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위상과 가치와 능력을 다운시켜 말하는 게 욕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히브리인의 욕설)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태복음 5:22) 하셨고 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마태복음 12:36)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질을 당하였을 때의 올바른 대응책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베드로전서 3:9) 하셨고 또, "때리는 자에게 뺨을 향하여 수욕으로 배불릴찌어다"(예레미야애가 3:30) 하셨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악행이 바로 하나님의 존귀한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무시해 얕잡아 보고 한낱 짐승들로 취급해 하대하는 짓입니다. 반면에 가장 큰 선행(善行)은 바로 마귀에게 속았던 모든 습관들을 배설물 취급해 버리고 예수님의 언행으로 새롭게 태어나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때문에 예수님은 자기를 욕하는 자에게 복을 빌고 때리는 자에게 빰을 내밀라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하신 뜻은 사람이 갖추어야 할 본래의 성품이 흉악한 들짐승 뱀의 습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다운 거룩한 성품이었다는 것을 깨우쳐 복원시켜 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만민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생각 자체를 미친 짓으로 취급해 버립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의 대화 중엔 욕설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떤 공식 석상에서는 애써 존칭을 쓰고 좋은 말씨를 사용하지만, 일단 사사로운 장소에서는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나는 대화도 있습니다. 남을 욕하여 하대하는 사람이든 또 욕을 먹고 억울하다 하여 욕하는 사람의 욕보다 더 심한 욕으로 보복해 갚으려는 사람이든 간에 그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야 할 사람다운 성품이 아니라, 오직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짐승들의 날카로운 성깔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의와 진리로 이웃을 존대하는 의인이 되어야만 성공한 사람일 뿐, 마귀의 종들이 되어 자신과 이웃을 하대하는 악인이 되면 실패한 사람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칭과 표준어를 한낱 공식 석상에서만 사용하는 허구로만 취급하고 일상 생활에서는 사용치 않습니다. 허물 없고 친한 사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이들의 친분관계는 '욕설과 싸움질로 대하는 짐승들'이란 뜻입니다. 즉 자신의 됨됨이가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들짐승 뱀(사단)의 새끼라는 뜻입니다. 개나 이리 새끼들의 정다운 표현 방법은 서로 짖고 물어 뜯고 엉켜 싸우는 짓이며, 그렇게 지내다가 막상 이권에 관한 일이 눈 앞에 전개되면 지금껏 연습한 싸움질을 곧바로 실전에 옮깁니다. 이것이 짐승들의 친분 관계입니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란 사람들이 자신들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형제관계(친분관계)를 배워 실행치 않고, 멸망할 짐승들의 친분 관계만 배워 갖고 살려하니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친한 사이니까 허물 없이 욕질할 수 있다.'는 생각은 흉악한 짐승들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의 생각이 아닙니다. 존칭과 표준어는 친할수록 더욱 사용해야 합니다. 욕질할 수 있는 친구지간은,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전쟁을 눈 앞에 두고 잠시 말로써 희롱하고 있는 원수지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래끼리만 욕질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급에 속한 창조주 하나님과 나라와 국민과 직장과 사회의 어른들까지 욕질로 대화하려 합니다. 윗분들에게 하는 욕질은 또래끼리 사용하는 그런 험구가 아닙니다. 그런 험구로 윗분들을 욕하다간 받을 대가가 두려워 못하고, 가장 교묘한 방법으로 인간의 법망을 벗어나면서도 내용만은 저질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욕하는 짓들을 보십시오. 즉 자신들이 먼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정직과 거룩함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욕하는 짓입니다. 이런 욕질로 인한 죗값으로 흉악한 문재인 같은 자가 떨치고 일어나 자신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으면, 그때는 또 심히 고통스러워 하며 "이놈의 세상, 악한 놈이 더 잘되고, 도적질하고 속여 먹는 놈이 더 잘살고 출세하니 어떻게 된 심판이냐?"며 한탄합니다. 이런 넋두리는 온통 하나님을 욕하는 짓입니다. 이런 식으로 푸념하는 그들 마음이 바로 "하나님은 악하여 거짓말하고, 무능하고, 도적질하고, 반역하는 자들의 편을 드는 분이시다."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심히 욕질하는 죄악입니다.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말하기를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말라기 2:17) 하심 같이, 그 나라 그 사회 풍조 속에서 "사기꾼들이나 도적들이 잘되고, 또 역적 정치인들이 더욱 재물과 권력을 찬탈해 갖게 되고, 또 속이고 빼앗아 먹는 것이 더욱 맛이 있다 하고, 또 비밀 요정 고급 창부와 어울려 노는 것이 최고의 낙이다."라는 그 습관과 유행어 속에는 온통 하나님과 그 나라 전체 국민을 쓰레기 저질들로 취급해 욕하는 짓입니다.
이런 욕은 법에 의해 처벌될 수 있는 험구보다 더 악한 욕이요, 그 영향력은 등 뒤에서 찌르는 칼과도 같습니다. 이런 숨은 욕질을 심판할 법이 세상엔 없으나,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숨은 욕질도 심판하십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왜 흉악한 살인마 김일성 일가들을 날벼락을 쳐 죽이지 않는지 그 이유는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었는데, 사람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는 배우지 않고 무작정 좁디좁은 자기 생각만을 근거로해 하나님을 원망하니 이것이 하나님을 욕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채찍과 몽둥이 같은 이성 없는 집승(빨갱이)들을 항상 비치해 두고 이런 욕을 하는 자들을 매질합니다. 그러므로 매맞을 짓을 무수히 저지르고 회개치 아니하면, 그게 바로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민족의 대재앙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법망을 교묘히 벗어나서 사람들에게 형벌 받지 않는 모든 욕질은 하나님이 모두 저장해 두시고 형벌하십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을 욕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나라의 국법이 심판해 주며, 그 나라 국법이 심판해 주지 않으면 타국의 총검이 침범해 들어와 심판하며, 타국의 총검이 침범해 들어와 심판해 주지 않으면 세계 최강대국이 침범해 들어와 심판하며, 세계 최강대국들도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한 사람의 억울한 사정을 심판해 주지 못하면, 그 때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친히 심판해 주십니다. 그래서 어떤 죄는 드러나 심판을 받고, 어떤 죄는 친분, 권력, 재력의 비호를 받고 잠시 모면하지만, 그 모두가 더 큰 형벌을 받기 위한 죄악의 숙성하게 됩니다. 즉 알곡은 알곡대로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자라게 합니다.
내 원수가 나를 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나 자신이 나를 욕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진리가 밥 먹여 주느냐니, 정직하게 사는 것은 밥 굶는 일이라느니, 술과 담배와 외도도 못하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느니, 또 남북통일이 되면 이북에 가서 명승지 요처요처에다 고급 요정, 술집, 카바레, 모텔을 지을 생각부터 먼저 하며, 또 아름다운 이북 여자를 고급 요정에 팔아먹을 궁리부터 하는 자들, 이런 자들은 스스로 '나는 이족 오랑케'로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남이 나를 욕하는 것은 거짓일수도 있지만, 자기가 자기를 욕하는 것은 자신의 실체를 그대로 나타내 주장하는 가장 정확한 자기 이력서입니다. 즉 개 짓하는 자는 '나는 사람이 아니라 개'라고 주장하는 짓입니다.
쌍스러운 말투로 남을 비하하는 것도 욕이지만, 값과 기능과 위상을 낮추어 책정하거나 격하시키는 것도 욕질입니다. 쌍스러운 욕질은 주로 시정잡배들이 즐겨 사용하고, 값과 기능과 위상을 떨어뜨리는 고상한 욕질은 주로 식자들이 즐겨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최초로 욕을 개발한 자가 들짐슴 뱀(사단)입니다. 그는 자기 지혜에 스스로 도취되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값을 떨어뜨리는 고상한 욕질을 하였으나 그런 욕질은 엊그제 지음받은 사람들로서는 도무지 깨달을 수 없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야 할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효자들이 되게 하였으니,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불효자들이 되도록 욕한 짓입니다.
시정잡배들이 사용하는 추악한 욕질에 비해, 식자들이 사용하는 고상한 욕질이 더욱 사람과 사회를 험악한 재앙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이 두 가지의 욕질로 그 사람의 인격 수준도 결정되지만, 그러나 이런 인격적인 격차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직 영혼의 손상은 엄청나게 큽니다. 추악한 욕질은 주로 자기 자신이 천박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려는 패자들의 마지막 배수진이지만, 반대로 고상한 욕질은 자기 자신이 식자임을 전제하고 상대방을 무지하다 하여 가르치거나 잘난체 하는 사기행각입니다. 추악한 욕질과 고상한 욕질, 이 둘 중에 어떤 욕질이 천하 만민들을 근원적으로 패망케 하겠습니까?
금을 보고 '야, 이 쓰레기야!'라고 욕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이미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잘못되어 있음을 전제로 하고 '사실 너는 금이 맞아, 그러나 지금 나는 속이 상해 제 정신이 아니니깐 너를 보고 쓰레기라고 하는거야, 그러니 이런 모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나에게 접근하여 금 행세를 하지 마! 알았어?'라는 배수진을 친 방어 전술입니다. 그러나 금을 보고 '이것은 동(銅)이군요.'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이미 식자임을 전제하고 마음 속으로는 '사실 너는 금이 맞어, 그러나 금이라고 제대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너의 행실을 본받으려 하기 때문에 동(銅)이라고 하는 거야.' 하는 것은 진짜 금의 가치를 떨어뜨려 금의 행세를 하지 못하게 하는 욕질입니다.
금을 보고 '쓰레기다' 하는 것과 '동(銅)이다' 하는 것 중 어느 쪽이 금에게 근원적인 욕이 되겠습니까? 말 자체를 두고 보면 쓰레기라고 말한 것이 더 큰 욕이 되지만, 그러나 쓰레기라 욕한 사람은 금 자체보다 자기 자신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자인하기 때문에 사실은 금을 욕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비참함을 과격한 반응으로 나타내는 푸념입니다. 그러므로 금을 동으로 취급하는 식자야말로 금의 가치를 참으로 격하시키는 욕질입니다. 마찬가지로 악에 치우쳐 '예수는 사기꾼이다.'라고 말하는 욕질보다, 식자층들이 '예수는 석가, 마호멧, 공자, 소크라데스, 최재우 같은 동급에 속한 한낱 성자에 불과하다.'는 욕이 더욱 예수님을 하대하는 욕질입니다.
제발 악마의 궤계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욕질이 바로 금(재물, 권력)보다 더 귀한 예수님을 한낱 은이나 동으로 취급해 그 값과 기능과 위상을 떨어뜨리는 고상한 식자들의 고상한 욕이라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을 잡아다 죽이는 종교 박해 시대가 끝났고 지금은 신앙의 자유시대라 하며 안일한 생각에 빠진 분들이여! 총검에 의한 무자비한 살육의 박해보다도 품위를 갖춘 고상한 욕질에 의한 살육이 더욱 극심합니다. 뱀들의 혓바닥에 의해 정금보다 귀중한 믿음이 심히 부패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고상한 욕질은 마귀가 처음 사용한 살인 흉기로서 지금은 핵무기처럼 발전해 사람들의 공교육으로 버젓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욕쟁이 마귀는 하나님을 최초로 욕하였고, 그의 욕질은 쌍스러운 말투가 아니고 품위를 갖춘 고상한 말투였기 때문에 어리석은 아담과 하와는 그 말이 하나님과 자신들을 욕하는 말인 줄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욕의 목적은, 값과 기능과 위상을 떨어뜨려 그것을 버리게 하는 일입니다. 금을 은이나 동이라고 말하면, 그 금을 갖고자 하는 마음이 바뀌며, 사단이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하대하면 사람들이 정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도록 마음이 바뀌게 됩니다. 지금도 마귀는 신학자들을 시켜 하나님(예수님)을 욕합니다. 즉 예수님을 슈퍼맨으로 숭상하기는 해도 그의 언행만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불가능의 말로 가르칩니다.
세상이 온통 창조주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언행을 좇는 성도들의 말과 행동을 무시해 욕합니다. 이들이 세상에 알려진 목사와 전도자들을 이용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욕합니다. 그러면 지렁이 같고 소경 같은 교인들은 그 말이 욕설인 줄 모르고 즐겨 따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에덴동산의 때처럼 칼날보다 더 잔혹한 마귀의 혓바닥 비수에 의해 수많은 교인들이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기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아니하니"(예레미야 6:10) 하심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책망을, 죄인들은 자신들을 욕하는 말로 취급해 발길질 합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믿음으로 새출발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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