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여성 최대 갑부인 타티아나 바칼추크(48)가 원래 성인 '김씨'를 되찾을 수 있을까? 인터넷 쇼핑몰 '와일드베리스'(Wildberries.ru)를 경영하는 타티아나는 7월 30일 모스크바 법원에 이혼 소송을 냈다. 러시아에선 그동안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를 상대로 한 아내의 천문학적 액수의 이혼 청구 소송은 있었지만, 갑부인 여성이 남편을 상대로 낸 이혼 소송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현지에서도 관심이 높다.
와일드베리스의 지난해 매출은 2조5000억 루블(약 40조250억원)로, '러시아판 아마존'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와일드베리스의 창립자 타티아나 바칼추크/사진출처:인스타그램
그동안 세간의 관심을 끈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이혼 소송은 프랑스 프로 축구 AS 모나코 구단주이자 세계 최대 비료업체인 '우랄칼리'의 소유주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Дмитрий Рыболовлев)와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북극해 천연가스 개발자 겸 '노르트가스'(Нортгаз) 전 소유주인 파르하드 아흐메도프(Фархад Ахмедов)를 들 수 있다. 둘 다 마라톤 이혼 소송에 천문학적인 위자료, 자녀들과 얽힌 소송전까지, 재산을 빼앗고 지키려는 진흙탕 싸움으로 '세기의 스캔들'이 됐다.
리볼로블레프는 2008년 아내 엘레나의 이혼 소송으로 2014년 무려 45억 달러를 아내에게 재산분할하라는 선고를 스위스 법정에서 받았으나, 국제적으로 법정 투쟁을 계속한 끝에 이듬해(2015년) 6억 달러(약 7천8백억원) 규모의 위자료 지급에 합의하고 끝냈다.
아흐메도프는 2000년 러시아에서 아내 타티아나와 헤어졌다. 그러나 아내는 2003년 영국에서 이혼 소송을 내 법원으로부터 4억5천만 파운드의 자산 분할 결정을 일단 받아냈고, 이후 지루한 법정 공방을 거쳐 2021년 1억5천만 파운드(약 2천500억원)를 일시불로 받기로 하고 깨끗이 헤어졌다.
바칼추크 부부의 이혼 소송도 천문학적인 재산 분할이 걸려 있는 만큼, 올리가르히 못지 않게 길고 치열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티아나 바칼추크의 자산은 81억 달러(블룸버그 통신 추산)에서 130억 달러(약 17조원, 2021년 경제 전문지 포브스 추산)에 이르는데, 남편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는 현지 매체 rbc와의 인터뷰에서 와일드베리스가 분할(혹은 매각)될 경우, 지분을 아내와 50대 50으로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내와 결혼시 계약(혼전 재산 분할에 관한 계약/편집자)을 맺지 않았고, 결혼 이후 와일드베리스를 함께 발전시켰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의 법인 등록부에 따르면 블라디슬라프는 와일드베리스의 지분을 겨우 1% 갖고 있고, 대부분이 타티아나의 몫이다. 그러나 현지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사업 분할의 경우, 배우자의 지위는 서로의 지분에 대해 동일한 권한을 갖고 있다"고 밝혀 소송전으로 갈 경우, 남편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블라디슬라프는 아내와 소송까지 가지 말고 재산 분할에 합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선수를 쳤다.
◇ 이혼소송과 인터넷 쇼핑몰 사업의 연관 관계는
rbc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바칼추크 부부의 가정 문제가 불거진 계기가 된 외일드베리스와 야외 광고업체 '루스 아웃도어'(이하 루스)와의 합병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타티아나는 이혼을 결심했다고 콤스몰스카야 프라우다(KPru)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그런 (이혼) 결정은 한 순간에, 혹은 한 번의 사건 때문에 되는 게 아니다"며 "작년 11월에 이미 부부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발생했다"고 털어놨다. 또 "루스와 합병을 생각하기 오래 전부터, 결혼 생활은 파탄에 이르렀으며, 합병에 대한 논란은 그 과정의 마지막 지푸라기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혼 결심이 오래 전에 섰고, 이혼할 경우, 회사 자산을 절반으로 나눠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타티아나가 지난 6월 루스와 합병 계약을 맺고, 남편이 람잔 카디로프 체첸자치공화국 수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것, 모두 우연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크렘린이 와일드베리스-루스 합병 거래가 푸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고, 대통령 행정실 부실장인 경제전문가 막심 오레쉬킨이 그 과정을 감독하기로 했다는 사실 등으로 미뤄보면, 이번 일이 바칼추크 부부의 이혼이나 남편이 주장하는 '적대적 M&A'를 넘어서는 큰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는 관측도 부인하기 힘들다.
남편 블라디슬라프/사진출처:텔레그램
현재의 논란은 와일드베리스의 적대적 M&A에 대한 남편 블라디슬라프의 의혹 제기로 시작됐다.
코메르산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블라디슬라프는 아내가 지난 6월 중순 러시아 최대 야외광고업체인 루스와 합병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고 카디로프 체첸 수장을 찾아가 지원을 요청했다. 카디로프 수장은 7월 23일 텔레그램 영상을 통해 "(바칼추크) 가족과 가족의 사업(와일드베리스) 모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와일드베리스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공격(적대적 M&A)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배후로는 루스 운영자인 로베르트, 레반 미르조얀(Роберт и Леван Мирзоян) 형제를 지목했다.
그러나 타티아나는 이날 저녁 “변화와 발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합병을) 결정했다"며 거래는 합법적이라고 반박했다. 또 "남편이 왜, 무슨 목적으로 합병 계약을 호도하고, 누구를 위해 이해할 수 없는 공격 이야기(적대적 M&A)를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고 주장했다.
◇ 와일드베리스가 키우는 큰 꿈?
와일드베리스와 루스간의 구체적인 거래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두 회사가 공동으로 디지털 거래 플랫폼을 만들 계획이며, 러시아 브랜드와 금융 상품을 해외에 홍보하는 게 주요 목표라고 발표했을 뿐이다. 또 세계를 선도하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타티아나는 "남편은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를 이해한다"며 "안전한 사업 범위를 넘어서는 도전을 결정하는 게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남편과 달리 '미래를 위해, 세계를 향해 와일드베리스의 기존 비즈니스를 넘어서는 도전에 나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그녀는 2021년 2월 스탠다드-크레딧 뱅크(Standard-Credit Bank)의 지분을 100% 인수한 바 있다.
그녀는 루스와 합병을 통해 미국의 아마존이나 알파벳(구글), 중국의 알리바바,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서방의 제재조치로 러시아 금융권이 축출된 국제달러화결제시스템(SWIFT)과 디지털 뱅킹 네트워크를 통하지 않고서도 전세계적으로 루블화 결제가 가능한 '디지털 뱅킹 시스템'을 만든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정도 프로젝트이면 크렘린(오레쉬킨 행정실 부실장)이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와일드베리스/사진출처:ok 이즈베스티야 계정
그러나 남편은 rbc와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루스 경영진에게 조종당하고 있으며, 와일드베리스도 매출 성장 속도가 크게 느려지는 등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합병 조건이 투명하지 않으며, 자신들은 7월 초 설립된 새 공동 법인의 지분 20%만 받기로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와일드베리스가 새 법인의 지분 65%를 소유하고, 자회사 20여개를 새 법인으로 완전히 넘긴 상태다.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현지 GRM 법무법인의 파트너 변호사인 세르게이 노비코프는 "와일드베리스의 수익이 (루스의) 11배, 자산이 6.8배, 순이익이 3.9배 더 크다"며 "회사의 주요 자산인 지역 비즈니스 센터가 합병 파트너와 똑같이 나눠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합병 거리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유력경제지 코메르산트는 전문가들을 인용, "루스는 와일드베리스(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강력한 행정 자원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며 "로마인들이 선호한 do ut des(Give and Take, 상호주의 원칙이라는 뜻)에 따른 정상적인 비스니스 거래"라고 전했다. 루스의 지원 세력에는 술레이만 케리모프 상원의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루스아웃도어'의 야외 광고판/사진출처:BUSINESS Online
◇ 출산휴가 여성이 백만장자가 되는 법 - 성공스토리
타티아나는 이혼 소송 이야기를 꺼내면서 "7명의 자녀와 모두 잘 지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학 졸업후 영어 교사로 일하던 2004년, 첫 딸의 출산 휴가를 받고 쉬던 중, 아파트에서 독일 의류와 신발을 온라인으로 주문받아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한 것을 의식한 발언이다. 또 현지 경제지 '포브스 우먼'과의 인터뷰에서 2012~13년을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꼽으면서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몇주일씩 자녀 얼굴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지 경제지 포브스의 바칼추크 인터뷰/캡처
모이 루블화 블로그/캡처
그녀는 2021년 10월 쌍둥이를 출산했다. 자녀는 모두 7명이 됐다.
2005년 IT전문가인 남편과 함께 와일드베리스를 창업한 타티아나에 대해 현지 재테크 블로그 '모이루블'(나의 루블화)은 "출산 휴가를 받은 여성이 어떻게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고 썼다. 와일드베리스는 이후 성장을 거듭하면서 2010년 러시아 온라인 쇼핑몰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2017년에는 러시아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자리매김했다.
모스크바 수도권(모스크바주) 출신의 타티아나 바칼추크는 결혼하기 전에는 '김씨'였다. 처음 그녀의 기사를 쓸 때, 얼굴 사진을 보고 몽골계(특히 부리야트공화국 출신) 소수 민족을 떠올렸다. 첫 기사를 본 고려인이 SNS를 통해 그녀가 김씨 성을 쓴 고려인이라고 알려줬다.
러시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여성 기업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은 카메라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현지 언론은 그녀를 '은둔형 기업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