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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
믿음과 생활의 현장 / 한서노회
하나님과 사람들사이에 큰 담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이곳으로 올수도 없고 여기서도 그곳으로 갈수없는 그런 처지였습니다.하나님 따로 사람들 따로 그렇게 생활할수 밖에 없는 별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하나님과 우리 들 사이의 그 담을 허시고 둘이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엡1: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하심이라"
하늘에 있는 것 하나님의 세계와 땅에 있는 것 인간의 세계가 하나를 이울수 없는 벽이 있었습니다. 이 원수된것을 예수께서 허시고 이 둘을 하나로 통일하였습니다. 죽음과 형벌의 세계가 하늘의 생명과 구원의 세계로 흡수 통일한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의 땅의 세계가 소망과 희망의 세계로 흡수 통일한 것입니다. 이 복음이 구약의 여러 사건과 사실속에 밝혀 놓았습니다. 그렇게 바라고 기다리던 메시야 곧 우리의 구주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그것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앙과 생활의 통일되지 못하고 신앙과 생활일치를 요구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문을 통하여 이날 아침에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선포하십니다. 왜이런 선포를 하십니까?신앙은 신앙이고 생활은 생활이다고 하는 이중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믿음의 현장과 생활의 현장을 똑바로 보게 하시면서 생활의 뒷바침이 없는 믿음은 가식과 외식으로 빠질 위험이 있으며 생활이 없는 믿음은 사상이며 논리며 교리입니다.교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지만 교리속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 틀 속에 갖혀있지 아니합니다.왜 이런 생각합니까? 하나님과 인간은 너무나 멀고 떨어져서 가까이 할수없는 위치에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의 집에 다녀로 와서 한두신간쯤 머물다가 돌아가는 것으로 나의 임무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다면 지난주에도 하나님의 집의 손님으로 와서 대접받고 다음에 또 손님으로 오는 영원한 손님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비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많다고 할찌라도 그는 우리를 받아 주시고 우리를 아니 나를 그분의 둘도없는 식구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엡2:19절에는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봐聆 날 손님이 되어서 예배당에 나와서 잠간 하나님을 만나뵙고 다음 주일 다시 뵙겠습니다.이런 이중적이여서는 믿음은 믿음대로 남아 있고 생활은 변화가 되지 않고 첨믿을때보다 예수의 사랑도 뜨겁지 아니하고 옆에 있늄윱求.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런 믿음의 능력을 인정하지만 생활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미가 있는 영영한 기념적인 믿음 곧 믿음이 생활에 끝없는 의미가 있는 생활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아침에 우리의 믿음들을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삼고 일장에는 모세와 같이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수아를 불러세우는 장면이 1장의 내용입니다. 2장에는 싯딤에서 여리고에 정탐꾼을 보내고 정탐꾼이 라합이라는 기생에게 약속을 하고 돌아옵니다.3장에는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그들앞에 요단이라는 강을 하나님의 세밀한 지도를 받으며 건너는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4장에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무사히 건넌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일을 시켰는가 하면 이스라엘 각지파에서 한사람씩을 내세워 저들에게 명령하기를 요단강 가운데 아직 제사장이 물에 발을 딛고 서있 그 곳에서 돌을 취 하여다가 그 돌을 그들이 잠들 유숙지에 두라는 명령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것을 명령하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행했던 것입니다嚮 여러분께 주는 하나님의 교훈은 무엇입니까? 한절씩 한절씩 찾아보고 은혜를 나누고저합니다.
1절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아에게 일러가라사대" 1.일을 마친후에 말씀하시는 하나님 1) 하± 우리의 판단으로 생활할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의 사업은 끝이 났으나 이제 부터 하나님의 교훈은 남아있는 것입니다.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한사람도낙오없이 그들의 목적을 성취 했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문제가 남아 있을때에 하나님께 남아서 메달리다가 그일이 무사히 마치면 우리의 믿음의 캠프도 철수하고 기도도 철수하는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무사히 요단을 하나님의 도움으로 곧 여호와의 궤의 인도를 받아 잘 건넜습니다. 그 건너기를 마쳤을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실패하고 어려울때에 문제가 있을때에는 우리가 쉽게 주님의 발아래서 겸손히 머리를 숙여 그분의 멉이루워 졌을때에 주의
음성이 분명한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도하 작전이 성공한후에 여호와의 음성에 귀 기울였다는 것이 여호수아의 위대한점입니다.
여러분 일이 여러분의 뜻대로 되었을때에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만족감에 젖어있는 동안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귀담아 듣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5월 첫주에는 우리는 야외예배를 드렸습니다.둘째주에는 어버이주일을 잘지냈습니다. 온 백성이 요단을 마캅
라사대 우리가 일을 끝낸다음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듣는 습관이 필요한줄압니다. 이시형 장로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목사님 이제는 행사는 무엇이든지 빠뜨리지 말고해야겠습니다.어린이 주일에는 어린이에대수님께서 빈들에서 여자와 아이를 빼고
5,000명의 사람들에게 떡을떼어주는 힘든 일을 제자들이 수종들어 감당하였습니다.12명의 제자들이 거의 만명이나 되는 사람의 식사를 챙긴다는 것을 큰일입니다.거일입니다. 이일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4:22,23절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뭡測纛 따로 혼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런 가운데 제자들은 풍랑을 당하였고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유령이라고 하였고 베드로는 믿음 좋게 물위로 걸어가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서 물에 빠졌습 돌하나씩을 메어다가 너희 오늘밤
유숙하는 곳에 갖다 놓아라 고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때마다 조금씩 일러 주신다는 것입니다. 갈대아 우르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네 친적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한 땅으로 가라 그 지시한 땅이 미리 밝혀 준것이 아닙니다. 히브리 기자는 아브라함의 여행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히 11: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絿쳅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한 만큼 명령
하십니다. 그들이 순종하여 요단을 믿음으로 건넜기 때문에 오늘 여호수아에게 요단에 있는 돌을 취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오래된 복음송개뼈 또 순종하고 살길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내린 첫번째 명령이 무엇입니까?2절말씀입니다.
"백성에 매지파에 한사람씩 열 두사람을 택하고"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일을 감당할때 毬ご纛 일을 할때에 물질도 아니요 환경도 아니요 사람을 택하여 세우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일으켜 세우실때에도 사람을 택하여 세우는 것이였습니다. 노아를 택하여 홍수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은念
내셨고 여호수아를 택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신약시대에도 교회를세우기위하여 열두제자를 세우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서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큰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각지파에 한사람씩 택하였습니다. 택했다는 교훈이 어떤의미가 있습니까?
택했다는 말은 오늘 그 시대를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한 사람입니다.4절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택했다는 것을 이렇게 성경적 해석을 하고있습니다"여 사람씩 예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서" 택한 사람이라는 말 대신에 예비한 그 열두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은 과거의 위대한 사람도 아닙니다 오늘 살아 있는 사람의 몫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은벵이 일으켜세우고 많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여보았을때 이 앉은뱅이를 고치것은 우리의 경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고 증거하도록 그 시대에 베드로와 요한을 예비하셨습니다.오늘 21세기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이시대에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은 누구를 준비하셨습니까? 모세도 아닙니다. 바울도 아닙니다. 무디도 아닙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을 이 때를 위하여 준비하신 것입니다.유다의 아름다운 딸 에스더를 잘 양육하여 와스디를 대신하여 아하스에로霽5弱냄 유다백성을 몰살하려고 음모를 했습니다.이 급박
한 위기를 당하여 모르드개는 금식기도를 하고 여러가지 구원의 통로를 찾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닥이라는 사람을 시켜서 에스더의 민족의 딱한 사정纜 나아가면 죽는 법이 있지 않습니까? 지
금 왕이 나를 부르지 않은지가 한달이나 되었습니다.삼촌의 부탁대로 할수없다는 전갈이였습니다. 이 전갈을 듣고 모르드개가 답장을 써서 에스더에게 보냅니다.
에스더5:13-17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객育括 다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슈 행하니라"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남편과 부인을 구원 하고 가족을 구원하고 이웃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늘 나에게 생명을 주신것은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렇게 택함을 입은 사람된?痼 궤 앞으로 들어가서 ..."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우리의 유숙하는 곳 곧 생활속에 나타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명령이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에게 내린고 만 명령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내려진 명럽求.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 집에는 예수 믿지아니한 다른 친구와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하고 물을 수 있는 표징들이 있어야 합니다.
6절 -7절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퓸助汐鱇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 스라엘 자손에게 영영한 기념이 되리라"
세상의 풍류가 아무리 거세게 휘몰아쳐도 여호와의 약속의 말씀앞에는 끊자녀들에 남겨두셔야 합니다.
어느 교인이 중3학년짜리 자녀를 두었는데 학교에서 진학문제를 두고 불러서 갔더라는 것입니다. "엄마 학교에서 뭐라고 하던데" 하고딸이 묻더라는 것입니다.그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학교岵 20등인데
고등하교 가면 40등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대로 중학교때에 20등 하는 네가 고등하교에 가서는 10등 할것이라고 하나님의 약속을 나 너희반에서 10등하는 학생의 부모가 될것을 믿는다고 상담하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영영히 우리 자손들에게 아니 이스라엘 자손들이 영영한 기념이 되는 이 돌이 무엇입니까?
그 돌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지은 인격- 성전과 같은 인격이 우리의 생활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엡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둣의 거하실 처소가 되
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러분의 유숙지에 예수그리스도라고 하는 보배로운 돌을 지니고 생활하시며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처하실 집을 짓고 계십니까? 예배당이 우리의 바람입니다.그러나 그 예배당 보다 더시급하고급한 건물이 있습니다. 요단에 가져온 돌-기적의 돌, 능력의 돌, 만사를 변화시키는 돌을 모퉁이 돌로한 하나님의 성전이 여러분의 생활 속에 지어져가야 합니다. 아직 준공을 보지 못했더리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삶의 기준이 바로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어야 합니다.인격의 뼈대가 예수 여야합니다.
우리는 행사를 끝내고 다음일을 하기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위하여 말씀하십니다. 괭님의 음성을 들
으시기를 원합니다.너를 내가 택하였다 이일을 위하여 너를 예비 하였다 너를 산자가운데 선택한 것은 살아있는자에게 주의 복음을 이번에 전달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예비 하셨습니다.그리고 부탁하셨습니다.언약의 말씀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와 뜻이 네 생활 속에 영영한 기념으로 남아 있기 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예수의 흔적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와 각방쓰기를 원치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하십이니라"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로 통일 되게하시려고 두방사이 막혀있는 벽을 허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따로 텐트를 치고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모습을 이미 아시고 산 돌 되시산하십시요 어젠 어느때
나 주님이 보셔도 부끄러움이 없고 성도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개방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흩지고 모이는 교회를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요단의 돌을 메고 유숙지로옮겨 놓는 것은 흩어지는 교회의 예표요 또 여호수아가 제사장의 발이 선 그곳에 돌 열둘을 모아세우는 것은 모이는 교회의 예표입니다 원하기는 모이는 교회의 모습과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 흩어지는 교회의 모습 속에서 항상 예수그리스도의 산돌이 발견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