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피투게더> aka <부에노스 아이레스> aka <春光乍洩>(츤궝짜씻)에 대하여
"내게 이 영화는 늘 빛과 소리에 관한 작품이었고, 음악은 그런 소리들 중 하나였다."
(번역자 유안의 사족: "소리야, 이거 널 다룬 영화였대~"ㅋㅋㅋ)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1996년 6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날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후 그 나라에 대한 내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내 심장에 깊이 새겨진 소리들이 있었으니,
처음으로 배운 스페인어 몇 마디, 어딜 가나 들리던 축구 중계 소리, 보카 항구 근처 골목들에서 들려오던 살사,
바 수르에서 들려나오던 탱고 음악, 이과수 폭포의 소리까지...
벨로소의 음악이 전해준 감동
1996년 6월 22일, 난 아르헨티나에 처음 갔다. 거기 가기 전, 난 남미 음악을 참 많이 들었고, 카에타노 벨로소의
"피마 에스탐파 소 비체" 앨범도 샀다. 벨로소의 음악은 감동적이었다. 그 앨범에서 '쿠쿠루쿠쿠 팔로마' 말고 나머지
곡들은 포르투갈어로 부른 것들이었다. 그 노래는 1960년대 홍콩에서 꽤 유명한 곡이어서 이미 알고 있던 거였다.
이 음악을 주인공 아휘(양조위)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첫 발을 디딜 때 주제가로 쓰기로 했다.
비둘기라니, 뭐지?
'쿠쿠루쿠쿠 팔로마'의 가사 번역을 위해 적어도 다섯 명에게 의뢰를 했는데, 그때마다 다른 번역이 나왔다.
하지만 죄다 비둘기에 관한 것이긴 했다(팔로마가 스페인어로 비둘기란 뜻). 재밌군!
수평적 욕망의 수직적 표현
탱고는 뭔가 색다른 세계였다. 그 음악과 움직임, 그리고 분위기까지... 누군가는 그걸 "수직적 표현의 수평적 욕망"이라고
했다. 탱고 음악을 접하며 나는 그 말을 한 사람이 뭘 말하고 싶었는지를 마침내 이해하게 되었다.
기적
까사블랑카 탱고 바 출신의 카를로스와 알리샤 댄서 커플은 완벽했다. 그런데 그 바는 아주 협소했고, 가격은 엄청 비쌌다.
그래서 좀 작은 곳을 섭외했는데 거기도 분위기는 꽤 좋았다. 물론 큰 바 수르(Bar Sur)에서 촬영할 가능성도 남겨뒀다.
... 그런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는데, 장국영과 춤을 출 파트너들을 오디션 보고 있는데, 카를로스가 나타난 거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 댄서들이 밴드와 함께 나타난 거고, 그들은 즉각 바 수르로 들어와 공연 준비를 했다.
기적
1996년 아르헨티나로 촬영하러 갈 때 프로듀서인 펭치화 씨가 내게 두 장의 CD를 건넸다. 그녀가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샀다는 두 장의 아스토르 피아졸라 앨범이었다. 그건 무슨 운명 같은 거였다. 공항에서 그 음악을 듣는데, 탱고가 들려주는
뭔가가 전해졌다. 그건 바로 그 도시의 리듬이었고, 우리 영화의 리듬이 되었다.
은총을 받다
고인이 된 피아졸라의 아들 다니엘과 저작권 문제를 논의했다. 당연하게도 그는 새 영화에 자기 아버지의 음악을 쓰고 싶다는
이 생면부지의 홍콩 감독을 꽤나 흥미로웠다. 난 말했다. "당신 아버지 음악 없이는 내 작업이 결코 완성될 수 없어요. 그리고,
이렇게 멋진 음악을 아시아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미팅은 아주 기분좋게 진행되었고, 나는 결국 다니엘 피아졸라의
은총을 받아냈다.
한숨과 눈물
돈이 문제였다. 8주로 예정됐던 촬영기간이 넉달로 연장되었고, 예산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가진 돈으로는 피아졸라의
"탱고 아파시오나도" 중 프롤로그만 겨우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난 피날레도 원했고, 또 "Milonga for three"도 필요했다.
그런데 홍콩으로 돌아와 따져보니, 사실 아직 돈이 남은 게 있었다. 그래서 난 프로듀서 펭에게 전화를 걸어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머지 두 곡도 삽시다."
지난날의 느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르헨티나는 망명지의 느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의 느낌으로 떠오른다. 현지에서 촬영하면서도
그런 느낌들이 영화 속으로 점점 배어들었다. 아르헨티나에 가기 전 난 '밀롱가'가 뭔지도 몰랐지만, 거기 가서 난 깨달았다.
탱고는 리츄얼[의례; 의식]이고, 밀롱가는 쏘울이었다.
벗이여, 벗이여, ... 벗이여...?
... 여기는 번역 불가할 정도의 구글번역...ㅋ
이제껏 몰랐던 인생의 진실
"3 Amigos" 장면을 촬영할 때 어느 이름모를 밴드가 섭외되어 왔다. 그런데 그 밴드가 정말 프로 밴드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은 몇 곡을 연주하고 갔는데, 지금까지도 나는 그게 그들의 오리지널 타이틀인지 커버 곡인지 알지 못한다.
심지어 그 노래 제목도 모르니까.
멋지다, 멋져
양조위가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떠난 게 1996년 10월 14일인데, 우리 영화는 아직 2/3밖에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촬영팀 모두 얼른 홍콩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난 호텔에 처박혀 있을 맘이 아니어서 설렁설렁 시내로 걸아나갔다.
꼬리엔떼스 거리를 걷다 나는 프랭크 자파 앨범 하나를 샀다. 프랭크 자파라는 이름은 내게 익숙했지만, 그건 그저
이름일 뿐, 그의 음악을 들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느낌이 발동했고, 난 그의 음악에서 뭔가 위대한 걸 얻을 거 같았다.
프랭크 자파에게
프랭크 자파여, 우리가 어쩌다 오늘에야 만났단 말임미까...
나쁜 녀석들
내가 보기에 프랭크 자파와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각자가 처한 환경 속에서 꽤 엇비슷한 인물이었다.
둘은 모두 나쁜 녀석들이었지만 남다른 생명력을 지녔던 사람들이었고, 그게 그들의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나 취했어, 가슴은 찢어지고
1997년 2월, 촬영감독 데릭이 내 사무실로 왔다. 그는 또다시 실연을 당했다며 비탄에 잠겨 잔뜩 취한 상태였다.
난 그에게 프랭크 자파의 "I've been in you"를 들려줬다. 우리는 그 노래를 듣고 또 듣고 하며 무려 네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이하 해독 불가,,,ㅋ)
프랭크 자파에 대하여
이제 내게 있는 자파 앨범은 30장이 넘는다.
영화 제목을 찾아서
이 영화는 마뉴엘 푸이그의 책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에서 따온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긴 거다.
난 그 제목이 정말 맘에 들었고 내 영화에도 그대로 쓰고 싶었다. 그런데 부에노스 아이레스 촬영을 모두 마치고 보니
암만 봐도 이 영화가 그 도시에 대한 거는 아닌 거 같았다. 그래서 오래도록 내 맘에 담아둔 그 제목은 이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새로운 이름을 지어야 했던 거다.
한숨과 눈물
프랭크 자파의 "해피 투게더" 저작권 문제가 도저히 해결될 기미가 없었기에, 난 친구인 종 딩에게 그 노래를 불러달라 청했다.
대니와 그의 밴드(이름이 "뉴 탑노츠"The New Topnotes였다)가 내 영화와 인연을 맺은 건
1970년대의 영화 <열혈남아>(원작 '카르멘')를 통해서였다. 대니는 내게 있어 홍콩의 프랭크 자파였다.
해피 투게더
칸느 영화제 사람들은 아주 진지한 이들이다. 그들은 약 2주 동안 계속 응급전화를 걸어와서 영화제목을 정해달라고 재촉했다.
1997년 4월 16일, 그들의 데드라인에 맞춰 내가 보낸 영어 제목이 바로 "Happy Together"이다. 건배~!
중국어 블로그 출처: http://mp.weixin.qq.com/s?__biz=MjM5NTE1NTA4MQ%3D%3D&mid=204695225&idx=1&sn=574bc1382110dc70d119edda2a8de421&mpshare=1&scene=4&srcid=1210hRlVY607su0ZmUjGEZn6#rd
첫댓글 중국어 ---> 영어로 구글번역 ---> 한국어로 유안 번역. 즉 엉망이란 말임미당ㅋㅋㅋ
고저 왕가위를 사랑하는 맘으로, 거기 담긴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그리는 맘으로,
대충대충 살살 봐주시길~^^
제 첫 탱고의 기억이 이 영화였어요. 올리신 글 보니 테마 음악이 귀에서 맴도네요.ㅎㅎ
영화보고 가슴이 아련해서 OST를 듣고 또 듣고 했었어요. 다음에 디제이하시면 한번 틀어주신 수 있으세요?ㅎㅎ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제격이죠... 왕가위의 영화음악~^^
빛과 소리..
이 영화에서 제게 빛은 이 장면,
소리는 양조위가 녹음기에 남긴 흐느낌..
좋은 글 소개 감사합니다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인상적인 스틸컷들과 소개한 건데, 하필 중국어라... 제가 귱금해 구글번역으로 바꿔보다 일케 된거~ㅋ
오 정말~
왕가위는 탱고를 아주 잘 이해하는 감독이다 생각했는데 역시~
해피투게더로 예전에 저도 써둔 글이 있긴 해요.
프랭크 지파를 계속 들어야겠다능~
공력이 느껴지는 포스팅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