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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다시 일어섭니다. 생로병사의 비밀은 25년간 그 곁에 있었습니다. 천 회를 맞은 지금, 우리는 삶의 마지막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누구나 맞이하지만 배워 본 적은 없는 죽음.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 해 160만 명이 세상을 떠나는 일본. 무엇을 남기고 어떻게 떠날지 미리 그려보는 사람도 늘고 있습니다. 도쿄 한복판에서는 죽음을 주제로 한 축제도 열립니다. 매년 4월 열리는 '데스페스'. 누구나 함께 보고 듣고 체험하며 죽음을 일상의 대화로 끌어들입니다.
가장 붐비는 곳은 VR 체험 공간입니다. 고베에서 찾아온 70대 참가자는 의료진이 개발한 가상 현실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VR 기기를 쓰는 순간 죽음을 앞둔 환자가 됩니다. 병상에 누운 내 시선으로 가족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 내 장례식까지 지켜봅니다. 체험자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계기가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데스페스' 강연에서는 다음과 같이 강조합니다. 모르는 건 두렵습니다. 죽음도 그렇죠. 제대로 알아갈수록 그 두려움도 조금씩 줄어듭니다. 죽음을 내 삶의 이야기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사람들. 이런 변화는 일본만의 일이 아닙니다.
영국 동부에 위치한 노리치. 오늘 하루 특별한 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달콤한 케이크와 따뜻한 차, 얼핏 평범한 카페 같지만 이름은 '데스카페', 즉 죽음 카페입니다. 왜 이름에 죽음을 붙였을까요?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직접 들으면 놀라곤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떠났다'거나 '돌아가셨다' 같은 돌려 말하기 표현을 많이 쓰죠. 하지만 이곳은 죽음을 숨기지 않고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누구나 어디서든 열 수 있는 죽음 대화 모임입니다.
이미 죽음 준비를 다 마쳤다는 휴즈 부부. "소생 거부 진술서나 서류 절차는 다 마쳤어요. 주변에서 수습할 사람에게 미리 원하는 바를 말해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나이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나눕니다." 떠나보낸 이와의 추억부터 의료 정보까지, 죽음을 이해하고 스스로 준비하는 법을 알아갑니다. "언제 죽을지 날짜만 알면 준비를 다 끝낼 텐데요. 장례식이나 원하는 바를 주변에 명확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5월 영국 전역에서는 데스카페를 비롯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행사가 수백 개가 열립니다. 바로 '죽음 인식 주간'입니다. 지역 사회와 의료계가 함께 만드는 전국적인 움직임입니다. 지역적으로 죽음에 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나 거쳐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므로, 이에 대해 미리 대화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삶의 마지막을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회. 영국은 그렇게 죽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가 함께하는 재택의료팀의 회의가 한창입니다. "체스트 PCD를 가지고 퇴원하시는 분이라 저희 쪽으로 의뢰해 주셨고, 집에서 잘 관리하고 계십니다. 최대한 집에 계시다가 호스피스를 고려하시는 분입니다. 기대여명 6개월을 고지받았고 이를 잘 수용하고 계십니다. 자녀분들은 효도할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치료만큼 중요한 건 환자가 원하는 삶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 삶이 집에서도 이어지도록 의료와 돌봄을 맞춰갑니다. 필요하면 호스피스나 지역 돌봄도 연결합니다. 원래 집으로 퇴원한 뒤에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며 임종하기를 원하셔서 지원하고 있으며, 임종 때까지 자주 찾아뵐 예정입니다. 이 팀의 주요 업무는 병원문을 나서면서 시작됩니다. 서울 곳곳으로 가며 하루 네다섯 명의 환자를 찾아갑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60대 루게릭병 환자의 집입니다. 의료진은 보호자가 매일 기록한 수치로 환자의 상태를 살핍니다. "산소포화도랑 이산화탄소 수치 다 괜찮네요. 컨디션 좋아 보이십니다." 간호사의 말에 환자도 감사하다고 대답합니다. 재택의료를 받은 지 벌써 5년째. 익숙한 집에서 지내며 환자도 가족도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다음으로 찾은 환자는 93세 체금랑 씨. 사고로 크게 다친 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치료는 끝났지만 퇴원 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딸의 돌봄에 재택의료가 더해져 4년째 집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에 와서 엄마가 많이 좋아지셨어요. 자식들이랑 거의 매일 영상 통화를 해요. 편안하게 엄마가 고통 없이 주무시듯 돌아가시게 돕는 게 제 마지막 임무인 것 같아요."
마지막까지 편안한 삶, 의료는 어디까지 함께할 수 있을까요? 의학은 치료(Qure)와 돌봄(Care)이 함께 제공되어야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도 의료의 역할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료는 치료에만 너무 치중해 와서 죽음을 의학적 실패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실패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찾아오는 과정입니다. 임종이 가까워진 사람에게도 돌봄(Care)은 계속 제공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다는 연락을 받고 찾아간 환자의 집. 유방암이 뇌까지 전이된 말기암 환자입니다. 숨이 차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 몸이 많이 부어있습니다. 몸은 마지막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도 이별을 준비할 때입니다. 가족들은 요양병원보다 집에 있는 것을 환자가 더 좋아하니 끝까지 집에서 돌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암 치료보다는 이 시간을 어떻게 편안하게 지낼지가 중요합니다. 소변량이 줄어드는 것은 신장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며, 염증이 심해지면 온몸의 장기 기능이 떨어져 임종에 가까워집니다. 가족들에게 보고 싶은 사람들을 다 부르라고 안내합니다. 이제 치료보다 중요한 건 아내의 곁을 지키는 일입니다.
병원으로 돌아온 이선영 교수는 집에서 마지막을 맞을 환자를 위해 중요한 서류를 작성합니다. 환자의 상태와 임종 가능성을 기록한 소견서입니다. 집에서 임종할 경우 자택사 조사를 위해 경찰이 찾아오는 등 행정 절차가 가족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는데, 이 소견서가 있으면 가족들이 많이 안심합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일은 남겨질 가족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며칠 뒤 환자는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집에서 마지막을 맞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는 일본. 교토 북부 요산노에서 재택의료를 하는 이마이 대의사를 만났습니다. 요산노 지역은 재택임종 비율이 일본 평균을 웃돕니다. 거동이 불편해 재택진료를 받는 아흔여섯 살 노보루 씨는 아내와 단둘이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기억력도 좋고 의식도 또렷합니다.
오늘 진료는 단순 진찰로 끝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멀리 사는 노보루 씨의 딸까지 불러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ACP(Advance Care Planning)입니다. "아버지가 앞으로 어떻게 지내고 싶으신지, 마지막은 어디서 맞고 싶으신지 대화하는 자리입니다. 아버지는 집이 좋다고 하셨고, 연명치료는 원치 않는다고 하셨죠." 요산노 지역에서는 안내서와 설명회를 통해 이 대화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인생회의'라 부르는 어드밴스 케어 플래닝(ACP)은 어떤 치료와 돌봄을 원하는지 건강할 때부터 미리 공유하고 준비하는 과정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어디에서 맞을지, 어떤 의료와 돌봄을 원하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때 누가 내 뜻을 대신 전할지를 정해 두는 것입니다. 이 대화는 죽음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줍니다. 가족의 ACP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도 죽음을 준비하게 되며, 대화를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고 앞날에 대한 불안도 줄었습니다.
의료진 역시 말합니다. "원래 의료는 생명을 지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병을 하나하나 고치는 것이 반드시 행복을 만들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무엇에 기쁨을 느끼는지를 중시하고 그 안에 의료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마지막을 그려보고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죽음 공부. 죽음을 피할 수는 없지만 미리 공부한 만큼 어떤 마지막을 향해 갈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임종의 질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대만. 아시아 최초로 연명의료 관련법을 만들고 ACP를 제도화하면서 환자의 뜻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선택을 존중한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의사인 비류 씨는 6년 전 나무 아래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엄마, 세상을 떠나신 지 6년이 지났네요.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요." 평생 봉사하며 살아온 어머니는 소뇌위축증이 깊어지자, 스스로 음식을 끊고 삶을 마무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족은 그 뜻을 존중했고 어머니는 음식과 수분 섭취를 서서히 줄여갔습니다.
의사인 딸은 단식을 선택한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책으로 남겼고, 이 기록은 자기 결정권과 좋은 죽음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병원에서 보는 죽음은 대부분 힘들게 연명하다 맞이하는 의료적 죽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가족의 차분한 배웅 속에서 자연스럽고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죽음도 우리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저는 존엄한 죽음을 돕는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 비류 씨를 찾아온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수년째 와병 생활을 해온 95세 마용왕 씨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는 연명 치료도, 인공 영양 공급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고, 가족은 비류 씨와의 오랜 대화 끝에 환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의료진과 상의하며 식사량을 줄여갔고 가족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온 가족이 모여 생전 장례식을 열고 살아있는 동안 마지막 인사도 나누었습니다. "아쉽지만 할아버지가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마용왕 씨는 그렇게 가족의 곁에서 평안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비류 씨는 강조합니다. 말기암 환자나 중증 환자가 음식을 넘기지 못할 때, 가족들은 어떻게든 더 먹이려고 인공 영양을 공급하곤 합니다. 하지만 장기가 기능을 멈춘 상태에서의 과도한 영양 공급은 오히려 환자를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녀는 사연들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존엄한 죽음은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하는 만큼,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 공감대를 형성하고 관련된 지식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늘 죽음이 저 멀리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끝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그 흔들리는 마음을 돌보는 진료가 있습니다. 정신종양학과입니다. 암 진단을 받고 찾아오는 우울증부터 죽음을 마주하며 생기는 불안까지, 정신종양학과는 마음의 고통을 돌봅니다.
의사는 말합니다. "환자의 고통을 들어주고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입니다. 죽음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따라 큰 차이가 생깁니다.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과도한 치료에 집착하면 환자는 더 큰 고통을 겪고 가족에게도 상처만 남게 됩니다."
다음 진료를 기다리는 교시 씨는 말기암 투병 중입니다. 4년 전 암 진단을 받던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병에 걸렸나 싶어 신을 원망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마주하게 되자 급성 스트레스 반응까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치료를 받으며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제는 자신이 원하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3월에는 에지프트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감을 되찾은 그는 웃으며 남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찾은 인천의 한 대학병원. 신경외과 박광우 교수는 20년 넘게 환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 왔습니다. 가장 많이 만나는 환자들은 병이 진행될수록 몸이 점점 굳어가는 파킨슨병 환자들입니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고 말소리도 희미해지는 환자들에게 박광우 교수는 진료 때마다 꼭 꺼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중 되면 진짜 말하고 싶어도 말이 안 나와요. 지금 할 수 있을 때 고맙다고 항상 얘기하셔야 합니다."
병이 진행되면 마음을 전하는 일조차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미루지 말고 지금 표현하라고 당부합니다. 치매가 동반되어 인지 기능이 떨어져가는 환자에게도 사모님에게 고맙다고 말해보라고 권합니다. 환자는 수줍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옆에 있던 아내도 웃음을 터뜨립니다.
죽음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저마다 원하는 마지막은 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을 때 말하는 것, 살아있는 동안 죽음 공부는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끝을 알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서로 힘들지 않게 작별 인사를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역할입니다. 가족과 환자 간의 대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해집니다. 남은 시간 동안 서로에게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함께하며 보내는 것, 그것이 결국 내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돌아보는 계기가 됩니다. 임종의 순간은 결국 자신이 살아왔던 순간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핵심 요약 정리
죽음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일본 & 영국)
일본 (데스페스): VR 체험 등을 통해 죽음을 미리 경험하고 삶을 돌아보며, 죽음을 일상적인 대화의 주제로 다룸.
영국 (데스카페 & 죽음 인식 주간): 완곡한 표현 대신 '죽음'이라는 단어를 직면하고, 소생 거부 진술서 작성 및 장례 희망사항 등을 미리 공유하여 두려움을 줄임.
환자 중심의 돌봄과 재택의료
재택의료팀의 역할: 단순히 질병을 치료(Cure)하는 것을 넘어, 환자가 익숙한 집에서 존엄하고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돌봄(Care)과 연명의료 조율을 제공함.
가족을 위한 준비: 자택 임종 시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적·법적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소견서를 미리 준비하는 등 남겨진 가족을 배려함.
인생회의(ACP, 어드밴스 케어 플래닝)의 중요성
건강할 때부터 본인이 원하는 치료·돌봄 수준과 임종 장소를 미리 결정하고 가족 및 의료진과 공유함.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함으로써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고 현재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함.
존엄한 자연사와 자기 결정권 (대만 사례)
무의미한 연명 치료나 과도한 인공 영양 공급 대신, 환자의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임종 과정을 받아들이고 생전 장례식 등을 통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함.
살아있는 동안의 죽음 공부
정신종양학과: 죽음을 직면하며 발생하는 환자와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돌보고 죽음을 인정하도록 도움.
지금 표현하기: 몸과 마음의 기능이 더 저하되기 전에 가족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끝을 인식하며 현재의 삶에 집중하는 것이 진정한 죽음 공부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