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얘기지만, 유럽축구라고 무조건 뛰어난 것은 아니다. 수많은 팀과 선수가 필요한지라 그 수준이나 스타일도 모두 제각각이다.
요즘 매주 한국에 생중계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만 봐도 그렇다. 총 20개팀이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는 이 리그가 돌아가려면 매주 최소 220명의 선수들이 필요하다. 자본의 집중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영입한다고는 하지만 그 자본이 20개팀에 공평하게 분산되어 있는 것이 아닌 바에야 모든 팀들이 엇비슷한 전력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당연히, 상위팀과 하위팀 간에는 전력 차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동국이 모처럼 선발로 출전한 미들즈브러와 위건의 경기는 프리미어리그 중하위권 팀들간의 맞대결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첼시, 아스날, 혹은 AC밀란과 바르셀로나 등의 경기에 눈높이를 맞춘 축구팬에게는 아마 대단히 실망스러운 경기였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프리미어리그, 즉 Premier League라 한들 속한 모든 팀이 Premier하지는 않으며 모든 경기들이 Premier할 수도 없다. 우수한 선수를 대거 보유한 상위팀들이 세련된 기량과 헌신적인 플레이로 재미와 감동을 주는 대신 중하위권 팀들의 경우 그런 감흥을 주는 경우가 흔한 건 아니다. 특히 앞에 거론한 상위권 팀들과 중하위권 팀들간의 전력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클 지 모른다. 더욱이 요즘처럼, 치열한 승부의 끝물인 리그 막판이라면 그 차이는 더욱 크게 느껴질 수 있다. 프리미어한 팀들은 보유한 대체자의 수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팀들에겐 한 시즌을 버텨내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쏠림현상이 나타나면서 이러한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우수한 선수의 공급은 한정되어 있고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의 숫자도 변하지 않는데 강팀들은 계속해서 선수를 사모으고 약팀들은 가진 것 지켜내느라 허리가 아프다. 이렇다보니 프리미어리그 안에서도 '프리미어'한 팀들과 '안 프리미어'한 팀들의 경계가 더욱 굵어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지난 주의 에버튼-맨유 경기처럼 흥미진진한 경기가 있는 반면 오늘의 위건-미들즈브러 경기처럼 지루한 경기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다보니 이 글의 제목과 같은 물음도 생뚱맞지 않다. "프리미어리그는 정말 프리미어한가?" 답하기 애매한가.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프리미어리그는 K리그보다 프리미어한가?"
"축구는 역시 유럽이야...난 K리그는 안봐"라고 외치는 사람이라면 곧장 'Yes!'로 답할 지 모르지만 사실 이건 그리 쉬운 질문이 아니다. 위건-미들즈브러 경기가 올 시즌 서울-수원의 3경기나 혹은 그 밖의 다른 K리그 경기들보다 수준 높고 재미있느냐면 그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요는, '프리미어' 혹은 재미 따위를 따지는 데 있어 그 기준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경기력이 기준이 될 수도 있지만 연고의식에서 오는 애정이나 특정 선수에 대한 관심이 기준이 되어 자신만의 '프리미어리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리그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 팀이나 경기나 선수의 가치가 평가되어서는 곤란하다. 리그의 흥행이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인 승강제나 상금배분 같은 요소들로 인해 가시적인 성과가 나는 부분이 있으니 해당 리그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기력이나 재미를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이를테면 어중간한 순위에 놓인 팀들이 시즌 막판까지도 최선을 다해 명승부를 연출하게 만드는 미끼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도의 존재가 '프리미어'를 담보할 수는 없다. 위건-미들즈브러 전이 바로 그 증거다. 강등권 탈출을 위해 능히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위건은 지지부진한 플레이와 어이없는 실수를 반복하며 한심한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승강제의 존재도 수준을 끌어올릴 수 없었던 좋은 사례다.
결국 '프리미어'하게 만드는 건 개인적인 가치에 근거한다. 이를테면 이날 위건-미들즈브러 경기의 경우, 두 팀의 서포터스들에게는 나름의 각별한 의미가 담긴, 흥미진진한 경기였을 수 있는 것이다. 즉, 각자 심리적,지리적,물리적 접근을 통해 무언가 몰입의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면 자신만의 '프리미어'를 뽑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지성'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가 우리에게 더욱 프리미어하게 다가왔던 것처럼 말이다. 내 아들이나 형이 뛰는 경기라면 그것이 '프리미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유럽축구를 K리그보다 무조건 우위에 놓고 보는 경향이 아쉬운 것도 그래서다. 우리와 같은 땅을 차는 선수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관중이 한 곳에 모여 같은 경기를 보게 되면 TV를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남의 나라 축구 이상의 감흥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어떤 팀이나 선수에게서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요소, 혹은 연관성을 찾게 되면 그때부터 그 팀의 경기, 그 리그의 경기, 그 선수의 플레이는 나에게 '프리미어'해진다.
프리미어리그가 모두 프리미어한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 프리미어한 팀이나 선수가 생긴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프리미어리그가 되는 것이다.
축구란건 한번 재미없다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이 재미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전세계 모두가 축구를 '프리미어한 취미' 혹은 '프리미어한 문화'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만의 '프리미어'를 발견하기가 쉬운 종목이어서 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지리한 경기 90분을 경기장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지켜보고, 툴툴대면서도 다음 주면 또 경기장을 찾는 프리미어리그 위건 팬들의 모습은 이를 방증하는 하나의 작은 예다. 우리에게 이 경기는 전혀 프리미어한 리그 경기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인상적인, 혹은 뛰어난 한 경기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래서 제목의 질문은 틀렸다. 프리미어리그가 정말 프리미어한 지가 아니라 프리미어리그는 프리미어하게 소화되고 있는가라고 묻는 편이 낫다. K리그를 거론하는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만일 K리그가 프리미어리그에 비해 질이 낮고 재미없다 느껴진대도 그것이 전부 K리그의 탓은 아니라는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도, 때로는 챔피언스리그나 월드컵도 지리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미어'나 '재미'는 만들고 찾는 것이다. 막연히 프리미어리그는 빼어나고 K리그는 무료하다는 선입견을 가져서는, 그래서 곤란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보다 가까이 직접 느껴볼 수 있는 곳에서 '프리미어'를 발견하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적어보고 싶다. 어찌됐든, 결국 프리미어리그는 마음 속에 있는거니까.
첫댓글 오우~~~ 서형욱 위원 또 멋진말 한껀 하셨군 ㅋㅋㅋㅋㅋ '프리미어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거죠~'
오 동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