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동안의 악몽
수필가/윤봉춘
여행에는 3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떠나기 전의 설렘’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즐거움’ 그리고
집에 돌아와 ‘곱게 간직된 추억’이라고 한다.
이런 낭만적 여행은 911 사건 이전의 일이고 요즘 공공 대중교통 수단인
선박이나 비행기 탑승은 이런 들뜬 마음을 무참히 흩어 놓는다.
지난 2월 훌로리다 올란도 행 뉴왁 국제공항 탑승 수속 검색대를 지나면서
당한 황당한 사건은 이제껏 살아온 연륜에 비해 나를 처량하게 만든
잊혀 지지 않을 큰 충격이었다.
보딩패스를 손에 쥐고 검색대 입구에서부터 신분증 대조과정부터
범법자 취급이 시작된다.
검색대 들어가기 전에는 유치장에 들어가는 피의자처럼 신발 벗어들고
허리띠 푸는 것은 기본이고 조영 사진틀 검색대 위에서는
마치 이차 대전 막 바지에 오끼나와 진지 동굴에서 항복하러 나오는
일본군 포로들처럼 두 손을 머리위에 올리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호주머니에 있는 것을 모조리 꺼내 보이라고 하며
호주머니에 든 잔돈 뭉치, 손수건까지 까 발려 보이고 그래도 미심
차는지 촉수검사까지 한다.
여태까지 없던 조사가 무척 심하다.
뒷 호주머니 지갑을 더듬어 보더니 지갑을 검색대 콘베어로
다시 통과하라고 한다.
이미 가방과 콤퓨터는 검색대로 빨려 들어갔는데 조그만 플래스틱
바구니에 지갑을 넣고 뒤에 온 승객들 짐의 행렬 속에 나의 지갑
바스껫을 끼워 넣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꼬일는지 가방안의 음식 과일과 간식 등이 든 가방을 검색요원이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나의 가방을 들고 따라오라니 그를 따라 갈 수밖에 ...
밀수품을 운반하다 들킨 것처럼 마음이 조여든다.
일일이 내용물 검사를 마치고 가방을 다시 꾸려 닫고 검색대
테이불을 떠나려할 때 뭐가 허전하여 챙기다 보니 뒤 호주머니에 있어
할 지갑이 없다.
가방검색요원을 따라 갈 때 검색대에서 뒤 따라 흘러나올
지갑은 챙기지 않은 것이다.
X레이 검색대 위에 놓인 조그만 풀라스틱 접시위에서
내 지갑을 찾아도 없고, 검색요원에게 내 지갑이 없어 졌다고 말해도
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한다. 어떻게 한다?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라도 하면 누가 도와주러 올 텐지만
흰 머리털 난 백발(白髮)주제에 그럴 수도 없고 난감하기만 하다.
TSA의 수퍼바이저를 불러 자초지종을 진술하니 CCTV검색을 할 테니
진정하고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며 사무실로 간지 몇 분 후에
돌아와서 일러 준다.
나의 뒷 승객이 내 지갑을 집어넣은 것을 확인하였으니
그 사람을 찾아 보겠다고한다.
내가 같이 따라 가야겠다고 하니 경찰을 부를 때 까지
나는 여기서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검색대를 통과한 승객이 나의 뒤로 백 여 명이 흘러들어 갔고
탑승구 입구에 이미 있는 수 많은 인파가 각 게이트 마다
북적 댈 턴데 그 많은 승객들 중에 내 지갑을 집어간 승객을
그 TSA 직원이 어떻게 찾을 것인가?
불안은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만일 그 사람이 이미 자기 가 갈 탑승구로 빠저 나갔다면...
나의 머리속은 하야지기 시작한다.
이래서 사람이 충격을 크게 받으면 기절을 하는가 보다.
큰 맘 먹으면 까짓 지갑 하나 분실하였다고 기절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뒷수습 할 일이 차근차근 떠오른다.
운선 차량국 앞에서 긴 줄을 서서 운전면허 재발급 할 일, 두 개의
크레딧 카드 분실 신고, 건강보험카드 재 발급신청, AAA 카드,
골프카드, 국립공원 무료 출입 카드 등 소소한 증명서가 많은데
언제 그것을 다 복구하지?
내가 어쩌다 이 꼴을 당하고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한심하기 그지없다.
다행히 나의 탑승시간을 여유 있게 잡고 나왔기에 지장은 없었지만
현지에 도착하여 당장 렌트카를 하여야 하는데 운전면허증
크레딧 카드가 없으니 렌트카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런 상황을 낭패(狼狽)라고 하나보다
평소 자신 만만하고 명철하다고 자부하던
자존심이 한 순간 무너지고 만 처참한 몰 꼴을 보는 것 같다.
TSA 직원이 그 용의자를 찾아 밀착감시를 하고 있으니
안심하고 경찰이 올 때 까지 여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공항 경찰을 부른지 십 여 분이 지나도
경찰은 오지 않고 나의 입안은 바싹 바싹 말라간다.
바보가 따로 없다.
내가 바보가 되었다.
이 일을 집에 돌아가 이야기 하면 얼마나 나를 또 바보 취급 할까
아예 입을 봉하고 혼자서 감당하여야 하겠다고 다짐도 하여본다.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고 초라한 나의 행색을 누구에게 들킬까 싶다.
나의 탑승시간도 닦아온다.
이 여행을 취소하고 집으로 되돌아간다?
무턱대고 비행기를 타고 본다? 갈림길에서 갈등이 생긴다.
도움을 청한 경찰은 나타나지 않아 TSA 직원에게
내가 그 사람을 찾아가 나의 지갑을 되 돌려 달라고 사정 할 테니
그 사람을 찾아 달라고 하였으나 규정상 그럴 수 없고 용의자를
대하는 것은 경찰 소관이니 경찰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라니
입 안 침은 더 바싹 말라 혓바닥이 까칠해 진다.
한 발 물러서서 이번 사태를 살펴보면 큰 사고도 아닌 언제
어디서라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지만 거기에 천착하면 심신이
허물어지는 것이 인간인가 보다.
짧은 참회의 순간이 지나간다.
내가 남에게 상처 받을 말을 한 적이 몇 번이었던가?
못 된 짓을 얼마나 하였는가? 교회에나 가서 회개할 일이 하필
이 난감한 순간에 떠오른다.
최악의 순간에 인간은 착한 심성을 가지나 보다.
임종 직전에는 모든 사람이 착하게 된다는 어느 호스피스에서
일하던 분의 말이 생각난다.
인간은 난관에 처하면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 반성하고 선한
인간됨을 갈망한다.
경찰을 불러도 오지 않고 시간이 흐르자 밀착 감시를 하던
TSA 직원이 용의자를 데리고 내 앞에 나타났다.
오 마이 갓.
그의 손엔 나의 지갑이 들려있다.
이것이 당신의 지갑이냐?
나의 손때 묻은 낡은 가죽지갑을 흔들며 건너 준다.
잃어버린 것이 있나 확인하라고 한다.
천만 다행으로 지갑에는 비상금마저도 넣어 두지 않았다.
크레딧 카드 두 장 다 들어있고 운전면허증도 무사하다.
그는 카나다 사람으로 지갑이 자기 것으로 알고 무심코 집어
넣었 다고 변명한다.
나의 지갑을 가로챈 용의자는 범법자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 동안 애 태우던 마음을 생각하면 그 얼굴에 주먹을 한방 날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난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의 말을 믿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선량한 여행객이 판단착오로 실수를 한 건데 나의 실수도 감안 하면
그도 용서하고 싶어졌다.
뒤 늦게 출동한 경찰은 그를 고발 하겠느냐고 묻는다.
순간 그를 고발하여 고통을 주고 싶었지만 약한 마음은 NO라고 대답하고
그의 갈 길을 가게 하였다.
고희(古稀)를 지나서까지 처음 당하는 망신이다.
아니 여태껏 살아오며 수 없는 실수와 망신을 겪었다.
이 번 실수는 하찮은 사소한 사건이었다.
쇠는 불에 달구어 망치질을 받아야 강철이 된다.
인생도 시련을 겪어야 여물어 지는 것인가 보다.
신사 년 액 땜은 이것으로 끝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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