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上講禮
一 心 頂 禮 盡 十方三世 一切諸佛
一 心 頂 禮 盡 十方三世 一切尊法
一 心 頂 禮 盡 十方三世 一切賢聖僧
我弟子等 講論三藏 唯願三寶 爲作證明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 百千萬劫難遭隅
我今聞見得受持 願解如來眞實意
마지막 탑승안내를 하듯이
“내가 요즘 화엄경 공부 얼마나 많이 하는지 정신이 없어.
아따 힘이 드네. 혼이 싹 빠지네.” 큰스님이 말씀하셨다.
“인터넷으로 염화실을 열지 않으셨다면
공부 못했을 사람들이 많았을 거예요.”
“그렇지 한 둘이 아니지.
염화실 때문에 불교 공부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네.”
*
법회가 열리기 직전 부회장 스님이 성지순례 안내를 스님들에게 하시면서
“비행기를 탈 때 마지막 탑승 안내 하듯이”라는 표현을 하셨다.
큰스님께서 그 말씀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웃으셨다.
화엄산림이 벌써 만 4년이 되어가는데,
아직 한 중간이고 ‘마지막 탑승’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스님들의 빈자리가 많았다.
그래도 오신 스님들은 밝고 환하게 빈자리를 채웠다.
*
부회장 스님은 시내에 새로 절을 개원하셔서 얼굴이 싱글벙글이셨다.
“새 절 주지가 되니 기분이 좋제? 신나지?”
큰스님이 함께 웃으셨다.
“예. 절이 아주 요사채가 아주 좋습니다. 넓고요.
신도들 200명이 한자리에 모일 공간이 있습니다.”
“거기에 아주 뼈를 묻을 작정을 하고 열심히 포교를 해.
시내에 있을 때 포교 열심히 해야지.”
큰스님이 덕담하셨다.
*
자원봉사를 하러 오시는 보살님들에게 큰스님은
“보살님들 봉사 덕택에 스님들 공부 잘하고 잘 굴러갑니다.”하셨다.
*
여러 스님들의 법회에 다니시는 학무거사님에게
큰스님이 노스님들의 안부를 물으셨다.
편안하신 스님도 계셨고, 갑자기 몸이 아프신 스님들도 계셨다.
*
책상 위에 못보던 액자가 있었는데 지난 주, 불자를 위한 화엄경에
할머니를 따라왔던 유치원생이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애기가 아주 잘 그렸어. 유치원에서 방학이니까.
잘 보이는데 내려놓고 사진 찍어서 올려라.”하셨다.
그림 속에는 부처님과 큰스님이 나란히 있었다.
*
화엄산림을 촬영하는 BBS 프로듀서가 인사를 올렸다.
“요즘 비비에스 보는 사람이 많제? 차마고도를 사가지고
비비에서에서 방영을 하대? 참 좋대. 그건 뭐 일년내내 해도 좋대”하셨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
大方廣佛華嚴經 略纂偈 龍樹菩薩略纂偈
大方廣佛華嚴經 龍樹菩薩略纂偈 南無華藏世界海
毘盧遮那眞法身 現在說法盧舍那 釋迦牟尼諸如來
過去現在未來世 十方一切諸大聖 根本華嚴轉法輪
海印三昧勢力故 普賢菩薩諸大衆 執金剛神身衆神
足行神衆道場神 主城神衆主地神 主山神衆主林神
主藥神衆主稼神 主河神衆主海神 主水神衆主火神
主風神衆主空神 主方神衆主夜神 主晝神衆阿修羅
迦樓羅王緊那羅 摩喉羅伽夜叉王 諸大龍王鳩槃茶
乾達婆王月天子 日天子衆忉利天 夜摩天王兜率天
化樂天王他化天 大梵天王光音天 遍淨天王廣果天
大自在王不可說 普賢文殊大菩薩 法慧功德金剛幢
金剛藏及金剛慧 光焰幢及修彌幢 大德聲聞舍利子
及與比丘海覺等 優婆塞長優婆夷 善財童子童男女
其數無量不可說 善財童子善知識 文殊舍利最第一
德雲海雲善住僧 彌伽解脫與海幢 休舍毘目瞿沙仙
勝熱婆羅慈行女 善見自在主童子 具足優婆明智士
法寶髻長與普眼 無厭足王大光王 不動優婆遍行外
優婆羅華長者人 婆施羅船無上勝 師子嚬伸婆修密
鞞瑟胝羅居士人 觀自在尊與正趣 大天安住主地神
婆珊婆演主夜神 普德淨光主夜神 喜目觀察衆生神
普救衆生妙德神 寂靜音海主夜神 守護一切主夜神
開敷樹華主夜神 大願精進力救護 妙德圓滿瞿婆女
摩耶夫人天主光 遍友童子衆藝覺 賢勝堅固解脫長
妙月長者無勝軍 最寂靜婆羅聞者 德生童子有德女
彌勒菩薩文殊等 普賢菩薩微塵衆 於此法會雲集來
常隨毘盧遮那佛 於蓮華藏世界海 造化莊嚴大法輪
十方虛空諸世界 亦復如是常說法 六六六四及與三
一十一一亦復一 世主妙嚴如來相 普賢三昧世界成
華藏世界盧舍那 如來名號四聖諦 光明覺品問明品
淨行賢首須彌頂 須彌頂上偈讚品 菩薩十住梵行品
發心功德明法品 佛昇夜摩天宮品 夜摩天宮偈讚品
十行品與無盡藏 佛昇兜率天宮品 兜率天宮偈讚品
十廻向及十地品 十定十通十忍品 阿僧祗品與壽量
菩薩住處佛不思 如來十身相海品 如來隨好功德品
普賢行及如來出 離世間品入法界 是爲十萬偈頌經
三十九品圓滿敎 諷誦此經信受持 初發心時便正覺
安坐如是國土海 是名毘盧遮那佛
**********************************************
義湘祖師 法性偈
法性圓融無二相 諸法不動本來寂 無名無相絶一切
證智所知非餘境 眞性甚深極微妙 不守自性隨緣成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 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
九世十世互相卽 仍不雜亂隔別成 初發心時便正覺
生死涅槃相共和 理事冥然無分別 十佛普賢大人境
能仁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意 雨寶益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 是故行者還本際 叵息妄想必不得
無緣善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 以陀羅尼無盡寶
莊嚴法界實寶殿 窮坐實際中道床 舊來不動名爲佛
오늘은 대방광불화엄경 제17권이고,
품수로는 열여섯 번째 품, 梵行品이 되겠습니다.
불교의 기념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기념일이 내일 모레 부처님 성도일입니다.
또 이 화엄경은 부처님 성도와 제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그런 경전이라고 이렇게 봅니다.
부처님께서 생로병사의 어떤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해서 6년간 피나는 고행을 하신 뒤에 마지막,
부다가야 보리수나무 밑에 금강보좌.
뭐 금강보좌라고 이름이 근사 하지만,
사실 가보면 그저 시커먼 바위 덩어리,
우리 키 보다 조금 큰 바위 덩어리에 앉아서 마지막 바른 선정에 들었지요.
고행을 다 끝내고 목욕을 하시고 우유죽을 마시고 기력을 차려서
정말 제대로 된 선정에 들어갔는데 그것이 7일이지요.
7일간 선정에 들었다가 납월 8일에 비로소 큰 깨달음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7일ㆍ7일하는 것도, 불교에서 7일을 많이 이야기하는 것도
최초의 근거는 바로 부처님께서 7일 동안 마지막 바른 선정에 들어서
성도 하셨기 때문에 그래서 7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우리가 기도도 1ㆍ7일, 3ㆍ7일, 7ㆍ7, 49재.
이러한 법식이 나온 것도 바로 거기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7일간 바른 선정에 들었다가 성도하시고,
사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앉은 채
당신이 깨달으신 내용을 그대로 다 설파하신 것이 화엄경이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화엄경은 근기의 상하를 막론하고,
자신이 깨달으신 그 진리의 내용을 거침없이 설하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말하자면 화엄경입니다.
물론 대승경전의 경전성립사적인 입장에서 학자들이 천착하는
그런 어떤 기준에서 본다면 이야기가 많겠지요만,
그러나 우리가 신앙적으로, 또 화엄경을 바로 이해하는 그런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는 것이 아주 맞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깨달았느냐?
이야기가 분분하지만 ‘사람이 모두가 부처님이다.’ 하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을 남김없이 설파하셨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왜냐? 업장 많고ㆍ죄업 많고, 원죄니ㆍ업장이니,
불교에서도 과거 한량없는 세월동안 지은 업장. 이런 등등으로,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그런 안목에서
“본래로 사람은 부처다.”라고 하는 부처로 격상시킨 그런 사건입니다.
또 그러한 사실을 부처님이 깨달으셨고,
깨달으신 대로 우리에게 펼쳐 보이신 내용이고요.
그것이 모든 인류를, 과거에 부처님 이전에 왔던 사람이나,
부처님 당시에 온 사람이나,
부처님 이후에 앞으로 우리보다도 더 먼 미래에 오실
그 많고 많은 인류가 모두 본질적으로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 사실을 일깨운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이 인류사에서 최고의 사건이다.
그렇게 보는 겁니다. 그 깨달음을 남김없이 다 설파한 내용,
‘화엄경은 인류가 남긴 최고의 걸작이다.ㆍ최고의 걸작이다.
이보다 더 위대한 걸작 품은 없다.’ 라고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교와 인연을 맺고, 특히 스님들은 아마추어도 아니고,
불교의 프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화엄경에 대한
해박한 그런 지식을 가지고 늘 화엄경을 가까이하고,
또 여러분이 포교 일선에서 전법을 할 때도
화엄경을 가지고 전법을 하면,
아주 효과적이고 제일 좋은 교재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도 화엄경공부를 해보니까
더욱 그러한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자나 깨나 화엄경을 곁에다 두고,
불교이야기를 꺼냈다하면 무조건 “화엄경 무슨 품에...”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아주 참 바람직한 그런 전법활동이 아닐까?
이런 욕심도 내봅니다.
오늘은 梵行品인데요.
우리가 아침에 발원문 읽을 때,
청정범행 닦고 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하는
그런 발원문을 외우지 않습니까?
이 梵行品이라는 것이 바로 기본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청정범행이 과연 무엇인가? 물론 계율도 잘 지켜야 되지요,
3천위와 8만 세행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준수하고 살아가는
그런 것을 청정범행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거기에는 물론 계율이 기본으로 되어있습니다.
계율이 기본이고, 거기서 좀 부연하면 3천위가 있고 8만 가지
아주 세부적인 행동지침이 또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다 아울러서 우리는 청정범행이다.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것은 일반불교의 안목입니다.
과연 깨달음의 입장에서, 다시 말해서 화엄경의 안목으로 볼 때,
청정범행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이러한 것을 이 梵行品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아주 파격적이고, 참으로 차원이 다르고 그동안 청정범행하면
우리가 기본적으로 계율 생각하게 되고
기타 다른 행위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 모든 것들에 대한 화엄경의 안목. 그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읽으면 사실은 좀 넘칠 수도 있고,
건방스러워 질수도 있고 하는 그런 내용이 되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부처님하고 깊은 인연 맺었더라도 한 번 뿐인 인생.
거기에 부처님하고 이런 깊은 인연을 맺어서
부처님의 아주 고준한 그런 안목.
고준한 설법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실천하느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아~ 부처님에게는 이러한 견해가 있구나.’
이것을 한번 접해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의미가 있고,
큰 복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대방광불화엄경 제 17권, 품수로는 16번째 품 범행품을 할 차례다.
불교의 기념일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가장 중요시해야 할 기념일은
내일모레(2014.1. 8) 부처님 성도일이다.
화엄경은 부처님 성도와 제일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경전이다.
부처님께서 생로병사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해서
6년간 피나는 고행을 하신 뒤에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 밑
금강보좌에 앉아서 마지막 바른 선정에 들었다.
이름이 근사하게 금강보좌이지 가보면
사람 키보다 조금 큰 시커먼 바위 덩어리다.
고행을 다 끝내고 목욕을 하시고 우유죽을 드신 부처님이 기력을 차려서
제대로 된 선정에 들어간 것은 7일간이었다.
7일간 선정에 들었다가
납월 8일(음력 12월 8일) 비로소 큰 깨달음을 이룬다.
7일, 2·7일, 3·7일, 7·7 사십구재 등등
불교에서 7을 많이 이야기 하는 최초 근거가
바로 부처님께서 7일 동안
마지막 바른 선정에 들어서 성도하셨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7일간 바른 선정에 들었다가 성도하시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당신이 깨달으신 내용을 그대로 다 설파하셨다. 그것이 화엄경이다.
화엄경은 듣는 사람의 상하 근기와 상관없이
부처님 자신이 깨달으신 진리의 내용을 거침없이 설하신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신앙의 입장에서 화엄경을 보는 것이다.
물론 학자들의 입장, 대승경전의 경전 성립사적인 입장을 본다면
이와는 다른 학설이 많다. 그러나 불자로서,
또 화엄경을 바로 이해하는 입장에서 보는 것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7일간의 선정에 들어 깨달은 바를
막힘없이 설했다고 보는 이 입장이 아주 맞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분분하다.
그러나 어쨌든 부처님은 ‘사람이 모두가 부처님이다’ 하는 사실을 깨닫고
그 사실을 남김없이 설파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은 인류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죄업이니, 과거 한량없는 세월동안에 지은 업장이니 등등
불교에서도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안목이 많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통해 업장 많고 죄업 많은 사람을
‘본래로 부처다’ 라고 부처로서 격상을 시켰다.
부처님의 깨달음으로 인해
부처님 이전의 과거사람이나 부처님 당시 사람이나
부처님 이후에 우리보다 더 먼 미래에 올 많고 많은 인류가
모두 본질적으로 부처님이 되었다.
이 사실을 일깨운 사건이기 때문에
부처님의 깨달음이 인류사에서 최고의 사건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남김없이 설파한 화엄경은
인류가 남긴 최고의 걸작이다. 이보다 더 위대한 걸작품은 없다.
*
우리는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스님들은 아마추어도 아니고 불교의 프로다.
그렇기 때문에 화엄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늘 화엄경을 가까이 하고 포교일선에서 전법을 할 때도
화엄경으로 전법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화엄경이 제일 좋은 교재다.
내가 화엄경 공부를 해보니 더욱 그러한 생각이 든다.
자나깨나 화엄경을 곁에다 두고 불교 이야기를 꺼냈다 하면
‘화엄경 무슨 품에’ 이렇게 법문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법활동이 아닐까 하는 욕심도 내본다.
一. 正念天子의 請法(정념천자청법)
爾時에 正念天子가 白法慧菩薩言호대
佛子야 一切世界諸菩薩衆이 依如來敎하야 染衣出家인댄
云何而得梵行淸淨하야 從菩薩位로
逮於無上菩提之道이닛고
이때 정념천자(正念天子)가 법혜보살에게 여쭈었다.
"불자여,
온 세계의 모든 보살들이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하여 물든 옷을 입고 출가하였으면,
어떻게 하여야 범행(梵行)이 청정하게 되오며,
보살의 지위로부터 위없는 보리의 도(道)에 이르리이까."
爾時(이시)에, 그 때에 正念天子가
白法慧菩薩言(백법혜보살언)호대, 법혜보살에게 고해 말하되,
佛子야 一切世界諸菩薩衆이, 일체세계 모든 보살대중들이
依如來敎(의여래교)하야,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染衣出家(염의출가)인댄, 우리가 전부 染衣出家했습니다.
먹물 옷 입고, 또 물들인 가사 입고, 그것이 染衣出家지요.
染衣로써 出家했다면
云何而得梵行淸淨(운하이득범행청정)하야,
어떻게 범행이 청정함을 얻어서, 梵行淸淨이 되어가지고서
從菩薩位(종보살위)로, 보살의 지위로부터 저~ 기
逮於無上菩提之道(체어무상보리지도)이닛고?
無上菩提의 道에 이르게 되겠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최상 가는 깨달음의 道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보살지위라고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보살지위고,
모든 불자를 다 보살지위라고 그렇게 봅니다.
불교에 입문한 사람은 화엄경 안목으로는 모두가 보살지위입니다.
물론 중생ㆍ중생이라는 말은 필요에 따라서 자주 합니다만,
불교에 입문한 모든 사람을 보살지위.
불교에 입문한 사람으로부터
최상 가는 깨달음의 도, 보리의 도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正念天子라는 이가 물었습니다.
*
정념천자(正念天子)의 청법(請法): 정념천자가 범행에 대하여 묻다
*
아침 예불을 올릴 때
‘청정범행 닦고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하는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읽는다.
일반 불교의 안목에서 볼 때
청정범행은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준수하고 살아가는 것을 청정범행이라고 한다. 계율이 물론 기본이다.
거기에 부연하면 삼천위의가 있고 팔만가지 세부적인 행동 지침이 있다.
그런데 여기 범행품에서는 깨달음의 입장에서,
화엄경의 안목으로 볼 때 청정범행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은 일반불교의 안목과는 차원이 다르고 파격적이다.
범행품을 잘못 읽으면 좀 넘칠 수도 있고, 건방스러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뿐인 인생에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면,
실천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부처님의 고준한 안목,
고준한 설법을 통해서 부처님의 견해가 무엇인지
한 번 접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고 큰 복이 아닐까 한다.
*
이시(爾時)에 : 그 때에
정념천자(正念天子)가 : 정념천자가
백법혜보살언(白法慧菩薩言)호대 : 법혜보살에게 고해 말하대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일체세계제보살중(一切世界諸菩薩衆)이 : 일체 세계 모든 보살대중들이
의여래교(依如來敎)하야 : 여래의 가르침을 의지해서
염의출가(染衣出家)인댄 :
염의 출가를 했다면, 여기 스님들 모두가 염의 출가를 했다.
먹물옷을 입고 물들인 가사를 입은 것이 염의출가다.
*
운하이득범행청정(云何而得梵行淸淨)하야 : 어떻게 청정범행이 되어서
종보살위(從菩薩位)로 : 보살의 지위로부터
체어무상보리지도(逮於無上菩提之道)이닛고:
무상보리의 도에 이르게 되겠나이까, 하고
정념천자가 법혜보살에게 물었다.
화엄경 안목으로는 불교에 입문한 사람은 모두가 보살지위다.
물론 필요에 따라서 중생이라고 하는 말도 자주하지만
화엄경에서는 모든 불자를 다 보살지위로 본다.
첫댓글 아침 예불을 올릴 때
‘청정범행 닦고닦아 서리같이 엄한계율 털끝인들 범하리까’ 하는
이산혜연선사 발원문을 읽는다.
일반 불교의 안목에서 볼 때
청정범행은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준수하고 살아가는 것을 청정범행이라고 한다.
범행품에서는 깨달음의 입장에서,
화엄경의 안목으로 볼 때 청정범행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내용은 일반불교의 안목과는 차원이 다르고 파격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 뿐인 인생에 부처님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면,
고준한 설법을 통해서 부처님의 견해가 무엇인지
한 번 접해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의미가 있고 큰 복이 아닐까 한다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