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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리 주님의 성호(호칭)에 관한 여러 목사님들의 Q.T
1.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 수수께끼]
소프림 시대의 랍비들은 야훼란 이름은 너무도 거룩하기 때문에 사람이 감히 입밖에 낼 수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야훼를 히브리 문자로 쓸 때 사용되는 “네 글자”를 테트라그람마톤(Tetragrammaton)이라 한다.(Webster's Dictionary)
그래서 그들은 그 이름은 대제사장만이 하나님을 부를 때 쓰도록 규정하고,
그것도 그가 대속죄일에 성소의 둘째 칸 지성소에 들어가 기도할 때에 한한다고 못박았다.
옛날 랍비들은 야훼를 “사람이 감히 말못할 이름”이라 불렀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 이름을 읽거나 말할 때 “하-솀”(ha-Sem,그 이름), 또는 “아도나이”(나의 주)로 발음한다
혹시 성경을 읽을 때 부주의하여 그 이름을 원명대로 읽거나 발음하는 실수를 막기 위해
옛 필생(筆生)들은
테트라그람마톤이나 두루마리 성경의 여백에 아도나이의 모음 기호를 표시해 놓는 습관이 있었다.
이런 배경을 모르는 초기의 영어 성경 번역인들은
갈라티누스의 전철을 따라 아도나이의 모음 부호를 “야훼”란 단어에 사용되는 네 자음 글자 Y,H,W,H와 결합시켜서
Jehovah란 이름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학자들은 “여호와”를 “야훼(Yahweh)”또는 “야웨”로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은 “여호와(Jehovah)”에 익숙한 사람들의 귀에는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70인역」을 만든 이들은 이 이름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 대부분 퀴리오스(Kurios)란 말로 옮겼다
(단,잠29:26에서는 데스포테스[Despotes]를 썼으므로 유일한 예외).
퀴리오스(Kurios)는 “주(主)”란 말이다.영어성경은 그 전통을 전수하여 Load로 썼다.
2. [어학사전,KCM사전] [히브리어 Emmanuel or Immanuel]
뜻 :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계신다
이사야가 수리아 에브라임 연합군에 놀란 아하스에게 임마누엘이 나실 것을 예언.
하나님이 그 백성과 같이 계실 것을 선언했으나 아하스는 믿지 않았다 (사 7:1-25).
그리고 그 아들의 성호를 임마누엘이라고 붙였다(사 7:14, 9:8).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임마누엘의 실현이라고 신약은 증거했다 (마 1:23).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메시아의 이름.(Name,聖號)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으로, 신약 성경의 <마태복음>에서는 그리스도가 예언된 구주(救主)라 하였다.
[이사야] 7:14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성호를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18~25
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그 성호를 예수님이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성호를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그 성호를 [예수님]라 하니라
2. [지식백과] [아람어,예수,Yeshua]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언어인 아람어로 [예수님]은 '예슈아(Yeshua)' 였다.
이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수아(Joshua)를 변형시킨 이름이다.
그리스어로 되어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Lesous'로 표기했다.
그리스도교를 불신하는 사람이라도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게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으므로 예수님에게는 수많은 호칭들이 따라다녔다.
그리스도(메시야), 하나님, 구주, 신의 아들, 선지자, 신의 어린 양,
말씀, 대속자(代贖者), 신의 종 등이 모두 예수님을 가리킨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를 지칭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도 있다
3. 주님의 성호(Name,聖號)
( 기호 ? ),
Y.H.W.H(히브리어 4자음), Adonai (히브리어,아도나이), Yahweh (히브리어,야훼), Yehowah (히브리어,여호와)
Yeshua(아람어,예슈아), Christos (헬라어,그리스도), Messiah(히브리어,메시야),
Emmanuel or Immanuel (히브리어,임마누엘)
Elohim (히브리어,엘로힘), Load,Creator,Load,Despotes,Kyrios,God(헬라어,영어,로드,주,하나님)
4. 성경(聖經,구약,신약)속에 나타난 임마누엘의 속성(啓示,생명,인격,피와살,마음,性情,性品)
엘엘리온: 지존무상하신 하나님(主),
엘올람: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하나님(主),
엘로힘: 만유를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지존무상(靈)하신 하나님(主),
엘로이: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主),
아도나이: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主),
야훼 or 여호와: 영원무궁토록 스스로 존재하시는 하나님(主),
여호와샬롬: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主),
여호와이레: 준비하시는 하나님(主),
여호와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主),
여호와닛시: 승리케하시는 하나님(主),
여호와체바오트: 만군을 통치하시는 하나님(主),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존재하시는 하나님(主),
예수: 우리를 죄에서 구원시켜주시는 하나님(主),
5. 하나님의 칭호와 신앙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칭호이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속성(屬性)이 함축되어 있고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기독(기도)신앙을 바로 세우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말과 헬라어로
기록된 것을 여러 언어를 거쳐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므로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에 혼란스러움이 많다.
창세기1장의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로힘”이고 창세기2장의 “여호와하나님”은 “야훼”다.
하나님 스스로 자기 이름을 “야훼” “I am that(who)I am"(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셨다(출3:14).
곧 “나는 존재 한다”는 의미이며 이는 히브리말로 “야훼”이다.
“야훼”는 4개 자음인 YHWH에 주(Load)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서 부른 이름이다.
하나님의 본명은 “있음” 곧 “존재(存在)”이다.
그래서 기도(聖經)신앙은 창조로 시작하여 [창조→존재→생명]의 순위(順位) 종교이다.
윤리 도덕은 사람간의 행위지침이기 때문에 존재가 올바를 때 윤리도덕이 올바른 삶의 길(道)과 덕(德)이 된다.
이것이 기도신앙의 본질(本質)이다.
성경은 문자화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사람이 선하고 올바른 삶을 위한 하나님의 윤리도덕적인 가르침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행동과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윤리도덕보다 먼저 알아야할
‘이 세상과 사람이 어떻게 창조 되었는가' 와 ‘내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와‘생명이란 과연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서가 다른 책과 다른 점은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이라는 점이다.
‘살아 있다’라는 의미는 성경말씀은 과학이나 도덕교과서처럼 이미 정형화(定型化)된 법칙이나 도리(道理)가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에게 실시간으로 공급되는 영양분과 같다는 뜻이다.
즉 배가 고픈 사람에게 밥을 짓는 방법을 가르치는 지식 교과서가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필요에 알맞게 주어지는 밥 자체와 같다는 의미이다.
성경 총66권중
구약 총39권은
여호와 창조주가 어떤 분이신 것과 피조물과 어떤 관계인가를 알게 하고
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말씀이다.
신약 총27권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거듭남을 통해서 사람이 창조주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들로 천국이 세워지는 과정을 기록한 것이다.
성경의 전체 주제는 창조주께서 말씀(Logos)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드셨으며
생명과 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어 자녀로 삼으시고
사랑의 법으로 양육하여 정금 같은 성령의 열매로 거두어 천국백성을 만드는 것이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즉,
성경의 전체 주제가 하나님의 칭호 속에 담겨있다.
하나님의 칭호 중 “하느님”과 “하나님”은 신앙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의미가 다르다.
“하느님”의 의미는“하늘에 계시는 창조주”라는 의미만을 담고 있으나
“하나님”은 ‘유일 신(God)’이란 뜻과 ‘사람 안에 계시어 사람과 하나 되신 하나님’이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6. 정확한 신명(神名)은 아무도 모른다.
여호와? 야훼? 야웨? 야베? 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정확한 성호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유대인들도 그들의 하나님의 이름을(성호) 잊었다.
7. 대한민국의 '문자'는 서로간에 '존칭' 을 구사하며 사용하는 '언어'체계이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정서를 가진 사람이라면, 주님의 성호에 있어서 '경외(敬畏)'함으로
합당하게 기록되어지고 불러져야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2000년전 우리 [예수님]의 일상언어인 '아람어'를 기준으로 해서 그 문자 표기방법은 [예수Yeshua] 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의 성호또한 여러가지의 '표기'(기호)의 방법이 있겠지만..
평균적으로
제일 많이 쓰이고(書記) 읽혀지는 성경의(개역한글,개역개정) 기준점으로 해서 그 단어는(Name,聖號)
[하나님,임마누엘] [예수님] [여호와] [주] 라고 본다.
8. 찬송을(♬) 부를때나 찬양가사에(書記)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실 공용찬송부터가 호칭이 그리 표현(가사)되어 있는데 음율을(가사) 변형시킨다는 것은 쉽지가 않을것이다.
하지만 찬송가를(가사) 옮기고 적을때(書記) 만큼이라도 최소한 ' ' " " [ ] < > ☜ 이런 표시를 해 줘야
어느정도 마음속에 경외심이 묻어난 정성이 담긴 의미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또 찬송가를 듣거나 부를때는 그 반말식 표현을(가사),
묵상(默想)의 마음으로 경외심을 지닌체 듣고 불르는 사항도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경우이다.
*부를때 들을때는 제외..
*찬송가사를 옮기고 기록할때..
EX)
1)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or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2) 약할때 강함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예수' 어린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3) <예수>는 나의 힘이요 내 생명 되시니 구 주 "예수" 떠나가면 죄중에 빠지리
4) 주의 청년들이 [예수]의 꿈을 꾸고 인류 구원의 환상을 보게 하소서..
이 땅 구석구석에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하소서
5) 많은 사람들 참된 진리를 모른채..난 [예수]가 좋다오..난 "예수"를 사랑한다오
6) 주 안에 우린 하나 모습은 달라도 예수님 한 분만 바라네..주님 우리안에 함께 하시니 형제 자매의 기쁨과 슬픔 느끼네
7)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아주 많이요 사랑합니다 나의 예수님 사랑합니다 그것 뿐이에요
8)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 주 자비 강같이 흐르고 주 손길 치료하네
9) 여호와는 나의 목자니 내가 부족함 없음이로다 주가 나를 푸른 초장에 쉬게 하시며
10) 내 구주 예수님 주 같은 분 없네 내 평생에 찬양하리 놀라운 사랑을 온맘다해 주를 경배합니다
윗 표현은(1~5) 개인적인 사상으로 좀 억지스러운면이 있는 것 같지만
그래고 교회를 다니고 우리 예수님을(임마누엘) 구주(主)로 믿는 신실한 성도라면 신중의 신중을 기울이면서
기록하고 옮겨야 된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이 있기에 편하게 생각하면 그만이겠지만 그 부분에 있어서도
참으로 막무가내의 표현이 너무나 많기에 이런 간증을 조금이나마 꺼내보는것이다.
9. 수많은 이름속에는 별칭이(속성) 있고 실제적인 이름(성호)이 있습니다.
윗 말씀과 참고사항을 살펴보더라도 제일 근접한 우리 주님의 성호가 '예수=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은 다 아실것입니다.
쉽게 줄이자면 만군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존재의 '하나님'(엘올람)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기록된 '어원'의 단어에 있어서
아람어의 음역이든 그리스어의 음역이든 헬라어의 음역이든 영어(English)의 음역이든 히브리어의 음역이든
'예수'님의 음역또한 히브리어의 음역에 따라
임마누엘(주,엘로힘,엘올람,하나님)과 똑같은 번역의 방법으로
예수님(하나님,임마누엘) 이라고 해야 정상적인 표현의 번역이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쉬운 표현으로
예수님이 아버지이시고 예수님이 창조주이시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 엘로힘이시고
예수님이 엘올람이시고 예수님이 엘엘리온이시고 예수님이 성경이시고
예수님이 여호와이시고 예수님이 야훼이시고 예수님의 아도나이이시고 예수님이 주님이시고 예수님이 예슈아이시고
예수님이 메시야이시고 예수님이 성령이시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님이 신(靈)이라는 말입니다.
즉,
보좌의 형상(주 예수 그리스도,하나님,임마누엘)과 똑같은 일맥상통된 맥락(靈,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모두 다(All,男女) 피조물같은 인생이기에 당연히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높여 불러야 정상적이며 당연한 이치의 성품(성정)이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들의 아버지(어머니)의 존함이 각자 있을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버지의 존함이 무엇입니까?! 각자 아버지의 존함이 있겠지만 아버지라는 말 자체또한 별칭(애칭)입니다.
실제적으로 여러분들의 아버지나 어머니나 성함을 존재의 표현(000,0000)으로써 다 알고있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통용상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또한
우리나라말로 번역(음역)을 했기에 '예수'(하나님,임마누엘)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의 성호(聖號)에 있어서 성경을 통해 추적해봐도 임마누엘(예수님)입니다.
제일로
근접한 실제적인 성호(Name)라는 것입니다.
즉,
같은 뜻이고 같은 의미(意味)라는 것입니다.(임마누엘,하나님,예수님)
우리나라의 공용의 표현으로 "예수"(Yeshua) 라고는 하지만..
발음상 부를때는 예수님 이라고 불러드려야 인격적으로 당연한 도리라고 여겨집니다.
여러분들도 각자의 이름이(Name) 있을 것입니다.
각각 사람마다 별칭,애칭이 있을 것이고 별명으로써 불러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한 애칭이 있더라도 실제적으로 성함또한 스스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자면 아무개의 이름이 홍길동이라고 칩시다.
그럼 발음상 부를때 정확한 명칭은 '홍길동' 입니다.
하지만 부를때는 홍길동아 길동이는 길동이가 길동쟁이 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본도,예의도 없는 버릇없는 말(음역)처럼 들리기(소리)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언으로 이미 계시된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음역상 임마누엘(하나님)로 보기에
예수님의 성호또한 출처가 어찌 되었든...............!
공용으로 쓰이는 표현으로써 실제적 이름의 표기는
"예수"(Yeshua,Joshua,Jesus,Lesous,Immanuel) 이지만
발음상(소리,음역) 부를때는 예수님 이라고 불러드려야 합리적 사고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다른나라의 언어의 음역은 제외하더라도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언어는 존칭(음역)위주로 언어를 구사합니다.
그러기에 임마누엘(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똑같이 번역을 하는것이 맞다 라고 저는 생각하며
자꾸 강조하는 것입니다.
10. 십자가의(임마누엘,예수님) 사랑
(마태복음 27:50-54)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고통을 당하셨습니다.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사53:5-6)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받았도다.
(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당담시키셨도다.”
예수님께서 찔름은 우리의 허물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상하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담하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십자가의(임마누엘,예수님) 사랑을 깨닫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나와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 때 가치 있고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십자가의 사랑을 느끼십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것을 믿습니까?
믿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말하기를
“(고전1:18)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고통을 당해 준다면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준다면 그것을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임마누엘,예수님)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聖經) 감사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잘 믿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아멘.
11.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라
(12/09/12 본문:마 3:1-12)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기를 맞이하여 우리는 마음에 믿음 소망 사랑의 촛불을 밝히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정결한 신부의 신앙으로 성숙되어 가는 면모를 보여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고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3:1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하라”고 외친
세례요한의 말씀은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먼저 회개하고 돌이키며 겸손과 온유한 자세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라는 명령의 말씀으로 우리의 심령에 다가 오고 있습니다(마 3:1-3).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들의 죄악과 허물을 회개하여야 합니다(행 17:30).
교만한 마음과 오만불손한 행위들을 다 내려놓고
우리가 범하고 지은 죄들을 회개하며 겸손과 온유한 자세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정결한 신부로써 단장하기 위하여 회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계 3:3).
온 세상의 죄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앞 길를 평탄케 하지 못하고
오히려 모욕하고 경멸하며 채찍질하고 종래에는 십자가에 못을 박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엄청난 죄악을 다시는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행 2:36).
이제 우리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주님의 앞길을 예비하는 세례요한의 심정으로 회개를 외치고
주님의 길을 예비 하는 일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비록 어려운 생활 환경과 세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어두움의 세력들을 대적하고(엡 6:11),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전파에 힘을 써야 합니다(딤전 4:1-2).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기 위하여 움푹 파인 사망의 골짜기가 돋우어져야 합니다.
사망의 골짜기에는 세속주의에 함몰되어 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믿고 의뢰해야 합니다
‘ 우리의 목자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심으로
불쌍한 영혼들을 사망의 골짜기에서 벗어나게 하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시 23:1-4).
주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깨뜨리므로 높고 작은 산들을 낮게 하고 고르게 하여 평지를 만들었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육체의 정욕들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를 이루었습니다(마 4:11).
우리도 자기의 육체적인 소욕들을 매일 십자가에 못 박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좇아 살아가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케 되어야 합니다(갈 5:24).
우리의 마음이 옥토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식을 삼고
아름다운 열매를 결실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딱딱한 길 가나 돌밭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적인 염려와 유혹과 욕심으로 싸인 가시떨기 같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경하여 좋은 땅을 만들어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막 4:20).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시고 주님의 말씀을 나의 일용할 양식으로 삼고
날마다
주님의 성호(聖號,Name)를 송축하며 감사와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심령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을 소망 가운데 정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2. 묵상말씀
[출애굽기] 20:7
7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호를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성호를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신명기] 5:11
11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호를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성호를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는 줄로 인정치 아니하리라
[전도서] 8:11~14
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12 죄인은 백 번이나 악을 행하고도 장수하거니와
또한 내가 아노니 하나님을 경외하여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잘 될 것이요
13 악인은 잘 되지 못하며 장수하지 못하고 그 날이 그림자와 같으리니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함이니라
14 세상에서 행해지는 헛된 일이 있나니 곧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벌을 받는 의인들도 있고
의인들의 행위에 따라 상을 받는 악인들도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르노니 이것도 헛되도다
[누가복음] 17:32
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시편] 103:1~22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3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6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7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8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18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9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20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1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에스겔] 39:7~13
7 내가 내 거룩한 성호를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성호를 더럽히지 않게 하리니 열국이 나를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볼찌어다 그 일이 이르고 이루리니 내가 말한 그 날이 이 날이니라
9 이스라엘 성읍들에 거한 자가 나가서 그 병기를 불 피워 사르되 큰 방패와 작은 방패와 활과 살과 몽둥이와 창을 취하여
칠년 동안 불을 피우리라
10 이와 같이 그 병기로 불을 피울 것이므로 그들이 들에서 나무를 취하지 아니하며 삼림에서 벌목하지 아니하겠고
전에 자기에게서 약탈하던 자의 것을 약탈하며 전에 자기에게서 늑탈하던 자의 것을 늑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1 그 날에 내가 곡을 위하여 이스라엘 땅 곧 바다 동편 사람의 통행하는 골짜기를 매장지로 주리니
통행하던 것이 막힐 것이라
사람이 거기서 곡과 그 모든 무리를 장사하고 그 이름을 하몬곡의 골짜기라 일컬으리라
12 이스라엘 족속이 일곱 달 동안에 그들을 장사하여 그 땅을 정결케 할 것이라
13 그 땅 모든 백성이 그들을 장사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름을 얻으리니 이는 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에스겔] 38:14~23
14 인자야 너는 또 예언하여 곡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 이스라엘이 평안히 거하는 날에
네가 어찌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15 네가 네 고토 극한 북방에서 많은 백성 곧 다 말을 탄 큰 떼와 능한 군대와 함께 오되
16 구름이 땅에 덮임 같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러 오리라
곡아 끝날에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내 땅을 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로 다 나를 알게 하려 함이니라
17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옛적에 내 종 이스라엘 선지자들을 빙자하여 말한 사람이 네가 아니냐
그들이 그 때에 여러 해 동안 예언하기를 내가 너를 이끌어다가 그들을 치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라
18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내 노가 내 얼굴에 나타나리라
19 내가 투기와 맹렬한 노로 말하였거니와 그 날에 큰 지진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나서
20 바다의 고기들과 공중의 새들과 들의 짐승들과 땅에 기는 모든 벌레와 지면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내 앞에서 떨 것이며
모든 산이 무너지며 절벽이 떨어지며 모든 성벽이 땅에 무너지리라
2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모든 산 중에서 그를 칠 칼을 부르리니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것이며
22 내가 또 온역과 피로 그를 국문하며 쏟아지는 폭우와 큰 우박덩이와 불과 유황으로
그와 그 모든 떼와 그 함께한 많은 백성에게 비를 내리듯하리라
2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요한계시록] 22:20~21
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님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