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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 저녁 설 특별 간증 집회
이현래 목사님 말씀
- 어떤 하나님을 만나야하는가
하나님은 있는가? 아주 근원적인 질문이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것도 근원적인 질문이다. 그 모든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이것이 저 공중에 떠다니는 하나님이 아니고 나의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 말이다. 나의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 하나님이 누구이냐에 따라서 인생은 그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다.
만물을 지으신 이가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면서 ‘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남자와 여자로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라’ 이렇게 말씀 하셨다는데 우리는 그것을 전혀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나서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아무 말도 없으면 내가 누구인가도 생각할 수 없다.
왜 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자신이 혼자 있으면 안 되는 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혼자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영이요 생명인 하나님은 몸이 없다. 그러니 자기가 아무리 무엇을 하고 싶어도 사람을 상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영이요 생명이신 하나님이 사람과 만물을 상대하자면 거기에 합당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렇게 만드신 이가 우리 하나님이다. 그런 목적으로 나를 만드신 분이 있다면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어떤 분에 대한 칭호다. 군 지역을 다스리는 사람을 보고 군수라고 하고 시를 다스리는 사람을 시장이라고 한다. 그 사람 이름은 다른 이름이지만 직함이다. 하나님이라는 말은 일종의 직함으로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직함이다.
나를 지으신 이가 누구인가? 나를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다. 그가 나의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지으신 이를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 하나님이 없으면 나는 근거가 없는 사람이 된다.
아메바가 발전해서 사람이 됐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유다. 아메바의 후손이 되고 싶으면 자기는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아메바의 후손이 되고 싶지 않으면 좋은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진화론의 하나님을 만나면 나는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 하나님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이상이 안 된다. 어떤 하나님을 만나느냐. 이것이 내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사람이 필요한 분이다. 사람은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피조물이 다 많지만 이런 목적을 가지고 지은 것은 사람뿐이다. 그러니까 이 목적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 목적이 없으면 뭐가 되는가? 그냥 동물이다. 밥 먹고 사는 동물이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 목적 안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이라고 한다. 이것을 보고 사람이라고 한다. 사람이라는 말도 일종의 칭호다. 사람이라는 말도 하나님이라는 말처럼 칭호다.
이런 목적을 가지신 분을 하나님이라고 하고 그 목적대로 지어진 것을 보고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동물이다. 돌아다니며 먹고 사는 동물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한가. 눈에 안 보이는데 이렇게 중요하다.
이것은 크게 말하면 아주 큰 우주적인 전쟁이다. 왜냐면 누가 하나님이냐? 누가 참 신이냐? 하는 전쟁이니까 어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냐? 하는 것에 대한 전쟁이다. 우리를 지으신 이가 참 하나님이다. 이렇게 될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과 방불한 천사가 하나님이 될 것이냐. 이 문제이다.
그러니까 잘못하면 온 우주가 천사의 것이 될 수도 있고 온 우주가 하나님 것이 될 수도 있다. 주인이 누구냐가 결정되는 것이니까 여기의 핵심이 사람이다. 사람이 천사의 편에 서 있으면 우주는 천사의 것이 되고 사람이 하나님 편에 있으면 우주는 하나님 것이 된다. 오늘 우리는 이 특별한 택함 안에 있는 존재들이다.
어떤가? 자랑스럽지 않은가. 행복하지 않은가. 이보다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이 없다. 이보다 자랑스러운 일이 없다. 그런 위치가 없다. 그 어떤 위치든지 간에 이보다 자랑스러운 위치가 없다.
잘 먹고 잘 사냐, 뭐가 많이 있냐 없냐 이런 문제가 전혀 아니다. 전혀 관계가 없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맞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지으신 후에 보기에 심히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보기에 심히 좋은 사람을 버리고 나왔기 때문에 그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떻게 생긴 줄 모른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해도 알아야 돌아간다.
내가 대구에서 좋은 개 한 마리를 가지고 제주도를 갔다. 누구 집에서 키우던 좋은 진돗개인데 집을 팔게 되어서 이 개를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에 싣고 가려니 특수한 상자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돈을 주고 특수한 상자를 구해서 비행기에 실었다.
육지에 내려놓고 집에서 약 일주일 묶어 놓으니 사람을 너무 좋아한다. 밥 주고 만져주니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아침에 함께 산책을 나가면 아주 기분 좋아한다. 꼬리치고 어쩔 줄 모르고 기분 좋아한다. 그러다가 돌아올 때가 되면 마지못해 돌아온다. 같이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려면 마지못해 돌아온다.
그 일을 며칠을 했다. 그러니 나는 이제 이만하면 풀어놓아도 괜찮겠다 생각하고 밤에 풀어 놓았더니 다시는 안 돌아오고 말았다. 아침마다 다니던 길을 나가보면 멀리 바다만 보인다. 바다를 건너왔는데 이 바다 건너에 고향이 있지만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방황하다가 누구에게 잡혔든지 어떤 변을 당했을 것 같다. 나중에 들으니 그 개는 3개월을 묶어 놓아야 하고 3년 이상을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진돗개는 새끼 때부터 키운 놈은 그렇지 않은데 새끼 때부터 키우지 않은 놈은 그렇다고 한다.
서양 개들은 교육이 잘되는 개들이기 때문에 주인이 바뀌면 대번에 그 주인을 따라간다. 세퍼트는 훈련 개이므로 줄을 쥐면 그 주인을 따라간다. 누가 하든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한다. 끈을 잡고 있는 사람이 주인이다.
진돗개는 그게 안 된다. 야생이 강해서 그것이 안 된다. 그래서 훈련하기 제일 어려운 개가 진돗개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모르고 나를 좋아하길래 내보냈더니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옛 주인을 찾고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다가 있어서 못 간다.
우리가 아무리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도 어디로 갈 줄을 모르면 못 간다. 길이 없으면 못 간다. 어디로 갈지를 모르니 못 간다. 육지 같으면 냄새를 맡아서 자기 살던 대로 찾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전혀 다른 세계로 왔다.
그러니 우리도 창조한 세계가 아니고 사람이 만든 세계로 와버렸다. 그러니까 못 찾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 인생도 똑같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에 있었으면 어디로 갔다가 다시 돌아올텐데 전혀 다른 세계로 가버렸다. 그러니까 돌아갈 길이 없는 것이다. 어디가 길인지 모르기 때문에 못 간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니까 ‘내가 두려워서 나무 뒤에 숨었습니다.’ 이것이 아담이다. 이것이 가장 진실한 아담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자기가 얼굴을 내미는 사람은 다 가짜다. 그 얼굴이 진짜 얼굴이 아니고 가짜 얼굴이다.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것이다.
그 가면이 무엇이냐? 나무 뒤에 숨는 것이다. 인생은 알고 보면 모두 다 어디 숨어서 살고 있다. 자기를 가리고 숨어 산다. 자기를 내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 번도 그 후로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본 일이 없다. 몇 천 년이 되는지 몇 만 년이 되는지 모르지만 한 번도 얼굴과 얼굴로 본 일이 없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과 만나는가? 구약시대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일부러 찾아서 그 사람을 불러서 하나님이 쓰셨으니까, 아하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쓰는구나. 이렇게 알았는데 신약 시대에 오면 혼란이 생긴다.
갑자기 성령으로 잉태했다. 처녀가 잉태해서 낳았다. 이것부터 우리는 뭔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맹목적으로 믿어야 한다. 그러니까 모를 수밖에 없다. 그 후로 모든 일이 다 그렇다. 그가 행한 일을 보면 모르는 일만 성경에 가득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다. 그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어떻게 해서 내 생각에 맞도록 해석해서 만났던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다르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사람마다 해석이 다 다르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다 다르다. 해석이 다르니까.
그래서 교파가 많이 생기고 잡소리가 많고 쓸데없는 소리를 2천년 동안 계속 하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하기는 한다. 충성을 다해서 한다. 믿음을 가지고 한다. 그런데 답이 안 나온다. 왜냐면 근본이 없으니까 그렇다. 서로가 나무 뒤에 숨어서 하니까 답이 안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가 비로소 그 모양을 우리 앞에 드러냈다. 우리도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다. 그냥 믿기는 했어도 잘 몰랐다. 신도 되고 인간도 된다고 믿고 있다든가, 어떤 경우에는 신이고 인간이라고 하니 알 리가 없다.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를 아무도 모른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면 우리 인생도 답이 없는 것이다. 이 사람을 모르니까 답이 없다. 그 주인을 만나야 내가 무엇 때문에 있는지 안다.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주인에게는 필요하지만 딴 사람에게는 안 필요하다. 그러니까 모른다. 내 주인을 만나야 아하, 이래서 나를 만들었구나. 이렇게 알게 된다.
여러분 기계를 누구에게 빌려주면 고장을 낸다. 카메라를 빌려주면 꼭 고장 내서 온다. 왜냐면 자기 나름대로 쓰니까 고장이 난다. 컴퓨터도 다른 사람이 만져 놓으면 나는 못쓴다. 나는 컴맹이라서 누가 조금만 다르게 해놓으면 프로그램을 몰라서 안 된다. 있는 대로 해야 하는데 누가 손을 대면 완전히 헝클어져서 내가 못 찾는다.
하물며 사람이 안 그렇겠는가. 누가 손대놓으니 아무도 사람을 모른다. 나무밖에 모른다. 그 나무가 무엇인가? 그 사람이 만들어놓은 것, 얻은 것, 타고난 것, 배운 것, 이것이 나무다. 거기 따라 사람이 다 달라진다.
똑같은 사람인데 한 사람은 미국에서 크고 한 사람은 한국에서 크면 한국에서 큰 사람은 한국말을 하고 미국에서 큰 사람은 미국말을 한다. 똑같은 사람인데 그렇다. 그러니까 사람이라는 것은 정체성이 없다. 무엇이 사람인지 모른다. 기능만 가지고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 용도를 봐야 한다. 어디 필요한가? 나라에서는 나라대로 필요하고 회사에서는 회사대로 필요하고 다 필요하다. 다 필요한데 진짜로 나를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내 정체성을 알고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가 그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니다. 부르기는 부르는데 모른다. 다만 이런 분을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어떤 분인지 우리는 모른다. 그것을 알려고 해서 자기대로 그림을 그려버린다. 그러면 그것이 우상이 된다. 하나님이라는 그림을 그리면 우상이 된다. 왜? 그림이 없는 분이니까, 그림을 그려버리면 우상이 된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아론은 백성을 동원해서 금 송아지를 만들었다. 이 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했다고 하고 축제를 벌였다. 눈에 안 보이니까 그랬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어놓으면 우상이 되어버린다. 너희는 너희 자신을 위해서 혹은 나를 위해서 아무 형상을 만들지 마라. 무슨 형상을 만들면 딴 것이 되어버린다.
나는 엠지다. 이러면 엠지가 우상이 되어버린다. 나는 무엇을 깨달았다 하면 그것이 또 우상이 되어버린다. 사람에게는 항상 그 순간밖에 없다. 그 순간 내가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이것만이 오늘 현재의 나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엠지 세대도 자기들끼리도 서로 모르고 밖에서는 더군다나 잘 모른다. 왜냐면 내가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른다. 와 보니까 가볍고 무조건 좋다. 뭔가 얽매였던 것에서 해방되고 무조건 좋다.
야, 좋은 세상이네 하고 오기는 왔는데 왜 이렇게 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면 전파가 안된다. 이것을 알아야 전파가 된다. 그러니까 선포하라 선포하라 하는 말이 그냥 입으로 외치라는 것이 아니고 이것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를 차차 알아간다. 그것을 알아가면 아주 신기한 세계다. 전에 우리가 전혀 몰랐던 세계다. 잃어버린 나를 찾은 것이다. 전에는 내가 아니었는데 그 사람이 나다.
십자가에 못 박혀 내려오지 못하고 죽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사람들이 그런다. 아니 누구든지 십자가에 못 박히면 죽는 거지 그게 뭐 대단하냐? 그럴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왜 못 내려왔는가? 내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었는데 왜 못 내려왔나?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왜 못 내려 왔는가? 사람이기 때문에 못 내려왔다. 아니 다른 사람은 사람 아니냐? 그런데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좀 다르다. 뭐냐면 내려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그런데 못 내려왔다. 사람이 다른 게 아니고 이것이 특이한 것이다.
예수의 길은 남이 모르는 길을 왔다. 전혀 모르는 길을 왔다. 사람들이 모두 모르고 예수를 믿었다. 모르면서 예수를 그냥 믿었다. 믿었는데 아무리 믿어도 그를 모르게 되니까 답이 없는 것이다.
이제 아주 간단하게 조금만 알아도 내가 그분을 알게 된다. 나는 어떤 분의 특수한 목적을 따라서 지어진 피조물이구나. 이것만 알면 다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다. 나는 어떤 분의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참 특이한 것이다.
예수의 죽은 자리를 가보면 더욱더 특이하다. 보통 사람이 죽으면 다 슬퍼하고 애도한다. 그런데 예수 죽은 자리에는 슬퍼하거나 애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유대인들은 참람하다고 떠나고 제자들은 희망이 없어서 떠나버렸다.
마지막에 자기 자신도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했는데 역시 아무 대답도 못 들었다. 거기서 우리가 아주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 같은 분인데 왜 대답이 없었나? 그것은 하나님 같았을 뿐이지 하나님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같았다. 왜? 하나님이 위임을 했고 그렇게 시켰으니까. 모세가 왜 하나님 같았는가? 하나님이 모세에게 위임을 했으니까 그렇다. 가라 내가 너를 바로 앞에 신으로 쓰겠다. 그래서 신처럼 보였다. 또 신이 할 일을 했다.
생각해보라. 신이 아니면 2백 만이나 되는 백성을 내어줄 왕이 누가 있겠나. 또 길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는 땅에서 어떻게 40년을 살았겠는가. 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하겠는가. 그런데 그 일을 모세가 했다. 왜? 모세가 신이어서 그랬나? 그게 아니고 신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썼기 때문이다.
우리도 하나님이 쓰시면 그럴 수가 있다. 썼다고 해서 모세가 신이 된 것은 아니다. 죽을 때보니까 역시 사람이었다. 역시 사람이다. 아니 저 사람도 죽나? 비스가 산에서 멀리 그리운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었다.
우리도 똑같다. 언제 우리를 어떻게 쓰다가 언제 우리를 떠날지 모른다. 그런데 그 쓰임 받은 그것이 인생 최고의 영광이다. 더 이상 될 필요가 없다. 하나님과 똑같이 쓰였으니까.
여기서 우리는 사람은 사람이고 신은 신이구나. 완전히 다르구나. 이것이 분명히 갈라진다. 사람과 신은 다르구나. 신처럼 쓰여도 사람이라는 것을 내가 알았더라면 내가 헤매지 않았을텐데 내가 이것을 몰랐다.
아예 태어날 때부터 특이하게 태어났다고 하니까 내가 그 생각을 미처 못했다. 그래서 어려웠다. 어려워 분명히 신이 아니고 사람은 사람인데 왜 이렇게 알 수 없는가? 이렇게 밖에 생각을 못 했다.
그래서 이것은 분량의 차이다. 나와 예수님이 어떻게 같겠는가. 내가 그의 십 분의 일만 안다고 해도 나는 참 많이 아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40년을 살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막상 마지막을 보니까 어려운 사람이 아니고 너무너무 쉬운 사람이다. 왜? 나와 같을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못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나보다 훨씬 나은 예수를 믿어왔다. 그러니 믿어도 믿어도 끝이 없다. 아무리 믿어도 잘 믿었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잘 살아도 잘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완전하게 했다고 해도 완전하다고 할 수가 없다. 애매모호 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까 나보다 더 못 하다. 나보다 못하니까 내가 할 일이 없다. 내가 노력할 일이 없다는 말은 나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쳐다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데 쳐다볼 일이 없으니 내가 할 일이 없다.
내가 할 일이라는 것은 나를 어떻게 꾸미는 것이다. 나무 뒤에 숨는 그 일을 내가 더 하려니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제 나무를 구할 필요가 없다. 나를 가려줄 나무를 구할 그럴 일이 없다는 말이다.
밥 먹고 사는 일과는 다르다. 나무 뒤에 숨는 일은 밥 먹고 사는 일과 다르다. 밥 먹고 사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밥 먹는 일이 부끄러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나무를 만드는 일은 사람들에게 감춰야 한다. 나는 이런 나무 뒤에 숨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어찌하든지 자기만 가리면 되니까.
내가 만든 나무 뒤에는 나밖에 없다. 아무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다 공개되어 버렀으니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니까 사람이 갑자기 짐이 다 없어져 버린다. 짐이 없어지니까 편한 것이다. 차별이 없어져 버렸다. 차별이 없어지니까 편한 것이다. 저절로 자유로워진 것이다. 평등해진 것이다. 그렇게 평등하려고 노력해도 안 되었는데, 그렇게 자유롭게 살려고 해봐도 안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렇게 살려고 노력 안 해도 저절로 그렇게 살아진다. 그래서 전혀 새로운 판이 열린 것이다. 지금은 옛날과 전혀 다른 새로운 판이 열렸다. 전혀 다른 판이다.
오늘도 누구와 이야기했는데 옛날 판에서 살던 것을 가지고 지금 판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다 안 맞고 다 의문이다. 그런데 판을 바꾸고 나면 의문 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판이 다른 판이니까.
용왕님이 어떻게 육지 사정을 알겠는가. 육지 사정을 모르니까 토끼에게 속았다. 토끼가 어찌 용왕님 사정을 알겠는가. 그러니까 속아서 물속에 갔다. 사정을 서로 모르니까 그렇다. 우리가 지금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용왕이 토끼에게 말해도 안 되는 것과 토끼가 용왕에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그런 것인데 결국은 사람은 그것이 사람이다. 우리의 운명이다. 자세히 보라.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한 예수가 누구인가? 바로 나다. 여러분이다. 우리다. 남이 아니다. 그러니 피할 수 없는 자리다. 내가 피하려고 해도 도저히 피해지지 않는 자리다. 아무리 피해도 안 피해진다. 나니까.
나를 피해서 어디로 가는가? 나를 피해서 갈 데가 없다. 도로 돌아오면 나고, 도로 돌아오면 나다. 보면 나다.
이것을 회복시켜 준 분이 예수다. 예수가 아니면 이 자리를 보여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우리 같은 사람은 죽어도 그 자리가 안 나온다. 그런데 예수는 하늘까지 있다가 땅까지 내려온 사람이다. 지옥까지 내려온 사람이다.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까지 도달했다는 그 말은 옥에 있는 영들에까지 내려갔다는 뜻이다. 안 내려가면 모른다.
물고기가 안 되어보고 어떻게 물고기 사정을 알겠는가. 피라미 새끼 하나의 사정도 우리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피라미 새끼가 되어야 피라미를 안다. 우리가 예수 없이는 나를 알 수 없다.
예수 안에서 안 내가 진짜 나다. 다른 나는 내가 아니다. 예수 안에서 아는 내가 참 나다. 그러니 예수와 저절로 하나가 된다. 하나가 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하나가 된다.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예수처럼 되려고 노력했는가. 예수 닮기를 원합니다. 예수 닮기를 원합니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이런 노래를 부르는데 어떻게 닮겠는가? 개가 사람 닮으려고 노력한다고 닮아지겠는가.
요즘 사람 흉내 내는 개들이 너무 많다. 애완견, 어떤 것은 반려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니까 개들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자기가 개인지 사람인지 정체성의 대혼란이 생겼다. 사람만 없으면 침대에 자기가 먼저 올라가서 눕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자기 정체성이 없으면 어디가 자기 자리인지 모른다. 우리가 이 세계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다. 이것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전혀 다른 세계다.
우리의 경험 가운데 이런 경험은 없다. 이것을 말해줄 수 있는 지식도 없다, 이것을 말해줄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말로는 못 한다. 그래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 ‘내가 곧 길이다.’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길이라는 것은 방법을 말한다. 어떤 방법으로 가야 합니까? 묻는 것인데 방법이 바로 나다. 내가 방법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니고는 그 사람이 될 수가 없다. 그 사람이 아니고 그 사람을 알 수가 없다. 오늘은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복음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변할 수 없다. 시대가 바뀌고 뭐가 바뀌어도 이것만은 바뀔 수 없다.
AI 시대가 와서 이제는 사람 없이 움직이는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여전히 사람이다. 숨어 있을 뿐이지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숨어 있어도 사람은 사람이다. 다만 자기대로 못살고 엉터리로 사는 것이다. 개가 사람인 줄 알고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다.
토론토에 가면 이상한 거지가 하나 있다. 길가에 깔고 앉아서 항상 똑같은 자세로 책을 보고 있다. 워낙 추운 곳이니 얼굴이 터서 벌겋다. 6개월 동안 영하 20도인데 그냥 산다.
철학에 나오는 동굴 속에 사는 사람 닮으려고 하는지 늘 책만 보고 있다. 무엇을 보는지 항상 미소를 짓고 있다. 그래 봐야 사람이다. 그 사람이 누구처럼 되는 게 아니라 그래도 사람이다. 우리가 누구처럼 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지어놓은 대로 된다.
이 안에서 다 공감하니까 연합이 된다. 만나면 다 똑같다. 너도 똑같고 나도 똑같고 옆 사람도 똑같으니 만나면 하나가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데 만나면 다 연합체가 된다. 그러니 신비한 나라다.
그 나라에 나만 있지 않고 함께 있다. 우리가 영원히 이 말을 해야 한다. 갈수록 점점 더 깊어져 간다. 늘 해도 늘 깊어져 간다. 늘 해도 늘 새말이다. 어제 말을 또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새말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 대구교회 홈페이지를 열면 설날 메시지가 뜰 것이다. 일주일 동안 계속 돌릴텐데 얼마나 계속 할지 모른다. 항상 똑같은 말인데 듣는 사람마다 달라진다. 가장 짧게 해본다고 했는데 그렇다.
더 짧게 말하면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고 나를 회복시킨 사람이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준 사람이다. 그 한마디만 하면 되지만 그러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니까 몇 마디 더 붙인 것이 15분 정도 되었다.
똑같은 말이라고 넘어가면 안 된다. 늘 들어야 한다. 여러분 속에서 저절로 나오도록 들어야 한다. 내가 원고 쓰고 말한 게 아니다. 아침에 갑자기 생각나서 한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늘 설날인데 새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설날이 와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80 평생을 살았는데 한 번도 설날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설날 아침에 그 생각이 났다. 그래서 당장에 전화해서 내가 오늘 메시지를 하겠다고 연락하고 방송을 했다.
여러분도 어디 가면 아무 데서나 그 말이 저절로 나와야 한다. 그것도 좀 더 짧게 더 완전하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말해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말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릴수록 말을 많이 해야 하고 복잡해진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간단하게 한마디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급속도로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양자역학적인 원리로 전파될 것이다.
양자역학은 동에서 말하면 서에서 된다고 한다. 그 양자역학을 원리만 이야기하면 너무 복잡하고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전략적으로 말하니 아주 쉽다. 군대에서는 전략에 이용한다. 어떡하면 순간적으로 적을 섬멸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고 말하니 너무 간단해진다.
동에서 짝하면 서에서도 짝한단다. 이것이 양자역학이다. 우리 시대가 그런 시대다. 우리 엠지세대 형제들이 뭔지 모르지만 서로 만나버린다. 뭔지 모르지만 이상한 세계에 들어와 버린다. 앞으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될 것이다.
설명을 못 해도 사람이 오는데 어쩌겠는가. 하지만 우리가 보다 더 완전하게 말하기를 원한다. 왜냐 더 많은 사람에게 전파되기 위해서다. 자세히 봐보라. 아무것도 모르는데 괜히 좋아한다. 다시는 엣 세계에 못 살겠다고 한다.
뇌를 빼서 수술한 사람 같다. 장경화 자매가 아주 복잡한 사람이다. 오늘 이야기를 기껏 해놓으면 내일 와서 똑같은 이야기하고 모레 와서 똑같은 이야기를 계속한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너는 머리통을 좀 바꿔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진짜 바뀌어 버렸다.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제는 그전 이야기는 귀찮아서 못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완전히 뇌수술한 것 아닌가.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너무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다. 우리를 통해서 일어나는 물결은 이상한 물결이다.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다. 알지 못한 세계니 신기하지 다 알면 뭐가 신기하겠는가.
다 모르는 세계니까 갈수록 신기하다. 개인이면서도 연합체고 연합체이면서도 개인이다. 누가 이것을 막겠는가. 이 길을 누가 막겠는가. 나는 내일 이야기해도 또 이 이야기를 할 것이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