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씨앗 ^..^
★영특한 아들때문에....
시집온지 석 달밖에 안 된 새색시가 신랑한테
저녁상을 올리다가 그만 실수로 방귀를 뀌었는데
그 일로 새색시는 소박을 맞아
친정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이미 여인의 몸 속에는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아들을 낳아 키워서 그 애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
하루는 아이가 묻는 것이었다.
"어머니,
왜 저는 아버지가 안 계신지요?"
여인은 차마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 아이가 전과 달리
자못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저는 이제 내일부터 서당에 가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이 아버지 없는 자식이라고 놀려대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인은 더 이상 아이에게 진실을 숨길 수가 없어
자신의 지난 일들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어머니의 기구한 사연을 듣자
소년은 잠시 침통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제게 오이씨 몇 알만 주십시오."
다음 날 서당에서 돌아온 소년은
생전 처음 가 보는 할아버지 댁엘 물어물어 찾아갔다.
'이리 오너라!' 하고 소리치자
그 댁 하인이 쪼르르 달려나왔다.
"...내가 신기한 오이씨를 얻었기에
이 댁 마님께 드리려고 찾아왔네."
"신기한 오이씨라니 좀 자세히 말해 보아라."
하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그 댁 마님이
소년을 불러들인 다음 물었다.
"이 오이씨로 말할 것 같으면 아침에 심으면
저녁에 오이가 열리고,
저녁에 심으면 아침에 오이가 열립니다."
소년이 말했다.
"그런 오이씨가 있을 수 있겠느냐,
네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음이 틀림없구나."
마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정히 저를 못 믿으시겠다면 저를 내일 아침까지
여기에 머물도록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만약에 사실이 아니라면 그때 가서
어떠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소년은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마님은 그렇지 않아도 소년이 너무나 귀여워
더 붙잡아 두고 말벗이라도 하고 싶었던 참이라
일단 대감과 아들이 퇴청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저녁이 되자 대감과 아들이 퇴청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웬 아이요?"
소년을 보고 수염이 허연 판서 대감이 물었다.
마님이 자초지종을 말했다.
대감 부자가 소리내어 웃었다.
"이 녀석아,
그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
"아닙니다.
틀림없이 지금 심으면
내일 아침에 오이가 열립니다."
소년이 하도 당돌하게 나오자
아들이 한마디 거들었다.
"아버님,
이 아이가 이토록 당당하니
일단 한번 심어나 보겠습니다."
아들은 하인을 불러 화분을 가져오게 했다.
아들이 소년에게 씨앗을 넘겨받아
그것을 화분에 심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
소년이 갑작스레 소리치더니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뻗어 제 앞으로
화분을 끌어당기며 말하는 것이었다.
"이 씨앗이 그렇게 금방 열매가 열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
다."
"조건이라니...?"
"예, 이제껏 살아 오면서 방귀를 한 번도
뀌지 않은 사람이 씨앗을 심어야만 합니다."
"예끼 이 녀석아,
방귀 안 뀌는 사람이 어디 있다구
그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할아버님,
방귀는 그럼 언제 뀌어야 하는 겁니까?"
소년이 대감한테 정색을 하며 물었다.
"방귀를 언제 뀌냐니...?
나올 때 뀌는 거지."
판서 대감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방귀를 뀌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까?"
소년이 이번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판서 대감한테 따지듯이 묻는 것이었다.
"이 녀석아,
잘못은 무슨 잘못이야, 방귀 뀌는 것이..."
"할아버님,
그럼 지금부터 7년 전에 제 어머니
께서
이 댁에 시집온 지 석 달만에
실수로 방귀를 뀌었다가 소박을 맞고
친정으로 쫓겨나 아비 없는 자식 키우느라고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시며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계시는데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을 마치고 소년은 구슬피 우는 것이었다.
일순 마님도, 대감 부자도
너무나 놀라운 사태에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럼 네 어미의 성씨가 정씨란 말이냐?"
대감이 떨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하며 물었다.
"예."
소년의 대답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님이 소년을 와락 부둥켜 안으며 소리쳤다.
"그럼, 네가 내 손주란 말이냐,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천지신명이시여, 고맙습니다!"
마님은 소년의 손이며, 뺨이며, 종아리를
정신없이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족할 것이라고는 없는 집안인데
오직 손이 귀해 조석으로 손주 녀석 하나만
점지해 달라고 비는 것이 마님의 일과 였던 것이다.
정씨는 결국 영악한 아들로 인해
다시 시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고
후일 정경부인까지 되었다.
ㅡ종 표 가ㅡ옮김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