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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한국사 위화도회군 때, 이성계를 암살하려...
지국총 추천 0 조회 1,563 13.10.03 15:19 댓글 2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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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0.03 15:41

    첫댓글 1.위하도 정벌군은 전투병력과 병참부대를 합쳐서 5만명 정도였고 10만명은 군호(뻥카)였습니다.
    2.정벌군 중에서 이성계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조민수 정도였는데 이성계에게 포섭당했습니다.
    3.당시 이성계가 군부에서 가진 위상은 최영보다 아주 조금 낮거나 동등한 정도였습니다. 최영이 없는 군대에서 누구의 영향력이 먹힐까요?
    4.숙영지에서 지휘관을 살해하려면 휘하 병력 상당수가 동시에 조직적으로 봉기하거나 지휘관의 측근,호위병력이 지휘관을 습격해야 가능합니다. 지휘조직계통이 없는 사병 몇명이 군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키고 군을 장악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특히 이성계같은 명장의 밑에선 더욱 그러합니다.

  • 13.10.03 15:39

    누가 감히 이성계를 암살하려 하겠습니까 홍건적 격퇴하고 황산대첩의 주인공인 영웅이라 쉽게 암살하기 힘들 겁니다. 게다가 최영은 이성계를 신뢰했다고 하죠

  • 13.10.03 16:31

    위화도 이전까지 최영이 가장 신임한 장수가 이성계입니다.(...)

  • 13.10.04 11:38

    이성계가 왜군 발라버리고 최영이 감격해서 엎드려 절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 13.10.03 17:49

    있었어도 이성계 손에 소리소문없이 처리되었을듯 합니다.

  • 13.10.03 17:57

    애초에 이성계 세력 자체가 강력한데다가 요동 정벌군 자체가 고려의 군사력 상당수를 동원한 건데 그게 돌아섰으니 답이 없죠. 거기에 기밀을 발설한다고 해도 지금처럼 전화나 통신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니 누군가가 말타고 열심히 튀어서 개경까지 달려가 반란 소식을 전해야할텐데 이성계의 군 장악력을 봤을 때 불가능하죠.

  • 13.10.04 17:30

    상당수가 아니라 거의 전부에요. 남쪽에서 왜구랑 피터지게 싸우던 정지 장군까지 불러와서 세울 정도면 사실상 총동원입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3.10.04 00:08

    하악하악 성계찡 1/24 피규어라능 하악하악.

  • 13.10.03 21:18

    일반 사병들도 압록강 건너서 요동가는거보다 차라리 개경으로 돌아오는게 더 좋았겠죠....

  • 13.10.04 10:21

    용의눈물 1회에서는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걸로 그렸더군요;;

  • 13.10.04 12:59

    저 당시 상황은 이순신이 왜국 정벌하라고 병력 몰아줬더니 병력이끌고 돌아온거라고 보면 됬을 듯.

  • 13.10.04 14:41

    제국의 명장/제국의 명장님 위화도 정벌군은 8만 정도 아니었나요?

  • 13.10.04 15:55

    왕이안되고 죽었다면 이순신급의 대영웅이 되었을텐데요?

  • 13.10.04 22:01

    아마 '구국의 명장 이성계' 라고 위인전도 숱하게 나오고, 요동정벌 성공시키고 돌아왔으면 거진 육지의 이순신급 레전설로 남았을 거 같음. 본인은 그 가능성이 극히 적다 생각하는 편이지만

  • 13.10.05 18:27

    아마 영락제가 말고개를 동쪽으로 틀었겠지.

  • 13.10.05 18:32

    솔직히 정벌국 규모가 10만이 진짜라고 쳐도 가능성이 없어 보이네요. 고려가 기나긴 세월을 요와 전쟁 치르고 몇년을 심혈을 기울여 여진족과 동북지역에서 박터지게 싸운거 생각해보시길... 저 때는 그래도 부침이 많았지만 발전하던 시기와 전성기였는데 지금은 고려 아주 그냥 준국가부도 상태였거늘...

  • 13.10.04 16:51

    이성계를 저지할수있었던 사람은 조민수정도고 요동정벌전에 최영이 참가하지 않은것이 고려멸망의 한 원인이라고 볼수있죠...
    위하도에서 장마로 묶어있는 정벌군은 불만에 쌓여있는데다가 그것을 통제할 이성계와 조민수는 오히려 회군을 하니 최영(고려왕실)
    로서도 방법이 없죠... 윗님말처럼 병력을 너무 몰빵해서 수비군이 없을정도 었으니 말이죠..
    게다가 암살도 해도 간부(적어도 장교)급이 해야 군이 통제가 되지 일반 병사들이 해서는 통제가 안되죠..
    예를들어 무신정변같은 경우도 정중부(장군)아무리 불만이 많이 있었어도 이의방같은 장교계급(대위)급의
    동의가 없었으면 일어날수 없었던것 처럼요...

  • 13.10.04 16:57

    위하도회군은 적어도 장군들과 장교들의 적어도 묵인정도의 이해가 있었기에 이루어진 행보라고 볼 수 있죠..
    만약 최영이 우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이성계의 선봉군이 회군을 결정하고 조민수의 중후군이 동조하는 마당에 누가 감히 견제할 방법이 없죠..
    차가 출발한 마당에 거기를 가면 안된다고 하기가 뭐라고 하기가 곤란한것처럼요.,,
    암묵적인 동조하는 수밖에요...

  • 13.10.04 23:22

    2차 요동정벌 때 고려군의 수는 10만이 아니라 4만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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