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급속한 노령화 속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겪고 있습니다만, 정신건강 면에서는 치매가 그 무엇보다도 큰 사회 문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치매는 본인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안겨줍니다.
돌아서면 자꾸 잊어버려서 손자들에게 놀림을 당하지만, 조용하고 얌전히 지내는 치매 어르신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지요. 치매 환자가 되면 성격 자체가 변하고,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돌발행동을 저지르기 때문에 가족들이 여간 애를 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미 상당히 진전된 상태의 치매 환자가 병원을 찾아오면, 약속이나 한듯이 저와 가족들 사이에 행해지는 질문과 대답이 있습니다. 열에 여섯, 일곱은 거의 비슷한 식으로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할머님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아무런 조치를 안 하셨어요?”
“어머님이 어렸을 때 기억을 얼마나 생생하게 하시는지, 치매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치매 노인들이 보이는 행동 중 두드러진 것은 자신이 젊었을 때, 심지어 어렸을 때로 돌아간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쉰이 넘은 아들에게 학교는 잘 다녀왔냐고 묻기도 하고, 돌아가신지 수십 년이 지난 아버지, 어머니가 자신을 찾는다며 집을 나서기도 합니다.
은퇴한 지 20년이 넘은 교장 선생님은 아침 조회한다고 삐뚤빼뚤 넥타이를 매고 식구들 앞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렇듯 엉뚱한 행동을 할 때도 있지만 수십 년 전 기억들을 젊은 사람들보다 더 생생하게 해내니, 가뜩이나 자기 부모님이 치매에 걸릴 리가 없다고 부인하던 자식들이 병원에 모시지 않는 것도 이해할 법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장년기의 기억이 송두리째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간 기억이 없어지니 20년, 30년 전의 일이 바로 어제 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영화로 만들어져 유명해진 스콧 피츠제럴드 (Scott Fitzgerald)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주인공처럼, 치매에 걸린 노인들의 머릿속에는 유년기의 기억밖에 남지 않게 되고, 그 시절 그 추억 속으로 침잠되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기억력이 감퇴하면 최근 기억부터 사라진다는 것은, 심리학이 처음으로 태동하던 19세기 중반부터 이미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심리학자이던 테오뒬 리보 (Théodule Ribot)는 기억뿐 아니라 살아오면서 획득하게 된 모든 심리학적 기능들은 획득한 순서를 역행하면서 잃어버리게 된다는 법칙을 마련합니다. 이를 ‘리보의 법칙(Ribot’s Law)’이라고 부릅니다.
첫댓글 최근 기억부터 사라진다는 치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