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사지月南寺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 고려시대 에 창건된 월남사의 사찰터. 전라남도 기념물제125호로 지정.
월남마을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월남사터. 월남사의 창건을 밝힐 수 있는 확실한 문헌은 전하지 않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려승 진각초창 유이규보비(高麗僧眞覺初創有李奎報碑)’라 하여 송광사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창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보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폐사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안아, 이 일대의 절이 정유재란 당시 병화로 소실되고 '무위사'만 남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그 뒤 복원불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17세기 중반 이미 폐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입구 왼쪽에 진각국사비 , 삼층석탑가 있다. 최근에 삼층석탑 근처 민가에서 석탑의 지붕돌이 발견되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2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발견된 지붕돌의 세부기법이 월남사터에 있는 백제계 양식인 삼층석탑과는 다른 신라계 양식의 기법이라는 점이다. 한 절터에서 백제계 석탑과 신라계 양식의 석탑이 함께 자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진각국사비는 비석의 위쪽이 깨져 없어졌고, 앞면 일부도 떨어졌으나 남아있는 바닥돌과 거북의 기세, 비석의 폭으로 보아 매우 웅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금당터 초석, 축대가 남아있으며, 옛 기와, 청자, 백자조각이 출토되고 있다.
월출산 남쪽 평지에 위치한 월남사지에는 현재 마을이 형성되어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건물터로 보이는 기단부와 초석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절터 안의 백제계 모전석탑(模塼石塔)은 법당터의 전면으로 추정되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또 최근에 현 모전석탑 서측(向左)의 민가 장독대에서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되었는데, 현 석탑의 주변에서 수습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월남사지에는 원래 2기의 석탑이 있었던 것 같다.
현 모전석탑에서 약 150m 떨어진 곳에 월남사지석비가 있다. 이 비는 이규보가 비문을 지은 진각국사비로, 현재 비신 일부가 완전히 떨어져나간 상태이나 기단부의 귀부(龜趺)는 완전하게 남아 있다.
월남사지의 전체 규모는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였던 것 같다. 현재 외곽 담장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동서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고 있다.
가람배치 형식은 전체적으로 보아 완만한 경사지를 4개의 단으로 만들고 그 단부에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좌우측으로도 5개의 단을 두어 각각의 단에 대지를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축선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건물과 다르게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월남사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뿐이다. 그중 기와류는 문양·태토(胎土)·소성도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의 유물은 극소수이고 고려시대의 유물이 주를 이룬다. 자기류도 완·접시·병·대접 등 다양하게 수습되었는데, 모두 고려시대의 유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