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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부터 새벽 3시경까지 치열하게 공격하다가 지쳐 잠든 안느의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다. 프랑스로 날아 온 나를 함박 미소로 맞이하던 귀여운 모습이
어느 새 서슬이 시퍼런 아줌마로 변해 있었다. 나를 만나 얼마나 힘들었을까?
집 안 가족들의 극열한 반대를 무시하고 내게로 와주었던 그 마음이 정말 고맙다.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나를 주고 싶었다. 내가 뭐라고 이 토록 사랑하는가?
이제서야 나와 동거하며 절절히 사랑했던 그녀의 마음이,
숨겼던 모습이, 그녀의 고통과 바램이 무엇인지 알게되다니
내 욕망만 앞세워 그녀의 마음을 읽어낼 생각도 않았던 나는 참으로 무례한 인간이다.
너무 미안하고 불쌍해서 눈물이 터지고 울음소리가 커질 것 같아 밖으로 나왔다.
이른 새벽 샹젤리제 거리엔 인적이 거의 안 보인다. 멀리 꿈틀거리는 인적들은
추위에 몸을 움직이는 노숙자들일 것이다. 넓은 샹젤리제 보도 위에는 간밤
여행자들의 축제나 있었던 것처럼 쓰레기 더미가 수북했다.
멀리 어두움 속 저 인적은 노숙자들이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음식을 찾고 있는
은밀한 행동이었다.
길을 건너 세느강 알마 막소 다리를 향해 내려갔다.
알마 막소 로터리에서 홀로 불을 밝히고 있는 공중전화 부스를 발견했다.
그 앞에 한참 동안 서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아내를 위로하고, 이혼할 의사를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일주일 전 통화에서 이혼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마자
통곡을 하며, 감정이 폭발해서 전화를 끊었었다. 전화기를 들었다가 놓았다가
하다가 결국 전화를 하지 못했다. 아무리 다시 생각하고, 쓰러져 잠든 안느를
떠올렸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혼을 용납하지 않았다.
거의 무일푼으로 고생 고생해서 이룬 가정이 네 것이냐? 하나님이 네 아내의 신앙을
사랑해서 선물한 것이다. 너는 아무런 자격이 없다. 너는 이미 떠난 외인이다.
누군가 내 안에서 이렇게 말하며 나를 심하게 질책했다.
알마 막소 다리. 새벽 풍경.
세느 강변으로 내려가 알마막소 다리 아래 공간 벽에 기대 앉았다.
몸이 얼음이다. 추위를 이기려고 허리를 한껏 움추려 두 팔로 양 다리를 끌어안고
무릅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타임머신을 잘못 조작해 알지도 못하는 곳으로 혼자
내동댕이쳐진 우주 미아처럼 생각되었다. 어쩌면 난 태어나지 않아야 하는
생명이 아니었을까? 내 전생은 무엇이었을까?
엉뚱한 생각으로 고통도 잊고, 추위와 배고품도 잊어보려고 애를 썼다.
어릴 시절 무전여행을 하면서 배가 너무 고파 길에 버려진 사과 속을 주어먹던
생각도 났고, 내가 무전여행을 하도록 만들었던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도
생각이 났다. 그리고 늙은 부모님. 잘난 아들로 여겼는데 이런 사고를 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하시고, 이젠 며느리에게 조차 머리를 조아리며, 나 대신 속죄하고
있을 부모님. 그리고 졸지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딸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무슈? 무슈?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조깅복 차림의 50대 쯤 되는 건장한
남자가 허리를 굽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여기서 자면 어떻게 해? 일어나 봐. 저기 불 옆으로 가자.’
‘알레지 부 알레! 알레! 얼릉 갑시다. 빨리 빨리’ 머뭇거리는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 손을 잡아끌고 알마 막소 다리를 빠져 나갔다.
다리를 지나 조금 더 가니 앞쪽에 도람통에 불을 피워놓고 몇 사람이 둘러 앉아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간 남자가 그들에게로 다가가서 내 자리를 만들어 주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즉시 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플라스틱 컵에 잘 데워진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내 옆에 앉은 둥근 얼굴의 남자는 헤밍웨이보다 훨씬 많은 수염으로 얼굴이 덮혀
있었고, 숱이 풍성한 백발 머리카락 때문에 머리가 굉장히 커 보였다.
그가 내게 편안한 미소를 보이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꼬레 드 수드(한국)라고
말하자 자기들 끼리 내기를 한 모양이다. 누군 꼬레다. 누군 자뽕(일본)이다,
누군 시나(중국)다. 내기를 하고, 내게 물었던 것이다.
꼬레라고 한 사람이 다시 내게 방 쇼(따뜻한 포도주) 한잔을 권했다. 그리고는
나를 데리고 온 사람을 가르키며 ‘이 친구는 파리 생제르맹 축구 선수였고,
네 옆 할배는 솔본느 대학교 교수였는데, 철학자고 시인이며, 책을 몇 십 권 쓴
대학자고, 자기는 유람선을 운행하는 선장인데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싶어서
집에 안가고 여기서 놀고 있다고 소개를 했다.
추위로 얼었던 몸에 따뜻한 포도주가 들어가자 녹으면서 졸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꾸벅 꾸벅 조는 내 모습을 발견한 축구선수가 나를 데리고 자기 천막으로 안내했다.
세느 강변에 친 노숙자 천막이다. 나를 천막 안에 눕게 하고 위에 모포를 덥어주었다.
나는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유람선 고동을 울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고개를 들어 천막 틈 새로 밖을 보니
가랑비가 내리는 세느 강변에 관광객들이 삼삼 오오 몰려 지나가고 있었고
넓고 큰 유람선이 물살을 가르며 에펠탑 쪽으로 강을 내려가고 있었다.
천막 주변에 인기척이 없다. 다들 어디 갔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어젯 밤 불을 지폈던 도람통은 검은 재만 가득 안고 비에 젖어 있었고,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고 없었다. 그냥 가야 할지 아니면 기다리다가 만나서 인사를 하고 가야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 앞에 조깅복을 입은 축구선수가 누런 빵봉지를 안고 달려오고 있었다.
‘봉쥬 무슈~ 일어났네. 많이 피곤했었나 봐.’
‘봉쥬, 맥시 보끄 무슈, 부 제대 모아, 도와줘서 너무 고마워.’
‘히앙~ 무슈, 별거 아냐. 이거 바게튼데 같이 먹자.’ 나는 그가 사 온 바게트를 함께 먹고
다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알마막소 길 위로 올라왔다.
‘어디를 쏘다니냐? 아침 밥 해놨으니 먹어. 나 투어 갔다가 삼일 뒤에 오니까,
골프나 치세요~‘ 아침 10시경 집으로 가니 안느는 쪽지를 써놓고 일을 나가고 없었다.
쪽지 밑에 200유로 지폐 한 장이 놓여있었다. 코가 찡해졌다. 미안타 정말 미안타 안느야.
집에서 잠을 좀 더 자고 샤워를 한 후에 오후 2시경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가 비도 오니 오르쉐 미술관에 가서 좋아하는 화가들 그림이나
보자고 생각하고 튈르리 정원을 거쳐 다리를 건너서 오르쉐 미술관으로 갔다.
몸도 피곤하고 기분도 우울해서 오르쉐 미술관 안에 들어가자마자 처음 생각과 달리
위층으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미술관 일층 신고전주의 풍의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 작품이 있는 난간에 앉아서
멍하니 지나가는 사람들과 조각을 보다가, 사람들이 많아져 시끄러워 로댕의 조각이
있는 이층 난간으로 올라갔다. 로댕의 발자크 조각 발치를 스다듬고 지나쳐서
지옥문 앞에 섰다.
지옥문 맨 위에 새겨진 생각하는 사람을 올려다 보고,
어떻게 저런 자세로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로댕은 어떤 생각으로 저런 자세의 인물을
만들었을까? 정말 불편하잖아. 이런 생각도 하고, 그의 발 밑 지옥문 안에 새겨진
조각들을 하나 하나 유심히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왜 어린아이들이 이렇게 지옥에 많지? 어? 그러고 보니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네? 도대체 로댕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지옥을 만들었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투어로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로댕의 지옥문이 이겁니다.
단테의 신곡을 모티브로 구상을 했고, 누가 돈을 대줬고....등등 상식적인 설명만 했는데
오늘은 디테일한 조각들이 다 보여 졌고, 생각도 못한 의문이 꼬리를 이어졌으나
지금 내게는 그 의문에 집중할 의욕도 에너지도 없다.
그런 의문들을 귀찮아 하며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이 로댕의 조각과 함께 놓여진 곳으로
돌아서는데 전에는 눈여겨 보지도 않았던 작고 검은 조각 토르소를 마주쳤다.
그 토르소를 마주하는 순간 난 놀라움에 발이 얼어버렸다. 까미유 끌로델의 토르소였다.
세상의 모든 고뇌와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듯이 보이는 몸부림.
그는 온몸으로 그 고통을 처절하게 표현하며 내게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그는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져 죽지도 못하고 몸부림치는 죄 많은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 노인의 모습이 내 모습으로 오버랩 되어졌다.
까미유 끌로델의 토르소.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거기 진열되어 있는 끌로델의 조각품을 전부
돌아보았다. 모든 조각들이 나를 보더니 눈물을 쏟으며 메달렸다. 도와달라고,
죽고 싶도록 가슴이 아프니 만져달라고. 로댕에게 버림받고 정신병동이 있는 양로원에
40년 동안 갇혀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죽어간 끌로델의 비명이 들렸다.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고 애 써 끌로델을 외면하려고 로댕의 조각품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나와 시선을 마주친 로댕의 조각들이 내게 기름끼가 잔득
베여있는 오만하고 거만한 비웃음을 던졌다. 전형적인 위선자, 오만하고 거만한
돈만 아는 인간, 약자를 능멸하고 강자에게 비굴한 인간의 모습으로......
로댕이 그런 사람일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가 구상한 지옥문을 보면.
나는 도망치듯이 오르쉐를 빠져 나왔다. 두 작가의 조각품에서 발견한
전혀 다른 두 인간이 애원하며 매달리고, 낄낄낄 비웃으며 내 뒤에 달라붙어
집까지 따라왔다. 그 둘은 그날 밤 억지로 잠든 내 꿈속에 생생하게 되살아나서
밤새 나를 괴롭혔다. ‘너야 너, 나는 너라구 너. 도망치지 마. 도망쳐도 소용없어.
넌 지옥으로 가야 해. 넌 정신 병원에 갇혀서 죽어야 해. 끌로델처럼.‘
이날부터 병이 났고 사흘을 앓아누웠다. 안느의 따스한 손이 내 머리를 만졌다.
‘바보, 겁도 많고, 이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떻게 살았니? 내가 좀 구박했다고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망가졌니?‘ 내 뒤틀린 얼굴을 만지며 안느가 울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정신이 맑아지자 그 날의 충격이 생생하게 다시 기억되었다.
다시 오르쉐로 갔다. 그리고 곧장 끌로델의 토르소에게로 갔다. 그리고 그 고통의
몸부림을 다시 보았다. 로댕의 비열한 비웃음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않는 지옥도
그대로였는데, 지옥에서 몸부림치는 아이들과 여자들이 로댕의 포악함을 원망하며
원통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 이게 무슈 장이 말한 그거였나? 정말 그건가? 작품이 내게 말을 한다는 것이?
틀림없이 말을 했어. 분명히 작가의 모습을 내가 본 거야. 난 바로 윗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모네와 드가, 르노아르와 고흐와 로트렉을 눈물 반, 웃음 반, 울다가 웃다가
하며 보고 또 보았다. 아! 그가 사기꾼이 아니었네. 그의 말이 사실이었어!
진짜로 보여! 작품들이 모두 내게 말을 해!
이것이 내가 나를 보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내 사진에서 진정한 나를 본 것은 또 다른 아픔이 수반되어야 했지만......(8편 FIN)
*너무 감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여기 까지가 어줍잖은 저의 방랑기 상편인 것 같습니다.
중편은 부친의 소천과 어머니의 치매 발병. 그리고 고흐와 모네의 작업을 추적하면서
내 참 모습을 발견하고, 눈물을 뿌리며 세느강을 촬영하고,
결국 한국의 태양과 땅이 그리워 프랑스를 떠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마지막 결말은, 한국으로 돌아와 어머니도 아름다운 어린 소녀였음을 알게되고, 그런 어머니를 그린
사진전 '엄마의 꽃밭'을 전시하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나를 충동질해서 작업하게 된 우리 나라의
빛과 흙, 그리고 유구한 역사를 상징화시킨 한지와 옻칠 작업까지가 될 것 같습니다 만,
전편의 글을 쓰면서 에너지가 고갈되었습니다. 충전되면 이어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제 글 사랑해주신 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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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골드문트님
여러편의 글을 잘 읽어 보았습니다
오늘로 일단락의 종결을 보면서 댓글을 씁니다
맨처음 제목이 싱당히 거슬렸지만 비뀐뒤에 님의글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ㅡㅡ예술혼의 시선과 파리 여인의 실질적 동거와 움트는 사랑 한국의 아내와 상실할것에 대한 인간적 고뇌 미리예고 한바 한국으로 귀향 앞으로도 관심 가지고 읽어 보겠습니다
까미유의 토로소에서 진한 고뇌와 삶의 다음 계단을 한걸음 디딜만큼 절박함도 보았습니다
글을 쓰시면서도 많이 아프셨지요?
파리의 앙가쥬망
토로하신 지나날도 우리는 기억할수 있어 감사 현재는 그 기억을 정리해서 감사
ㅡ 지난 기억 실루엣되어 석고상 된 이 아침
감사합니다.
가슴이 많이 아파지죠. 생각만 하면...
세느강변 책에서도 접했고 여러장르의 사진들도 접했는데
참으로 낭만적인 항구로 생각합니다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글로 만나 보네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처음 보시면 멋집니다.
참 좋은 점이 많아요. 여유롭고, 재미있고. 저녁 어스름 무렵이면
애정 행각도 여기 저기 일어나니 흥미롭기도 하죠.^^
삶이, 사랑이 어찌 이토록 치열할수 있는지...
안느를 향한 님의 독백.
안느의 주인공을 향한 애증의 묘사는 달달한 여느 사랑 얘기보다도 감동적입니다.
전편에서 예견됐듯?
'작품이 말을 걸다, 의 말을 거는
섬세한 묘사는 예술 자체야 이해를 못하나 그냥 전률이 느끼네요.
조용해 보이시는 분이 삶도 글도 참으로 열정적이십니다.
부디 에너지 충전하시어 힘있는 필체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에너지가 딸려 날카롭게 표현할 수가 없었는데도
느껴주시니 끙끙거린 보람이 있습니다.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느낌이 잘 다가 오지 않지만
세느강변에서 노숙자 동양인에게 베푸는 그들의 따뜻함이
이 아침을 평화롭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들 참 따스한 마음을 가졌죠.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남녀의 사랑은 처음부터 길을 잘 잡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바람끼 많은 남자의 오만이었죠.
참된 인간성이 없이, 남의 고통도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은 작품, 예술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 아니라,
그런 자들이 만드는 작품은 모두가 위선이고 거짓이죠.
낭만과 순수는 그들이 상투적으로 내뱉는 거짖이고요.
님을 화나게 해서 죄송합니다.
어느 영화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해야겠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했어요.
저는
사랑을 한다면
그 정도 진실성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남편들은 틈틈이 연애나 바람은 피워도,
이혼은 감행하지 못(안)하는,
그런 사람이 대부분...
왜? 일까요?...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자신을 포기하는 걸 겁니다. 아마도.
딸을 가진 아빠의 마음.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고 오죽님이 저보다 훨씬 솔직하십니다.ㅎ
그리고 오죽님처럼 향토적인 구수함이 더욱 빛납니다.
전 아직도 어두운 색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이해 해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삶의 열정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네요
한세대에 몇 안되시는....
열정이라기 보다 오기에 더 가깝습니다.
열정은 순수한 에너지 방출인데, 전 그렇지 않잖아요.ㅠ
예술할동 하시면서 여러모로 많은 경험과
여행을 많이 하셨어 마음이 넓으신분 같습니다
아직 민정님 만큼 넓어지려면 멀었습니다.ㅎ
전 남을 위해 그렇게 희생 못하거던요.
다~~~~
멋잇고
부러운....
새내기 일인 이예요...
요상스러웁게
파리는
다들 그리워하지요....ㅎ
감사합니다..
파리가 그런 매력이 있어요.
사람을 홀리는 매력. 붙잡는 매력.ㅎ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