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종교개혁(롬12:2)
2026.10.25, 종교개혁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늘은 종교개혁 509주년 기념주일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독일 비텐베르그대학교의 교회 정문에 당시 로마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 등에 항의하면서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게시하면서 시작되었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기독교는 현재의 로마 가톨릭(Roman Catholic Church)과 개신교(Protestant Church)로 분리되었다. 면죄부(免罪符)란 당시 교황청에서 발행한 증서를 구입하면, 구입하는 순간에 구입한 사람이나 죽은 자(부모 등)의 영혼의 죄가 사해진다는 증서이다. 루터 당시에 교황 “레오 10세”는 노후 된 베드로성당의 재건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했다.
그러나 면죄부 판매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엡2:8-9, 롬1:17)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비텐베르그대학의 신학교수이자 신부였던 마르틴 루터가 오직 말씀(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을 외치면서 반박문을 게시했다, 이것이 유명한 종교개혁의 5대 슬로건이다. 자세히 보면, 결국 종교개혁의 최종 방향과 목적은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오직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은 이 시대에도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간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은 ‘무엇을 말씀으로 개혁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개혁의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우리들의 생활이나 습관, 그리고 더 크게는 극도로 분열과 혼란 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상황들 속에서 바꾸고 개혁해야할 대상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 보다 가장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바꿔야할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마음(심령)이다. 마음의 개혁되고 기경되지 않고는 아무리 법률을 정하고, AI를 비롯한 각종 과학이 발달해도 백약이 무효다. 오히려 고도의 범죄와 분열은 더 교묘하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인간의 마음을 뭐라고 말씀하는가?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의 마음은 심히 부패해 있고, 의인은 없으며, 모든 사람은 죄인인 것을 말씀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렘17:9)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이처럼 부패하고 썩은 마음(죄성)에서 온갖 부패한 생각과 행동들이 나온다. 이 시대도 정치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지만, 세상은 더 악해지고 부패해져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불과 얼마 전에 경기도 오산에서 생후 2개월 된 딸을 때려서 숨지게 한 40대 아버지가 긴급구속 되었다(2026.10.12, MBC뉴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아기는 머리 부위 손상으로 숨진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경찰에서 "아이가 잠을 자지 않고 계속 보채 짜증이 나서“ 범행을 했다고 자백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것은 스마트폰으로 집에 설치된 홈캠에 접속해 해당 영상을 삭제하려고 시도까지 했다는 것이다.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마치고 돌아온 아기의 엄마는 다른 방에서 자고 있어서 남편의 범행을 몰랐다고 한다. 2개월 된 갓난아기를 쥐어 팰 때, 그의 모습과 가족이 받았을 충격을 상상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MBC뉴스 보도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M07ZR9NEQHU
비록 단적인 실례지만 이것이 부패한 인간의 본성이고, 숨겨진 죄의 성질이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썩은 마음을 개혁하고, 기경하지 않고는 희망이 없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은 영원한 지옥 형벌(영벌)을 면할 수 없게 된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마25:46).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그런데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주목해야 할 표현이 있다. “변화를 받아”라는 말씀이다. ‘변화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변화를 시켜주는데, 그것을 받으라는 말씀이다. 그래야 새롭게 변화될 수 있고, 그렇게 변화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실제로 여기서 사용된 “변화를 받아(메타모르푸스테)”는 수동태 명령형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는(우리는 변화를 받고) 그 누군가가 누구인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다(아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부패한 마음을 기경하고 개혁할 수 있는 영적인 쟁기는 십자가뿐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쟁기다. 결국 십자가의 복음(말씀)이 마음의 개혁의 시작과 끝이다. 이것이 성경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날마다 매순간 마다 말씀의 쟁기로 우리(나) 마음을 기경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종교개혁의 출발이고, 승리하는 복된 인생과 실패하는 인생의 갈림길은 여기서 갈린다(시1:1-2).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
어떤 사람은 ‘목사님이 그것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하고 싶을지 모른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명확하고 분명하게 “그렇다!”이다. 예수님을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과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이 변하고 삶이 변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실례는 기독교 역사에서 수많이 많았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나 같은 죄인 살리신(찬송가 305장)”의 작사자 존 뉴턴(J. Newton)이다. 그는 젊은 시절 노예선 선장을 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극심한 풍랑 속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삶의 방향과 이유를 발견하고 평생 복음 전도자로 살아갔다. 훗날 그는 윌리엄 윌버포스(W. Wilberforce)와 함께 영국에서 노예제도 폐지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마음의 개혁이 세상을 변화 시킨 진정한 종교개혁이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들이여, 과거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팎에서 개혁을 외치고 있다. 우리들 자신도 변하기를 원한다. 정말 그것이 진심이라면, 그 변화는 마음의 개혁과 기경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마음의 기경은 오직 십자가 복음의 말씀이라는 쟁기로 가능하다. 그러므로 날마다 매순간 마다 말씀의 쟁기로 우리(나) 마음을 기경하자(시1:1-2). 그래서 진정으로 복되고 승리하는 삶을 살자.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개혁의 시작과 끝이다. 성령님이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