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침한 안채 골방의 베틀에 앉아있던 할머니가 엣다 하고 던져주던 엿조각의 단맛이 생각나는 '무명'이란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너 입고 있는 옷이 뭘로 만들어졌니?"
"순면 백프로래요."
"그걸 순 우리말로 하면 ‘몽땅 무명’이란다."
수입면으로 만든 옷을 무명옷이라고 말했으니 틀린 건 아니지만, 글쎄, 그래도 엿냄새나는 무명옷이랑 요새 미국 목화 농장에 나온 면으로 짠 순면옷이 과연 같은 체온의 옷일까.
목화를 문익점이 가져온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그 이야기야 따로 할 것도 없다. 그런데 목화를 가져온 후에 어떻게 무명을 만들었나는 좀 전문적인 이야긴 만큼 필자가 한 마디쯤 거들어도 될 것 같다.
경상남도 산청군에는 문익점이 '면화를 처음으로 재배한 사적비'가 서 있다. 비문에는 문익점이 목화 종자를 가져와 재배의 묘를 얻어 3년만에 번성시켜 전국에 퍼뜨렸다고 한다. 또 손자 문래(文萊)는 물레를 만들어 '문래'로 이름짓고, 문영(文英)은 베짜는 요령을 얻어 이를 '문영'이라 했는데 지금은 와음이 되어 물레와 무명이라 부른다고 한다. 전래와 재배는 문익점이, 물레 제작은 문래가, 무명 만드는 법은 문영이 했다는 이 설은 문씨 집안 전래의 이야기로 내려왔고, 비문은 이를 따른 듯하다.
그런데 <고려사> 열전의 문익점에 대한 항목은 문씨 집안의 설과는 좀 다르다. 문익점이 장인인 정천익에게 가져온 종자를 주었고, 정천익이 재배방법을 몰라 거의 다 말라 죽이고 한 줄기만 자라나 3년만에 크게 번성했다고 한다. 정천익은 재배만 한 것이 아니라 씨아와 물레도 발명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