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연대기 형태로 고구려의 영토 변화 과정을 정리하다가 한반도 쪽의 고구려 영토에 대한 의문이 있어 별도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본 글은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나오는 58개성 700개 촌에 대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것입니다.
광개토태왕의 비문에 따르면 고구려가 백제의 58개 성(城) 700개 촌(村)을 빼앗은 것으로 나옵니다. 비록 글자가 훼손되고, 확인된 지명도 소수에 불과하지만, 58개 성이 있었던 지역만큼은 유추해 낼 수가 있습니다. 학계에서 정리한 내용대로라면 한강 북쪽과 임진강 일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자료를 찾아봐도 이곳에서 발견된 백제의 성터와 흔적들이 너무 적습니다. 고구려, 백제 멸망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고대 성곽들은 대부분 고구려의 것이고, 백제의 것은 고작 2건에 불과합니다.
* 성곽 리스트
1. 경기 연천 지역 - 호로고루성, 당토성, 은대리성, 대전리 산성
2. 경기 파주 지역 - 칠중성, 오두산성, 육계토성
3. 경기 포천 지역 - 고모루성, 반월산성
4. 경기 양주 지역 - 대모산성
5. 규모가 작은 군 주둔지, 보루 - 아차산, 용마산, 임진강 일대의 40여 곳
이 중에 백제의 흔적이 있는 곳은 육계토성(다수의 백제 토기 발견)과 대모산성(성곽은 백제의 것이 아니지만 안쪽에 백제의 목책과 토루가 발견)이 전부입니다. 백제 58개 성이 있어야 할 한강 이북에서 찾은 백제의 성이 고작 2개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연천 이북 개성과 평안도 지역에서 백제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당연한 논리에 해당합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린다면 그 결과에 대해서는 다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안도 지역까지 백제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연천과 포천 지역에서 백제의 흔적이 나왔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주와 양주에선 백제의 흔적이 있고, 연천과 포천 지역에 고구려 흔적만 있습니다. 정리하면 임진강을 경계로 하여 양국의 국경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위 그림은 천청강 이남에 있는 한반도 내 고구려 성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파주와 양주, 그리고 몽촌토성을 상징하는 붉은색 점은 이 지역에서 백제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곧 국경 관계를 의미합니다. 또한 푸른색 아차산 지역은 백제의 것으로 알려졌으나 90년대 발굴에 의해 고구려와 신라의 흔적만 있다고 합니다.
고구려 성을 정리하면서 충청 지역에 있는 고구려 성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학계의 주장에 따른다면 고구려가 이 지역을 차지했을 때는 장수왕 재임기입니다. 그런데 자꾸 의심이 듭니다. 과연 장수왕 일까요? 저는 자꾸 광개토태왕의 58개 성이 연상됩니다.
여기서 잠시 광개토태왕 시기의 고구려 - 백제 전쟁을 정리해 보면,
1. 392년
- 7월 광개토태왕 4만명 동원하여 백제 북부 석현성등 10여개 성 함락
- 8월 진사왕 고구려 남부 국경 공격 -> 고구려 방어 성공
- 10월 광개토태왕 백제 관미성 함락
- 11월 진사왕 사망 -> 아신왕 등극
2. 393년
- 아신왕 관미성 탈환 시도 -> 고구려 방어 성공
3. 394년
- 아신왕 수곡성 공격 -> 고구려 방어 성공
- 고구려 남쪽 변경에 7개 성 축성
4. 395년
- 백제군 패수에서 대패 (8000명 생포 및 전사)
5. 396년
- 광개토태왕 본격적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위례성을 포위하여 아신왕의 항복을 받아냄.
광개토태왕이 백제로부터 58개성, 700개촌을 빼앗았다는 것은 392년부터 396년까지 벌였던 백제와의 전쟁기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위 기록에 나오는 내용들을 통해 시기적으로 구분하면, 392년에 11개 성, 396년에 47개 성을 획득한 것이 됩니다. 392년에 획득한 11개 성에 대해서는 일단 논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396년의 있었던 내용을 정리하면, 고구려 진격로는 수군을 동원하여 1군은 한강 유역, 2군은 인천, 3군은 화성 방면으로 공격을 하였다고 합니다. 3개 군이 내륙으로 진격을 하여 백제로부터 항복을 받았다면 천안 이북 지역은 모두 고구려가 점령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래서 진천을 경계로 라인을 그은 후 그 북쪽에 있는 현 시군들의 갯수를 세어 봤습니다. 서울 경기 충북까지 해보니 35개 시군이더군요. 참고로 진천 이남은 장수왕과 관계된 곳으로 생각되어 제외하였습니다.
강화, 파주, 고양, 양주, 의정부, 서울, 남양주, 구리, 하남, 성남, 과천, 광명, 부천, 김포, 인천, 시흥, 군포, 안양, 의왕, 안산, 수원, 용인, 광주, 이천, 여주, 화성, 오산, 평택, 안성, 진천, 음성, 충주, 제천, 단양, 괴산
여기에 일반적인 도시간 거리를 통해 전체 면적도 한번 따져 보았습니다. 파주에서 천안 옆에 있는 당진까지 거리가 직선으로 약 100km 이고, 인천에서 원주까지의 직선 거리도 약 100km입니다. 위 그림의 노란색으로 표시한 영역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면적 안에 몇 개의 도시들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도시와 도시 사이의 거리는 20~25km 내외입니다. 그렇다면 100km X 100km 공간에는 5 X 5 = 25개 도시가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대각 방향으로 배열을 할 경우에는 그 수가 더 늘어날 것입니다.
앞에서 광개토태왕이 396년에 47개 성을 획득한 것으로 하였습니다. 최소한 예상되는 면적은 서울, 경기, 충북 지역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갈 내용은 비문에서 성과 촌을 구분을 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성을 현재의 시군 규모의 도시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현 행정구역 상 도시들은 35개 정도가 나왔습니다.
혹시나 해서, 700개 촌도 고려하여 계산해 보았습니다. 작은 마을 사이의 거리를 4km X 4km 로 가정하면 100km X 100km 면적 안에 대략 25 X 25 = 625개의 촌이 들어갑니다. 우리나라 행정 구역을 살펴보면 읍면 간의 거리는 약 5km 내외입니다.
최종 정리하면,
1. 광개토태왕이 396년에 획득한 지역은 서울, 경기, 충북 지역이며, 이곳을 고구려가 광개토태왕 이후에도 점령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역사를 해석해야 할까요?
2. 광개토태왕이 그 많은 재물과 인력을 동원하여 획득한 영토를 순순히 내어줬을까요? 비문의 기록을 보면 분명하게 획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영토 획득 후 국경으로 보이는 곳에 새로 쌓은 고구려 성곽도 있습니다.
3. 백제와 맞닿은 새로운 국경에 군사를 두어 지켰다면, 혹은 점령지에 군사를 두었다면 신라가 왜로부터 침략을 당했을때 5만명이나 되는 대군도 보내기가 좀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요? 거리가 190km 이내로 크게 단축되니까요. 역사의 방향성, 연관성과 관련된 의문입니다.
첫댓글 광개토태왕이 공취한 성이 모두 64개성인데 이중 58개성은 396년이전에, 그 중에 백제의 성은 대략 15성 내외에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는 수묘인중 한인에 해당하는 그룹이 있는데 그 성은 다음과 같지 않을 까 생각됩니다.
비문에서 백제를 상대로 58개 성을 공취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쓴 것인데 백제의 성이 15성 내외라니요? 그리고 본문의 글과 수묘인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요?
그러고 보니 58개성과 수묘인과는 별 상관이 없는듯 합니다.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원문을 보니 모두 55개성이 있는데 더 있나요?
비문에 명기된 이름을 세어보면 55개입니다. 비문의 다른 내용 중에 58개 성과 촌 700개에 대한 내용이 있어 그 내용을 따른 것입니다. 글의 요지는 성의 이름이나 위치 비정이 아닌, 58개 성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에 대한 내용입니다. 한강 이북으로는 그만큼의 면적이 되지 못한다는 것과 현재 발견된 유적도 그 수가 너무 적습니다. 의문이 생겨 따져봤더니 최소한 서울 경기 충북 지역은 합쳐야 그만큼의 면적(47개 성)이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자이수님 댓글 3개를 넘기면 답글로 처리해 주시길.권유하고 있습니다. 가급적이면 서로 글을 보는데 편리하도록 하는게 좋을 듯 합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답글로 처리해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