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능력과 기술, 그리고 도덕과 사람
논어의 16번째 책 계씨편은 첫번 째 장부터 아주 강렬하다. 염유와 자로가 공자에게 살벌하게 혼나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16.1에서는 계씨의 가신인 염유와 자로가 공자를 찾아 계씨가 전유라는 곳을 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여쭌다. 이 상황을 알기 위해선 먼저 당시 배경을 알아야 할 듯 하다.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로 군주들이 대부들에게 실권을 빼앗기고 허수아비에 불과한 상태였다. 특히 공자가 속해있던 노나라에서는 세 대부 맹씨, 숙씨, 계씨가 힘을 장악하여 나라가 쪼개졌는데 이들을 삼환이라고 부른다. 그 중에서도 계씨가 노나라 땅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큰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염유와 자로가 바로 이 계씨 집안의 가신, 즉 그 집안을 섬기며 일하는 자리에 취직해 있었다. 그렇다면 전유는 어떤 곳일까? 전유는 다른 대부들처럼 노나라 왕실의 힘을 빼앗는 것이 아닌 왕실에 충성을 바치던 유일한 지역이었다. 계씨는 이 유일한 지역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들은 공자는 염유를 꾸짖는다. “구(염유)야! 그것은 너의 잘못이 아니겠느냐? 전유는 옛날 선왕께서 동몽주로 삼으셨고, 또한 우리나라 영역 안에 있다. 이는 이 나라 사직의 신하인데 어째서 정벌한다는 것이냐?”
공자는 전유가 예부터 선왕이 제사드리는 곳이었다는 것과 유일하게 노나라 왕실에 공신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이미 노나라의 속국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며 정벌하는 것은 잘못 되었다 이야기한다.
이에 기가 죽은 염유는 계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염유가 말하였다. 계씨가 그렇게 하려는 것이지, 저희 두 신하는 둘 다 원하지 않습니다.“ 염유의 이 답변은 공자를 더욱 화나게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야!! 주임이 말하기를 ‘능력을 다 발휘해서 벼슬자리에 나아가되, 능력이 안되는 사람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하였다…(중략)…호랑이나 외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점치는 거북이나 귀한 옥이 궤 속에서 깨졌다면, 이는 누구의 잘못이겠느냐!?”
여기서 우리안에 있어야할 호랑이와 외뿔소가 바로 계씨이고 점치는 거북이와 귀한 옥이 바로 전유이다. 우리에서 계씨가 뛰쳐나와 귀한 전유를 깨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다. 또한 공자는 신하 자리에 있는 염유와 자로가 옳바르게 일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권력자를 좋은 정치로 이끄는 ‘대신’이 아닌, 자리만 지키며 그저 돈이나 받아먹는 ‘구신’의 길을 걸었고 공자는 이를 비판했다.
이제 궁지 몰린 염유는 갑자기 말을 바꿔 계씨를 대변하기 시작한다. “지금 전유는 성곽이 견고한데다가 계씨의 관할인 비(계씨 관할인 고을)에 가깝기 때문에, 지금 빼앗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들의 근심 거리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완전히 드러나 듯이 염유는 나라의 백성들을 위할 마음이 전혀 없다. 오직 계씨 집안의 입장에서, 계씨 집안 후손의 안위만 바라보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중략)…내가 듣건대,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은 백성이나 토지가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분배가 균등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며 ,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평안하지 못한 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대게 분배가 균등하면 가난이 없고, 서로가 화합을 이루면 백성이 적은 것이 문제 될리 없으며, 평안하면 나라가 기울어질 일이 없다.”
염유는 회계와 재정 기술에 아주 큰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공자가 공자의 학교 재정 자리를 맡길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염유는 이러한 정치에 관해 공자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염유는 위에서 보았듯 계씨라는 권력자 밑에서 그 권력자의 입장만으로 자신의 기술을 발휘한다. 빵으로 비유를 들자면 정치라는 기술로 빵을 더욱 크게 만들 궁리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전체의 백성을 보고 정치로 그들을 어떻게하면 더 잘 살게 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사람이었다. 정치를 기술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것이다. 즉 공자는 빵을 크게 만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닌 잘 분배하여 많은 이들이 더 편하게 살길 바라던 사람이었다.
이제 16.1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공자의 언성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지금 유(자로)와 구(염유)는 계씨를 돕는다면서도, 먼 곳의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데 따라오게 하지도 못하고, 나라가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는데도 지키지도 못하며, 나라 안에서 군사를 동원하려 꾀하고 있구나. 내가 걱정되는 것은 계손씨의 근심이 전유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안에 있다는 것이다.(염유와 자로같이 잘못된 가신들이 계씨 집안의 문제인 것을 의미한다)”(16.1)
공자와 염유의 의견 차이는 좁힐 수 없었고 결국 11.16에서 공자가 염유를 파문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계씨는 주공보다 더 부유했는데, 그의 가재(신하)인 염구(염유)가 그를 위해 세금을 거두어 모아서 그를 더 부유하게 해주었다. 이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너희들은 북을 올리며 그를 공격해도 괜찮다.”(11.16)
지금 우리의 사회에는 공자같은 사람들보단 염유같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사회가 능력과 기술을 우선시할수록 그에 부흥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능력과 기술을 내세운다. 어느새 목표의 수단이어야 할 ‘능력과 기술’이, 목표 그 자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할 일이 있고 그 일을 수행하는 자리들이 있다. 그리고 그의 목표는 세상을 좀 더 이롭게하는 데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게 하는데에 있을 것이다. 능력은 단지 그 길의 수단으로 삼아져야 할 것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게 공자의 도덕은 너무나도 높은 곳에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다울 수 있는 길을 보게 하는 그의 말들을 표지판 삼아, 어느 자리에 놓여 있던 맡은 일을 ’잘‘뿐만이 아닌 ’옳바르게‘ 해내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