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기 영감의 초상
1887년, 캔버스에 유채
테오에게...
편지와 돈 고맙게 받았다. 설령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림을 그리는 데 든 돈을 고스란히 되찾지 못할 거라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가족들은 아주 잘 지내지만, 그래도 그들을 보면 슬프다" 라고 쓴 네 편지를 읽고 마음이 아팠다. 네가 결혼한다면 어머니께서 아주 기뻐하시겠지. 네 건강과 일을 위해서라도 독신으로 지내서는 안 될 테고. 하지만 나는 결혼이나 아이에 대한 욕망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따금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벌써 그런 느낌을 갖는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반대여야 할 텐데 말이다. 그리고 가끔은 이 지긋지긋한 그림에 염증을 느끼기도 한다. 어디선가 리슈팽이 그랬지. "예술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잃게 만든다"고. 그건 정말 옳은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 역시 예술에 대해 넌더리를 내게 만든다.
가끔 내가 이미 늙고 쇠약해져 버린 느낌이 든다. 그림에 이토록 열성적이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의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성공을 하려면 야망을 거져야 하는데, 내겐 야망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네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에는 불가능한 일도 아니겠지. 열심히 그림 실력을 쌓아서 네 체면을 구기지 않고도 당당하게 내 그림들을 보여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남부 어딘가로 내려가서 인간적으로 구역질나는 많은 화가들을 보지 않고 지낼 테다.
어제 탕기 영감을 만났다. 그는 내가 막 완성한 그림을 가게 진열장에 걸었단다. 네가 떠난 후 네 점을 완성했고 지금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 길고 큰 그림들을 팔기는 어렵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야외의 신선함과 편안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식당이나 시골집의 장식에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젠가 네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면 너도 다른 화상들처럼 시골에 집을 살 수도 있을 게다. 네가 안락한 생활을 하려면 더 많은 돈을 써야겠지만, 그런 식으로 기반을 형성하는 것 아니겠니. 요즘은 누추해 보이는 것보다 부유해 보이는 것이 훨씬 유리하거든. 자살하는 것보다 유쾌한 삶을 사는 게 더 낫다.
1887년 여름
첫댓글 나는 그림에 대한
열성으로 늙고 쇠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