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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기운을 전해 받은 개미가 더듬이를 가볍게 떤다. 마치 오
랫동안 눈에 덮여 있던 자동차에 다시 시동을 걸 때 자동차가 떠는
모습 같다. 수개미는 같은 몸짓을 여러 번 되풀이한다. 일개미를 문
지르고 따뜻한 침을 발라준다.
생명이 되살아난다. 드디어 원동기가 움직이듯 생명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로써 한차례의 겨울이 지나간 것이다. 마치
그런 '가사상태'따위는 겪은 적도 없다는 듯이 모든 게 다시 시작되고 있다.
수개미는 열 에너지를 전해주려고 일개미를 다시 문지른다. 일개
미는 이제 원기를 회복했다. 수개미가 계속 애쓰고 있을 때, 일개미
는 더듬이를 수개미 쪽으로 뻗는다. 일개미도 더듬이로 수개미를 간
질인다. 일개미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일개미의 더듬이가 수개미의 머리를 벗어나 더듬이의 첫번째 마디
를 어루만지며 그의 나이를 읽는다. 그의 나이는 173일. 앞을 못 보
는 일개미이지만 두 번째 마디에서 그의 계급을 알아낸다. 그의 계
급은 생식 능력이 있는 수컷, 세 번째 마디에서는 그가 속한 종과
도시를 알아낸다. 어미 도시 벨로캉에서 출생한 숲속 불개미. 네번
째 마디에서는 산란 번호를 읽어내는데, 산란 번호가 그의 호칭이
된다. 그는 가을초부터 계산하여 327번째로 산란된 수개미 327호이다.
일개미는 그쯤에서 후각 정보의 해독을 멈춘다. 다른 마디에서는
후각 정보를 방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마디는 동료들끼리
길 안내를 할 때 방출하는 냄새 분자를 감지하는 데 쓰인다. 여섯
번째 마디는 간단한 대화를 할 때 사용되고, 일곱 번째 마디는 교미
를 할 때와 같은 복잡한 대화에 사용된다. 여덟 번째 마디는 어머니
인 여왕개미와 대화하기 위한 것이다. 도톰한 끄트머리를 이루는 나
머지 세 마디는 자그마한 곤봉 구실을 한다.
이상으로 일개미는 수개미 더듬이의 위쪽 반을 이루는 열한 개의
마디를 다 더듬어본 셈이다. 그러나 일개미는 그에게 해줄 말이 아
무것도 없다. 그래서 일개미는 그의 곁을 떠나 이제는 스스로 몸을
덥히려고 도시의 지붕 위로 나간다.
수개미도 나간다. 열 전달하는 일이 끝났으니 이제는 보수 작업을
할 차례다!
위에 다다르자 327호는 지난 겨울 동안에 생긴 피해 상황을 확인
한다. 벨로캉은 악천후에 따르는 피해를 가장 적게 하기 위하여 원
뿔꼴로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겨울엔 여지없이 피해를 당한다. 바람
과 눈과 우박 때문에 잔가지들의 첫번째 켜가 벗겨졌다. 새들이 내
갈긴 똥 때문에 몇 개의 출구가 막혀버렸다. 빨리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327호는 노르께하고 커다란 오물 덩어리가 있는 쪽으로 달려
들어서 큰턱으로 그 단단하고 악취나는 것을 치우기 시작한다. 건너
편에서는 벌써 안쪽으로부터 오물을 파내고 있는 다른 개미의 그림
자가 비쳐오고 있다.
문에 빠끔히 나 있는 렌즈 구멍이 침침해졌다. 그 구멍으로 누군
가가 문 밖을 엿보고 있었다.
"누구세요?"
"구뉴라는 사람인데요.... 책 장정하는 일 때문에 왔어요."
문이 반쯤 열렸다. 구뉴라는 사람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 머
리의 사내아이가 나타나자 눈길을 아래로 떨구다가, 자그마한 개가
나타나자 눈길을 더 낮추었다. 개가 사내아이의 다리 사이에 코를
들이밀고 아르릉대기 시작했다.
"아빠 안 계셔요!"
"그러냐? 웰즈 교수께서 우리 가게에 들르시기로 하셨는데...."
"웰즈 교수는 저희 종조부이신데, 돌아가셨어요."
니콜라가 문을 닫으려 했지만 구뉴라는 사내는 완강하게 발을 들이
밀었다.
"진심으로 조의를 표해야겠구나. 얘야. 그런데 혹시 그분이 서류
가 잔뜩 들어 있는 커다란 서류 묶음 같은 거 남기시지 않으셨니?
내가 책 장정하는 사람이거든. 그분이 나에게 돈을 미리 주시면서
연구 노트들을 가죽 표지로 장정해 달라고 하셨단다. 내 생각에 그
분이 백과사전 같은 것을 만들려고 하셨던 것 같은데. 우리 가게에
들르시기로 해놓고선 통 소식이 없어서 말이야...."
"그분은 돌아가셨다고 했잖아요."
남자는 무릎으로 문을 밀면서 발을 더 들이 밀었다. 아이를 떼밀
고 당장이라도 들어올 기세였다. 왜소한 개가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동작을 멈추었다.
"돌아가셨다 해도 약속은 약속이지. 그분이 약속을 안 지키시게
되면 내가 상당히 난처해지는데..., 그렇지 않겠니? 미안한 얘기다
만 확인 좀 해다오. 어딘가에 틀림없이 빨간색으로 된 커다란 서류
철이 있을 게다."
"백과 사전이라고 그러셨어요?"
"그래, 그분이 그 서류 묶음 전체에다 손수 이름을 붙이시기를,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 사전'이라고 하셨단다. 그렇지만
표지에 그렇게 적혀 있지는 않을 것 같구나...."
"그레 우리 집에 있다면 우리가 찾아냈어도 벌서 찾아냈을 거예요."
"자꾸 이래서 미안하다만...."
왜소한 푸들 종의 개가 다시 짖어댔다. 사내가 조금 뒷걸음을 쳤
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아이는 남자를 문 밖으로 쫓아냈다.
이제 온 도시가 잠에서 깨어났다. 열을 전달하는 개미들이 통로를
가득 매운 채 동포들의 몸을 덥히느라고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런
데 몇 군데 너른 마당에는 아직도 꼼짝 않고 있는 개미들이 눈에 띈
다. 전열 개미들이 그들을 흔들어보기도 하고 때려보기도 하지만 허
사였다.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그들은 끝내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들은 죽은 것이다. 겨울잠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심장 박동을
멈춘채로 3개월을 지내는 일에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인데, 그들은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도시를 감싸고 있는 대기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동안에 쓰레기터에 버렸다. 죽은 세포를 털어내
듯 아침마다 시체들을 다른 오물과 함께 치워내는 것이 그 도시의
일상적인 일이다.
불순물을 깨끗이 제거해 낸 뒤의 혈관처럼, 개미 도시의 맥박이
뛰기 시작한다. 여기저기서 다리가 꿈틀거린다. 턱으로 땅을 후비고
더듬이를 흔들어 정보를 주고받는다. 모든 것이 이전의 모습대로 되
돌아 온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겨울이 이전의 모습대로.
수개미 327호가 자기 몸무게의 60배는 족히 나갈 잔가지 하나를
운반하고 있는데, 500일 이상 된 병정개미 하나가 다가간다. 병정개
미는 그의 주의를 끌려고 더듬이 끄트머리로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
린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든다. 병정개미는 자기 더듬이를 그의 더
듬이와 맞댄다.
병정개미는 수개미에게 지붕 수리하는 일을 그만두고 한 무리의
개미들과 함께 사냥을 나가자고 권한다.
수개미가 병정개미의 입과 눈을 더듬으며 묻는다.
'뭘 사냥하러 나간단 말인가?'
병정개미는 제 가슴마디의 주름 속에 갈무리해 둔 말라비틀어진
고깃조각의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이 고기는 겨울이 되기 바로 전에 찾아낸 건데, 이게 있던 장소
는 정오의 태양을 기준으로 해서 서쪽으로 23도 되는 지역이었던 것
같다.'
수개미가 고기 맛을 본다. 딱정벌레의 고기가 틀림없다. 더 정확
하게 말하면 딱정벌레목 중에서도 잎벌레의 고기이다. 이상한 일이
다. 정상대로라면 딱정벌레목은 아직 겨울잠을 자고 있을텐데 지금
사냥을 하자니.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불개미는 기온이 12도가 될
때 잠에서 깨어나고, 흰개미는 13도 파리는 14도, 딱정벌레는 15도
가 되어야 깨어나지 않는가.
늙은 병정개미는 그런 반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개미에게 설명한다.
'이 고깃덩이는 특별한 지역에서 나온 거다. 지하수 때문에 비정
상적으로 따뜻해진 지역이지. 거기에는 겨울이 없다. 그런 좁은 지
역의 미기후에서는 특이한 동물상과 식물상이 나타나는 법이다. 게
다가 갓 잠에서 깨어난 우리 도시의 동포들이 너무 굶주려 있지 않
은가. 도시가 다시 움직이려면 빨리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한다. 햇
볕의 온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수개미가 병정개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병정개미 계급에 속하는 스물여덟 마리의 개미들로 원정대가 꾸려
졌다. 수개미에게 사냥을 권유했던 개미가 그렇듯이 원정대의 대부
분은 비생식 계급에 속하는 나이 많은 개미들이다. 수개미 327호만
이 유일하게 생식 계급에 속해 있다. 수개미는 체처럼 생긴 그의 겹
눈을 통해, 조금 떨어져 있는 동료들을 살펴본다.
수천 개의 낱눈이 모여 있는 개미의 겹눈에는 똑같은 상이 수천
개 맺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낱눈이 감지한 상이 조화를 이루
어 모자이크와 같은 상이 맺힌다. 그래서 개미는 사물의 세밀한 생
김새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 대신 아주 작은 움직임도
감지해 낼 수 있다.
원정에 나선 이 탐험가들은 한결같이 원거리 여행에는 이골이 나
있는 듯하다. 육중한 그들의 배에는 개미산이 가득 들어 있다. 그들
의 머리에는 아주 강력한 무기들이 달려있다. 갑옷과도 같은 그들의
가슴마디 등판에는 여러 전투에서 적들의 위턱에 맞아 긁힌 자국들
이 남아 있다.
그들은 몇 시간 전부터 앞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같은 연방에 속해 있는 여러 도시들을 지나쳤다. 도시들은 공
중으로 높이 솟아 있기도 하고 나무 밑에 세워져 있기도 하다. 모두
'니'왕조의 자매 도시들로서, 그 면면을 보자면, 곡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요뒬루베캉, 2년 전에 용맹한 병정개미 군단을 보내 남쪽
흰개미 도시들의 동맹을 정복한 바 있는 지울리에캉, 전투용의 고농
축 개미산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화학 실험실로 유명한 제디베이나
캉, 연지벌레의 분비꿀을 발효시켜 나무진 맛의 인기 좋은 술을 생
산하는 리이우캉 등이다.
이렇듯 불개미들은 도시를 이루어 살 뿐 아니라, 몇 개의 도시들
이 모여 연방을 이루기도 한다. 단결은 힘을 낳는 법이다. 쥐라 산맥
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대규모의 불개미 연방들이 발견되었다. 그 연
방들은 24만여 평의 표면적에 걸친 1만 5천 개의 개미집들을 포괄하
고 있었고, 전체 연방원 수가 2억이 넘었다.
벨로캉은 아직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벨로캉은 역사가 길지
않은 연방으로서 시초의 왕조가 세워진 지는 5천 년이 되었다. 이
지방의 전설에 따르면, 옛날의 어떤 암개미 하나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여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자신의 연방을
찾아가지 못한 암개미는 벨로캉을 건설했고, 벨로캉으로부터 수백
세대에 걸쳐 '니'왕조의 여왕들이 태어나고 현재의 연방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길 잃은 개미'라는 뜻을 가진 벨로키우키우니는 그 맨 처음 여왕
의 이름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앙의 둥지를 차지한 여왕들이 모두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함으로써 그것은 벨로캉 중심 도시의 여왕을 일
컫는 이름이 되었다.
현재 벨로캉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중앙의 커다란 도시 하나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64개의 분가도시들뿐이다. 그럼에도 벨로캉은
퐁텐블로 숲의 그 구역에서는 가장 강력한 정치력을 가진 연방으로
이미 자지를 굳혀가고 있다.
탐험에 나선 개미들이 여러 동맹 도시들을 거쳐 벨로캉 연방에서
가장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라숄라캉을 지나자 작은 둔덕이 나타났다.
여름 보금자리로 쓰이거나 '전진기지'와 같은 구실을 하는 둔덕이
다. 그곳은 아직 텅 비어 있지만, 머지 않아 사냥과 전쟁이 시작되
면 병정개미들로 북적댈 것임을 327호는 알고 있다.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곧장 나아간다. 터키 옥처럼 푸르른 넓은 풀
밭을 지나고 가장자리에 엉겅퀴가 늘어선 언덕을 내달리고 나니 벨
로캉의 사냥 구역 밖이다. 멀리 북쪽으로 보이는 것이 적들의 도시
시게푸라는 것을 그들은 이내 알아차린다. 그러나 이 시간이면 시게
푸의 거주자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계속 나아간다. 주위의 곤충들은 아직 겨울잠에 빠져 있
다. 일찍 일어난 몇몇 곤충들이 땅굴 밖으로 이따금 머리를 내민다.
그 곤충들은 붉은 갈색의 갑옷 투구를 발견하자 이내 겁을 집어먹고
몸을 숨긴다. 개미들이 신명을 낼 때가 있다는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개미들도 신명을 내며 무언가를 할 때가 있다. 특히
더듬이까지 완전 무장을 하고 이렇게 행군을 할 때가 그런 때이다.
먹이 탐색에 나선 개미들이 땅 끝이라고 알려진 곳에 다다랐다.
이제 분가 도시 따위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전진 기지 같은
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뾰족한 다리로 파놓은 아주 작은 오솔길
조차 없다. 냄새를 뿌려 동료들을 이끌던 옛 길의 어렴풋한 흔적이
겨우 남아서 옛날에 벨로캉의 개미들이 그쪽으로 지나갔음을 말해주
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머뭇거린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뭇잎들의 냄새를 맡아
보지만, 그 냄새는 그들의 후각으로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것
이다. 그 나뭇잎들이 지붕처럼 그들을 덮고 있어서 빛이 스며들지
못하고 있다. 개미들이 그 나뭇잎 위로 점점이 수를 놓듯 올라서자
그 거대한 식물이 개미들을 움켜잡으려 한다.
지하실에 내려가지 말라고 식구들이 잘 알아듣도록 얘기를 하긴
해야 되는데 어떻게 한다?
그는 저고리를 벗어 내려놓고 가족들을 껴안으며 말했다.
"짐은 다 풀었어?"
"예, 아빠."
"고생 많았군, 그런데 말이야, 부엌 좀 살펴봤어? 안쪽에 문이 하
나 있던데."
그 말에 뤼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한다.
"그렇지 않아도 당신한테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요. 그게 지
하실로 통하는 문 같은데, 열어보려고 했지만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요. 문에 커다란 틈새가 하나 나 있길래 잠깐 들여다보았는데, 속이
깊어 보이던데요. 당신이 자물쇠를 비틀어 따야 되겠어요. 그래도
자물쇠장이 남편을 둔 게 쓸모가 있긴 있군요."
뤼시는 빙긋 웃으며 다가와 그의 품에 안겼다. 뤼시와 조나탕이
함께 살아온 세월이 이제 13년이 되었다. 그들은 지하철 안에서 우
연히 만나 인연을 맺었다. 어느날 어떤 부랑아가 너무도 할 일이 없
었던 나머지 지하철 차량 안에다 최류탄을 던져넣었다. 그러자 승객
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고 심하게 기침을 해대며 바닥에 넘어졌다.
뤼시와 조나탕도 서로 포개지듯 넘어졌다. 콜록거림이 멎고 눈물이
잦아들었을 때 조나탕은 뤼시에게 집까지 바래다주겠노라고 제안을
했다. 얼마 뒤에 조나탕은 자신이 꾸려나가던 유토피아적인 공동체
로 뤼시를 초청했다. 그곳은 그가 공동체 운동 초창기에 만든 공동
체 중의 하나로서 파리 시내 북역 근처에 있던 집이었다. 그러고 나
서 3개월 뒤에 둘은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자물쇠를 딸 필요가 없어."
"무슨 얘기예요? 자물쇠를 딸 필요가 없다니요?"
"그래 자물쇠 채운 데로 그대로 두고 지하실을 쓰지 말자고, 지하
실 얘기는 이제 꺼내지 않기로 해. 거기에 가까이 가지도 말고 문을
열겠다는 생각일랑 아예 접어두자고."
"지금 농담하는 거예요? 무슨 예긴지 좀 알아듣게 해봐요."
지하실에 내려가는 것을 막으려면 그럴싸한 핑겟거리가 있어야 하
겠는데, 조나탕은 미처 그것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 얼떨결에 말을
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자기 의도와 정반대가 되는 결과를 빚고 말았
다. 아내와 아들의 호기심만 잔뜩 부추긴 셈이었다. 이제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삼촌 주변에 뭔가 불가사
의한 것이 있는데, 지하실에 내려가는 게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분이
우리에게 알리고 싶어하셨다고 설명할까?
그건 식구들을 설득할 만한 설명이 못 된다. 기껏해야 쓸데없는
미신이라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논리적인 것을 좋아하는 뤼시와
니콜라가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일 턱이 없다.
"공증인이 나한테 귀띔을 하더라고"
조나탕이 밑도끝도없는 소리를 했다.
"당신한테 누가 뭘 귀띔했다는 거예요?"
"저 지하실에 쥐가 우글거린다는 거야!"
"으악! 쥐가요? 그러면 그놈들이 틀림없이 문 틈새로 나올 거예요."
아이가 볼멘소리를 했다.
"걱정할 것 없어. 틈새를 다 막으면 되니까."
조나탕은 자기가 지어낸 말이 조금 먹혀들어가자 마음을 놓았다.
용케 쥐를 생각해 낸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았다.
"좋아. 이제 이유를 알았으니까 아무도 지하실에 접근하면 안돼,
알았지?"
그렇게 말하고 그는 욕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뤼시가 곧 그
의 뒤를 따라왔다.
"할머니 뵈러갔었지요?"
"그래, 맞아."
"오전 내내 거기서 시간을 보낸 거예요?"
"그래, 그것도 맞아."
"계속 이렇게 허성 세월만 할 거예요? 피레네 산맥 농장에서 당신
이 다른 사람들한테 했던 얘기 생각 안 나요? '무위는 모든 악행의
근원이다.'라는 얘기 말이에요. 다른 일을 좀 찾아봐요. 이제 가진
돈도 다 떨어져가요."
"숲 가장자리 멋진 동네에 66평이나 되는 집을 물려받은 마당에,
일타령만 할 거야?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기면 안 되겠어?"
그는 아내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자 뤼시가 뒤로 물러서며
대꾸했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몰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예요. 미래도
생각해야죠. 내가 직장을 가진 것도 아니고 당신도 실업 상탠데, 1
년 후에는 어떻게 살겠어요?"
"아직 저금이 남아 있잖아"
"정신차려요. 몇 달 근근이 살아갈 돈밖에 없어요. 그 다음에는."
뤼시는 자그마한 주먹을 양허리에 대고 가슴을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여보, 당신은 밤에 위험한 지역에 안 가려고 하다가 일자리를 잃
었어요. 그건 좋아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른 데
가서 다른 일을 찾아볼 수는 있는 거 아니예요?"
"물론이지. 일거리를 알아볼거야. 마음이 내킬 때까지 내버려두면
내가 다 알아서 할거야. 한 달쯤 있다가 구직 광고를 낼께. 약속하겠어."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금발의 아이가 욕실 안에서
고개를 내밀고, 곧 이어 플러시 천을 뒤집어쓰고 서 있는 듯한 네
발 짐승이 나타났다. 니콜라와 우아르자자트였다.
"아빠, 조금 전에 웬 사람이 왔다 갔는데요. 책 장정하는 일 때
문이라고 하던데요."
"책? 무슨 책을 장정한단 말이냐?"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 에드몽 할아버지가 쓰셨다는 큰 백과사전
얘기를 했어요."
"그래? 그거 참.... 그 사람 집 안에 들어오게 했니? 그리고 니콜
라하고 당신, 그런 책 본 적 있어?"
"못 들어오게 했어요. 착한 아저씨처럼 보이질 않았어요. 또 들어
와 봤댔자 책도 없는걸요...."
"그래 기특하다. 잘했구나."
낯선 사람이 어떤 책을 찾으러 왔었다는 아들의 얘기가 조나탕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넓은 집안을 온통 뒤지고 돌아다녀보았지만 헛일이었다. 그러자 그
는 한동안 부엌에 머물면서 지하실 문이며 커다란 자물쇠며 문에 난
틈새를 살펴보았다. 도대체 이 지하실에 어떤 불가사의가 숨어 있는
것일까?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