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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6.5. 성공회 대전교구 교육원. 현대신학에서의 종신부제직의 조명. 유낙준주교.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섬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십니다(1베드5:5). 그러므로 여러분은 스스로 낮추어 하느님의 권능에 복종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높여주실 것입니다(1베드5:6).”
주교와 사제와 함께 일하는 부제직
2021년 대학의 입학생수가 감소하고 대다수 신학과의 입학생이 미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미 성공회 대학교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교육정책으로 인하여 신학과라는 이름이 사라졌다. 사제양성의 요람인 신학대학원생이 줄어들었고 그 속에서 성공회 신학이 이어지고 있다. 예전보다 사제서품자의 인원이 대폭 감소된지 오래이다. 이에 성공회의 사제양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 방식대로 사제양성을 한다면 곧 사제서품지원자가 없는 해도 발생될 것이다. 기존 사제양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다른 사제양성의 길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각 교구마다 기존 사제양성하는 신학대학원의 강화론을 논의하는 중이다. 별 뾰족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이를 알고 성공회 대전교구는 종신부제직으로 사제감소의 대책안으로 세우는 중이다. 익숙한 기존 사제양성안에 기대는 사제가 많고 새로운 종신부제직에 대한 길을 인정하지만 심적으로는 동의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바로 지금이 새로운 길을 강화하여 나아갈 때이다. 서울교구는 사제의 수가 남아돌아 종신부제직에 부정적인 기류가 주류이지만 우리 교구는 사제수의 부족으로 늘 곤란한 상황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차부제직 양성안을 윤환바우로 주교시기에 양성을 하였던 경험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차부제직을 강화했어야 했다. 이를 되살린 것이 교구 교육원에서의 종신부제직을 세우는 것이다. 선교형 교회로 새로운 선교를 향하는 길에 종신부제직이 있고 기존 교회의 선교강화로도 종신부제직이 서 있다. 가톨릭이나 개신교에서의 사제영입이 성공회의 정체성 세움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이미 성공회가 했던 바 평신도의 역량발굴에서 종신부제직을 세우는 것이 더 선교적으로 본 것이다. 성공회 선교131주년과 찰스 존 코프주교 별세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 기존의 성직체계로의 선교에다가 성공회 전통 속에 숨겨진 보물인 종신부제직이라는 원석을 찾아 다듬어가고 있다. 성공회 선교에 새로운 성령의 주시는 힘이 우리 교구에 넘치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영국 솔즈베리교구가 2003년도 작성한 독특한 부제직에 대한 보고서로 우리의 길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평신도의 역량에서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길이 보인다.
성공회 신앙생활하던 중에 하느님을 더 알고 싶은 갈망이 높고 깊어서 교육원에 들어왔다. 한국사회에서 성공회가 갖는 믿음의 높은 질이 좋아서 이 믿음의 질로 살고 싶었기에 종신부제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새로움은 항상 익숙함으로 방해를 받기 마련임을 알지만 상한 속이 되기도 한다. 가능하면 비젼만 주어지고 상처를 입지 않고 도전만 가능한 선교인 종신부제직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종신부제직의 길은 삶으로 복음을 전하는 소통기술을 지녀야 한다.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전할 때 인간이 더 높은 세상을 향하게 되고 보다 나은 지역사회를 세우는 종신부제가 된다. 그래서 종신부제는 앞장서는 리더이기 보다는 정성을 들여 돕는 큐레이터 curator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리하여 전례에 참여하는 신도들에서나 불안한 세상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유능하고 편안함을 주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인상을 주는 공적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된다. 타인이 잘 하도록 돕고 그래서 타인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사람이다.
종신부제는 문화가 다른 사람과도 어울리고 그들의 언어로 소통할 줄 알고 타인을 적절하게 돌볼 줄 알아 사목을 잘하는 사람이다. 외향적이면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으로 자신을 존중하면서도 타인을 환대할 줄 알아 경청자로 하인처럼 섬길 줄 아는 사람이다. 또한 적절한 몸짓과 언어와 듣기로 표현되는 민가만 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종신부제는 다른 사람을 예배할 수 있게 하고 세상의 필요를 예배로 가져오고, 전례로 해석할 줄 알아 교회공동체를 강화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도에 젖어 살고 말씀에 몰두하는 삶에 뿌리를 두고 위엄과 경건과 비참함 속에서조차 하느님의 임재를 느끼는 사람이다. 하느님을 향한 열정으로 개인과 교회에 침체를 허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종신부제는 하인(종)사역으로 책임감 있고 은밀하고, 화려하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드러나지 않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다. 의자에 앉아 있기보다는 바퀴에 기름칠하는 사람이다. 공간의 중앙을 확보하면서도 가장자리의 사람들과 함께 편안하게 경계선상에 있는 사람이다.
종신부제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을 부르는 소리를 받은 확신이 강한 사람이다.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과 남 얘기만 하는 사람과 교만한 사람을 객관화시킬 줄 아는 사람이다.
2. 그리스도의 부제사역이 대표적으로 교회의 부제가 기본이다.
종신부제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전례에 참여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한두 가지의 일을 할지라도 감사성찬례에서 사제의 집전에 깊숙이 참례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사목적으로 적절한 곳에서 설교하며, 모든 부제의 설교에 재능이 있어야 한다. 셋째, 교리적, 사목적, 전례적으로 세상일을 하늘일로 연결하는 것을 돕는다. 넷째, 세례, 견진, 혼인성사 등의 사목활동의 전례에 사람들의 참여를 공유하고 동행하고 공감을 한다. 다섯째, 교회가 소홀히 하는 평화와 정의의 예언적 역할을 하여 하느님의 자비를 수행한다. 교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사목적 돌봄으로 필요를 교회로 풀어 도움을 준다.
종신부제는 개인적, 지역적, 국제적, 세상일에서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준비된 사람이다. 그리고 예언적 사람이고, 세상의 평화촉진자이고, 보이지 않는 교회를 가시화하고, 지역의 눈과 귀의 교회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외롭고 잊혀진 사람, 소외된 자, 아픈 자, 곤경에 처한자를 찾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교회의 사목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재미있고 기쁨을 가진 사람은 공감과 소통을 잘 하는 사람으로 종신부제가 지닐 성격인 것이다.
종신부제는 세상의 문턱을 넘어 교회로 오는 문을 열어 놓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회와 교회의 경계에서 예언자 역할을 한다. 자신이 경계를 넘어 타인이 경계를 넘도록 도와준다. 세상의 필요를 교회공동체가 대도를 하도록 늘 기도에 젖은 삶이다. 예배자를 평화와 봉사로 세상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예배와 세계 사이의 선교공간에서 예수의 제자로 촉매제 역할을 한다.
3. 부제는 무엇인가?
부제는 1) 주교와 그리스도왕국의 전령으로 봉사하는 사제들과 함께 일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2) 하느님의 사랑을 목적으로 대리인으로서 말과 행동의 삶으로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3) 모든 사람들의 필요와 희망을 교회에 가져와서 그들의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4) 동료 신도와 함께 가난하고 약한 사람, 병들고 외로운 사람, 억압받고 무력한 사람을 찾아내어 하느님의 사랑이 보이도록 세상에 잊혀진 구석에 도달해야 한다.
5) 교회의 사목과 예배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참여한다.
6) 말씀을 전하고 세상의 필요를 교회의 대도로 가져온다.
7) 신앙을 찾는 사람들과 동행하여 세례를 받는다.
8) 성찬집전을 돕는다.
9) 친교를 나누고 병자들과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봉사한다.
11) 성경에서 자양분을 구해야 한다.
12) 온 교회가 세상대로 복음대로 생활하게 준비하여 하느님의 백성들과 함께 연구해야 한다.
13) 기도에 충실해야 한다.
14) 하느님이 우리 가운데 그분의 왕국을 계시할 때 하느님 임재의 징조를 기대한다.
영국성공회 신앙 및 질서 자문 그룹의 보고서는 부제의 일과 역할에 대해 다음같이 기술한다.
1) 신약성경, 특히 바우로에 의해 디아코니아 diakonia와 디아 코노스 라는 용어의 중추적 사용에 비추어 부제에 대해 가장 먼저 말할 것은 부제들이 안수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목자라는 근본적인 사명을 받는다는 것이다(diakonoi 복음).
2) 안디옥의 성 이그나티우스는 부제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의 부제’라고 부른다(1고린4:1. “여러분은 우리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기며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as Christ’s servants. put in charge of God’s secret truths).
3) 부제는 그리스도에 의해 교회를 통해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이 역할에서 특히 1550, 1662 기도서에서 강조하듯이 병자들의 필요에 대해 특별한 자비로운 보살핌을 주었다.
4) 외롭고 억압받은 사람들, 모든 그리스도교인들과 모든 목자들과 함께 부제의 삶은 그리스도의 명령과 모범에 순종하는 공평한 봉사의 삶이다.
5) 주로 그리스도와 그의 권위 아래, 이차적으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들에게 봉사한다.
6) 부제는 사제들과 주교처럼 평신도 선교와 문제와 성례전과 사목적 돌봄과 관련이 있다.
7) 부제는 복음의 전체 사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부제는 교회선교의 이 세 가지 핵심임무와 관련해 주재역할이 아니라 보조역할을 한다.
8) 부제는 사제와 주교를 돕고 이 임무와 관련하여 부제에게 위임된 임무를 수행한다.
9) 부제는 신앙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며 가르침을 준다.
10) 부제는 예배에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부제가 찾고 준비한 세례후보자에게 세례를 베풀고, 사제없이 그들에게 세례함으로써 성사집행을 봅는다.
부제는 1) 주교와 사제를 대신하는 목회자이다.
2) 부제는 사회의 잊혀진 구석에 그리스도의 연민을 전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3) 부제는 전례에서의 역할을 통해 매일 봉사하는 더 넓은 공동체의 관심사와 탄원을 교회예배의 중심으로 가져와 이런 관심사를 제단 위에 놓고 발 아래에 놓을 수 있게 한다.
4) 공동예배는 부제가 성체성사에서 취하는 것이 적절한 역할을 한다.
5) 부제는 본당에서 혼합된 이익된 교회의 ‘새로운 표현’ 차원으로 경계를 넘을 수 있다.
6) 따라서 부제는 구원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선교사로서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 보내진 사도적 사목에 참여한다.
이것은 주교와 그이 고문이 분별할 수 있는 내적 부름으로, 후보자가 말씀, 성사 및 사목적 돌봄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평생사역에 대한 부름과 적성을 가지고 있지만 지원에 더 적합한 부름이다. 성례전과 지역사회의 지도력 모두와 관련하여 감시역할보다, 독특한 부제는 개인이 선교사, 중개사역에 강하게 이끌리고, 잃어버린 양을 찾고, 복음의 메시지와 함께 실제적인 보살핌을 교회에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에 특히 적합하다. 추가적인 책임과 제약을 가지고 신의 권한으로 진행하기를 꺼린다. 독특한 부제는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단, 이것이 전례에 묶여 있고 새로운 개종자들의 완전한 성사입문을 지향하는 세 가지 기본차원과 명확하게 관련되어 있다면, 경계를 넘어 연결하고 사람들을 모으는 사람들로서 부제는 네트웍크 관계, 선교와 복음화라는 도전적인 새로운 상황으로 이동할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신약언어의 신선한 해석 그리기는 diakonia 및 diakonos. 우리는 예수님처럼 말을 한다. 세상에서 하느님구원의 목적을 구현하는 에이전트가 되고, 그 diaconal 부제직 사역을 말할 수 있는 나라의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다. 부제는 안수로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는다. 부제는 다른 어떤 그리스도인, 평신도 또는 안수받은 사람보다 더 이상 겸손한 봉사를 위해 구별되지 않으며, 다른 누구보다 겸손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제는 선교사, 메신저 또는 대사이다. 전례와 사목적 필요를 연결하고 교회생활과 아직 교회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이다. 부제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본질에 대해 중요한 것을 말하며 실제로 전체 교회가 본질적으로 존재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되도록 부름받은 표지이다. 1997 주교원보고서의 언어를 보면, 우리는 사제와 주교사역과 같은 부제사역이 교회의 진실을 ‘홍보하고, 해방하고, 명확히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부제의 안수는 교회의 표징으로 간주될 수 있다. 교회의 참된 것, 교회의 본질적인 부름에 대한 가시적 표식이며, 모든 신자들, 특히 부름받은 사람들에 의해 여러 방식으로 수행된다. 인정받은 사역에 평신도 안수를 받았다. 안수에서 부제는 교회를 통해 하느님으로부터 독특한 정체성을 받는다. 그 정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으로 세상에 나타났지만 여전히 성취되어야 하는 하느님왕국 또는 통치와 관련이 있으며, 하느님 왕 통치가 도래할 때 교회의 역할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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