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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로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주일 말씀을 전하기전 하나님 앞에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강단에 섰습니다. 우리 교회가 지금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교회학교 어린이들을 잘 양육하여 중등부 고등부 청년부 세대교체가 되어 든든한 교회학교로 자리매김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태신자를 낳지 못한 것은 하나님 앞에 죄송하기만 합니다. 우리교회 상황을 말씀드렸지만 상당한 한국교회가 교회학교에 대해 진단하며 시대적 흐름 앞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37년 전 농촌교회에서 사역할 때 10평도 안된 의자 없는 교회에서 신학교를 다니며 전도사로 사역할 때 여름성경학교 천국잔치를 하는데 작은 교회 공간이 꽉찰 정도로 시골 5개 마을에서 어린이들이 출석하여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행복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인구절벽으로 다음세대 그 이후 나라가 존재하느냐 문제까지 안고 있습니다. 시대의 귀중함을 인식해서 일까요?..... 대한민국 정부가 하지 못한 일을 한 기업에서 한 자녀를 낳으면 1억 출산 장려금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결단은 자녀를 낳지 않으면 대한 민국미래가 보장 될 수 없다는 다급한 현실을 인식하는 애국의 충정이 아니겠습니까?
교회 또한 그렇습니다..... 믿음의 자녀가 계속 생산되지 않는다면 다음세대 교회가 유지 될수 있겠는가 한국교회에 절박함이 있습니다.
선교학에서 수평적 선교와 수직적 선교 말을 합니다. 수평적 선교는 일반적인 선교의 개념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을 받은 1884년 9월 미국 북장로교회 알렌 의료선교사가 제물포(인천)에 들어옴으로 우리나라에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인접한 일본이나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받은 것을 수평적 선교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수직적 선교는 복음을 받았다면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손자, 손녀들에게, 후손들에게 신앙을 심어주고 전수하는 것을 수직적 선교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선교역사를 보면, 부흥 했던 교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쇠퇴하고, 소멸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한 때는 선교사를 많이 파송 하고, 후원하던 교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교세가 약화 되고 역사적인 유물이나 관광지로 전락하게 되는 것을 교회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래전 터어키 선교여행을 아내와 함께 다녀왔는데 터어키는 신약시대에 등장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교회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찬들이 순례지 터어키를 찾아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지만 에베소교회 흔적을 보고 뻐대만 엉성하고 페허된 굴뚝 같은 흔적의 자리에서 비들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는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요 그렇게 왕성했던 초대교회 자리 현재 터어키 국민 거의 90%가 회교를 믿는 국가가 되었으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6번째로 선교사를 파송한 나라이지만 1970년 엑스포를 기점으로 폭발적인 성장이 계속되어 한 때는 1200만명 전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2023년 통계에 의하면 15% 771만명인데 가나안성도 226만명을 빼면 정작 출석하고 있는 교인 수는 545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50%는 주일학교가 없다고 통계를 제시합니다. 어릴 때 모태신앙으로 출발 했던 2세들이 대학생이 될 때에는 70% 교회를 떠나고, 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면 90% 교회를 떠난다는 암담한 현실을 고발 했습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교회 교육과 가정교육을 통해 “수직적 선교”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해 실패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한국교회가 그동안 부흥하고 성장하여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많은 선교사를 보내고 교회를 세워주는 일에 성공한 것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주님나라 갈 때 주님이 평가하겠지만 정작 내 자녀 내 후손들에게 말씀과 신앙을 바르게 전수하는 데는 실패 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수직적 선교인 가정에서부터 복음이 뿌리내려야 하는데 무엇보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에서 부터 그 뿌리를 찾아야 합니다.
창세기12: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 네게 내가 보여줄 땅으로 가라”......... 여기서 말하는 보여줄 땅은 젓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나라요 천국입니다. 이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은 믿었고 그 땅을 차지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땅이 가나안 땅 곧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또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여 주신 큰 민족에 대한 정체성은 미국 중국 러시아 어느 나라도 부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우리는 큰 민족이라는 약속의 말씀을 확신하고 믿는 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은 중요한 요직에 유태인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이스라엘이 위험하면 100% 지원하지 않습니까? 지금 중동전쟁도 그렇습니다. 어찌보면 이스라엘이 미국을 조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특별합니다.
우리나라 강원도 뿐이 되지 않는 작은 땅덩어리 이스라엘 하나를 중동 22개 나라가 이기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스라엘은 스스로가 큰 민족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약속의 말씀을 혼자만 품고 지키며 살아간 것이 아니였습니다.
창18:18-19....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19절.....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고
이 말씀이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한 수식적 선교의 핵심 메시지로 가정신앙교육의 시작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자식과 권속은” 누구를 말합니까?....... 아직 약속의 자녀 이삭은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미 자녀를 낳기 전부터 가정에서부터 신앙의 뿌리를 자손들에게 굳게 뿌리 내리라는 것입니다......이 말씀 바탕위에 이스라엘백성들이 몸에 베인 쉐마 교육이 이루어졌고 구역성경의 지상명령으로 받아드리게 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본 틀로 삼은 이스라엘의 신앙교육의 핵심이 있습니다. 쉐마 신6:4-9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 1층 계단에도 있고 사택 집안에 들어간 출입문에도 있습니다. 매일 보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보면서 다함께 읽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왜 쉐마인가?..... 먼저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 말씀을 들으라로 시작합니다. 말씀을 전하는데 듣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밥상머리 쉐마 가정교육을 철저히 가르쳤습니다.
쉐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키고 광야여정 중에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토대가 되었기에 갈 바 알지 못하는 광야에서 힘든 여정을 살아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유일하신 하나님을 온 맘 다 해 최고로 섬기는데 내몸에 부착하여 늘 보면서 “ 온 맘 다하여 하나님만 섬기겠습니다. 이 말씀이 철저한 쉐마교육이 되었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을 보면 이처럼 수직적 선교 쉐마 가정교육이 철저히 이루어지면서 책임을 다한 지도자 모세는 느보산에서 120세로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이스라엘백성을 가나안땅까지 이끌어 정착시키고 야곱의 열두지파대로 공평하게 땅을 분배하고 이 모든 일을 수행한 후 여호수아도 110세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지도자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뒤를 이은 장로들이 그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살피며 하나님을 잘 섬겼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온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도 죽고 여호수아도 죽은후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10절......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그 세대와 다른 세대” 둘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 세대” 사람들이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가나안땅까지 정착하여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이끌었던 모세와 이스라엘백성들을 말합니다. “다른 세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온 부모들로써 광야 40년 동안 지내면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자녀들입니다. 이들은 출애굽 사건을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철저히 쉐마교육을 밥상머리에서 배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들으라!! 하나님께서 애굽 세상나라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해방시켜주셨다. 우리를 해방시킨 하나님은 한분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한다.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인도로 약속대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 때 하나님께서 약속한 창18:19......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시대가 지났어도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주셨던 말씀을 그대로 마음 판에 새기며 대대로 신앙교육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그 세대의 사람 모세나 여호수아 그리고 족장들 장로 그세대 사람들이 다 죽었습니다....... 이제 다른 세대 광야에서 태어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 책임을 다하여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능력을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세대와 다른 세대 시간이 흘러 모세도 여호수아도 다른 이스라엘백성들이 다 죽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셨습니다. 저들이 그동안 밥상머리 쉐마교육도 그대로 남아있었을 것인데 어찌 하나님이 행하셨던 모든 일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을까요?
결국 신앙교육이 없었다는 거예요....가나안 땅에 정착한 다른 세대는 하나님 제일주의 신본주의 신앙을 갖기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한 가나안땅에 만연된 우상들을 그대로 따라 한 겁니다.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신 것인데 말입니다.
12절.....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들의 신들을 따라....그들에게 절하며 라고 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정착하여 살아가는데 주위를 살펴보니까 눈에 들어온 생소한 것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 한 거예요.
오늘 읽은 성경본문을 보세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우상이 보입니다. 바알과 아스다롯이 있었습니다.(11절,13절) 바알신은 가나안의 신으로 폭풍과 비를 부르는 신입니다.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가나안 족속에게 비는 곧 생존으로 저희들에게는 축복입니다.
아스다롯은 바알신의 아내로 사랑과 전쟁의 여신으로 가나안 정착백성들이 섬기고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는 신상을 보고 끄뻑 넘어진거요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이 싫어하신 보이는 것에서 부터 시작하여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수없이 보여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보이는 세상의 것들이 더 좋게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도 예외가 아닙니다. 똑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좋아하거나 빠져들면 곧 우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외적인 충격 문화)
요한일서2:15-16.....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보이는 것들은 모두가 세상에서 온 것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다음세대 백성들의 행위를 보시고 어떻게 하셨다고 했습니까?
14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다음세대들은 조상들로부터 배운 밥상머리 쉐마교육은 사라진지 오래되었습니다. 다음세대앞에는 하나님 없는 딴 세상에서 살았기에 하나님은 노략하는 자들이 와서 하나님 자기백성을 어떻게 하든지 그대로 두고 보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백성들이 무슨 일을 하든지 잘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다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가슴 아파하고 괴로움으로 견딜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음세대 백성들이 사사기 300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사기 21:25b....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한마디로 사사기 300년 그 시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에게서 떠나 계시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은 가나안땅에서 정착하며 살지만 조상들이 살았던 과거 애굽에서의 생활과 다를 봐 없는 죄의 멍에를 짊어지고 하나님 없는 고아처럼 살아간것입니다. 이것이 다음세대에게 나타난 영적 괴로움 고통을 걲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현실은 어떠습니까?...... 우리가정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됩니다.
부모와 자식이 밥상머리에서 대화할 때 세대 차이를 느낀다고 자식들이 말 한 적이 있습니까? 30년을 한 세대라고 부르는데 우리 시대는 여섯 세대가 공존하며 살고 있다. 베이비부머(1946-1965년), X세대 , 밀레니엄, Z세대, 지금은 알파세대(2010)라고 말들을 합니다.
이렇게 세대가 지나면서 우리 사회는 언어, 문화, 유행, 사고, 의식구조가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는 대한민국 쌍둥이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MZ세대들이 사용하는 신조어가 있습니다.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 비담(비주얼 담당), 취존(취향 존중), 핑프(핑거 프린세스) 등이 있어요........ 그렇다면 알아듣지도 못한 이들과 소통이 되겠습니까?
한국교회가 복음이 들어온 때 1884년을 기준으로 14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세대가 지나면서 믿음의 가정의 세대가 저희가정으로 본다면 4대가 됩니다.(어머님-나-자녀-손자손녀)
세대 간에 이런 차이가 있기에 소통하는데 어려움이 있지요......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부모의 세대가 믿는 하나님이 다르고 자녀의 세대가 믿는 하나님이 다를 수 있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분명하지만 시대 세대 흐름에 따라 교육이 다를 수는 있지만 그러나 우리 가정 밥상머리 신앙교육만큼은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대가 아무리 변해도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이 하나님 방법대로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지금세대도 다음세대도 여기 예배드린 성도들이 다 죽고 또 다른 세대 사람들이 있어도 쉐마 신앙교육만큼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불안한 우리시대를 바라보면서 다음세대를 너도 나도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걱정하는 세대를 뛰어넘어 오직 불변하시며 지금도 미래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다음세대에 신앙유산으로 남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