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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믿음
어떤 아이가 찾아와서는 뜬금없이 “신부님 저는 믿음이 약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믿음을 강하게 할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뽕나무를 뿌리째 뽑아 바다에 심을 수 있다고 하셔서 나무 앞에서 열심히 기도했는데 나무가 꼼짝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굳센 믿음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기도도 많이 하고 성지순례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기는 것과 유사합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요? 그저 생기는 것이 아니지요. 우선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오랜 시간 변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즉 상대방이 본인에게 잘해줘야 신뢰와 사랑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주시는가와 연관성이 깊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하느님께 받은 게 없다고 생각되면 믿음은커녕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무신론자들은 신으로부터 받은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 자기인생을 돌아보면서 너무나 많은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감사기도를 바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천성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라 일이 잘 풀리고 얻은 게 많으면 자기가 열심히 해서 얻었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결실을 얻지 못하면 하느님이 자기 기도를 안 들어주셨다고 원망을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고쳐준 나환자들이 감사인사를 하지 않자 “고쳐준 사람은 열 명인데…”하며 섭섭해 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도 사람의 마음이나 진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믿음은 감사한 마음에서 생깁니다. 매사에 감사할 일을 찾는 것이 믿음을 키우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재 유머입니다. 어느 열심한 신부가 매일 철야기도를 하며 자기 믿음에 자신이 생겼습니다. 강론 때 자신 있게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러자 나이든 신자분이 “신부님~ 그럼 산은 말고 저 마당의 바위라도 옮겨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신부는 바위가 옮겨지기를 밤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가보니 바위가 그대로였습니다.
당황한 신부가 성당으로 들어가 주님께 항의했습니다. “주님! 왜 제 믿음에 대한 답을 안 주시나요?” 그러자 주님이 대답하셨습니다. “바위는 옮겨서 뭐할라꼬? 내가 서커스 광대냐 이놈아!” 하시더랍니다.
[기도 맛들이기] 기도에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피정 센터 사목이 참으로 역동적이고 보람됩니다. 센터에는 다양한 갈증과 고민을 지닌 교우들이 찾아옵니다. 일대백이 아니라 일대일의 만남이 무척 은혜롭습니다. 때로는 화목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고선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분들의 흥미진진한 인생 여정을 경청합니다. 한 인생 인생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한적한 바닷가, 작은 언덕 위에 있는 피정 센터의 밤이 그렇게 깊어갑니다. 어느 날 한 교우의 솔직한 고백이 마치 제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세례 받은 후 50년 동안 한번도 주일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미사 참례를 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미사 참례의 의미를 못 찾겠습니다. 별 감흥도 재미도, 은총도 못 느낍니다. 기도 생활도 그저 습관처럼 의무처럼 해왔습니다. 부끄럽게도 기도서 없이는 아무런 기도도 하지 못합니다.” 저는 우선 그분의 성실함에 큰 칭찬을 해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작은 조언을 덧붙였습니다.
“농부들이 과일 농사를 어떻게 짓습니까? 묘목만 딸랑 꽂아놓는다고 해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묘목 심고 난 직후 듬뿍듬뿍 물을 줘야 합니다. 거름도 넉넉히 뿌려주어야죠. 강풍에 쓰러지지 않도록 지지대도 세워 줘야 합니다. 그래야 묘목이 무럭무럭 성장하고, 몇 년 뒤에 풍성한 과일을 수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기도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에도 성장이 필요합니다. 성장을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충만하고 행복한 기도 생활을 꿈꾸십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기도의 성장을 위한 투자를 해야 마땅합니다. 기도에는 왕도(王道), 즉 순탄한 지름길이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행복한 만남인 기도는 아무런 준비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세례받은 햇수는 점점 늘어가지만, 기도 생활이 정체 혹은 퇴보하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지금이 바로 구체적인 노력을 시작할 때입니다. 기도 생활을 도와주는 영성 서적을 한 권 구매해서 정독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주제로 한 피정에도 참석하셔서 기도 전문가들의 조언도 잘 경청해보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보면 좋겠습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세운 기도 계획을 소개해드립니다.
1. 매일 미사를 하늘의 태양처럼 여기고 지극 정성으로 봉헌한다.
2. 교회의 보물인 성무일도를 빼먹지 않고 충실히 바친다.
3. 성모님의 사랑받는 사제로서 매일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 총 20단의 묵주기도를 바친다.
4. 매일 30분간 성독(성독)을 충실히 하고, 그 결실을 이웃들과 공유한다.
[현대 영성] 오늘날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길
나를 받아 주신 예수님의 그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같은 하느님을 믿는데 왜 사람들은 이리도 신앙심이 다른지요?”
제가 6살쯤 되던 해에 할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당시 시골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결혼하지 않은 삼촌이 살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고심 끝에 대구에서 살고 있던 저의 아버지에게 시골로 들어와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아버지는 7남매 중에 여섯 째셨고, 형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시골로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아버지께서는 할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여 모든 것을 버리고 시골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농사를 지으시며 묵묵히 그리고 성실히 살아가고 계십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아버지를 무엇보다 존경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 대부분은 인생에서 한 번쯤 이런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의 상황을 체험하였을 것입니다. 당시의 관습으로는 임신한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에서 천사의 말을 믿고 따른 요셉 성인처럼 그렇게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으로 승화시켜 그것을 받아들이고 고통을 감내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회피하거나 자신이 편한 것을 선택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의 상황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나약함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열정적이고 단순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믿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늘 같은 죄를 짓는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성탄이 다가오지만 하느님은 더 멀어진 것 같고 아무런 기쁨이 느껴지지 않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이나 갈등의 상황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 선택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받아들이기 힘든 자신의 부족함과 과거의 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첫째, 하느님께서 먼저 나를 받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더럽고 지저분하고 짐승들이 살아가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마구간처럼 옹졸하고 이기적인 우리 마음 안에서도 태어나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가르침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지금 당장에는 손해가 오고 불편하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그분의 계획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행복 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느님의 눈으로, 하느님의 마음으로 일상의 모든 사건과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과 사건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마음의 평화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힘들게 하는 사람과 사건이 하느님께서 우리를 성장시켜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주신 성탄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셋째, 이렇게 하느님의 눈을 갖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크신 마음과 계획을 배우게 됩니다. 나를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주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그분 안에 머물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질 때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 가운데 잠시나마 조용히 눈을 감고 주님의 현존을 느껴 보십시오.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우리와 늘 함께하시는 성령의 움직임에 자신을 내어 맡기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 보십시오.
2000년 전에 탄생하신 주님께서 예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오셨듯이 주님께서는 이제 우리의 마음 안에 태어나시고자 하십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문을 열고 요셉 성인처럼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성탄절이 진정으로 우러나는 기쁨과 감사가 되지 못함은 아마도 우리 마음이 주님과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한 듯한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며 고요한 침묵 가운에 나의 나약함을 봉헌하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할 때 우리 각자가 작은 예수님으로 탄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리신앙 깊어가는 믿음] (19) 시기별로 도움이 되는 성경의 내용이 달라요
“저는 중학생 딸을 둔 엄마입니다. 저희 아이가 어릴 때 전래 동화를 읽어줘도 호랑이나 괴물 같은 대상이 나오면 무서워했는데, 어린이 성경을 읽어 줄 때도 무섭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때 잘 안 읽어줘서 그런지 요즘에는 제가 성경을 읽고 있으면 ‘엄마는 그 재미없는 걸 어떻게 읽어?’라며 미간부터 찌푸려요. 제가 말씀 안에서 받았던 위로와 은총을 아이도 느낄 수 있게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거대한 보화이자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거대한 사랑의 역사가 담긴 거룩한 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랑의 역사를 통해 우리 각자에게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내가 이 땅에 왜 태어났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도록 이끌어주십니다. (「YOUCAT 성경」 참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억지로 권하면 그 참맛을 알기 어렵듯, 자녀에게 무작정 성경 읽기를 강요하거나 구절의 의미를 소화하도록 돕기 위해 이지적으로 접근하면 성경 말씀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은 느끼지 못하고 금세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성경을 친숙하게 느끼고 즐겨 읽도록 돕기 위해서는 발달 시기별로 도움이 되는 성경의 내용과 성경을 만나는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영유아기(~6세)에는 엄마, 아빠가 직접 성경을 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성경 본문 그대로 읽는 것보다 어린이 성경을 읽어주거나, 부모 자신의 말로 성경의 단어에 충실하게 풀어 읽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을 때 끼어들거나 딴짓을 할 때도 있습니다. 이때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를 주면 성경 읽기의 즐거움이 깨어집니다. 그럴 땐 이야기를 잠깐 멈추고 아이의 이야기를 잠시 들어주었다가 다시 이어가거나, 그냥 잠시 이야기를 멈추십시오. 그러면 아이들은 왜 이야기를 계속하지 않는지 곧 궁금해할 것입니다. 그럴 때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하고 말해주면 됩니다.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사랑이 담긴 이야기, 신앙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적합합니다. 특별히 4살에서 7살 아이들에게는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아들 이사악을 바치는 이야기처럼 아이들의 수준에서는 상황적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고 두려움을 남기는 내용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신 구약의 첫 부분인 창조 이야기, 요셉의 이야기, 다윗의 이야기,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사랑으로 만나시고, 고쳐주시고, 죄를 용서하고 변호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이 도움이 됩니다.
스스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아동기(약 6~11세)에 들어서면 직접 성경의 말씀을 읽도록 초대하고, 성경을 읽는 재미를 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을 직접 읽고 쓰게도 하고, 성경의 장면을 직접 그림으로 표현하게 하는 것,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나 성경을 읽고 난 느낌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아동기에 이르면 영유아기에는 이해하기 어렵고 두렵게 느껴졌던 내용도 충분한 설명이 있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를 제대로 해주어야 할 때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생애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마침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모든 과정을 가급적이면 중간에 멈추지 말고 쭉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청소년기(약 12~19세)에 들어서면 성경 말씀을 삶과 연결지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항상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상상적 청중’이라는 심리적 특성을 가집니다. 이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하며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What would Jesus do?)를 묵상하도록 이끌어주면 그들 스스로 자비하신 예수님을 상상적 청중으로 두고, 그분의 시선 안에서 올바른 삶의 방향을 찾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이를 촉진하기 위해서 성경을 자주 접했던 아이라면 주일 복음을 읽고 예수님의 마음, 그분과 만나고 있는 사람의 태도와 마음을 묵상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십시오. 그리고 성경을 자주 접하지 않았던 아이들에게는 그들이 갈등, 어려움, 가치 식별이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함께 묵상하면 좋을 말씀을 시기적절하게 건네주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지 식별할 수 있도록 초대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전하는 좋은 이야기들은 자녀의 내면에 식별의 기준으로 차곡차곡 쌓여, 훗날 올바른 식별을 하도록 이끌어줄 것입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스토리텔러(story teller), 이야기꾼이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부모들이 좋은 스토리텔러가 되도록 초대하시고 성경이라는 사랑의 이야기를 쥐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성경 속 이야기를 전하는 부모의 목소리와 숨결 속에서 함께 일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자녀들에게 사랑의 이야기를 속삭여주십시오. 아이들은 그 시간 안에서 성경 안에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 미워도 다시 한 번
살아가면서 하기 힘든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수도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사람을 미워하는 일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습니다. 사랑은 잘 안 되더라도 노력하는 것만으로 심리적 보상을 받는데 비해 미움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뿜어내는 분노는 자제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내면에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잠재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파괴력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부터 초토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누구를 가장 미워하는가?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을 가장 미워합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에 동조해주고 뜻을 거스르지 않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옳은 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자신과 의견충돌을 일으키는 사람은 싫어합니다. 상대방을 싫어하게 되면 상대를 기분 좋게 해줄리 만무하고 상대방 역시 자신이 미움받는다는 것을 인지하면 더 미운 짓만 골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미움은 미움의 악순환을 만들기 때문에 사랑보다 더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미움이 가득하면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미우면 당사자뿐만 아니라 관련된 모든 것이 다 미워집니다. 남편이 미우면 벗어놓은 옷까지 미워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미움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호주 원주민들이 사용했던 부메랑처럼 한 번 던져놓으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미움은 너무 오래 간직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수 남진씨 노래 중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라고 했습니다. 미움의 부메랑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예방하란 말들입니다. 미움은 없애기 어려운 감정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품고 살면 나를 병들게 하는 것이 미움입니다. 그래서 미움은 매일매일 해소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재 유머 하나 하겠습니다. ‘장희빈’하면 희대의 악녀로 유명합니다. 왕은 신하들의 읍소로 결국 장희빈을 죽이기로 합니다. 그래서 장희빈에게 사약을 내렸습니다.
사약을 가져간 병사가 장희빈에게 마실 것을 독촉했습니다. 그러나 장희빈은 왕이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이럴 리가 없다 하며 거부했습니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장희빈이 말하길 “좋다. 마시겠다”며 정말 임금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병사는 “임금님의 뜻은 그 사약 그릇 밑에 써 있다’고 했습니다. 장희빈이 사약 그릇 밑을 보니 거기에는 왕의 친필이 적혀 있었습니다. “원 샷~”
[기도 맛들이기] 충만한 기도 생활의 첫걸음, 우리 삶의 재구성
최근 제게 ‘뜻밖의 선물’ 같은 기분 좋은 일이 한 가지 생겼습니다. 저희 피정 센터 근처에서 기가 막힌 낚시 명당 포인트를 찾은 것입니다. 낚싯대를 드리우기만 하면 씨알 좋은 우럭들이 폭풍 입질을 해댑니다. 반건조시켜 센터에 오시는 피정객들에게 구워드리면 인기 만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 때나 잡히는 게 아니라는 것. 낚시는 타이밍이라고, 하루에 딱 한 번 바닷물 만조 시간 이후, 딱 한 시간 동안만 잡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낚시 명당 포인트를 발견하고 난 뒤로 제게 심각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제 하루 일상이 물때표에 맞춰 돌아가는 것입니다. 공동체 기도 시간 중에도 폭풍 입질이 오는 시간이 다가오면 마음은 벌써 그리로 달려가 있습니다. 새벽 전례를 위해 빨리 취침을 해야 마땅한데, 밤늦은 시간에도 발길이 자동으로 그리로 향합니다. 머릿속은 온통 팔뚝만한 우럭으로부터 전해져오는 후드득하는 손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하고 정신 차려보니, 그놈의 우럭 때문에 제 기도 생활이 완전히 자기중심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물때 시간표가 아니라 공동체 시간표를 우선시한다. 가더라도 기도는 하고 간다.
부끄럽게도 오랜 세월 동안 삶의 우선순위 설정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보다 중요하고, 보다 본질적인 것, 보다 기본적이며, 보다 우선적인 것들이 한참 뒤로 물러나 있고, 부차적인 대상들, 비본질적인 것들, 정말이지 엉뚱한 것들이 제 삶의 중심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번 흐트러진 기도 생활을 바로잡으려니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눈만 뜨면 떠오르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내 삶의 최우선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충만하고 행복한 기도 생활을 꿈꾼다면 먼저 삶의 우선순위들이 제대로 설정되어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볼 일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무엇을 좀 더 자제하고 뒤쪽으로 변경해야 하는지? 우리 삶의 재구성, 삶의 재창조야말로 올바른 기도 생활의 첫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도에 익숙하고,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와 넘치는 은총을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한 사람들에게 기도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일, 가장 우선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기도는 어쩔 수 없는 순간에 선택해야 하는 마지막 수단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이며 첫 번째 의지처입니다”(줄리 켈레멘, ‘기도 이렇게 해요!’, 생활성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