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로 짠 그림 - 조선의 카펫, 모담毛毯
‘나비와 박쥐무늬 모담’에는 복을 상징하는 박쥐와 나비가 그려져 있다.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다섯 마리 학과 꽃무늬 모담毛毯. 국립대구박물관 제공
조금은 낯선 이름 - 모담毛毯
모담毛毯은 털실과 면실을 섞어서 짠 조선시대의 카펫이다. 직조할 때 씨실(가로실)에 색실을 사용해 촘촘히 짜므로 표면에 다양한 색채와 무늬가 표현된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모직물을 만들었다. 이미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탑등㲮㲪, 구유氍毹, 계담罽毯, 모전毛氈 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최자崔滋의 『삼도부三都賦』01) 에는 신분이 높은 관리들의 집에 채담彩毯을 깔았다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도 채담은 계속 쓰였으며 전氈, 계罽, 담毯, 화채담畫彩毯 등의 이름으로 깔개나 장막으로 사용했다. 안타깝게도 이 직물들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실물 자료는 거의 없다. 중국 명明나라 홍무년洪武年(1368~1398) 때 기록인 『정운正韻』과 청淸나라의 『고금통운古今通韻』에는 담毯이 모직물로 만든 깔개이며, 오색실로 짠다는 설명이 나온다. 이러한 기록을 보면 각 모직물의 특성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모담이 털실로 짠 모직 카펫을 아우르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모담은 전통적 무늬부터 추상적 느낌의 무늬까지 자유롭고 풍부한 색채감이 돋보인다. 당시 조선의 청화백자에서 유행했던 화초를 담은 화분, 사자, 대나무와 까치 등 전통과 해학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또 입체적 형태인 학이나 나비 등을 씨실과 날실로 엮인 평면으로 옮기면서 선과 색채를 과감하게 생략했다. 추상적이고 자유로운 선은 마치 현대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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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문선東文選』 제2권 부조(賦條).
모담에서 - 양탄자까지
현재 조선시대 모담의 실물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17세기 이전의 모담은 문헌 자료나 일부 초상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기록에는 혼인 때 사라능단紗羅綾緞과 계담罽毯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를 보면 계와 담이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었지만, 일반인은 쉽게 사용할 수 없는 고급 물품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7세기 무렵 관복冠服 차림의 초상화에서는 바닥에 깔린 모담을 볼 수 있다. (그림1, 2)의 조경趙絅(1586~1669)과 18세기로 추정되는 초상화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도상임에도 불구하고 바닥 깔개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18세기의 초상화에는 모담이 사라지고 화문석花紋席이 깔려있는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사라졌던 모담은 1880년 대원군大院君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초상화에 다시 나타났다(그림 3). 그리고 20세기 초 유럽에서 수입된 양탄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신문에는 유럽의 카펫이 본격적으로 소개되었다. 당시 신문을 보면 미국에서 가져온 양탄자와 국내에서 제작한 모담을 판매하는 내용의 광고가 자주 나온다. 이 시기의 모담은 융전毧氈, 단통緞通, 양洋탄자로 불렸다. 양탄자는 국내에서 제작하는 모담과는 별개로 ‘양洋’을 단어 앞에 붙여 서양에서 수입한 카펫이란 뜻이다. 1902년 『진연의궤進宴儀軌』에는 양탄자 11통이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다. 왕실에서는 수입품인 양탄자를 사용했지만, 일반인은 국내산 모담을 쓴 것으로 생각된다.
모담의 쓰임새를 살펴보면 재질이나 두께, 명칭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는 당시 사회변화와 관련지어 살펴볼 수 있다. 조선에서 전면 온돌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17세기 이후로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관련 연구자들은 온돌의 보급으로 인해 주거 환경과 취사도구 등 조선의 전반적인 생활 문화가 크게 바뀌었다고 보고 있다. 18세기 무렵에 모담의 사용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에는 이러한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경趙絅(1586~1669)의 초상 / 18세기 추정 관복 초상화 / 이하응李昰應(1820~1898)의 초상
모담의 또 다른 이름 - 조선철
‘조선철朝鮮綴’은 일본에서 조선의 모담을 부르는 명칭으로, 교토 기온재단은 17~18세기에 제작된 조선 모담 3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조선철은 교토(京都) 기온마쓰리(祇園祭)에 사용되는 수레인 야마보코(山鉾)를 장식하는 데 쓰였다. 기온마쓰리는 매년 7월에 열리는 큰 축제로 66개의 수레를 만들어 행차를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수레는 조선을 비롯해 중국·유럽·인도 등 여러 지역에서 가져온 직물로 장식한다. 기온마쓰리의 염직물染織物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수집한 요시다 고지로(吉田孝次郞)는 이 수레에 사용된 직물 중 일부가 조선의 모담임을 밝혔다.
조선의 모담은 16세기 이후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떻게 제작되고, 어떤 경로로 전해졌는지 정확히 알려진 바는 없다. 국내에서 조선철 연구를 처음 시작했던 민길자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에도시대(江戸幕府, 1600~1868)에 일본과의 교류를 회복한 후 본격적으로 직물의 수출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때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보내는 물품 중에는 화석花席·채화석彩花席·만화석滿花席 등의 명칭이 있어, 모담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다.02) 요시다 고지로는 조선의 모담이 일본에 전래하게 된 이유로 부산 근교에 있었던 쓰시마번(對馬藩)의 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했다.03)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니며, 아직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또 어떤 이유로 원산지인 한국보다 일본에 더 많은 모담이 남아 있는 것인지도 연구가 더 필요한 부분이다.
국립대구박물관에서는 조선의 모담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 <실로 짠 그림-조선의 카펫, 모담>을 마련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담의 실물 자료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 자료를 함께 구성해 한국 전통 카펫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이번에 새로 구입한 모담 중 10점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잘 몰랐던 모담에 대해 많은 관심과 다양한 연구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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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육전조례六典條例』 통신通信.
3) 요시다 고지로(吉田孝次郞). ‘조선철에 대하여’, 『조선철을 아시나요』, 경운박물관 특별전(2016).
◆ [Summer Blues] 들풀의 여름이 주는 특별한 선물을 찾아서(20210706(월))
- 둥근잎꿩의비름, 강아지풀, 그령, 러시안 세이지(Russian Sage), 스토케시아(Stokesia laevis, 풍차국), 소리쟁이, 파리지옥, 호밀, 수국, 나무수국, 산수국, 무궁화, 보화목련, 자두, 서울 남산 소나무 숲길, 황소-힘 ...
[자료출처 및 참고문헌: 글. 민보라(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한국 전통직물사 연구』, (민길자. 한림원. 2000) / 『조선철을 아시나요』 (경운박물관특별전시 도록. 2016)./ 글과 생태사진: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촌장 원건민 국장
[삶을 바꾼 말 한마디]
'수고했어 '라는
말 한마디가 피곤함을 씻어주고
'고마워' 라는
말 한마디가 새 힘을 얻게하고
'괜찮아' 라는
말 한마디가 부담을 덜어주고
'사랑한다' 는
말 한마디에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고생한다' 라는
말 한마디에 힘든 줄 모르고
'잘한다' 라는
말 한마디에 어깨가 으쓱해지고
'행복하다'란
말 한마디에 자부심이 생깁니다
이처럼 우리의 세심한 말 한마디가
상처를 없애주고,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마음의 문을 열게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