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포근한 날씨에 산양면 부암리의 비조산(310m) 정상에 오른 樂山, 牛步, 海山, 野草의 모습....11:12:28
※ 飛鳥山(비조산: 310m) : 산양면 富岩里의 뒷산(옛지명:가불산)이고, 옛날 봉화(烽火)를 올리던 곳으로 傳하며 왕의산과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현리 쪽으로 신라 때 古城인 근암산성이 있는 근품산과 이어져 있다.
산양면 "부암리 마을회관" 안쪽의 창고 앞에 주차 후,
전동차를 이용하는 몸이 불편한 주민을 만나 양해를 구하고, 정면의 비조산으로 출발....09:25:36
토질이 좋은 밭에는 손바닥 보다 큰 냉이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09:28:18
潁陽(영양) 千氏(천씨)의 중시조 忠莊公 千萬里將軍을 모신 魯陽影閣(노양영각) 사당 옆
지름길인 솔숲 길로 오른다.... 09:31:18
忠莊公 천만리將軍을 모신 노양영각(魯陽影閣) 사당과 제실이 있고 뒷편에는 묘원이 있다...09:31:36
[영양 천씨의 유래]
忠莊公 千萬里將軍 (명나라에서 歸化한 潁陽 千氏 중시조)
본래 노(魯)나라의 潁陽 사람으로 일찍이 무과에 급제, 명나라의 무신으로 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이여송(李如松) 휘하의 영량사 겸 총독장(領糧使兼摠督將)으로 그의 아들 상(祥) ·희(禧)와 함께 조선에 출정하여 군량 수송 업무를 관장하였는데, 평양 ·곽산(郭山) 등지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때도 양호(楊鎬) ·마귀(麻貴) 등과 함께 직산(稷山) ·울산(蔚山) 등지에서 전공을 세우고, 명군이 회군할 때 그대로 조선에 귀화하여 화산군(花山君)에 봉해졌다. 귀화 후 천만리將軍은 자헌대부(정2품), 장남 상(祥)은 漢城副左尹, 차남 희(禧)는 平邱道察訪으로 승진시켜 자손에게 세록을 전수 받게 하였다. 忠莊公 천만리將軍의 산소는 남원시 금지면 방촌리, 遺蹟碑는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 있다. 산양면 부암리(富岩里)에는 潁陽 千氏의 중시조 千萬里將軍을 모신 노양영각(魯陽影閣)이란 祠堂이 있다.
새들의 겨울 먹이로 남아 있는 감나무를 지나서 솔숲 뒤편의 포장길을 따라 간다....09:33:25
포장길이 끝나는 소나무 아래로 樂山이 앞서서 안내한다...09:35:39
낙엽이 떨어져 쌓이고 마른 풀이 우거진 길을 오른다...09:36:32
석축을 쌓은 산소 앞을 지나서 왼쪽으로 비탈을 오른다.... 09:42:34
회룡池로 통하는 고개를 오르는 길은 낙엽이 쌓여 미끄러워 보폭을 짧게했다...09:44:16
고개 양쪽에 좌측은 비조산 우측은 오봉산으로 데크 계단과 난간이 있어 편리했다....09:47:21
이정표 : 비조산 550m, 오봉산 1400m, ← 1000m 부암리 회룡지 500m →
비조산 초입은 가파르고 낙엽이 있어 미끄러웠다.... 09:48:59
가파른 산길을 10여분 오르니 숨도 차고 종아리도 당겨서 휴식을 갖는다... 09:56:44
양쪽이 급경사 지대인 능선 길을 野草가 앞 서서 오른다....10:23:01
암벽 지대는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10:28:48
허리를 숙이고 급경사 지대를 천천히 오른다....10:30:07
처음 출발하여 한시간 반만에 정상에 오르니 먼저 온 산객이 앉아서 반긴다....10:33:00
햇살이 가득한 정상에서 간식을 즐기며 쉬는데, 훈련하는 전투기 굉음이 시끄러웠다... 10:34:46
※ 고마운 “새마포산악회원”님들이 설치한 정상 표지판이 비바람에 훼손되었다.
비조산 정상 표지판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는 樂山, 牛步, 野草의 모습....11:12:07
봉우리재 방향으로 계단을 지나서 급경사 길을 천천히 내려간다... 11:16:09
양쪽이 가파른 절벽인 좁은 능선길을 나아간다.... 11:21:57
노란 리본이 3개가 눈에 뛴다....11:24:32
※ 제5회 이안면화합대가산산행대회 주관 : 이장협의회 .
부산한마음산악회 . 배창랑과 그 일행 = 山君들
식용 뿌리를 채집한다....11:29:28
능선에 조성된 산소가 있다.... 11:30:05
處士仁川蔡公諱鴻哲之墓(巽坐) 配孺人草溪卞氏墓 階下己坐
[처사인천채공휘홍철지묘(손좌) 배유인초계변씨묘 계하기좌]
1988년 戊辰3월 孫 熊俊(웅준)
아래쪽에 "약석마을"과 도로 건너편에 "산북119지역대"가 있고,
멀리 천주산과 공덕산(사불산)의 아름다운 全景이 푸근하게 닥아온다....11:33:18
봉우재로 가는 길을 다른 능선으로 내려와서 다시 올라 가고 있다.... 11:44:35
위쪽의 봉우리에서 내려오며 좌측으로 가는 길이 봉우재로 가는 길이다.(우측으로 감).. .11:45:23
능선길의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이며 가느다란 소나무가 가득하다...11:45:32
소나무가 많고 참나무도 가끔 보인다....11:46:43
봉우재에 野草가 먼저 도착하였다.
산양 부암리 쪽은 옛길 그대로이고, 산북쪽은 포장길이 봉우재까지 조성되었다....11:52:39
산북쪽 봉우재의 우측 언덕에 조성된 산소 모습. 가운데 상돌을 두고 있다.....11:53:47
좌측은 沃川 全氏 叵村派(山陽) [옥천 전씨 파천파(산양) ]
24世 諱 斗 星 之 墓 配 眞 城 李 氏 順 得
25世 諱 啓 元 之 墓 配 慶 州 李 氏 福 漢
26世 諱 碩 仁 之 墓 配 長 興 魏 氏 福 順
諱 碩 根 之 墓 配 坡 平 尹 氏 女
27世 諱 甲 伊 之 墓
우측에 沃川 全氏 叵村派(山陽)
27世 諱 鐘 吉 之 墓
生 1958. 06. 22 卒 2023. 08. 28 (65세)
사 랑 합 니 다
편 히 쉬 세 요
산북쪽에 조성된 농장과 이층 건물의 모습, 멀리 산북초등학교와 소재지가 보인다.....11:53:56
봉우재의 이정표에서 비조산을 내려와서 함께 모인 四人의 山客들....11:56:12
이정표 : 비조산 600m 서낭당 460m 약석리 1300m 부암리 760m
부암리로 내려가는 낙엽길은 발목이 잠긴다... 11:57:06
하산길 우측에 조성된 潁陽 千氏 묘원은 後孫들의 精誠이 가득하다....12:01:52
상돌에 글씨가 없이 산소가 잘 조성되어 있다....12:03:25
좌측 산소 : 孺人驪興閔氏之墓(유인 여흥 민씨 지묘)
1993년 5월 子 基台 孫 漢周 弘周 曾孫 義善 婿 李章雨
밭길을 내려와서 수로가 있는 좌측의 포장길로 부암리마을회관 방향으로 간다...12:08:31
논에 바싹 마른 벼를 추수를 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고, 마을길로 내려간다...12:10:50
마을은 조용하고, "방문 목욕 방문요양" 차량을 마중 나온 아주머니가 보였다....12:15:15
텅빈 牛舍(우사)를 지나서 분홍색 주택 옆 골목길로 넘어간다...12:17:20
앞쪽의 과수원 건너편에 "부암리마을회관"(2층건물)
추녀 끝에 곶감을 말리는 모습과 주인장의 부지런하고 다정한 인사가 정다웠다...12:18:39
※ 집집마다 예쁜 문패를 갖고 있다.(천○○ 변○○)
골목을 돌아 나오니 다녀온 뒤편의 비조산이 정답게 보인다.... 12:19:31
주차한 창고에 도착하여 가시가 많은 엄나무를 살핀다...12:20:10
창고문이 훼손되어 지난 세월을 말하는 주차장에서 귀가 준비를 한다....12:21:59
첫댓글 小雪이라 된서리 내려 氣溫은 차다.富岩里는 潁陽千氏 集成村으로 山陽人들이 그러하듯 透徹한 愛鄕心으로 近洞의 垂範이 되고 出鄕人들 중엔 警察 高位層도 倍出되어 山陽의 矜持가 되는 部落이다.옹기종기 자리한 富岩里를 뒤로하고 留難히 우뚝한 飛鳥山을 향하어 回龍里로 가는 고갯길은 山이 막혀 往來가 거의 없던 時節에도 이웃 마을은 서로 通婚하여 姻戚으로 맺어지는 우리내 風習이였는데 交通이 發達하고 離農現狀으로 젊은이가 사라지니 옛 風習도 사라진다.209m의 고갯길부터 急傾斜와 갈잎이 덮힌 登山路는 始作부터 難易度가 相當하다.片麻巖이 腐蝕되어 미끄러움이 곁들이니 入山한지 몇 분만에 休息하며 下界를 觀照하니 富岩里 너른 들판은 豐饒롭고 뒤쪽 山北 所在地는 앙증맞은 모습으로 다가온다.富岩里쪽 斜面은 몇 해전 산불로 燒失되었으나 뒤쪽 山北方向은 불길을 피하여 枯死木이 없다.迂餘曲折 끝에 頂上에 서니 310m의 標識木이 반갑다.그러나 空軍部隊의 戰鬪機 騷音이 擾亂하여 더 머물고 싶은 意欲이 사라진다.下山은 反對쪽 봉우재 길로 들어서니 下山路가 낙엽에 덮혀 끊어져서 가시덩굴을 헤쳐나오는 難解한 길을 連續的으로 通過하는 어려움을 겪고서야 봉우재에 到達하여 富岩里로 回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