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5일 월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이 세대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매독환주와 조백이
나는 교회에서 성경을 읽으면서 또한 유명한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많이 변해지고 있습니다. 머리에 점점 가득 차 있는 말씀이나 교회의 지식은 늘어나고, 귀는 더욱 거룩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성서묵상도 잘한다고 자화자찬하면서 나누기 시작한지도 수십 년이 되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겉똑똑이로 잘난 체하며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소학(小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금지치경자, 역중의. 연이매독환주지폐, 인인개시. 경소이재도야. 송기언사, 해기훈고, 이불급도, 내무용지조백이.”
(今之治經者, 亦衆矣. 然而買櫝還珠之弊, 人人皆是. 經所以載道也. 誦其言辭, 解其訓詁, 而不及道, 乃無用之槽粕耳.)
이 말은 <오늘날에도 경서를 공부하는 자가 많으나 매독환주(買櫝還珠)의 폐습 (실질을 버리고 겉멋 : 외화(外華)만 취하는 잘못)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이와 같다. 경서는 도(道)를 담고 있는 것이라, 문장을 외우고 그 뜻을 풀이할지라도 도(道)에 이르지 못하면 결국 쓸모없게 될 뿐이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이나 유명한 설교가의 설교를 듣고, 피정에 참석하여 강의를 듣는 사람들은 많으나 매독환주(買櫝還珠)의 폐습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는 말입니다. 매독환주(買櫝還珠)라는 말에는 이런 유래가 있습니다.
춘추시대 어떤 초나라 사람이 진주(珍珠)를 얻었는데 높은 값에 팔려고 한 가지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향내 나는 목란(木蘭)으로 작은 상자를 만들고, 다시 계초 등으로 향기를 풍기게 한 다음 진주를 상자 안에 넣고, 여러 가지 보석으로 상자의 겉을 장식해 놓으니 과연 비싼 물건으로 보였습니다. 드디어 기쁜 마음으로 진주 상자를 들고 시장에 나타나자, 정(鄭)나라 사람 한 사람이 다가와서 진주 상자를 보고 마음이 금방 끌려서 흥정을 했고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진주 상자를 샀습니다. 그는 진주 상자를 이리 보고 저리 보며 눈을 뗄 줄 모르다가 반나절이나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뚜껑을 열었는데 그 안에 진주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초나라 사람은 정나라 사람이 매우 좋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정나라 사람은 그 상자만을 사고 진주는 초나라 사람에게 돌려주고는 흐뭇하게 떠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여태껏 본 적이 없던 장면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는데 이와 같은 표현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내용의 중요성은 잊는다는 비유로, 매독환주(買櫝還珠 : 진주를 포장하기 위한 나무 상자를 사고, 그 안의 진주는 돌려준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호화롭게 꾸민 겉포장에 현혹되어 정말 중요한 실체를 잃는다는 의미로 두루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조백이'(槽粨耳)란 말은 말이나 소의 구유처럼 엄청나게 큰 귀를 가지고 있으나 진실을 들을 줄 모르는 쓸모없는 귀를 말합니다. 수십 미터나 되는 엄청난 말구유 같은 귀를 가지고 있지만 성경을 읽고 귀한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실천하고 그 말씀을 새겨 삶에 옮기지 못하면 결국 조백이(槽粨耳)와 같이 쓸모없는 귀를 가진 것이 되지요. 사실 나는 머리와 귀만 큰 조백이 인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이 세대에 주실 수 있는 표징으로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서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서 참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주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회개하고 뉘우쳐 새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말을 듣고 회개해서 재를 뒤집어쓰고 통회하면서 새사람이 되었고 효자들이 되었습니다. 사실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에 징벌을 받았으면 해서 회개하라고 하고 싶지 않아서 도망갔던 사람입니다. 그 요나와 주님을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남방 여왕은 진리의 말씀과 지혜를 얻기 위해서 먼 곳에서 모든 수고를 물리치고 솔로몬에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솔로몬과 주님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지혜로운 왕이었으나 하느님을 배반하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니네베 사람들과 남방 여왕과 같이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서 적극적이며, 실천적인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쓰고, 공부하고, 나눔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참 좋은 일이고 반가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 생명의 말씀에 맛 들려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공부를 하고자 많이 모여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매독환주와 조백이의 성경공부반이 생기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자들이 조백이가 되지 않기를 또한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형제 여러분, 22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여종에게서 났고
하나는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3 그런데 여종에게서 난 아들은 육에 따라 태어났고,
자유의 몸인 부인에게서 난 아들은 약속의 결과로 태어났습니다.
24 여기에는 우의적인 뜻이 있습니다.
이 여자들은 두 계약을 가리킵니다.
하나는 시나이 산에서 나온 여자로 종살이할 자식을 낳는데,
바로 하가르입니다.
26 그러나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의 몸으로서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27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즐거워하여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아!
기뻐 소리쳐라, 환성을 올려라, 산고를 겪어 보지 못한 여인아!
버림받은 여인의 자녀가 남편 가진 여인의 자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31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라
자유의 몸인 부인의 자녀입니다.
5,1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니 굳건히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갈라티아서 4,22-24.26-27.31─5,1)
오늘 축일을 맞는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1515년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르멜 수도회에 들어간 그녀는 평생을 완덕의 길에 정진하며 살았습니다. 데레사 수녀는 수도회의 발전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면서 많은 어려움에 맞닥뜨렸으나 주님께 매달리며 곤경을 이겨 나갔습니다. 수도 생활과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긴 그녀는 158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1622년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이 데레사 수녀를 시성하였고,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이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습니다. 성녀는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는 데레사 자매들에게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야고보 아저씨
첫댓글 買櫝還珠.... 제 인생을 한 단어로 표현한 듯하네요.
정말 귀중한 것을 볼 줄 모르고 정말 중요한 말씀을 올바르게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산나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