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만한 것인가? 살만한 것이니까 이만큼 살아왔다 天地之心(=부모之心)이 나에게 잘살아다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행복에대한 강박과, 시시로 범하는 공포심을 극복해야 한다 대괴大塊가 水를 품어안듯 공포는 평상심으로 당연히 극복(극기복례, 지뢰복 初九)한다 행복강박이 불행으로 몬다 철이 덜들었다는 의미다 경에서는 <철이 든다>는 것을 "포일抱一"이라 했다
재영백포일 이라 말씀은, 세상을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도 <하나됨>을 잊지 않을수 있느냐고 묻는것이다
역학에선 십이지를 한번에 돌리고 한눈에 보는 경지이다 가령 자에서 오보고 오에서 묘유 신자진을 다 보는(석인정오타삼경)
앞글에서 삼재에 대한 설명이 미진하다 우리는 삼태극의 이미지를 잘 안다 짚으로 새끼를 꼬듯 三色이 하나로 꼬아 돌아가는, 삼태극이란 기실 삼재에 대한 심원하며 자상한 설명이다 그러면 삼재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천지에 인간이 참여함을 말한다 중용22장은 인간 능동성의 최정점은 천지 참여 라고했다 천지는 至公인데 여기에 인간이 참여하여 변화가 생기는 이치, 그래서 역이 <인간의 작위법>인 십진법과 십이진법, 육십진법을 쓰든 이치에 맞아서 無私至公하면 천지는 이를 용납한다 함이다 역인이 다루는 소위 "인간의 운명"이라는것도 삼태극으로 돌아가니 <천지의 무위>에 <인간의 유위>가 참여하여 삼태극으로 돌아가는것이다 자! 삼태극의 이치를 깊고깊게 음미한다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다 삼태극을 납득한다면 역인의 사주명학적 철구직단(鐵口直斷)은 불가한 것임을 알게된다 반면 점단은 철구직단이 가하다 (점단이란: 사건의 맥락을 거두절미하고 그 사건 중에 한쪼가리의 정보 만을 취함이다 그러므로 철구직단이 가하다)
그런즉 실상, 사주로 운명을 읽는다는것은 거개 점단(占斷)적 판단이 포함되어 있어서 미래를 단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점단과 사주 兩者는 그 영역이 포토샵 레이어처럼 겹칠수는 있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다)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노력 여하에 있는가? 둘다 틀렸고 둘다 맞으니 우리는 삼태극의 진의를 방금 깨달았기 때문에 이에 분명한 답을 할수있다 천지라는 旣成틀에 인간이라 가변성 참여하여 삼태극으로 돌아가는 우주를 우리는 알게되었다
(인간의 운명이 돌아가는 이치, 전국시대의 저술인 열자라는 책에는 운명과 力-인위적 노력-의 대결을 말하는 대목이 있다
수천년 전에도 자유의지와 숙명의 대결이라는 화두가 현대와 똑같이 치열했던 것을 짐작하게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말할수있되 사주명학이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것은 명확히 유효한 것이고 인류 지성의 감춰진 보물이라 함이다
단, 인간의 미래를 철구직단 하는것은 그 역인이 인간의 神性과 우주의 광대함에 아직 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며
노력이 모든것이다 라고하거나, 명학이라는 것이 미신에 불과하다 말하는것은 뭘 모르면서 토하는 기염氣焰 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