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부락 카란 ⓒ www.trtspor.com)
2011년 3월 15일, 바샤르 알 아사드의 정부군과 그를 축출하려는 반군이 군사 전쟁을 시작하면서 시리아 내전이 벌어졌다. 현재까지 진행 중인 시리아 내전은 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내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 내전은 21세기 들어 아랍 국가들에서 일어난 '아랍의 봄'의 연장선에 서는 사건이다. 부패한 독재자들을 몰아내고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아랍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위에서 얘기했듯이 시리아 내전은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발생시키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 IS 문제까지 더해지며 난민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고, 전 세계에 공포심이 늘어나고 있다.

(폭탄이 터진 시리아 건물 ⓒ CNN)
축구 칼럼에 뜬금없이 내전 이야기가 나왔다. 당신이 '시리아가 내전한 거랑 축구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했다면, 이 칼럼을 끝까지 읽기를 추천한다. 오늘 필자는 시리아 내전과 축구에 얽힌 안타까운 스토리를 전하려고 한다.
축구에 웬만큼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도 이 선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내 최대의 축구 카페인 [I love Soccer]에도 그에 관한 글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이 선수는 독일 청소년대표로 7경기를 소화한 '부락 카란'이다.

(선수로 뛰던 시절의 부락 카란 ⓒ The Guardian)
독일 부퍼탈에서 태어난 부락 카란은 터키계 부모님의 영향으로 이슬람을 믿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2002년부터 1년간 레버쿠젠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배웠다. 그는 레버쿠젠의 유소년팀에서 기량을 인정받아 헤르타 BSC, 함부르크 SV를 거쳐 하노버 96의 유소년팀에 차례로 입단했다.
하노버 96에서도 최고의 잠재력을 보인 그는 하노버 96 2군 팀으로 승격했다. 그는 독일 프로 축구 4부 리그에 해당하는 'Fußball Oberliga Nord'(2008년까지는 'Fußball-Oberliga Nordrhein'이라고 불렀다.) 에서 17경기를 소화하며 프로 축구 커리어에 화려한 이력을 남겼다.
클럽팀에서 승승장구했던 그는 2002년 독일 U-16 국가대표에 발탁되면서 독일을 대표하는 국가대표로도 활약하게 되었다. 그는 U-16 팀에서 5경기를 소화했고, 곧바로 다음 해에 U-17팀으로 승격하여 2경기를 소화했다.

(독일 청소년대표 소속으로 7경기를 뛴 부락 카란 ⓒ Euro Sport)
하노버 96 2군 팀에서 6개월 동안 활약한 그는 알레마니아 아헨이라는 클럽의 2군 팀으로 이적하여 분데스리가 북부 지역리그에서 43경기를 활약하였다. 31경기를 선발로 나오는 등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인 그는 2008년 3월 29일 커리어 마지막 경기를 치르고 20세의 나이에 은퇴를 결정했다.
그는 2008년 3월 29일 SV 베르기쉬 글라드바흐와의 지역리그 경기에서 경기 종료 2분 전에 교체 투입되었다. 당시 알레마니아 아헨에는 현재 함부르크 소속인 루이스 홀트비가 있었고, 카란은 홀트비와 나란히 경기를 뛰었었다.
미래가 창창해 보였던 그의 은퇴는 '미스터리' 그 자체였다. 2008년 1월 그가 알레마니아 아헨으로 이적했을 때, 아헨의 감독 토마스 헹엔(Thomas Hengen)은 "카란은 시야가 좋고, 패스게임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1:1 싸움에서 강한 선수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랬던 인재가 은퇴했으니 미스터리일 수밖에 없다.

(2008년 당시 아헨의 2군 감독이었던 現 함부르크 스카우터 토마스 헹엔 ⓒ SPOX)
그가 은퇴한지 5년이 지난 2013년, 그가 다시 한 번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는 2013년 10월 11일 시리아 북부의 아사스라는 도시에서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그의 동생은 형이 시리아 내전에 참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의 동생 무스타파 카란에 따르면, 부락 카란은 시리아에 싸우러 간 것이 아니라 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간 것이라고 한다. 무스타파는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형(부락)이 7개월 전 원조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터키-시리아 국경지대로 갔다고 말했다.
" 형이 무장해 있었다면, 그것은 수송인원을 지켜주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 돌을 던져야 합니까? 형은 싸우고 싶지 않다고 누누이 저에게 말했어요. " - 무스타파 카란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러나 부락의 사망 이후 9일이 지난 10월 22일, 이슬람주의 집단이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부락은 돌격 소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Abu Abdullah Al-Turki'라고 불렸던 부락은 전사로 칭송받고 있었다. 이후 부락이 내전에 참전한 사실이 알려졌다.

(돌격 소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부락 카란 ⓒ The Times)
부락 카란의 시리아 내전 참전에는 엠라흐-뷔냐민 E (Emrah E. / Bünyamin E.)라는 형제가 연관되어있었다. 부퍼탈에 거주하는 살라피스트 (서구의 것을 배척하고 타락한 이슬람 교리를 순수하게 되돌려야 한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였던 형제는 카란과 수 년 동안 접촉했고, 2010년 4월에는 카란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려고 했다.
뷔냐민은 2010년 10월 파키스탄에서 드론의 공격으로 사망했고, 엠라흐는 독일에서 수감 중이다. 엠라흐는 알 카에다와 알 샤밥 등의 테러단체에서 활동한 혐의를 가지고 있었다.

(부락 카란이 활동했던 이슬람 단체 <밀라투-이브라힘> ⓒ www.theaustralian.com)
카란 또한 검찰의 수사를 피할 수 없었다. 2010년 뒤셀도르프 검찰은 카란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는데, 검찰이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카란은 2011년 이슬람주의자인 모하메드 마흐무드와 접촉했다고 한다.
마흐무드와 접촉한 카란은 <밀라투-이브라힘 (Millatu-Ibrahim)>라는 단체에서 활동했다. 이 단체는 2012년 5월 '헌법 법규 및 국민적 이해 사고에 반하는 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활동을 금지당했다.
터키에서 수감당한 마흐무드는 시리아 내전에서 자하드 전사들의 편에서 전투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 그가 전투한 곳은 카란이 사망했던 아사스라는 곳이었다.

(독일 청소년대표 시절 케디라-보아텡과 같이 뛰었던 부락 카란 ⓒ spor.mynet.com)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력과 함께 그와 같이 뛰었던 선수들도 화제가 되었다. 부락은 독일 청소년대표 시절 케디라-보아텡 등과 같이 뛴 적이 있고, 위에서 언급했던 홀트비와도 같이 뛰었었다. 부락과 청소년 시절을 함께했던 케빈-프린스 보아텡은 그가 사망했을 때 트위터에 그를 애도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나의 형제 부락 카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을 결코 있지 않을 것이다. 자네는 진정한 친구였다! - K. P. 보아텡 (트위터에서)
이외에도 부락과 독일, 나아가 시리아와 독일의 인연은 끝나지 않았다. 2015년 겨울,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건너오자 유럽인들은 난민 유입 금지를 주장했고, 난민들의 발이 끊길 뻔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를 구해냈다.
독일 축구팬들은 난민 수용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경기장에서 흔들었다. 샬케의 팬들은 '일어나라'는 뜻의 'STEHTAUF'를 적어놓은 플래카드를 흔들었고, 이외에도 도르트문트와 바이언 등의 팬이 경기 중 난민을 환영한다는 뜻의 현수막을 걸었다.
이에 끝나지 않고, 바이에른 뮌헨은 뮌헨에 난민캠프를 만들고 구호 금액€1m을 기부하는 등의 선행을 해 축구계의 난민 수용 캠페인을 이끌었다. 이후 이러한 행동들은 프리미어리그 클럽에서도 보이기 시작했다.

(난민들을 위한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샬케의 팬들 ⓒ Goal.com)
부락 카란이 유망한 축구선수였다는 것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현재 FIFA 랭킹 4위에 랭크되어있는 독일의 청소년 대표였다는 것만으로도 그가 어느 정도의 선수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와 전쟁이 축구선수 한 명을 죽였다. 만약 그가 시리아 내전에 참여하지 않고 축구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세계 축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 영향이 거대하진 않아도 분명 그는 성공했을 것이다.

(카를스루에 SC와의 경기를 뛰고 있는 하노버 06 시절 부락 카란 ⓒ Speigel Online)
물론 내전 중에 사망한 사람들은 매우 많다. 아직까지도 죽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 그의 죽음은 내전의 참상을 알리는데 공헌을 했을 것이다.
어서 빨리 전쟁이 멈추고, 앞으로 이슬람 전쟁 때문에 축구를 포기하는 선수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 F I 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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