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5주간 금요일: 나는 공동 "십자가의 길"과 저녁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서 일찍 출발하였다. 마침 미사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에 마눌님에게 전화를 하였던 것인데, 체칠리아 왈 "우리 하상 엄마들끼리 "The Passion of Christ(그리스도의 수난)"을 보러 간단다.
즉시 "나도 참여하겠노라"고 말하긴 했지만, 공동 "십자가의 길"에 참여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그리스도의 수난"을 관람하는 것이 나을지 약간 고민이 되었다. 전철역에서 체칠리아와 딸 베로니까를 만나, "아줌마 부대"가 집결한 장소로 갔겠다~ 거기서 "줌마" 대접을 받으며, 동행을 권유 받았다.
아이들을 모두 한 집에 보관(?)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물론 미사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한 찝찝한 것은 있었으나) 영화관으로 향하였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미리 예고편도 보았고, 해외언론을 통한 논란도 읽었으며, 캐나다에 계신 최 종수 신부님의 관람기도 보았던터라, 게다가 자난 주 동안의 복음 묵상 등을 통해, 마치 몇 번이나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 느낌을 갖는 등 꽤나 익숙한 영화란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는 내가 그동안 숱하게 바쳐왔던, 십자가의 길과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에서, 이제까지 느껴왔던, 때론 모호하고, 때론 빈약하게 묵상되었던 생각을 깡그리 부셔뜨려 버렸다. 영화를 제작한 멜 깁슨이 매일 기도 묵상을 하며 제작하였다는 점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들릴 정도로, 복음서(특히 요한복음서)에 충실하였으나,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그저 고통의 신비 2단 "예수님께서 매를 맞으심을 묵상합시다."를 매일 바치면서도, 그 정도로 인간의 폭력이 주님께 가해졌는지 상상하지 못하였다. 또 "십자가의 길"을 그토록 고통스럽게 오르셨는지 이제야 주님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등과 다리가 찢어져 성한 데가 없었던 그 순간 로마 병사는 주님의 한 손을 끌러내어 주님을 눕힌다. 이 순간 "이제 저들의 폭력은 그치겠지..." 그러나 그런 예단은 산산히 부서지고, 주님에 대한 인간의 매질은 계속된다. 살점이 튀어오르고, 선혈이 낭자한... 얼마나 지났을까? 로마군 100인 대장은 매질을 담당하던 병사를 꾸짖는다. 명령은 "매를 치라는 것이지 때려죽이라는 것이냐?"고 묻던 그 순간에서, 우리 인류가 주님께 가했던 가학과 잔혹함을 엿본다.
그리고 키레네 사람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 지는" 장면에서 우리의 신앙여정을 보았다. 결코 우연은 아니지만, 뜻밖에 주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 특히 내가 처음 받아들였던 신앙의 옅음이 주님의 고통과 사랑을 체험하면서 우리의 자유의지로 주님과 하나되는 과정을 이 장면에서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고난의 길 중간에 주님께 가해졌던 예루살렘 시민들과 로마 병사의 폭력... 이것에 충격을 받은 시몬은 지금까지 소극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돌아선다. 주님을 위해...
이 영화를 보며 계속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안경을 들치고 눈물을 찍어냈으나, 점점 더 많은 눈물이 흐른다. 옆에 앉은 아줌마들을 의식할 겨를도 없이 손수건을 꺼내어 닦는다. 옆에 사람 쳐다볼 겨를도 없었다. 그저 시야가 흐려지는 것을 닦아내고 화면을 주시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죽으시고 묻히셨다. 격렬했던 영상과 음향은 이제 정적 속으로 잦아든다. 어둠 속에서 바위가 구르는 소리와 함께 빛은 열리고 이동하여 수의를 지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비춘다. 인간이 가했던 모든 폭력이 씻기고, 참으로 영광스런 주님께서 돌아오셨다(부활하셨다). 영화는 여기서 끝을 맺지만,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데 벌써 끝난다. 체칠리아에게 "두 시간이 넘는 영화라더니 많이 짤랐나봐!"고 했더니, "6시 반에 시작하여 9시에 끝났는데 뭐가 금방 끝났냐?"고 그런다.
내가 본 영화 중 이토록 몰입한 영화는 없었다. 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도였다. 영화 관람 며칠 뒤, 성당 봉사를 마치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본당 책임수녀님과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교환하였다. 이 자리에서 미카엘라 수녀님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처절하게 고통을 당하신 것으로 우리의 죄는 그만큼 철저하게 용서를 받았다. 우리의 신앙은, 엄숙하고, 죄스러운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을 확신하는 기쁨에 가득차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많은 참석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올 사순시기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충실하게 체험한 시기였다. 이 영화를 만든 멜 깁슨과 주연배우 짐 카비잘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들을 통해 우리가 주님께 입은 은혜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첫댓글 저는보지 않고도 영화 한편을 님덕분에 가만히 않아서 다본 기분입니당 존글 캄솨히 잘보공 갑니당 고롬~~~~~~~~~~~^*^
아직 못보았는데 마치 영화를 본듯하네요!! 긴후기 정말 감사드립니다!!
님의 신앙이 배어있는 후기, 감사합니다.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보러가야겠습니다. 덕분에 ^^*
저는 이제껏 육체적인 고통만 다가왔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 무서운 정신적 유혹과 고통에 놀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