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야마사히데 대사
파주호국전우회(회장 김홍규)는 지난 8일 파주시 조리읍 하늘묘원에 안장된
고(故) 가나야 마사히데(金山政英) 전 주한일본대사의 묘소에 잔디를 식재하는 행사를 거행했다.
가나야마 대사는 제2대 주한일본대사로 부임해 지난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포항제철 건설구상에 대한
일본의 특별한 기술지원요청을 받고 일본 정계와 재계를 설득해 일본 철강기술이 한국으로 이전되도록 성사시킨 은인이다.
생전의 유훈(遺訓)에 따라 한국에 안장되었으며, 김해 김씨 명예회원이고,
사위가 한국인으로 한국사랑의 대표적인 일본인이다.
가나야마 대사의 이같은 한국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2019년 11월부터 파주시 무공수훈자회 지회장과 주한일본부인회 주관으로 매년 고인을 위한 추모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날 묘역잔디 식재행사에는 파주호국전우회 김홍규 회장과 김병수 시의원, 김윤경, 김호섭, 장순휘 회원 등과
주한 일본부인회 간다메꾸이 회장외 8명 등 16명이 참가했다.
김 회장은 인사말에서 “한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선린국이며 불가분의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고 가나야마 대사님의 한국사랑은 잊혀져서는 안된다.
윤석열 정부에서 보훈차원의 지원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간다메꾸이 회장도 “파주시민의 진정한 가나야마 대사님에 대한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이런 아름다운 소식이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양국간 우호가 증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60년대 후반 박정희 대통령은 제철공장을 열망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국제기구들은 그의 호소에 냉담했다.
인도, 터키, 멕시코, 브라질처럼 조건이 좋은 나라들도 실패했으니 그만두라고 충고했다.
박 대통령은 도와줄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건넸다.🇵
“이번엔 주일 한국 특명전권대사 노릇을 해주십시오. 포항제철 건설에 관해 사토 총리대신의 긍정적 답변을 얻지 못하면 대사께선 서울로 돌아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가나야마가 맡은 일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였다.
사토 총리는 이미 박 대통령의 요청을 거부한 터였다.
가나야마는 외무성을 거치지 않고 바로 총리에게 박 대통령의 친서를 올렸다. 사토 총리는
“제철은 안 된다고 했는데 또 얘기하느냐”고 역정을 냈다.
가나야마는 박 대통령의 제철공장에 관한 꿈과 의지를 간곡히 설명했다.
그제야 사토 총리는 일본 철강업계가 반대한다고 말했다.
가나야마는 역사가 길고 규모가 큰 야하타제철소의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喜寬) 회장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이나야마는 “나사 하나도 못 만드는 나라가 무슨 제철소냐”고 냉소했다.
가나야마는 “1897년엔 일본이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지적했다.
그에게 설득돼 이나야마는 포항제철 설립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자금은 일본이 제공한 ‘청구권 자금’으로 충당하기로 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와 가나야마 대사의 헌신이 열매를 맺어 1970년 포항제철소 기공식이 열렸다.
3년 뒤 포항에선 조강 연산 103만t의 포항제철소 준공식이 거행됐고, 사토 전 총리가 국빈으로 참석했다.
그 뒤 포항제철이 국제적 기업으로 발전한 것은 모두 잘 아는 역사다.
포항제철에 기술을 제공한 뒤 야하타제철소는 두 차례 합병을 거쳐 신일철주금이 됐다.
포항제철이 빠르게 자라나는 사이 야하타제철소의 후신들은 경쟁력이 낮아졌고,
포항제철에 기술을 제공한 이나야마 회장은 부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래도 두 회사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근년에 신일철주금이 특허 침해로 포항제철을 제소한 적이 있지만 상호 지분 교환으로 관계를 정상화했다.
얼마 전 야하타제철소에서 일했던 한국인 징용 노동자들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보상 소송에서
한국 대법원은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신일철주금이 포항제철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취득한 지분이 압류 대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