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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셋집에서 하나님 나라 전파
(사도행전 28 장)
성경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책망 하시고 강권하시는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큰 은혜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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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음의 위기, 사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흔들림 없고
염려함 없이 굳건히 서있는 담대함을 보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나를 도우시고 나를 세워주셔서 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일의 성취를 위해 도우시고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서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일이 비록 나에게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에 필요하기에 나에게 주신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애매하거나 억울한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부러
풍랑속으로 인도하셔서
풍랑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의 위대함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들의 연약함이 무엇인가를
증거하라는 것입니다.우리는 그것을 바울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토록 원했던
로마행이고, 하나님 또한 바울을 로마로
보내시고자 하셨는데 정작 로마에 도착해서 바울이
한 것은 유대인들을 모아 놓고 복음을 가르친 것뿐이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이
더러는 믿고 더러는 거부하였습니다. 고생 고생하면서
로마에까지 왔는데 우리들이 기대한 만큼의 결과가 없습니다.
로마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는 굉장한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더라는 것으로 끝납니다.
바울은 죄수로서 로마 황제 앞에서
심문을 받도록 되어있으니까 심문을 받을 때
복음을 전하여 황제가 예수님을 믿던가 아니면
장렬하게 순교하는 장면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좋은 결과 있기를 많이 기대합니다.
그런데 좋은 결과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열매 맺는것 아닙니까?
그런데 과연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하나님께는 좋은 결과 나쁜 결과라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의 삶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1. 멜리데 섬에 머물게 된 바울.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사도행전 28 : 1-2)
배에 탄 사람들이 모두 육지에 상륙하고 난 후에야 그곳이
멜리데라는 섬인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날 말타(Malta)라고
부르는 섬으로 이탈리아 남단의 시실리아 섬 남쪽의 작은 섬입니다.
멜리데 섬의 토인들은
바울 일행에게 특별한 동정과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춥고 비가 옴으로 그들은 불을 피우고 바울 일행을 영접하였습니다.
2. 독사의 손에서 구원받은 바울.
"바울이 한뭇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토인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달림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
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공의가 살지 못하게 하심이로다 하더니"
(사도행전 28 :3-4)
사람들은 불을 쬐는 틈틈이 마른 나무를 주워 모아야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 신분이기 매문에도 그렇지만 그의 성실한
생활 태도 때문에도 열심히 마른 나무들을 주워다 넣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마른 나믓가지를 한아름 주워다 불에 넣고 옆에
앉아 불을 쬐려니까 그 나무 속에있던 독사 한 마리가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뛰어나와 바울의 손가락을 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원주민들은 독사에 물린
바울을 보고 살인자라고 했습니다.
바다에서는 구원받았으나 신이 바울을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왔으나 끝내 독사에게
물려 죽게 되는 것은 필경 그가 살인자이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
(사도행전 28 :5-6)
그러나 바울이 뱀을 떨어버린 후에도
바울은 죽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당황치 않고 태연히 손을 흔들어 뱀을 불속에 떨어버렸습니다.
바울은 독사에게 물렸고,
원주민들은 바울이 죽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바울에게는 이상한 일이 전혀 생기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므로 당연히 그의 손이 부어오르고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는데 그들이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은 원주민들에게는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달리 해명할 길이 없게 되자 바울더러
신(神)이라고 칭하였습니다. 신의 심판을 받은 자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했던 그들이 이제는 정반대로 바울을 정의의 신이라고 말합니다.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사도행전 28 :7-8)
섬에서 가장 높은 보블리오라는 사람이
바울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대접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로 하여금 보볼리오의 대접을
갚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때마침 그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을
앓게 되어 바울은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3. 섬의 병자들을 고쳐주고 도움을 받음.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
(사도행전 28 :9-10)
또 그 섬의 다른 병자들도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친절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시기도 합니다
그들은 병고침만 받지않고 바울로부터 복음도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이들도 치료하여 주셨습니다.
보블리오의 부친을 고친 소문은
멜리데 섬 전체에 금방 퍼져 나갔고
그래서 다른 병자들도 바울에게 몰려들어 병고침 받기를 원했습니다.
섬 사람들은 바울 일행이 머물 때 뿐만
아니라 떠날 때에도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아마 식량과 의복 같은 필수품들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바울 한 사람에 의해
그와 함께 있던 275명의 사람들도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자녀들을 돌보시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4. 알랙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를 향해 떠남.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과동한 알랙산드리아 배를
우리가 타고 떠나니 그 배 기호는 디오스구로라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
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가니라"
(사도행전 28 :11-14)
석달 후에 겨울을 나고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그들은 로마로 떠났습니다. 당시에는
선박들이 겨울 철 3개월 동안 항해를 중단하는게 일반적인 통례였습니다.
바울 일행은 마침 그곳 멜리데 섬에서
겨울을 지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배는 멜리데 섬의 '발레타'항구에서 겨울을 지냈을 것입니다.
수라구사 도시는 시실과 섬의 수도로
섬의 동해안 남쪽에 있는 중요한 항구입니다. 멜리데로부터
약 150Km 떨어져 있고 성의 둘레가 35Km 되는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배가 이곳 수라구사에서 사흘간 머물렀습니다.
불어오던 남풍이 멈추었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심한 역풍을
만났거나 짐을 내리고 새 짐을 싣기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레기온에서 하루를 머물렀는데
이탈리아 반도 남쪽에 있는 항구입니다.
지리적 위치상 중요한 항구로 여겨졌으나 현재는 폐항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는 남풍이 불기를 기다리며 하루를 묵고 바로 다음날
남풍이 불어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레기온에서 340Km 떨어진 보디올까지 이틀만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은 나폴리 만에 위치한
네압볼리의 외항으로 알렉산드리아
에서 수송해온 곡물들은 이곳에서 내려져 내륙으로 운반되었습니다.
보디올에 도착함으로써 바울은 긴 해상
여행을 끝내고 로마를 목전에 두게 되었습니다.
이제 로마까지는 불과 220Km 밖에 안 남았고 그 정도의 거리는
건강한 장정이 아피오도로를 통해 걸어서 오 일이면 갈 수 있었습니다.
보디올에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물렀습니다.
5. 로마 형제들의 영접을 받은 바울.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우리가 로마에 들어
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사도행전 28 :15-16)
로마에 있는 형제들이 바울을
맞으러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나오자
바울은 이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습니다.
누가는 바울과 함께 로마에 도착했고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따로 있게 허락 되었습니다.
그곳은 자기 셋집 ,그가 2년동안 유했던 집과 동일한 곳일 것입니다.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사도행전 28 :17-18)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대인
중 지도자급 되는 사람들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부당하게 유대민족을 대항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함으로 그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오해나 잘못된 선입견을 갖지 않게 하려함이었습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준
바 되었고 로마인은 그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므로 부득이 가이사에게 호소
한 것이요 유대민족을 송사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다고 말했습니다.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벨릭스
총독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대인들이 송사하는 것은 저희
율법에 관한 것뿐이요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로마 총독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에 대하여
'내가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총독과 함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이러하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노니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 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사도행전 28 :19-20)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자신이 유대인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끊임없는 적대 의식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이사에게 상소(上訴)하기는 했지만,
조금도 동족을 미워하지 않는다는 바울의 고백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이런 연유로, 바울은 여러분을 뵙고
말씀드리려고, 여러분을 오시라고 청한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쇠사슬에 매여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바울은 공의회에서도 벨릭스 총독 앞에서도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증언 했던 내용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소망' 이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소망입니다.
바울은 이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성되었다고
했습니다 조상들이 그렇게 소망해오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주시고
예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요. 온 인류의 소망입니다.
"저희가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
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더라"
(사도행전 28 :21-22)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은 유대로부터 바울에 대하여 어떤 편지나
비난의 말을 들은적이 없으므로 그의 말을 들어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파, 즉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이 파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안다고 했습니다.
6. 하나님 나라를 강론하는 바울.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사도행전 28 :23)
유대인들은 날짜를 정하여 바울이 우거하는
집에 많이 모였습니다. 바울은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말씀을 강론하고 증거하고 권면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하나님 나라와 예수로 요약하며 설명
하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핵심적이고 정확 한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의 핵심은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복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나라이며 그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으며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라는 것이 기독교의 선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유대인들이 기대해 왔던
유대 민족주의적이고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삶을 통해 보여진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것입니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사도행전 28 :24-25)
그들 가운데는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행한 바울의 증언은
노력에 비해 충분한 것은 아니었지만 몇 사람의 믿는 사람을 얻었습니다. .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로마의 유대인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고
마침내 집회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사도행전 28 :26-27)
이사야는 유대인들이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을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고침받지 못하도록 심판하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완악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실 때 그가 어떠한 말을 하여도
백성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완악하여 이사야의 말을 청종(聽從)치
아니함으로써 마침내는 바벧론의 포로가 되는 것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의 복음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그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의 근거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더라 29. 없음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
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
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사도행전 28 :28-31)
바울은 이제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그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시 되었으나 그들이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구원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졌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
논리이며 자신의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은
'듣지 않을 것이나'이방인들은 '들을 것입니다'.
그 결과 유대인에게 주어져야 할 구원이 이방인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바울은 2년 동안을 셋집에 유하며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였습니다. 누가는
구원이 이방인에게 확산됨을 선언하는 것으로 본서를 종결짓고 있습니다.
바울은 만 2년 동안
로마에 머물렀는데,
석방되기 이전 연금된 상태로 있었던 기간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 고소자들은 재판의 승산이 없고
더구나 재판 과정에서 구체적인 증거없이 사람을
괴롭히기 위한 고소로 여겨질 때는 그에 대한 응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로마법정의 절차가 두려워
법정 고소 만료일인 18개월이 지나도록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후 결석(缺席) 재판으로 진행되어
바울이 무죄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지금까지 깨닫고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때
어느 장소를 불문하고 핍박과 위험이 있을지라도
개의치 않고 조그마한 틈만 있어도 복음을 전파하려는
사도 바울의 그칠줄 모르는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보며 주님 손에 붙들려 사는 자의 위대한 삶을 배웠습니다.
원하옵기는 우리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믿고
어떤 현실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사도 바울의 선한 삶을 좇아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드리는 우리 모두 되게 하시옵소서.
지금까지 함께한 모든 분들의 심령을 붙들어 주신 성령님께
감사드리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8. 14.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