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 51:1-11절이고, 제목은 “영원한 기쁨” 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를 복 주신 여호와께서 시온을 위로하여 황폐한 곳들을 에덴 같이 회복 시키십니다. 의를 알고 마음에 율법이 있는 백성은 대적의 비방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 시온으로 돌아와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묵상
오늘은 여호와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영원한 기쁨"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사순’(שָׂשׂוֹן-sâsôwn)은 “기쁨, 환희, 쾌활”이라는 뜻의 남성명사로, “기뻐하다, 즐거워하다, 유쾌하다.”라는 뜻의 동사 ‘수수’(‘שׂוּשׂ-sûw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심하’(שִׂמְחָה-simchâh) 역시 “기쁨, 즐거움”이라는 뜻의 여성명사로 “즐거운, 기쁜”을 뜻하는 구술 형용사인 ‘사메아’(שָׂמֵחַ-sâmêach)와 함께 “기뻐하다, 즐거워하다.”라는 뜻의 동사 ‘사마흐’(שָׂמַח-sâmach)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두 단어가 거의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사순’(שָׂשׂוֹן-sâsôwn)은 주로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반면에, ‘심하’(שִׂמְחָה-simchâh)는 종교적 축제들과 관련된 분위기에서 느끼는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된다는 차이점을 가집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의 구속을 받은 자들이 누리는 ‘영원한 기쁨’은 단지 어느 한 순간에 느끼는 감정 따위나 주어지는 상황과 형편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이라는 무시간성과 연계하여 존재 자체 안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는 ‘영원’(永遠, everlasting)을 뜻하는 남성명사 ‘올람’(עוֹלָם-`owlam)을 ‘심하’(שִׂמְחָה-simchâh)와 연결하여 ‘웨심하트 올람’(וְשִׂמְחַת עֹולָם-wəśimḥaṯh ‘ōwlām) 이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자면, “영원한 기쁨”이란, 마치 생수가 가득 채워진 유리잔 속에 푹 잠겨 있는 스폰지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실수에 의해 컵이 뒤집어져서 속에 있던 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경우에도, 그 안에 있던 스폰지에는 어느 정도의 물이 계속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컵에는 한 방울의 물도 남아있지 않았을지라도, 그 안에 있는 스폰지는 여전히 물을 머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중국어로는 ‘만요’(滿要)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기쁨"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앗아 가거나, 없앨 수 있는 존재는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 4:7)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 라고 확언해 주셨던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이제는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님으로 성도 안에 영원히 내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저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리스도인이란, 한 마디로 영원한 기쁨을 소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의 자녀 된 모든 성도들 안에 내주하고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그가 바로 너와 영원히 함께하는 ‘임마누엘’이시다. 네가 지금 어떠한 형편과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네 안에 있는 기쁨이 영원한 것임을 기억하고, 두려움 없이 세상과 맞서기를 바란다.”
기도
하나님, 주님이 주신 영원한 기쁨을 영혼에 담고 있음에도, 세상의 자질구레한 일들로 인해 순간순간 실망하고, 낙담하여 기쁨을 잃어버릴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주여!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제 안에 심어 두신 영원한 기쁨으로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항상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 기쁨을 누리며, 이웃들에게 나누는 부요한 자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