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나폴리 통영 여행기
최 순 태
코로나19가 또 다시 기승을 부리는 12월 중순의 어느 날이다. 처가의 손윗동서로부터 그동안 실행하지 못했던 동서 모임을 올해가 가기 전에 1박2일 일정으로 하잔다. 내게 적당한 날짜와 장소를 알아보고, 추천하라고 말했다.
나는 결혼으로 맺어진 처가의 동서 모임에 참석하여 매년 여러 번 만나고 있다. 회원 중 3명은 대구에 거주하고 있으나, 맏동서가 김해에 살고 있어서 김해 인근으로 숙소를 정하여 관광과 여행을 하려고 마땅한 곳을 알려 주었으나, 숙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최종적으로 경남 통영으로 결정되었다.
모임이 시작되는 날은 내가 매월 등산을 하는 중, 고등학교 동문 산악회의 임시총회 겸 송년회 일정과 겹치게 되었다. 총무를 맡은 동서께 사정 이야기를 하였으나, 이번에는 산악회 일정에 참가하지 말고 오랜만에 모두 만나자고 하여 동문들은 등산에서 자주 볼 수 있으므로 동서 모임에 가기로 하였다.
대구에 사는 동서들은 상인동의 장보고 식자재 마트에 모여 모임에 필요한 간단한 음식물을 구입하여 마트에서 10시 30분경 통영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다행히 날씨는 쾌청하고 포근하였다.
우리들을 태운 자동차는 잠시 후 현풍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화장실 용무를 간단히 보고 운전자인 동서의 졸음을 깨우기 위해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잠시 쉬다가 대구를 출발한지 3 시간 정도를 달려 점심 식사 장소인 통영 중앙시장 인근 식당에 도착하여 김해에서 오는 우리 모임 회장인 맏동서 부부를 기다렸다.
이윽고 같이 만난 일행은 반가움에 서로 얼싸안고 상호간 건강과 안부를 물으며 수다를 떨었다. 주꾸미와 굴을 곁들인 풍성한 식사가 끝난 뒤 첫 일정으로 통영 미륵산 정상(461m)까지 가는 케이블카(스카이 워크)를 타고 산에서 내려다보는 국립공원 한려수도의 비경을 감상하였다.
회원 중 대부분이 경로우대자여서 약간의 할인요금을 적용받았다. 출발한지 20여분이 지나자 종착지에 도착하여 바다를 보니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모습을 연출하였다.
날씨가 맑으면 옥상전망대의 망원경을 통해 가까운 섬부터 멀리 일본의 대마도까지의 경치를 자세히 볼 수 있으련만, 약간 짙은 해무로 못 보게 되어 아쉬웠다.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미륵산 정상까지 왕복 40분이 걸린다는 안내문을 보고 꼭대기까지 가기를 원하는 3명이 나무계단을 걸어 미륵산의 정점에 도착하였다. 케이블카 전망대에서 보는 바다와는 색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케이블카 노선 주변에는 리프트를 타는 사람들과 스카이라인 루지(썰매에 비스듬히 누워 일정한 트랙을 달리는 것)를 타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인근에는 골프장이 바다를 향해 호젓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통영시에서 관광산업을 위하여 많은 투자를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신나게 케이블카를 탄 뒤 다음 일정으로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자로부터 지배받던 시절 완성하였다는 해저터널로 이동하였다. 이 터널은 1931년에서 32년에 걸쳐 완성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로서, 정문 입구에 용문달양龍門達陽이란글이쓰여 있는데, 이 글의 뜻은 “섬과 육지를 잇는 해저도로의 입구의 정문”(수중 세계를 지나 육지에 다다랐다)을 의미한다. 통영에서 미륵도 사이를 배를 타지 않고 육로로 이동했다는 상징성이 있다.
당초 나는 터널을 지나가면 바닷물이 보이리라는 상상을 하였는데, 실제는 바닷물을 막아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 섬과 육지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였다. 이 터널은 근대문화유산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본인들이 주도하였으나, 공사에 동원된 우리나라 사람들이 완성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완공되고 나서 한때 차량이 통행하였으나, 지금은 터널 양쪽으로 사람이 다니던 인도의 흔적만 남아 있고, 공사의 건축 상황과 부분 보수한 일을 나타내는 사진을 전시하고, 일반인들이 구경하는 관광지로 변모하였다. 공사 중 많은 한국인들이 죽거나 다쳤다고 한다.
해저터널을 구경하고 난 뒤 우리들은 숙소에서 먹을 횟감을 통영 중앙시장에서 구입하여 우리들의 숙소인 펜션으로 차를 몰았다. 숙소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으며 준비한 회와 소주를 마시니 맛이 기가 막혔다.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를 동경하고, 바닷가에 가면 반드시 바닷고기 회를 먹게 되어있다.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들이킨 술에 갑자기 취기가 올라온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식사를 한 후 숙소를 빠져 나와 “달아 공원”으로 향하였다. 이 공원은 달을 맞이하는 공간이며, 해넘이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한려수도의 섬들 사이로 지는 해를 바라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다음에 저녁때 한번 와 보리라 다짐해본다.
다시 여객선 터미널 쪽으로 이동하여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이순신공원을 가보기로 하였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 올라가니 웅장한 모습의 이순신장군 동상이 우리를 반긴다.
동상 뒷면에 충무공 동상을 사비를 들여 건축비를 후원한 통영의 사학재단 이사장의 발원문이 있었다. “지역 주민을 위해 작은 정성을 이 건축물에 바친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닳았다.
동상 앞면 기단에 이순신장군님이 난중일기에 적은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려는 충신의 覺悟(각오)를 吐露(토로)휘호가 눈에 띈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장수의 기개가 느껴졌다.
또한 충무공께서 들고 계신 장도에는 나라를 지키려는 굳은 신념을 담아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라고 쓰여 있다.
동상 왼쪽에 임진왜란 때 사용하던 천자총통天字銃筒이 전시되어 있었다. 불씨를 손으로 점화·발사하는 화포火砲이고, 청동으로 된 대포로 위력이 상당하고 묵직하게 생겼다.
천자총통에 대장군전大將軍箭(천자총통으로 쏘아 적을 공격하던 크고 긴 화살)을 장착하여 쏘아 적함을 부수는 큰 전과를 거두었다.포신도 커서 왜군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었을 것 같았다.
이순신 장군은 이순신공원 앞바다에서 세계적인 해전인 한산도대첩을 벌여 일본 해군을 물리치고 육지에 상륙한 왜군들의 후방 보급로를 차단하여 임진왜란을 끝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거둔 32전 32승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승리였다. 7년에 걸친 전쟁은 종말을 고했다.
공원에서 바라본 한려수도의 오밀조밀한 섬들과 바다 속까지 다 보이는 맑은 바닷물, 주변의 절경은 왜 통영을 이태리의 미항인 나폴리와 비교하여 “동양의 나폴리”중 하나라고 부르는지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그 옛날 엄청난 해전이 벌어진 장소임에도 지금은 너무나 평온한 모습이어서 과연 여기가 치열한 해전의 현장인가 라는 의문이 생겨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영에서의 1박2일로 통영 전체를 알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는 점은 알고 있지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나라사랑과 애국애족 정신을 느껴보는 일만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여행이 아니겠는가! 다음에 통영에 갈 기회가 있으면 박경리 소설가, 윤이상 작곡가, 유치환 시인의 숨결도 제대로 느끼며 많은 문화 체험을 하고 싶다.
(2021. 12. 15)
첫댓글 좋은 곳을 다녀 오셨군요. 동서지간의 우의가 돋보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그 길을 여러번 걸었습니다. 모두가 비슷하게 느껴지는 그곳의 풍광이 새삼 그리워지네요.
언젠가 한 번 또 가보고 싶은 곳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