서, 특히 젊고 예쁜 여자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보다도 맹렬한 질투와 반감과 증오를 불태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반면 그만큼 여성에 대한 강한 동경과 사모의 심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만일 말이다, 하나님께서 네게 완전한 육체와 아름다운 여자, 이 둘 중에서 하나만을 허락하신다면 어느 쪽을 택할 테냐?”
이런 질문에 그들은 대개 확답을 못하고 당황해지는 것이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유일한 최대의 소망은, 이 치욕적인 불구의 소원(所員: 수용소나 보건소나 연구소와 같이 ‘소所’ 자가 붙은 기관이나 직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을 면하는 일이다. 그러나 과연 아름다운 한 여인을 완전 소유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평생 불구의 치욕과 설움을 감수할 용의조차 없지 않는 것이다.
여자란 그들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손으로 만져볼 수 없는 너무나 황홀한 꿈이었다.
과거에 결혼 생활을 경험한 일이 있는 연장자가 어쩌다가 신혼 당시의 감미로운 도취의 심정을 회상하여 이야기하면 젊은 축들은 밤새껏 몸을 뒤채며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완전한 인간과 조금도 다름없이 자기들을 대해주는 마리아 여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여사를 어머니로, 누이로, 애인으로, 아내로, 그리고 마음이 통하는 인간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플라토닉 러브였다.
여사를 사랑하고 보니, 자연 그 딸과 아들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백치와 같은 만실에 대해서는 동병상련의 심정까지 곁들여 애처로운 정이 한결 더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공통적인 사랑의 일부를 어느 놈이 독점하려 든다니, 그들로서는 놀랍고 불쾌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소문은 단지 그런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벌써 틀림없이 누가 만실일 건드렸으리라는 말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환자들은 아연 긴장했고, 또 격분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들 자신이 모욕당한 일이나 다름없었다. 자기의 애인을 어느 놈에게 가로채인 것 같은 충격이었다.
이 문제에 대한 진상 조사와 엄격한 처리를 위해서 그들은 몹시 당황하고 울분한 속에 논의를 거듭했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그냥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난문제에 부닥치지 않을 수 없었다. 첫째는 백치와 같은 만실이라, 과연 봉변을 당했는지의 여부를 어떻게 확인하느냐 하는 것이요, 둘째는 만실이가 봉변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더라도, 그 상대자가 어느 놈인가를 어떻게 알아내느냐 하는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잔뜩 골머리를 앓느라고 심사가 자못 편하지 못한 차에, 이번 엔 겹처서 딴 사건까지 발생한 것이다.
가뜩이나 그들은 일요일이 질색이었다. 그날은 원장의 명령으로 대낮에 전원이 강제 동원되어 원내 교회당에 집합해서 예배를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 그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어떻게 해서든지 완전한 신앙에 철저하려고 애썼다. 그러기에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기두를 했고, 날마다 성경 읽는 것이 일과요 낙이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에 있는, 장님 눈뜨게 하는 대목이라든가, 「사도행전」 ,장의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이야기라든가 다시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에서 중병 환자를 고치고 죽은 소녀를 살리는 말씀이라든가, 그 밖에 예수님 이나 그 제자들이 기적을 행하는 구절들을 누구나가 죽죽 욀 정도인 것이다.
한편 설교도 무척 좋아하는 그들이다. 6·25 난리가 터지기 얼마 전이었다. 참으로 지극한 믿음과 사랑의 사도 같은 미국인 선교사가 와서 설교를 한 일이 있었다.
그 선교사는 일요일 낯 예배에 초청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일부러 밤 예배에 참석했던 것이다. 그는 환자들의 육체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는 것 같지 않았다. 개별적으로 대할 때나, 집단적으로 대할 때나 성한 사람을 대하듯 얼굴만을 마주 보며 미소를 보일 뿐 결코 파괴된 육체의 그 파괴된 부분에 시선을 던지는 일은 없었다. 그 선교사의 눈은 구경꾼의 눈이 아니었다.
역시 설교할 때의 태도와 내용도 달랐다. 우선 강단의 전등만을 남기고는 실내의 전등불을 전부 끄게 했다. 그는 그만큼 광명을 기피하는 환자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그들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안정과 평화를 주고 싶어했던 것이다.
그리고 설교의 내용도 딴 목사나 전도사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으레 이곳에 초청 되어오는 설교자는 열이면 열, 천편일률적인 설교를 했다. 앉은뱅이를 걷게 하고, 소경을 보게 하고, 중환자를 낫게 하는 이야기를 하고는 여러분도 믿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권능으로 완전함을 얻으리라는 식의 결론을 내렸다. 그런 설교자일수록, 불구자니 병신이니 하는 노골적인 말을 수없이 사용할 뿐 아니라, 순전한 관람객의 눈으로 환자들의 파괴된 육체의 치욕적인 부분을 힐끔힐끔 구경하기에 정신을 파는 일이 보통이었다.
그렇게 되면 환자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예배 시간이 아니라, 최대의 치욕적인 시간인 것이다.
그들은 불구자니 병신이니 하는 말을 무엇보다도 싫어했고 그들의 파괴된 부분에 부어지는 남의 시선을 놀랄 만큼 민감하게 느끼는 동시에, 참을 수 없는 증오를 갖고 반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무후무하게 예배당 안의 전등을 끄고 설교한 그 미국인 선교사만은 단 한 마디도 불구자니, 병신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다. 내용도 불구자나 중환자를 고친 얘기와는 영 딴판인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하던 얘기였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아니하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리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지위가 높고 권세 있는 사람도, 돈 많은 사람도, 지식이나 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풍채나 인물이 잘난 사람도, 그리고 신체가 건강하다고 뽐내는 사람도 하나님 의 뜻을 좇지 않고 어기는 자는 멸망하리라 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는 자만이 구원을 얻고 영생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 의 뜻은 무엇인고 하니 사랑이라 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일이라 했다. 만일 이 세상 사람 가운데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소돔과 고모라 성의 사람과 같이 멸망하리라 했다. 그러니 여려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서 부디 구원을 얻고 영생을 누리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설교는 어딘지 모르게 심장한 의미를 그들의 가슴속에 전해주는 것 같아서,
“오, 주여, 주여.”
하고, 부지중 외치는 사람조차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딴 목사와 전도사들은 이 미국인 선교사와는 달랐다. 그들은 깊은 애정과 참된 동정을 갖고 환자들을 위해 설교하러오는 게 아니라 일종의 구경꾼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 진기한 폐물 인간들을 혼자 보기는 아깝다는 듯이 두서너 명의 동행을 몰고 오기가 예사였다.
더러는 카메라를 메고 와서 환자들의 파괴된 육체를 고루 촬영하려 드는 자도 있었다. 그런 때의 환자들의 치욕감과 노여움은 말할 것도 없었거니와, 마리아 여사는 오히려 그들보다 더했다.
평시에는 그처럼 온화하던 여사가 얼굴이 빨개지도록 노하여 당장 카메라를 뺏어 동댕이라도 칠 듯한 기세로 그 앞을 막아서,
“같은 인간을 모욕하는 일은 삼가주세요.”
야무지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진을 찍으려던 당사자보다도 원장이 더욱 못마땅해했다. 그러나 아무리 원장일지라도 상상외로 격노한 마리아 여사의 기세와 번득이는 수많은 환자들의 눈총 앞에는 어쩌지 못하고 손님들을 몰고 총총히 물러가버렸다.
그러기에 환자들은 일요일이면 아주 질색이었다. 그러나 이번 주일에도 그들에 대한 모욕적인 계획은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배 시간을 30분쯤 앞두고 미군 지프 차가 서너 대나 애호원 정문을 들어서 직원실 앞으로 달려 올라가서·멎었다.
마침 국군과 유엔군이 승승장구로 괴뢰군을 소탕하며 북진하여 초산을 점 령했느니, 혜산진에 당도했느니 하고 머지않아 전쟁은 끝나고 남북한이 완전히 통일되리라고 떠들어대던 시기라, 이곳에도 미군 트력이나 지프 차가 가끔 찾아오는 일은 있었다. 하지만 그 군용차들은 원조품 같은 짐짝들을 부리고는 이내 돌아가버릴 뿐, 별로 환자들의 신경을 자극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만은 형세가 달랐다. 지프 차에서는 짐짝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외국인 이 10여 명이나 줄렁줄렁 내려서 원장의 영접을 받으며 직원실로 들어간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크고 작은 카메라들을 메고 들고 있었다.
창 너머로 그 광경을 바라본 환자들의 얼굴에는 대번에 침울한 긴장이 번 져갔다.
조금 있으려니까, 마리아 여사가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여사의 얼굴은 창백하리만큼 질려 있었고, 눈에는 눈물까지 글썽해 있었다.
“유엔군의 종군 기자라나, 사진반원이라나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예배 광경을 찍으러 왔습니다. 보통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영화로도 찍을 모양이니까, 그렇게들 아시고, 예배당에 나오시고 싶은 분은 나오시고, 알아서들 하세요.”
마리아 여사는 기운 없이 말하고 돌아갔다.
예배 시간이 되어도 환자들은 한 사람도 교회당에 나가지 않았다. 저저끔 방구석 에들 처박혀 조용히 기도를 올리거나, 성경을 읽거나, 적개심을 담은 눈망울을 디룩거리며 앉아 있거나 했다.
외국인 촬영원들은 기괴한 파괴 육체의 행렬과 예배 광경을 캐치하려고, 예배당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환자가 모이질 않으니, 원장은 속이 달았다. 그는 격노하여 필펄 뛰며 환자 숙사로 쫓아 내려왔다.
“아, 왜들 이러구 있는 거요? 당신네들은 하나님께 대해서나 내게 대해서나 배은망덕하려는 거요. 지금 외국 손님들이 여려분의 불행한 모습을 찍어서 전세계에 보도해주려고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만 되면 세계 각국에서 원조 물자가 산더미처럼 모여들 테니, 여러분도 더욱 풍족하게 지낼 수도 있고, 여러분과 같이 불행한 사람들을 더 많이 수용할 수 있지 않소. 그러니 심술들 그만 부리고, 곧 예배당으로 모여요, 당장들 모이란 말요.”
원장은 방방이 들여다보며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나를 배반하고 반역한다면 이 애호원을 아예 폐쇄해버리고 말 테요.”
이런 협박조의 말까지 원장의 입 에선 튀어나왔다. 그러나 환자들은 까딱도 않고 버텼을 뿐 아니라 도리어,
“폐쇄할 테면 해봐요. 우리가 자치적으로 더 잘 운영해나갈 테니.”
하고, 마주 냅다 쏘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것이 원장에게 오랫동안 품어온 그들의 불신과 반감이 정면으로 폭발된 시초였다. 하지만 사태가 그 이상 악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벌써 어떤 불상사를 초래하게 될지도 모르는 노골적인 대립과 반목이 그들과 원장 사이에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원장이 마리아 여사를 극도로 미워하고 못살게 들볶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그날 밤, 환자들은 뒷산에 올라가 가슴을 치고 울며 철야 기도를 했다.
“오, 주님이시여, 저희를 이런 굴욕과 수모 속에 두실 바에는 차라리 불태워버리시옵소서. 저희뿐 아니라,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없는 간악한 무리들을 온통 태워버리시옵소서. 마리아 여사만을 남기시고, 이 애호원 전체를 소돔 고모라성처럼 깡그리 불태워버리시옵소서. 아닙니다, 차라리 이 지구덩이를 통째로 태워버리시옵소서 …… 오, 주님 이시 여…….”
그 처절한 울부짖음은, 마치 산 밑바닥에서 끓어오르는 음산한 신음 소리와도 같이, 어둡고 차디찬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것이었다.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도로 이쪽이 불리해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마침내 중공군이 투입되었다는 소문이었다. 인해전술이라고 해서, 마치 밀물이 밀려들 듯이 사람의 수만 믿고 내리민다는 것이다.
그놈들은 식량으로 볶은 콩을 전대 같은 자루에 넣어서 어깨에 가로메고 그걸 바작바작 씹으며, 죽어도 뒤에서 그냥 개미 떼처럼 새까맣게 밀어닥친다는 얘기였다. 더러는 꽹과리와 날라리까지 울리면서.
이렇듯 어이없고 신기하면서도 은근히 입맛이 쓴 전쟁 얘기를 수군거리던 환자들 중에서,
“괜찮을까”
갑자기 불안한 눈초리로 좌중을 둘러보는 자도 있었다.
“뭐가?”
“이, 서울 말야.”
“설마한들 서울이야 다시 뺏길라구.”
누가 그러긴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 한결같이 공포감이 짙어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뒷산에서는,
“아, 아, 아, 아…….”
하는, 무엇을 저주하는 것 같은 기성이 또 어둠을 헤치고 흘러왔다. 만실의 얼굴에 윤기가 더해갈수록 반대로 그 기성은 더욱 비통한 비명조를 띠어 듣는 사람을 몸서리치게 했다.
“빌어먹을…… 만실이가 글쎄 배가 불렀대.”
방금 밖에서 들어온 한 사람이 실내를 둘러보며 엉뚱한 소릴했다.
“뭐?”
혹은,
“그, 그게 정말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다그쳐 물었다.
이 괴이쩍은 소식을 날라온 사내는, 한 손으로 자기 배 위에 불룩한 꼴을 그려보이며,
“아, 이거야 보문 알 일인데 헛소문이 나겠어?”
내뱉듯 하고는,
“빌어먹을…….”
무언가 몹시 분한 듯이 뇌까리고 한구석 에 벌렁 누워버렸다. 기가 막혀 입을 벌린 채 서로의 얼굴들만 멀뚱히 마주 보는 그들은 똑같이 분하였다. 왜 그런지,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그저 분하였다.
물론 그것은 가엾은 만실이와 마리아 여사에 대한 동정과 의분해서였을 것이다. 또한 맹렬한 질투에서이기도 ˙할 것이다. 평생 여자의 보드라운 피부의 감촉을 모르고 지내야 할 그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만실이었다. 한창 탐스럽게 피어오르는 만실의 육체는 그들을 은근히 취하게 했던 것이다. 그걸 어느 한 놈이 냉큼 가로채 버린 것이다.
그들은 만실이나 그 모친과 함께 그들 자신도 여지없이 모욕을 당한 느낌 이었다.
그들은 인제는 더 참을 수 없었다. 어느 놈인지 당장 그놈을 잡아내서 모가질 비틀어버려야 한다느니, 아예 그놈의 거기를 썩둑 도려내야 한다느니, 그들은 마치 벌집을 쑤셔놓은 것같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했다. 만실의 배는 과연 누가 보아도 알아볼 만큼 불러있었기 때문이다. 만실은 그러한 배를 하고 방에 가두어두면 나가려고 발악을 했고, 놓아주면,
“아, 아, 아, 아…….”
그 정 떨어지는 소리를 계속해 지르며, 함부로 휘젓고 싸돌아다녔다.
그 꼴을 보는 환자들의 밸은 참을 수 없이 뒤틀렸고 마리아 여사의 얼굴에는 더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갔다. 그러나 어느 놈이고 만실일 건드린 놈을 잡아내서 가만두지 않을 기세를 환자들이 보이자 마리아 여사는,
“여러분, 결코 하나님을 욕되게 해서는 안 돼요. 누군지 알게 되면 그 사람을 곱게 저한테 보내주세요, 저한테요.”
그렇게 당부하고, 지그시 눈을 감더니 ,
“오, 주여, 주님이시여…….”
괴로운 표정으로 주를 불렀다.
그렇지만, 환자들은, 이 일만큼은 범인을 잡아내는 길로 무섭게 처치해버리고 싶었다. 그대로 살려두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에게는 홍분하면 걷잡을 수 없이 잔인해지는 일면이 있었다. ‘이 꼴로 오래 살면 뭘 하느냐 하는 자포적인 심리에다가, 오랫동안 성한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품어온 질투와 반감과 증오심이 이런 때 한꺼 번에 폭발하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범인 색출에 며칠을 두고 전력을 기울여 고심했다. 우선 20세 이상 30세 이하의 젊은 축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엄격히 심문해보았다. 하지만 한결같이 부인할 뿐이었다. 이래서 그들은 마침내 젊은이들을 고문하기로 정하고 1동 구석방에다 잡아 가두었다.
그러자 그 중의 한 놈이 미리 종적을 감추어버린 것이다. 어제 밤중이나 오늘 새벽에 도주해버린 모양이다. 제2동 1호실에 있던 한쪽 팔다리가 동강난 놈이었다.
그들은 몹시 당황하고 분해서, 비교적 보행이 자유로운 패를 골라, 애호원 내외를 샅샅이 찾아보았지만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들의 울화통은 더욱 터질 지경이었다.
마리아 여사는 그만 기진맥진한 탓인지 홀몸이 아닌 만실을 방 속에다만 감금해두기가 애초로워선지, 근래에 와서는 딸을 방임해 두는 경향이 생겼다. 낯에도 밤에도 만실은 뻔질나게 밖에 나와 돌아다녔다. 손등이 얼어터져서 불긋불긋 피가 내번지기도 했다.
낮에는 양지쪽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며 흙장난에 취하는 일도 있었고, 밤에는 산상 기도대들을 따라 산허리를 헤맸다. 물론,
“아, 아, 아, 아…….”
하는 그 처절한 비명을 연발하면서.
그 꼴을 바라보는 환자들은, 눈물이 솟을 만큼 자꾸만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지극히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었다.
마리아 여사는 전보다 더욱 긴 시간을 기도에만 바쳤다. 거의 하루 걸러 만큼씩은 뒷산에 올라가 철야 기도를 했다. 여사는 자기 개인의 소원을 호소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주로 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온 세상의 불행한 사람들을위해서, 마지막으로 가엾은 딸을 위해서 기도했다.
여사는 환자들에게도, 썩어 없어질 육신만을 위해서 빌지 않고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를 권했다.
이러한 마리아 여사에 대해서, 왜 그런지 그들은 최근에 부씩 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의 권능에 회의를 품고 기도를 게을리하던 사람들까지도 요즘은 밤이 되면 거의가 산상 기도대에 참가했다.
찬바람이 쌩쌩 나뭇가지를 울리는 캄캄한 밤에 산이 떠나갈 듯이 울부짖는 그들의 기도 소리는 무서운 분노의 절규 같았다. 거기에 만실의 ,
“아, 아, 아, 아…….”
소리까지 섞이면, 그것은 온누리에 대한 저주와 발악같이만 들렸다.
그들의 철야 기도가 더 광채를 띠기 시작한 것은, 전세가 점점 악화되어 서울 시내가 또다시 공포 속에 웅성웅성 들끓게 되면서부터였다.
서울 시내는 이북 피난민들의 홍수였다. 쿵쿵 하는 포성이 북쪽에서 간간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산군이 벌써 서울 주변에 육박했다는 소문이었다. 서울 시내는 온통 피난 준비로 야단법석들이었다.
서 원장은 집에 붙어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애호원 일은 직원들에게 밀어 맡긴 채, 첫새벽에 외출했다가는 밤중에나 돌아왔다.
마리아 여사만이 여전히 환자들 숙사를 자주 드나들며 영 몸이 부자유한 사람이나, 병석에 누워 있는 사람을 위해서 정성껏 갖은 시중을 들며 돌보아주었다. 환자들이 공포에 싸인 표정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서울이?”
초조히 물으면,
“그건 하나님께서만 아실 일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니, 여려분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하십시오.”
마리아 여사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환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에만 열중했다. 며칠씩 곡기를 입에 대지 않고 금식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그밖에 딴 도리가 없었다. 육체가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빈 주먹인 그들은 어떤 절박한 사태나 운명 에 직면하면 신에게 매달리는 길밖에 없었다. 신의 존재와 권능을 의심하는 자까지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오, 주여, 주님이시여, 저희들을 마침내 버리시려나이까. 정말로 버리시려나이까. 아무래도 벌 받아 마땅한 저희들이라면, 악마의 손에 학살당하게 마시고, 신령의 사나운 불길로 깨끗이 태위버리시옵소서. 주여, 저희들을 차라리 순식간에 태워버리시옵소서. 죄 많은 이 땅을, 죄인들이 큰소리치는 지구덩이를 소돔과 고모라성 같이 통째로 불살라버 리시옵소서…….”
그들은 목이 터져라 하고, 밤을 새워가며 미친 듯이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전세는 점점 더 급박해왔다. 공산군은 서울 총공격을 위해, 서울 근교에 총력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그럴 무렵 그들을 격분케 하는 새로운 소문이 쫙 펴졌다.
“가롯 유다가 우리 몰래 짐을 꾸리고 있다더라. 벌써 일부 가족은 멀찍이 피난을 시켰대.”
뒤이어,
“유다는 우리를 버리고 도망칠 궁리라더라.”
그런 소문이 그들의 가슴속에 마침내 불을 질러버린 것이다.
“보내선 안 된다. 피난을 갈 테면 우릴 전부 데리고 가래라. 그렇잖거든 우리와 함께 여기서 죽자.”
한 사람이 격분해서 고함을 질렀다.
“그렇다. 우리를 실컷 이용해 먹고 이런 땐 혼자만 쏙 빠져 달아나려는 자를 그냥 둘 순 없다.”
누군가가 사납게 외치자, 딴 사람들도 일제히 호응하여 원장에 대한 비난과 욕설을 쏟아놓았다.
“가자, 당장 유다를 붙들고 담판을 짓자. 만일 우리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내버려둘 수 없다.”
한 자가 주먹을 내두르고 벌떡 일어섰다. 모두들 욱 따라 일어섰다. 제1동, 제2동의 환자들 60여 명이 통틀어 나선 것이다.
이른 아침이다. 꽁꽁 얼어붙은 땅 위에 발소리와 쌍지팡이 소리를 거칠게 울리며, 격노한 불완전 인간의 떼는 서 원장네 집을 향해 밀려가는 것이다.
두 다리가 없는 자, 두 팔이 끊긴 자, 한쪽 다리와 팔이 동강난 자, 두 개 이상의 수족이 비꼬여 건들거리는 자, 눈을 못 보는 자, 그리고 다리가 오그라붙어서 엉덩이를 추썩추썩 들추며 떨어져 쫓아가는 자…… 이러한 기괴한 행렬은 그 행렬 자체가 이미 하늘과 땅과 인간에 대해 그대로 격노한 광경이었다.
다행히, 혹은 불행히, 원장은 벌써 외출하고 집에 없었다. 짐이란 짐은 모두 꾸려놓고, 부인과 식모만이 그것을 지키고 있었다.
“원장님은 여러분을 데리고 가려고 동분서주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첫새벽부터, 미군 당국에 그 교섭을 위해 찾아가셨으니, 점잖게 결과를 기다리세요.”
부인은 불안한 눈치였으나, 필사적으로 그렇게 환자들을 달랬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들은 홍분 끝에 저저끔 고함을 지르고 공연히 직원실로 밀려가보았다. 거기도 숙직원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 직원실 뒤에 붙어 있는 마리아 여사네 방문이 열리며 의아한 표정으로 여사가 나왔다.
“왜들 이러세요.”
“원장은 또 혼자서 슬그머니 도망갈 복장입니다. 그래 참고 있을 수 있어요?”
환자들의 격분한 눈이 일제히 마리아 여사의 얼굴로 쏠렸다. 여사는 그들의 험악해진 눈을 눈치챈 듯, 천천히 고개를 모로 젓고 나서,
“인간을 벌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뿐입니다.”
아예 마음을 거칠게 먹어서는 안 된다고 타이르듯,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둘러보는 여사의 눈은 의외에도 질척히 젖어 있었다. 그리고 더없이 피로해 보였다. 여사는 어젯밤이나 오늘 새벽에 그들을 위해서 원장과 싸웠는지 모른다. 그들은 이 이상 여사를 더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인지 모르게 터질 것 같은 비분을 가슴에 품은 채 그들은 초연히 자기네 처소로들 돌아왔다.
그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의 귀에는 또 다른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전시민은 즉시 서울을 철수하라는 포고문이 나붙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얼굴이 새로운 공포와 분노와 절망으로 한결같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성한 사람들처럼 쉽사리 피난을 떠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은 물론이었다. 그렇다고 원장에게 기대를 걸기는 이미 틀린 일이었다. 꼼짝없이 공허와 공포의 무인 도시에 남는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빨갱이들은 활동 능력이 없는 완전 불구자는 모조리 죽여 없앤다지 않느냐.
그들은 갑자기 입이라도 얼어붙은 듯이 말없이 핏발선 눈으로 서로의 얼굴들만 바라볼 뿐이었다.
점심때가 지나면서부터, 한둘씩 이 애호원을 떠나는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편한 대로 비교적 보행이 가능한 사람들이었다. 어차피 앉아 있다 죽을 바에는 가는 데까지 가보다가 죽자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는 마리아 여사가 손수 창고 문을 터놓고 얼마씩의 식량을 나누어주었다.
나머지 환자들은 눈물을 홀리며 기도에 열중하는 사람,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 눈에 살기를 띠고 줄곧 원장네 집만 감시하는 사람, 모두들 제멋대로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단 한 줄기 마지막 위안은 마리아 여사가 함께 남는다는 사실이었다. 누가 여사에게 남들처럼 어서 피난 가기를 권했더니,
“하나님께서 저더러는 이곳에 남으라고 하셨습니다.”
엄숙하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그 말이 너무나 깊고 넓은 여러 가지 의미로 그들의 가슴을 벅차게 때려서 그들 중에는 눈물을 머금는 사람조차 있었다.
이튿날 새벽녘께였다. 갑자기 애호원 내에서 하늘을 그슬을 듯이 치솟는 불길이 었었다. 원장네 집이었다. 아래층 둘레를 휘감은 악마의 혓바닥 같은 불길이 2층을 핥아 올라가고 있었다. 그 주위를 얼씬거리는 사람의 그림자가 여남은 명이나 그 불빛에 환히 비치어 보였다. 그것은 한결같이 추하게 파괴된 육체들이었다. 그 가운데서,
“유다의 화장이다.”
“소돔 고부라의 멸망이다.”
“불의 세례다.”
폭발하듯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환자 숙사의 문이 방방이 열리며, 수십 명의 고장난 육체가 쏟아져 나와, 저저끔 환성 같기도 하고 비명 같기도 한 소리를 지르며 불길에 휩싸인 원장네 집 쪽으로 바삐 기괴한 걸음들을 옮겨갔다.
그 패가 원장네 집 가까이 다다랐을 때였다. 2층에서는 별안간,
“아아.”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 아, 아, 아…….”
하는, 귀에 익은 비명이 날카롭게 들렸다. 뒤 이어 2충 유리창에는, 갈팡질팡하는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한 여자가 또 한 여자를 껴안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였다. 동시에,
“아, 마리아 여사닷!”
“마리아 여사닷'’
“마리아 여사와 만실이다.”
하는 고함 소리에 뒤섞여,
“불을 잡아라, 어서.”
“불을 꺼라, 꺼.”
“뛰어내려요, 뛰어내려요.”
“주여, 오, 주여, 주여…….”
미친 듯 서로들 외치는 소리로 아우성이었다. 그렇지만 이 파괴된 육체들이 불을 끌 수 있기 전에 그 불길은 벌써 완전히 2층까지 삼켜버 고 말았다.
반 이상이나 불 속에 잠긴 원장네 집 둘레를 싸고 돌며 환자들은 거의 미치다시피 발악하듯 넋두리를 외치며 몸부림치는 것이었다.
“유다야, 유다야, 이놈, 유다야, 어느 틈에 어느 틈에 마리아 여사에게 집을 떠맡기고 쥐새끼처럼 도망을 쳤느냐. 요 악마의 괴수 같은 놈아.”
“유다야, 이놈아, 네놈이 죽을 자리에 어쩌자고 우리 마리아 여살 대신 앉히고 도망갔느냐, 이놈아.”
“도대체 하나님도 틀렸다. 하나님도 너무한다. 하나님 같은 건 아예 없다, 없어.”
“하나님이구 뭐구 다 나와라. 부처님두 나와라. 산신령두 나와라. 귀신두 도깨비두, 뭐든지 다 나와라. 해보자, 해봐.”
어둠 속에 하늘을 찌를 듯한 화광을 에워싸고, 부자유한 육체들이 펄펄 뛰며 절규하는 그 광경은 신도 외면할 지경이었다.
그러는 가운데,
“결국 의인을 내가 죽였다. 마리아 여사 모녀를 내가 죽였어, 내가…….”
목이 메어 말을 못 맺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자가 있었다. 이 사건에 선두를 선 환자임에 틀림없었다.
옆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를 끌어냈을 때는, 이미 머리털이 타고, 얼굴 껍 질이 익어서 벗겨진 채, 정신을 잃고 있었다.
누군가가 별안간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들의 대부분이 엉엉 소리를 높여 따라 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든 것이 원통하고 슬프기만 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고 남달리 그들에게만 끝까지 가해지는 억울한 형벌 같았다.
아직도 캄캄한 속에 그곳만이 충천하는 불길을 둘러싸고, 혹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혹은 몸부림치며 신을 저주하기도 하고 혹은 기진맥진해서 죽은 듯이 쓰러져 있고, 혹은 비틀비틀 서성거리며 마리아 여사의 이름을 불러보기도 하는 그들의 꼴은, 노한 듯이 타오르는 붉은 화광을 백그라운드로 하고 판화처럼 뚜렷이 떠올라, 그것은 그대로 마치 한 폭의 생생한 지옥도와 다름이 없었다.
-끝-
2016년 10월 29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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