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박찬일의 노포기행을 엮은 책 ‘백년식당’을 읽다보면 스멀스멀 추억이 돋습니다. 청진옥, 열차집, 평안도족발집 등 그가 소개한 18곳의 노포 중에는 갑판장이 여전히 출입하는 집도 있고 한때 부러 찾아 다니던 집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실감을 못했었는데 이렇게 책으로 출간이 되고나니 역사가 꿈틀대던 그 격동의 현장에 갑판장도 있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하기사 요즘 텔레비젼에 나오는 낯선 개그맨들보다 진작에 고인이 되신 배삼룡, 이기동, 서영춘씨 같은 옛날 코메디언들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니 딱 그 만큼 나이를 먹은 게지요.
우래옥, 부원면옥 등 오래된 이북음식점들은 이북출신의 실향민들에겐 사랑방 같은 장소입니다. 고향이 그리워서, 혹여 생이별을 한 가족들의 소식이라도 들을까 해서 드나들던 곳이니까요. 이제 해방된 지 70년이요, 전쟁이 끝난 지도 62년이 지났으니 다들 연로하셔서 자녀의 부축을 받아야 냉면집 출입이 가능하신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월이 무상합니다.
백년식당/박찬일 지음, 중앙 M&B 펴냄, 2014.11 10 발간
요즘은 냉면집으로 널리 알려진 이북음식전문점인 우래옥과 부원면옥을 소개한 대목을 읽다보니 친구들의 얼굴이 오버랩 됩니다. 평안도 실향민이신 아버지의 덕(?)으로 학창시절 이북오도청의 장학금을 받으며 각종 모임에 동원 참석을 해야 했던 친구의 얼굴도 떠오르고, 평양냉면에 대한 패티즘이 있을 것이 거의 확실한 친구도 떠오릅니다.
남대문시장에 있는 부원면옥은 우래옥, 을밀대, 평양면옥 등에 비해 저평가를 받고 있는 냉면집입니다. 혹자는 마이너 냉면집의 카테고리에 넣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시장통에 있다 보니 다른 유명 냉면집들에 비해 고급화(?)를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냉육수는 달달하고, 메밀의 까실함 보다는 전분의 미끌거림이 더 도드라진 면발은 갑판장이 그닥 선호하는 맛은 아닙니다. 하지만 남대문시장을 출입하는 수 많은 시민들에게는 이런 맛에 오히려 더 끌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게다가 다른 유명 냉면집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7천원)은 2층에 위치한 식당의 문턱을 1층까지 낮추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빈대떡과 닭무침/부원면옥
생각이 난 김에 친구와 부원면옥이 문을 여는 시각에 맞춰 만났습니다. 오전 11시라 좀 이른 시각이긴 했지만 언제부터 갑판장이 시계 봐가며 술을 마셨답니까. 좋은 음식이 눈앞에 펼쳐지면 그 곳이 주지육림인 게지요. 세상에 고소한 돼지기름으로 막 부쳐낸 빈대떡과 빨갛게 무쳐낸 닭고기를 눈앞에 두고도 술을 마다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암튼 갑판장은 그럴 위인이 전혀 아닙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낼름 빨간 쐬주를 청했습니다. 술이 아주 그냥 술술 들어갑니다.
냉면/부원면옥
냉면은 역시나 앞서 언급했던 대로 달달하면서 미끈미끈합니다. 동행한 두 친구, 이 집의 냉면은 그닥 입맛에 안 맞는지 먹는 둥 마는 둥입니다. 소줏잔이 비워놓고 얼른 2차를 가잡니다. 그러나 갑판장은 서둘러 자리를 옮길 생각이 없습니다. 소주 한 병을 더 청했습니다. 다 마셔도 되고 얼마 쯤 남겨도 됩니다. 까짓 그래봐야 얼마나 한다고...그깟 돈보다는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시간, 이 상황, 이 기분이 좋습니다. 마음껏 누리고 흠뻑 취하고 싶습니다. 추억도 맛이니 그 맛에 흠뻑 취하렵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부원면옥은 1960년에 창업을 했습니다. 올해로 56년째입니다.
첫댓글 가끔은 맛난 추억을 먹고싶을때가 있는거지
가끔은 서울구경도 해얄텐데 ...
책도 샀으니 기념으로 가볼랍니다.
추억을 곱씹어 먹을 연식이 되야 감흥이 더 돋는 맛이구만요. 즐거운 여행 하시라요.
@강구호 갑판장 그렇다면 갑판장님을 대동해서 흘리시는 추억을 공유해야겠군요.
뭐지? 이 재치는...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강구호 갑판장 그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가나봅니다.
@푸른 도로 원래대로 돌아왔군요. 안심입니다. ㅋ
@강구호 갑판장 역시나 저는 등심입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