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시91:14) 찬송:313장 매일성경:겔45~48 장
사랑을 노래한 시 중 절창이라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연작시“사랑
초서”입니다. 빈 가지를 모두 떨군 겨울나무처럼 감정과 언어의 군더더기를 버려 최
소한의 것으로 빛나는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한 구절을 이렇습니다. “누군가
가 네 영혼을 부르면/ 나도 대답해/ 소름끼치며 처음아는/ 영혼의 동맹”누군가가 너
의 영혼을 부르자 마치 나를 부른 듯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합니다. 그 순간 화들짝 놀
라며 꺠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영혼의 동맹’이라 부릅니다. 떼려
야 뗼 수 없은 온전한 하나라는 사실 앞에 소름을 끼칠 정도이니 감히 그 사랑의 깊
이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시편 91편의 중심 단어는‘너’입니다. 고난 중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총
을 먼저 경험한‘내’가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너’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복합
니다. 지금‘너’를 괴롭히는 고난은 한둘이 아닙니다 새 사냥꾼의 올무와 심한 전염
병,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는 재앙, 등입니다,
‘심한 전염병’에서‘심하다’는‘부수다’라는 뜻입니다. 먼저 경험한 고난 속의
은혜가 있기에, 몸과 마음을 다 부술 것같은 고난에 빠진‘너’의 고통을 공감하며
위로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시인은 마침내 예언자적 신탁의 형식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가 나를 사랑
한즉 내가 거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14)”고난을 당
하는 자가 참으로 명심하며 붙잡아야 할 말씀을 들려줍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열망하며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지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안다’는 말은‘부부가 동침하다’라는 뜻으
로 경험을 통한 전인격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주님께 집중할 때
주임은 우리를 건지십니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진 영혼의 동맹처럼 우리가 주님을
알 때, 주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주님은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고
난 속에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알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습관처럼 하면서도 우리의 사랑은 가벼웠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
하지만 우리의 신뢰는 부족했습니다. 지식을 넘어 주님을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입술의 고백을 지나 주
님을 충분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희철 목사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