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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9(주일) 느헤미야 4:15~23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예산수정교회 주일설교 이몽용 목사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어려움과 도전 앞에 서게 됩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교회에서 때로 벽에 부딪히고, 앞길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적대자들이 꾀를 내어 성벽 재건을 방해하며 이들을 위협했고, 두려움과 낙심이 공동체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곁에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20절)이 계셨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싸우다, 전쟁하다, 투쟁하다”라는 히브리어는 라참(lacham)인데, 문맥상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직접 싸우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간적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개입과 보호를 강조합니다.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성경의 다른 구절을 살펴보면
1) 출애굽기 14장 14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앞 애굽 군대가 뒤쫓아오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절망할 때, 모세가 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실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2) 여호수아 23장 10절 "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이 말씀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후 회고와 권면의 말씀 중 일부인데,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신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장면입니다. 즉 승리는 군사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싸움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3) 신명기 3장 22절 약속에 땅에 들어가기전 모세의 격려 설교인데,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싸우실 것임을 확신시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 20절도 예루살렘 성벽 재건중 외부의 방해와 위협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셔서 공동체를 보호하고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메시지 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싸움은 인간의 능력이나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개입에 의해 전쟁이 승리로 이끌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내가 믿고 신뢰한다면, 우리는 어떤 고난과 좌절의 사건 속에서도 절대로 낙심치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여전한 방식으로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15~1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도전과 위기를 만납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방에서 적들이 방해했고, 위협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믿음의 방식으로 나아갔습니다.
첫째 믿음의 여전한 방식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15절에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알았다는 것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패하셨다는 것을 들었으므로 우리가 다 성벽으로 돌아와 각각 자기 일을 하였더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적들의 계략을 들었지만 두려움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고 성벽 재건에 집중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믿음의 여전한 방식은 두려움 앞에서 우리의 믿음의 걸음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기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 5:7) 적용: 여러분의 삶 속 위기와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둘째, 믿음의 여전한 방식은 ‘끊임없는 준비와 경계’입니다. 16-17절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며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지고 지켰고... 일하는 자들은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한 손에는 연장을, 다른 손에는 병기를 들고 성벽을 쌓았습니다. 이는 믿음의 삶이 영적 전투와 준비를 동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깨어 근신하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적용: 우리 성도는 영적 무장을 게을리하지 말고, 말씀과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말씀과 기도에 깨어 있습니까?
셋째 믿음의 여전한 방식은 ‘공동체와의 협력’입니다(18절) 18절에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였고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느헤미야는 나팔을 준비해두고 사람들이 한데 모여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혼자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하는 싸움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9)
적용: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기도하고 협력하며 함께 믿음의 싸움을 싸워 나갑시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동시에 자신들의 할 일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사건이 올 때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십니다. 내가 할 일은 여전한 방식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내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여전한 방식으로 물맷돌을 들고 믿음으로 나아가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여 골리앗을 넘어뜨렸습니다(삼상17장). 다니엘은 다리오왕의 법령에도 불구하고 하루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행한 창문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다니엘을 사자굴에서 구해내셨습니다(단6장). 이들은 모두 여전한 방식으로 믿음의 길, 즉, 하나님을 신뢰하며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다했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이 닥쳐올 때, 두려움 속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믿음의 길을 가야 합니다. 여전히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싸움을 친히 싸워주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적용) 요즘 나를 힘들게 하는 대적은 누구입니까? 나는 여전한 방식으로 믿음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15절)
2. 말씀의 나팔소리에 귀기울여 들어야 합니다(19-20절).
우리 인생에는 위기와 전쟁 같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20절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라고 합니다.
성전재건을 하고 있는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믿음에 대한 중요한 지침을 줍니다(19~20절).
19절에 보니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며 우리가 성벽에서 서로 떨어져 있으니..." 당시 성벽 재건은 매우 광범위했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있었습니다. 나팔 소리입니다. 나팔은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전달하는 신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나팔 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롬 10:17) 적용: 하나님의 말씀은 위기의 순간 우리의 영적 방향을 제시하는 나팔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0절에 "너희가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이라..."고 합니다. 나팔 소리가 울렸을 때 백성들은 주저하지 말고 즉시 그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야 했습니다. 즉각적인 순종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릴 때, 우리는 그 말씀에 지체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너희는 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자기를 속이는 자니라” (약 1:22)
적용)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릴 때 나는 그것을 미루지 않고 즉각 순종합니까?
20절에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합니다. 나팔 소리가 울리는 곳은 단순한 집합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약속된 곳입니다. 백성들이 나팔 소리를 따라 모였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직접 싸워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4) 적용)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예배와 기도의 자리를 사모합니까? 그곳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현장임을 믿으십니까?
성경에서 나팔 소리는 백성을 소집하거나 위험을 경고할 때 불었습니다(민10:2; 렘6:1). 성경 전체에서 나팔은 종종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상징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도 나팔 소리가 울렸고(수6:20), 요엘 선지자는 나팔을 불어 백성들을 영적 잠에서 깨우고 회개로 이끌었습니다(욜 2:1).
19-20절에 보니 "우리가 성벽에서 서로 떨어져 있으니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이라..."
성벽 재건은 혼자서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들이 나팔 소리에 모일 때 공동체의 힘이 발휘되었고, 승리가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도 공동체적 믿음이 중요합니다.
나팔 소리는 서로 다른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9)
적용) 교회 공동체의 말씀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 온 성도들이 큐티하라는 나팔소리에 함께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말씀을 이루라는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여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하며,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도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나팔소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지침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고 승리로 이끄시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적용) 요즘 내가 민감하게 듣는 소리는 세상의 소리입니까? 하나님의 나팔소리입니까?(20절)
3. 전신갑주를 끝까지 벗지 말아야 합니다(21-23절).
신앙의 여정은 단순한 행진이 아니라 영적 전쟁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며 끊임없는 방해와 위협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하면서도 무장을 풀지 않았고, 전신갑주를 끝까지 벗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영적 전신갑주를 끝까지 벗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 낮이나 밤이나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21절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라고 합니다.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낮에는 일하며, 밤에는 경계했습니다.
그들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로 낮과 밤을 가리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방심할 때 공격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사망의 잠을 자지 말고, 낮이나 밤이나 깨어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둘째, 공동체는 함께 깨어 있어야 합니다. 22절에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을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백성에게 밤에는 파수꾼으로, 낮에는 일꾼으로 서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들은 이 명령을 따라 공동체가 함께 깨어 있었고, 공동체가 한 마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신앙 공동체도 서로를 위해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 4:9)고 했습니다. 적용) 우리는 개별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교회 공동체와 함께 서로 기도하며 서로, 서로를 지켜주는 영적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안에 견고히 설 수 있게 됩니다.
셋째, 전신갑주는 절대 벗어서는 안 됩니다. 23절에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고 합니다. 느헤미야와 그의 사람들은 옷을 벗지 않고, 심지어 물을 길으러 갈 때도 무기를 들고 갔습니다.
이들은 한순간도 영적 긴장을 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전신갑주’ 를 입으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3)
(1)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엡6:14) 진리는 믿음의 핵심입니다. 허리띠는 병사의 옷과 무장을 고정시키고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능하게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2) 의의 흉배입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엡6:14)흉배는 가슴과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는 방어도구입니다.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의를 의미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를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를 가지려 함이니” (빌 3:9)
(3) 평안의 복음의 신입니다.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에베소서 6:15) 병사는 튼튼한 신발을 신어야 험난한 길을 걷고 전쟁터에서 움직일 수 있습니다. 평안의 복음은 우리의 발걸음을 견고하게 하고 어디서든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게 합니다. “복음 들고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롬 10:15)라고 했습니다.
(4) 믿음의 방패입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에베소서 6:16) 믿음은 사탄의 공격과 의심, 두려움, 유혹을 막아주는 방패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5) 구원의 투구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에베소서 6:17)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는 장비입니다. 구원의 확신은 성도의 생각과 믿음을 보호합니다. 성도는 구원의 확신을 통해 사탄의 의심과 거짓을 물리쳐야 합니다.
(6)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입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 6:17)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의 공격을 막고 반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성도는 말씀을 암송하고 적용함으로써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히 4:12)
(7) 기도와 간구입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에베소서 6:18) 기도는 모든 갑주를 능력 있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기도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전신갑주가 효과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기도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 5:17)
우리도 영적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끝까지 긴장과 경계를 늦추지 않고 영적 무장을 해야 합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 진리로 견고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리스도의 의로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이 주시는 카이로스의 기회를 포착하여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믿음의 방패를 가져 믿음으로 악한 마귀의 공격을 막아야 합니다.
구원의 투구를 쓰고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검인,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기도와 간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되어 절체 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셔서 우리의 방패와 요새가 되어주시고, 우리를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적용) 대적이 틈타지 않도록 내가 밤에도 끝까지 벗지 말아야 할 나의 영적인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23절)
[큐티인 묵상간증] [우리 하나님이 싸우시리라, 김미현님]
결혼한 지 몇 년 후부터 사소한 일들로 해마다 남편과 다투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남편은 제게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말씀을 들어왔기에 이혼은 안된다고 생각하며 꾹 참고 살았습니다(마19:6).
그러던 중 저는 구속사 말씀이 선포되는 공동체에 속해 날마다 큐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불어주는 나팔 소리와 같은 설교말씀과 간증을 듣게 되었습니다(20절).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그동안 제가 남편을 머리로 섬기지 않고 얼마나 외롭게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내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사탄의 꾀를 폐해주시니 지체들에게 제 삶을 나누고 남편을 섬기며 가정을 중수하게 되었습니다(15절).
하지만, 저는 한 손에는 성경은, 한 손에는 신문을 잡으며 균형잡힌 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17절). 어느 날 남편이 하는 일을 기다려주지 못하고 온라인 사업 매출이 잘 나오겠냐며 속단하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남편은 제가 다시 이혼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딸은 내편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출가한 딸과 이 일을 나눴습니다. 그러나 딸은 아빠도, 엄마도 모두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빠가 왜 불쌍해?”라고 묻자, 딸은 “엄마가 아빠의 안되는 부분을 계속 지적하니 아빠가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딸과의 대화로, 또 공동체에서의 나눔으로 나팔을 부니 하나님이 제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시고, 저를 위해 사탄이 주는 악한 생각과 싸워주셨습니다(20절). 제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임을 알게 하심으로 평안을 주시고 결혼생활도 유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제게 직분을 허락하셔서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주일을 거룩히 지키도록 인도하셨습니다(21절). 남편과 지체들을 섬길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적용하기) 소그룹 SNS 대화방에 지체들의 기도제목이 올라오면 바로 기도하겠습니다. 날마다 큐티한 뒤 나라를 위해 1분 이상 기도하겠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전히 영적 싸움의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 삶의 위기가 닥쳐와도 믿음의 길을 여전히 걷기로 결단하십시다. 그리고 세상이 유혹하는 소리에 따라가 내 맘대로 살았던 죄를 고백하고 이제는 말씀의 나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겠다고 결단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벗지 말고 끝까지 입고 나아가기로 하나님 앞에 결단하십시다. 그럴 때, 우리는 나를 위해서 싸워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