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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ubf추수감사제 메시지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시편 95편 강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말씀 시편 95편 1-시편 95편 11
요절 시편 95편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오늘 말씀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사는 이스라엘 백성을 감사예배로 초청하는 시입니다.
1-7절까지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드리는 감사 예배에 대해서 나옵니다. 8-11절부터는 감사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청교들 102명이 미국에 가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들은 반은 풍토병으로 죽고 50명이 살아남아 인디언의 도움으로 농사를 졌습니다. 그들은 추수한 후에 인디언을 초청하여 처음 농사를 지은 것과 신앙의 자유를 얻은 것에 감사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추수감사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제의 성경적인 유래는 초막절입니다. 40년 동안 광야 생활 동안 초막을 짓고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생활동안 지켜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모든 곡식을 추수하고 창고에 들인 후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광야 같은 상황에서 하는 것이 진짜 감사입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광야 같은 상황은 우리에게 시험에 들게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바라보면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광야 같은 2021년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는 크고 좋으신 하나님이다)
1-3절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를 지어 즐거이 그를 노래하자 여호와는 크신 하나님이시요 모든 신들보다 크신 왕이시기 때문이로다”
시인은 구원의 반석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함께 노래하며 즐거이 외치자고 합니다. 우리가 시를 지어 감사함으로 즐거이 노래하자고 합니다. 우리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배를 드리자고 합니다. 마치 월드컵 사강전에서 우리가 역전승을 하여 승리했을 때 모두가 승리의 함성을 질렀던 것처럼 기쁨과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직후로 보입니다. 그들의 생활은 광야와 같았습니다. 아직 성전도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성벽은 허물어지고 집들도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적들의 침략이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하고 찬송할 수 있습니까?
광야에서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별이 낮에는 빛나도 보이지 않다가 밤에 보이듯이 우리 하나님도 항상 함께 하시지만 평상시는 보이지 않다가 광야와 같은 상황에서 보입니다. 광야에서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고 좋으신 분이시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대적보다 크시고 어떤 사탄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사탄은 우리를 죽이고자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풍성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크신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의 반석이십니다. 반석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은 광야를 천국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우리 크고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십니다. 왕 중의 왕이십니다. 모든 의견의 최종결정자이십니다. 아무리 사탄이 우리를 괴롭혀도 최종결정자는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하신 섭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 어떤 광야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부모를 떠나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잤습니다. 그곳에는 짐승이 울고 이슬이 내렸습니다. 언제 강도가 나올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이 광야에서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집에서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지만 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았을 때 돌베개로 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하였습니다. 그곳을 벧엘 곧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광야가 바로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사단은 요셉의 형들의 시기심과 보디발처의 정욕을 이용하여 요셉을 노예로 팔고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은 그 상황에서 더 크고 좋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셉은 더 크고 좋으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았을 때 노예살이도, 감옥살이도 형통하였습니다. 형통한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았을 때 노예로 살 때도 죄인으로 살 때도 행복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며 광야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곳에서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시편 23편에 보면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고 원수의 목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곳이 푸른 풀밭이고 쉴만한 물가라고 하였습니다. 광야가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광야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시로 지어 찬양하였습니다.
사단은 욥에게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빼앗아갔습니다. 인과응보적이고 율법적인 생각을 심어서 욥을 괴롭혔습니다. 욥은 왜 자신이 그런 고난을 받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 모든 고난이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난에 보석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정확한 섭리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그 후에 건강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죄악으로 70년 바벨론 생활을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바벨론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 속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사자굴도 천국이 되었고 풀무불 속도 천국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에덴과 같은 곳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곳은 지옥입니다. 발라드 가수 이수영은 골든디스크상 대상을 받았지만 너무나 고통스러워 자살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광야 같은 곳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은 천국입니다.
비록 코로나 시기가 2년이나 지속되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깨달을 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코로나 시대에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람들과 만날 수 없어 한 시간 기도를 배웠고 양식 메모를 하였습니다. 대학로와 연합으로 온라인 여름수양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와 드레스덴에서 함께 참여하여 말씀을 전하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형식적인 것을 제거하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ubf 전체적으로 보아도 온라인으로 60주년 세계선교보고 대회를 했고 선교사수양회를 하였습니다. 돈과 시간이 없어 오프라인 수양회라면 참석할 수 없는 오지의 선교사들도 다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삼차에 걸쳐서 선교사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교회로 보면 성도의 수는 줄었지만 교회가 거룩해지고 건강해졌습니다. 새롭게 하소서 내게 매일 기쁘게나 다니엘 기도회에서 간증하는 사람을 보면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다)
4-7a절을 보십시오. “땅의 깊은 곳이 그의 손 안에 있으며 산들의 높은 곳도 그의 것이로다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시인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해야 하는 이유를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땅의 깊은 곳과 산들의 높은 곳도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다와 육지를 하나님의 손으로 지으셨습니다. 아버지의 것이 다 아들의 것이듯이 하나님의 것은 다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굽혀 경배해야 합니다. 우리는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어 하나님의 뜻을 영접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백성입니다. 창조주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는 목자요 우리는 그의 손으로 돌보시는 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목자입니다.
하나님이 때로 우리를 고난의 길로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비록 내 뜻대로 안 되어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잘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우리를 인도하여주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만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은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타락했습니다. 다윗은 고난의 생활 속에서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스라엘 민족만큼 많은 고난을 받은 민족은 없습니다. 430년 애굽의 노예살이를 하였습니다. 70년 바벨론 포로살이를 하였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그들은 독립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2500년을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이 생겼고 세계최고의 민족이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우리는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감사하고 찬양해야합니다.
최요한목동은 ROTC장교 시험에 다 합격하였지만 신체검사로 떨어져 장교로 군에 가지 못해서 실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최요한 목동은 하나님을 불신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님은 최요한 목동의 무릎을 보호하기 위해서 장교로 보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야 그 뜻을 알고 감사하였습니다.
나는 우리 교회에 전임사역자를 세 번이나 세우고자 하였는데 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베우기보다 나를 전임사역자로 쓰시고자 하는 선하신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성경 66권 강해와 유튜브 설교를 하고자 하는 뜻을 알았습니다. 전에 세우고자 하였던 세 명도 하나님이 쓰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즘에야 그것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감사한 것들입니다.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라)
7b-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여기서부터는 광야에서 감사하지 못하고 혈기를 부리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신하고 원망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의 40년 광야 생활을 말합니다. 광야 생활은 교회생활이요, 예배하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므리바에서와같이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자고 합니다. 므리바는 다툼이라는 뜻입니다. 완악하게 하지 말라는 것은 딱딱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살갗도 상처를 받으면 딱딱해집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상처를 받으면 딱딱해집니다. 힘든 상황에서는 마음이 딱딱해지기 쉽습니다.
마음이 딱딱하면 다투고 혈기를 부르고 싸우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생활할 때 물이 없자 모세가 물을 주지 않는다고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에는 모세에게 바위를 치면 물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서 계신 바위를 치자 하나님이 친히 매를 맞으심으로 물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물이 없자 두 번째로 모세와 다투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모세에게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한 번 죽는 것으로 족합니다. 다시 바위를 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번에는 혈기를 부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도 내가 물을 내랴 하며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물을 내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자신이 물을 주는 것처럼 혈기를 부렸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물을 주셨습니다. 물을 주셔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셨습니다.
므리바는 맛사라고도 합니다. 맛사는 유혹, 시험이라는 뜻입니다. 사단은 인간의 목마름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도록 유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교만해져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가 하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날 때 혈기를 부려서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하게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만 경배함으로 사단의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광야 같은 세상에서 혈기를 부리지 않고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
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너희 조상들이 내가 행한 일을 보고서도 나를 시험하고 조사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하며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광야에서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며 바위에서 샘물나게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지켜주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로의 손에서 인도하시고 홍해를 가르신 능력의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주신 사랑의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고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할 때 우리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혈기 부리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고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놀라운 일을 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놀라운 일을 하시고 앞으로도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자)
10-11절을 보십시오. “ 내가 사십 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길을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왜 40년 광야 생활했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십년 동안 그 세대로 말미암아 근심하셨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므로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길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가데스 바데아 사건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가데스 바데아에서 원망보다 더 깊은 불신의 죄를 지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데아에서 12명의 두령을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보냈습니다. 그때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열 두령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크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가나안 백성만 보고 가나안 땅을 악평하였습니다. 가나안 백성을 크게 보고 철병거를 보고 자신들은 메뚜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밤새 울며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안식의 땅 가나안을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가나안 정탐한 하루를 일 년으로 계산하여 40일을 정탐했으니 40 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들의 문제는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작게 본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것입니다. 열 두령의 말대로 가나안 땅 주민이 크고 네피림 족속인 것은 맞습니다. 철병거가 있는 것도 맞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을 삼키려고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크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신으로 안식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광야 생활을 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나 40년 광야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40년 광야 생활을 하게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꿀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졌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모세오경을 썼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먹고 사는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습니다. 그들은 구름이 뜨면 가고 구름이 머물면 머무는 순종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훈련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광야 같은 로마 감옥에서 생활하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옥중 서신을 썼습니다.
사도 요한은 광야 같은 밧모섬에 귀양을 갔습니다. 귀양 간 밧모섬에서 요한계시록을 썼습니다. 이들은 광야에서 꿀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광야와 같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광야를 지나면서 많은 꿀을 취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일상이 기적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면 먹고 사는 것이 기적이듯이 우리는 지금 숨쉬고 만나는 것이 기적입니다.
작가 박완서는 허리를 다치고 나서 일상이 기적이라는 글을 썼습니다. “기적은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 바꾸는 데는 3천만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원, 간 이식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코로나의 광야를 지나며 우리의 일상이 기적인 것을 깨닫습니다. 이를 깨달을 때 우리는 일상을 매일 감격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결론 광야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우리는 광야에서 우리를 돌보신 하나님을 기억해야합니다. 우리는 영적인 가치관을 가져야합니다.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영적인 가치관을 가져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광야 훈련을 시키는 것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광야를 지나며를 쓴 장진숙 작곡가는 의사와 연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부모의 반대로 결혼이 깨어졌습니다.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갑상선암이 걸리고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때 주님이 뭐졸꼬? 하는 음성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는 시부모를 가진 남편과 작곡하는 영감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대장금을 연출한 시아버지를 주셨습니다. 시댁의 것이 다 너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사랑하는 시아버지를 주셨습니다. 광야를 지나며와 같은 아름다운 찬양을 만들었습니다.
멕시코의 김윤상 선교사는 교통사고로 한달 넘게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선교사인 부모님과 주위 사람들이 그를 위해서 감사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누워있는 한 달 동안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그를 위해서 기도하다고 암이 나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에게 병원비를 내주고 거기에 0을 하나 더 붙여 돈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회복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도 예수 피를 통한 구원을 깨닫고 살아났습니다. 광야의 무의식 상태에서 감사 기도를 받으시고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지금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광야를 지나며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주십니다.
아멘
2021ubf추수감사제 메시지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시편 95편 강해 광야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
말씀 시편 95편 1-시편 95편 11
요절 시편 95편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