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짓을 꾸짖는 게 참된 이웃 사랑.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웃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일들은 분명히 보고 알면서도 근실히 책망해 주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장 큰 불행과 고통의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일인데, 이 죄악을 책망해 일깨워 주지 않는 것만큼 그 사람을 미워해 죽이는 악행은 하늘과 땅 중에서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국법에 어긋나 벌받을 것을 예견하면, 반드시 정색을 표하고 꾸짖어 주는 것이 그 사람의 참된 이웃이 됩니다. 이런 일 이외에 자신의 뜻과 사상이 다르다 하여 꾸짖는 것은 정당한 책망이 아니라 그를 지배장악하려는 독재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이웃을 책망할 수 경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국법에 어긋났을 경우에만 한합니다. 이런 일이 이웃 사랑이며 이것이 진정한 애국애민의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나라 사랑이 담긴 권면과 책망의 말씀은 예비 심판과도 같습니다. 즉 "당신의 그러한 말과 행동을 자제해 금하지 않고 계속하게 되면, 그 죄악이 쌓이고 쌓여 반드시 하나님과 국법이 규정한 법에 의해 이러저러한 형벌을 받습니다."라고 일러주는 건 예비 심판입니다. 사람이 실형을 당하게 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의인들의 예비 심판을 무시하게 될 때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의 예비 심판에 경각심을 갖고 더 이상 범죄치 말아야만 온전한 생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의 경고를 무시하고 악행을 계속할 때에는 인생 최고의 형벌인 지옥 불꽃에 던져짐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예방 차원의 실형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친히 자신의 권능이나 국법의 손을 빌려 그런 체형으로 악인들을 응징하거나 또는 사람들로부터 격리 수용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앙인들은 모든 이웃 사람들을 하나님께 매맞아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 같은 사랑의 책망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책망을 경청해 듣고 경각심을 갖는 사람은 회개하여 예수님의 언행대로 행하여 하나님께 상받는 의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짓된 신앙인들은 책망 자체를 남에게 상처주는 말로 취급해 삼가하고, 그 대신 성경말씀 여기저기서 줏어들은 구절을 인용해 죄인들의 악행만 도리어 위로합니다. 책망을 겸손히 경청해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받지 않게 되지만, 책망 자체를 자신을 모욕하고 대적하는 행위로 취급해 반격하는 자들은 자신이 치르어야 할 죗벌 위에 죄벌을 더하여 더욱 참혹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인류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이 아니라 에덴 동산의 들짐승 뱀, 곧 사단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경고하신 말씀, 곧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는 말씀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그 선악과를 따먹도록 해 죽였습니다. 즉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 말씀을 인간 육신의 호기심으로 변질시켜 따먹게 해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어느 누구든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심판)을 사람들이 재해석해 그 말씀을 변조해 지키지 못하도록 유혹하거나 강압적으로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모두다 사단과 같은 살인자가 되거나 살인 방조자가 됩니다.
오늘날 타락한 신앙인들이 살인자 김일성 일가들의 죄악을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을 인용해 비호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7) 하신 말씀과 또,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한복음 12:47) 하신 말씀들을 주로 인용해 저들의 악행을 도무지 책망치 않고 자발적으로 개과천선 하기만 바랍니다. 무엇이 잘못이란 걸 들었어야만 회개해 뉘우칠 수 있을 뿐, 책망한 일이 없는데 어떻게 듣고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세상을 심판하려 온 것이 아니라 하신 뜻은, 모세처럼 율법에 저촉된 자들을 당장에 응징치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5:21~23) 하셨고 또,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요한복음 5:26~27) 하심 같이, 예수님이 땅에 계셨을 땐 최종 심판만 하시지 않았을 뿐, 예비 심판인 꾸중과 책망은 무수히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하신 뜻도, 하나님이 사람들의 자잘못을 지적해 주는 심판을 예수님께 다 맡기셨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신 까닭은,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 하나님이 당하여 할 모든 모욕을 자신이 대신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까닭 없이 모욕을 당하면, 그 죄악을 심판할 권세를 갖게 됩니다. 즉 신앙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해 세상 죄인들을 책망하다 당하는 모든 모욕과 천대에 대한 삯이 바로 저들을 심문하고 심판할 권세입니다, 왕이 아무리 법을 제정하였더라도 그런 법 조항이 있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전에는 결코 죄인으로 단죄해 형벌할 수 없듯, 세상의 왕된 신앙인들도 왕법을 공표해 주어여만 세상 사람들을 심판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을 근실히 책망(심판)하셨습니다.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요한복음 5:30) 하심 같이, 예수님이 사람들을 책망(심판)한 잣대가 자신의 사사로운 생각이나 주의주장이 아니라, 세상 모든 법들 위에 뛰어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셨기 때문에 그의 상급은 천하무적의 권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는 성령을 믿는 자들에게 보내시어 자신의 일을 대행케 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한복음 16:8) 하심 같이, 예수님 대신 오신 성령께서도 믿는 자들의 입을 통해 세상 끝날까지 세상 죄인들을 책망(심판)하십니다.
사람이 진실로 이웃을 사랑하려면, 그 이웃을 먼저 하나님이 규정해 놓으신 법과 또 국법에 의해 매맞아 죽지 않도록 미리 책망(심판)해 주는 일입니다. 이런 책망을 양심을 통해 받아들인 사람이 자기 죄에서 구원받으려면, 지금부터 행하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여 그에 대한 상급이 어떠하다는 것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듣고 믿고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바라는 것은 들짐승 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해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아들되시는 예수님처럼 실행해 지키는 일입니다. 이런 말을 사람이 들으면, 그의 심령 속에서 왕노릇하고 있던 사단이 듣고 그를 심히 미워해 대적합니다.
이 때문에 초대 교회 신앙인들이 당대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잔혹한 형벌을 당하였습니다. 그래도 기독교가 강하게 부흥하게 되자 사단이 전략을 바꾸어 그리스도인들에게 뱀 같이 지혜로워라는 말씀을 인용해 성령의 직언(책망)은 미련한 짓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로 해석해 사람들로부터 핍박당할 일이 없는 안이한 신앙생활을 개발해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즉 신앙인들도 죄악 세상의 기득권자들로부터 크게 박해를 받지 않고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한 것이 바로 오늘날의 신학입니다. 성령의 올곧은 직언(책망, 심판) 앞에서는 사단이 도저히 사람들 속에서 왕노릇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직언(책망)은 이제 이웃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악행이라고 속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단의 이런 교육을 복음으로 받아들인 신앙인들에 의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북쪽의 살인마 김일성 일가들에게 바른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저 저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어 주어 북한 주민들을 더욱 잔혹하게 폭압하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목사들이 거짓과 불법불의와 음란방탕으로 뛰어난 유명인들을 서로 자기 교회에 출석시키려 할 뿐, 저들의 죄악을 꾸짖는 심판(책망)은 도무지 행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복받고 만사형통한다는 속임수로 많은 교인들을 확보하는 일에만 혈안이 되었을 뿐, 저들의 죄악을 책망하는 성령의 직언은 아무도 행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 사회의 빛과 소금이어야 할 교인들이 이러하니 그 나라 정치인들이 어찌 썩어 부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육적인 능력과 무기들은 사람의 육신만 파괴할 수 있을 뿐, 영에 속한 죄악은 도무지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온갖 죄악의 악령은 오직 영 중의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파괴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12) 하셨습니다. 이런 막강한 능력 때문에 사람들의 심령 속에 거하는 마귀는 참된 신앙인들의 직언(책망)을 가장 듣기 싫어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목사들이 마귀의 이러한 괴로움을 곧 자기 심령(영혼)의 괴로움으로 간주하고 성령의 직언은 곧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악한 말로 취급해 가로막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능력 중의 능력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자신의 심령부터 거룩하게 단장(심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믿는 신앙인들 또한 이 시대의 작은 예수님이 되어 자신의 심령부터 하나님의 말씀(직언, 책망)을 받아들여 순종해 깨끗이 단장(심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청각적인 소리가 아니라, 행동으로 받아들여 순종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청각적인 소리로만 취급해 교회에 나가 설교 듣는 것만 예배로 취급할 뿐, 들은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참된 예배는 드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을 영적인 귀머거리들로 취급하는 하나님의 최종 심판대 앞에서는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요한복음 17:17~19) 하심 같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이 같은 방법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부터 먼저 진리의 말씀으로 정화시켜 거룩하신 하나님(예수님)을 항상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발생되는 성령의 능력은 가공하여 자신의 가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인척들과 이웃과 교회를 정화시키며, 최종적으로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생애입니다. '실세자 예수'에 기록된 내용이 이런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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