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요한 밥사님께
안녕하세요? 전 박창진 목사입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김요한 밥사님의 글을 접하면서 한국교계에 이런 분이 계셔서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려운 이들에 대해서도 남다른 마음을 가지고 도우신다는 것에서도요. 한번 만나 얘기를 하고 싶어 부산에서 무작정 상경하였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만나지도 못하고 내려와야 해서 너무 너무 아쉬웠습니다.
전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 교회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회복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인간 사회에서 구현되기를 원하는 가치들 곧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인권 복지 생태를 지금보다 더 온전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혁과 진보입니다. 전자를 위해 부산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자를 위해 시민정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고요.
제 개인적으로 소박한 꿈이 하나 있습니다. 원고료를 받고 책을 출판해보는 것입니다. 현재 목회를 하지 못하고 대리운전으로 가장으로서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 제겐 그렇게 되면 더할 수 없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4~5년 전에 일차적으로 정리하였던 글입니다. 그때엔 안티기독인들과 논쟁을 적지 않게 했는데 그들이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의 글을 많이 인용하더군요. 그래서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살피니 그 책을 읽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었다는 서평들이 있더군요. 그 책을 읽고 나니 우리 자녀들이 대학생이 되어 이 책을 접하면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신자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정되는 부분과 반박해야 할 내용들이 눈에 들어와서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제 글 내용이 한국기독교계에서 출판이 쉽지 않네요. 목사님 정도의 강단이 있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첫째로
1.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하나님이 각각 하나님이시며 그 수는 하나(1)이다.
2. 성부 성자 성렬 삼위의 하나님이 각각 하나님이시며 그 수는 3이고 그 관계에 의해 하나(1)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다. 곧 본질과 신성과 권능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고 뜻과 말씀과 행하심에 있어서 아무런 간격이 없기에 하나(1)라고 말할 수 있다.
1은 전통적인 삼위일체론입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이에 대해 조롱하는 것이 최상이라고 하였더군요. 주 근거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성경의 진술인데 문제는 그때의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인가입니다. 전혀 아닙니다. 신약 성경에서 위격 없이 사용된 하나님은 성부에 대한 전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삼위일체는 조롱거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에게는요. 신비라는 말도 풀어지는 사안이 아니지요. 2가 성경의 가르침인데 2를 말하면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말하면 이단이 되는 어이없는 현실입니다.
둘째로
1. 독생자 하나님이 자기를 비워 사람이 되셨고 공생애와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되찾으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2. 독생자 하나님이 자기를 절반 비워 신인이 되셨고 공생애와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계신다.
신인이라면 자기를 비웠다는 진술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절반 비웠다는 것은 가능하겠지요. 하늘과 땅의 권세를 되찾는다는 말도 성립되지를 않습니다. 이미 경배의 대상이시기에요. 이 땅에서의 예수님을 신인이라고 생각하는 성경적인 근거 가운데 하나가 신적인 표현들이 그분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건 신인이라는 절대적인 근거가 되진 못합니다. 자신이 원래 독생자 하나님이셨다는 자의식을 가진 예수님이시기에 얼마든지 사용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던 고백은 더 말할 나위도 없고요. 그 시점의 유대인들은 철저한 유일신론자들이기에 그들의 사고에서는 독생자 하나님의 개념이 있을 수가 없죠. 한 사람에게 어떻게 신성과 인성이 동시에 있을 수 있느냐고 하면 신비라고 하는데, 성경에서의 신비는 이런 데에 사용하는 것이 아니지요.
성경은 일관되게 독생자 하나님이 신인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예수님은 사람이라고 하면 이단이라고 하네요.
셋째로
마태복음25장엔 예수님의 연속되는 세 비유가 나옵니다. 이는 앞장에서 얘기하신 유대 세계의 종말에서 인내하는 자들에 대한 연장선상에서 얘기된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 믿는 자는 유대인들이지요. 열 처녀 모두 신랑을 맞을 자격이 있었고 기름이 담긴 등을 가졌는데, 그 중 다섯은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고 나머지는 준비하지 않았다는 차이가 있었지요. 세 종들에겐 달란트가 동일하게 주어졌습니다. 그 비유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임을 생각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 곧 소명이지요. 소명은 거듭난 자에게만 주어집니다. 염소에 해당하는 이들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도 거부하지 않지요. 그들에게 주어지는 심판에서 “나를 떠나”라는 표현도 있습니다. 양에 해당되는 이들과 동일하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여 그분과 함께 하였었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다섯 처녀, 바깥 어두운데 내어 쫓겨 슬피 울게 되는 한 달란트 받은 종, 마귀과 그 졸개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게 된 염소에 해당되는 이들은 예수님이 분명하게 말씀하신 바입니다.
이는 칼빈주의 5대 교리의 성도의 견인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히 6:4~6의 배교에 대한 진술을 생각하면 더 확실하고요. 원래 믿음이 없던 사람이었다면 배교란 말 자체가 성립되지를 않지요.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이는 것도 불가능하고요. 거듭난 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이니요. 진술된 은택들은 거듭난 사람에게만 가능한 것이고요.
그렇다고 제가 알미니안주의자는 아닙니다. 전 인간의 전적 부패,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을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사랑하셔서 선택하시고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한 번은 반드시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자신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신다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불가항력적 은혜입니다. 속죄는 요 3:16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세상을 범위로 하였고 믿는 자가 그 효력을 누린다는 보편적 속죄가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고요. 구원에 관한 다섯 소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칼빈주의 아니면 알미니안주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요. 각각의 경우의 수 곧 열 개를 모두 풀고서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논리가 아니라 성경의 가르침에 대한 바른 해석 결과를 따라서요.
과학과 관련하여서는 빅뱅, 자연선택이 하나님이 없다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진술하였습니다. 과학적 연구 결과는 신이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고 보이고요. 전적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빅뱅이 창조의 방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세기 1장은 과학적 진술이 아니라 그 시점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 기술된 신학적 진술이지요. 그것을 과학적 진술로 생각하고 문자적으로 그대로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고요.
교회가 사회적인 면에서는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인권 복지 생태를 지금보다 더 낫게 하는 역할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담았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보는 김 밥사님은 매우 바쁘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을 내셔서 원고를 한 번 읽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출판할 만한 글이라고 생각하셔서 출판하게 되면 이슈거리가 있기에 책 판매부수를 늘리는 데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기독교가 아니라 목사교라는 비판을 받고 개독교라는 조롱을 당하는 현실에서 나름대로 고군분투하시는 김 목사님을 지지합니다. 마음의 소원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차근차근 현실에서 열매를 맺게 되기를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아울러 제 소박한 소원도 김 밥사님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간절히. 김 밥사님을 만나러 다시 서울에 올라가는 날이 출판 계약을 하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평강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