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없는 그림책으로 이야기하는 환경그림책
이기훈작가 그림책읽기
현정란
이기훈 작가는 한번 보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여러 번 봐야 알 수 있는 특색있는 그림을 그린다. 몇 번을 펼쳐서 읽고 또 읽어야 그의 그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이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몇 개월 후, 다시 읽으면 그림의 의미를,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데이비드 워그너의 글자 없는 그림책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데이비드 워그너 그림책의 매력이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처럼 이기훈작가 그림책도 마찬가지다. 그림을 보고 또 보고 나서야 그림이 말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인 그림책이다. 이기훈이라는 작가를 알고 그의 철학적인 사고를 알지 않는 한 그의 그림책은 어렵게 느낄질 수밖에 없다.
이기훈 그림책 4권 《빅 피쉬》, 《알》, 《양철곰》, 《09:47》은 사회문제, 환경문제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그림책 《알》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엄마가 여자아이를 억지로 잡아끄는 그림이 그림책 첫 장에 나온다. 여자아이 앞에는 병아리를 팔고 있는 아줌마가 있다. 그렇게 병아리와 관련된 그 어떤 것, 달걀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자아이는 냉장고에서 달걀을 꺼내 이불 속에 감춘다. 왜? 부화시키려고? 그렇다. 달걀은 이불 속에서 부화한다. 호기심 많은 아이가 달걀을 품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오른다. 달걀이 부화 되어 깨어난 갖가지 동물들. 아이는 엄마 몰래 부화 된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준다. 그렇게 친구가 되어 동물들과 재미있게 논다. 동물들은 쑥쑥 잘 자라고 방이 좁아진 동물들은 아이와 함께 집을 나간다.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 마을. 동물들과 아이는 동네를 돌아다니고 강가에 메어놓은 오리배를 보게되고 오리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다. 더 넓은 세상으로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아이와 여러 동물이 탄 배는 쏟아지는 비를 맞고, 폭풍우 치는 바다를 떠돌다가 고래를 만난다. 그리고 고래 배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다시 고래뱃속에서 탈출한다. 아이가 없는 방에서 시름에 젖은 엄마 모습이 보이고 오리새가 날아와 창틀에 알을 놔두고 간다. 엄마가 알을 집으려는 모습에서 그림책은 끝난다. 여자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동물들은? 《알》이 이야기하는 것은 뭘까? 알 속에 아이와 동물들이 있을까? 그 이후의 상상은 그림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빅 피쉬》, 《양철곰》, 《09:47》는 환경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서로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는 그림책이다. 《빅 피쉬》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한다. 극심한 가뭄으로 땅은 메말라가고 인간은 물 뿜는 물고기, 금기시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용사들을 보낸다. 용사들은 배를 만드는 노인을 만나고 해가 쨍쨍한데 배를 만든다고 놀린다. 용사들이 물고기를 잡고 오는 길에 물을 차지하기 위한 다른 동물들과 전투를 벌인다. 결국 인간이 승리하고 동물들은 패배하고 돌아간다. 이 장면에서 서로 나눌 줄 모르는 욕심 많은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두 잠든 밤 빅피쉬는 자신의 몸에 꽁꽁 메인 밧줄을 끊고 물을 뿜어낸다. 그때 하늘에서도 거센 비가 내린다. 결국 홍수가 나고 인간들은 모두 죽는다. 노인이 만든 방주만이 두둥실 바다 위에 뜬다. 그 방주에는 갖가지 동물들이 타고 있다. 《빅 피쉬》가 의미하는 것은 뭘까? 노인이 만든 방주를 타고 살아난 동물들은 또 다른 땅에 둥지를 틀고 살아갈 것이다. 또 다른 세상을 만들면서…
《빅 피쉬》는 인간의 욕심, 폭력에 대해 말한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결국 자신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양철곰》은 주제가 뚜렷한 책 중 하나다. 환경을 파괴하고 개발하는 인간들의 욕심은 무한하다는 것을. 하지만 또다시 자연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을. 산 하나만 남겨 놓고 모두 개발한 사람들은 양철곰을 부수고 그 산마저 개발한다.
그림책 첫 페이지를 열면 양철 도시 속에 푸른 산이 한 개 있고, 그 앞에 커다란 양철곰이 서 있는 모습, 새와 다람쥐가 양철곰의 몸에 도토리를 갖다 놓는 그림을 볼 수 있다. 다음 페이지는 파괴의 모습이다. 커다란 굴착기가 산을 부수고 양철곰을 부순다. 하나 남은 산마저 없애는 사람들, 새와 동물들은 모두 떠난다. 양철곰도 쫓겨난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야기 우주정거장에는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 허탈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부익부 빈익빈의 모습이다. 그들의 얼굴은 양철 건물과 같다. 그 속에 있는 아이 표정도 똑같다. 양철로 만들어진 도시를 바라보는 아이의 눈은 우울하다. 강가에 있는 양철곰은 자신의 몸에 매일 물을 쏟아붓는다. 왜일까? 그런 양철곰을 바라보는 아이. 아이는 양철곰에게 황금별 신비의 열매라는 그림책을 보여주고 우주 공항을 가리키고 딱 한 개 남은 열차를 가리킨다. 지금 우주 열차를 타고 도시를 떠나자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양철곰은 떠날 생각이 없다. 아이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양철곰을 때려 부순다. 결국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망치를 들고 양철곰의 몸을 뜯어낸다. 그 속에서 도토리가 떨어져 나간다. 양철곰을 부여잡고 우는 아이. 양철곰 또한 슬프다. 그리고 계속 쏟아지는 비. 양철곰의 몸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새와 다람쥐가 숨겨놓은 도토리에서 싹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빗속에서 흘러간 도토리는 곳곳에 싹을 튀운다. 양철곰의 몸에도, 양철 도시도 모두 숲으로 변한다. 그리고 찾아오는 동물들. 아이가, 양철곰이 숲을 만든 것이다. 초록의 도시를.
《09:47》은 보고 또 보고 또 본 그림책이다. 몇 번을 봐도 의미를 알 수 없어 계속 본 다음에야 의미를 찾은 그림책이라고나 할까. 시간으로 이야기하는 그림책, 시간이 알려주는 그림책이다. 매력적인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아이와 토끼. 여자아이는 토끼를 품에 안은 채 가족의 손을 잡고 배에 오른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를 먹는 갈매기를 바라보는 아이, 바다를 바라보던 아이는 바닷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아빠에게 이야기하지만 없다.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화장실에 가고 다시 나온 아이 몸은 물에 흠뻑 젖어있다. 그 시간이 09:47분.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갈매기에게 토끼 인형을 빼앗기고 토끼 인형은 바닷물 속에 빠진다.
두 섬에서 휴가를 즐기는 아이의 가족. 바닷가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던 토끼 인형을 발견하고 그 인형을 잡으러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바닷속 여행의 시작이다. 바닷속에서 고래를 보고 바다 쓰레기 속에 파묻힌 토끼 인형을 발견한다. 하지만 다시 갈매기에게 빼앗기고 토끼 인형의 다리를 붙잡고 따라간다. 다시 쓰레기 더미 속에 떨어지고 쓰레기에 뒤엉킨 고래를 보고 바닷속 깊숙이 파묻힌 쓰레기와 도시. 오래된 쓰레기와 고래. 아이는 쓰레기로 뒤엉킨 바닷속을 보고 다시 화장실로 돌아온다. 그 시간이 09:47이다. 이 그림책은 토끼 인형과 아이의 눈으로 바닷속 쓰레기를 고발한다. 누가 바닷속에 쓰레기를 버린 건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해양쓰레기, 바다 쓰레기 문제를 짚은 그림책 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쓰레기를 버리면 안 된다. 어떻게? 그건 우리 인간이 문제를 해결해야할 것이다.
이기훈 작가 4권의 그림책은 강렬하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 문제 해결은 책을 읽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다. 독자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깊이 반성하고 고민해볼 문제이다. (202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