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는 왜 바보 같은 짓을 해야만 했을까?≫
궁정동 안가의 대기실에서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은 정인형 경호처장, 안재송 경호부처장과 TV를 함께 보고 있던 중 만찬장에서 총성이 울렸다.
그러자 박선호는 벌떡 일어나 정인형과 안재송을 향해 총을 뽑으며 “총 뽑지 마! 움직이면 쏜다!”라고 외쳤다. 이와 동시에 “인형아! 오늘 모든 것 끝났어, 같이 살자!”, “인형아! 너 완전 포위됐어, 같이 살자!”라고 애원했다.
만찬장과 마루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대기실은 심수봉의 노래 ‘그때 그 사람’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만찬장에서 연회가 진행 중 박정희 대통령과 경호실장 차지철이 시국(부마 민주항쟁 등)에 대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를 질책하며 모욕을 주자, 김재규는 ”차지철, 이 새끼, 너 건방져!“라고 외치며 권총을 꺼내 들고 차지철을 쏘았고, 이어 혼내는 박정희에게도 총격을 가한 것이 신호탄이 되었다.
박정희는 앉아있던 상태에서 가슴에 총을 맞아 즉사했고, 차지철은 첫발이 빗나가 손목에 경미한 찰과상만 입자 화장실로 도망쳐 문고리를 잡고 버티다가 추잡한 최후를 맞았다.
나머지 만찬 현장에 있었던 김계원 비서실장, 가수 심수봉, 모델 출신 여대생(H대 연극영화과) 신재순은 무사했다.
박선호와 정인형은 해병대 간부후보생(이하 “해간”) 16기로 둘도 없는 친구였고, 안재송은 아끼는 후배 장교(해간 23기)였지만, 죽이고 죽어야 할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박선호가 두 사람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가운데 안재송이 안 주머니에서 총을 뽑으려고 하자 안재송을 사살했고 곧바로 정인형이 다가오자 그에게도 방아쇠를 당겼다.(안재송은 해병대 명사수였고, 정인형은 5.16 군사혁명 때 중대장으로 한강 다리를 처음 넘은 공신)
이와 동시에 중정 직원인 이기주(해병대 하사관 출신), 김태원(해병대 병 출신), 박흥주, 유성옥 등 일행은 주방으로 달려가 식사 중이던 경호실 직원들에게 총을 퍼부었다.(김태원은 나중에 방을 돌아다니면서 쓰려져 있던 요원을 마무리 확인 사살)
이 난리 중에 경호실 경호계장 박상범(해간 33기)은 허벅지 관통상만 입고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다.(이후 버마 아웅산 테러 등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던 불사조 같은 인물로,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을 역임) 총을 맞고 쓰러질 때 주방 조리대에 머리를 세게 부딪쳐 완전히 의식불명이 되어 죽은 것으로 오인되었고, 확인 사살 때 그의 옆에 김용남이 부상을 입고 누워있어 사격을 포기하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이로써 중정의 기습으로 야기된 총격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각 6명씩 총 12명은 이 세상 사람으로 남지 못했다.
가해자인 중정의 김재규, 박선호, 박흥주,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은 모두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피해자인 박정희, 차지철, 정인형, 안재송, 김용섭, 김용태 등 6명은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현직 국가원수를 살해한 헌정 사상 초유의 비극적인 사건 속에서 해병대들의 저지른 행동을 미화하거나 명분을 세우고자 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단지 해병대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중앙정보부와 경호실에 들어갔고 오로지 상관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며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절체절명의 불가피한 상황에 대해 이해를 구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피 끓는 동기를 죽이면서까지 상관에 충성한 것을 두고 과연 그 어떤 대의명분이나 당위성으로도 치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박선호 의전 과장의 군사 법정 최후진술에서 엿볼 수 있다. 그는 김재규가 김천중학교 교사 시설 제자였다.
해병대 사령부가 폐지되면서 17개의 대령 자리가 없어지고 자의반 타의반 전역해 집에서 쉬고 있을 때 당시 건설부장관이던 김재규의 주선에 의해 중앙정보부에 들어가게 되면서 김재규에 대한 한없는 충성을 하게 된다. 또 그는 평소 해병대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사령부 해체가 해병들에게 줘 맞은 육군 장교들의 분풀이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녔다고 한다.
군 법정에서 군 검사가 왜 가담했는지에 대해 묻자 그는 너무도 당당하게 “나는 단지 명령을 받았을 뿐이고 그 명령을 이행했을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이어서 재차 잘못된 명령이란 생각을 왜 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육군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해병대는 직속상관이 명령하면 설사 그 대상이 하나님이라도 쏜다. 우린 그렇게 배웠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라고 의연하게 대답했다.
이처럼 박선호를 비롯한 해병대 출신들은 총으로 사살하면 자신들의 신변에 엄청난 대가가 따를지에 대한 무한한 공포가 엄습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상사의 지시에 따른다는 신념으로 거사에 가담했던 것이다.
좀 더 풀어서 얘기하자면, 뼛속 깊이 자리 잡은 해병혼(魂)과 의협심, 그리고 상관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 등의 발로였다. 한마디로 해병대 출신은 눈앞에 닥친 이익이나 손해에 연연치 않고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그 알량한 해병 정신을 지켰던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바보 같은 짓인지 알면서도 해병대는 의리를 위해 행하는 것을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10.26 사건은 오직 권력을 연장하려던 박정희, 시위를 무자비하게 강제 진압하려던 차지철과 이에 대해 유화책을 쓰려던 김재규라는 3인의 인물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이면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군인 정신에 대한 투철하고 숭고한 뜻이 숨어있다는 점이 역사의 뒤안길에 밀려 완전히 간과되어 있다.
우리 해병대만이라도 그들의 질곡진 삶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원하건대, 역사 교과서에서 해병대가 이러한 정신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용기에 대해 한 줄이라도 언급되길 바랄 뿐이다.
PS 1)세계 모두가 추앙하는 경이로운 ‘한강의 기적’이란 신화를 창조하며 세계 10대 강국의 반석에 올려놓으신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업적이 좌빨들에 의해 폄하되는 서글픈 현실에서, 45년이 지난 지금 개인적으로 박 전 대통령을 국민적 영웅으로서 역사가 재평가되기를 바라면서 추모합니다.
PS 2)다시 한번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슬픈 역사를 끄집어 내 remind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