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초당의 모습
강진에는 남해 바닷가와 가까와 정말 그 경관이 아름다워 남해의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강진에 계산초등학교라는 조그마한 초등학교가 있다. 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강진에 다산 초당이 있어 평상시에도 정약용선생을 역사에서 존경 하였고 가끔 다산 초당을 찾았고 또한 일제강점기의 영랑 김윤식선생님의 시를 좋아하여 강진의 초등학교 계약제 교사를 신청을 하였다.
툭하면 시간이 있으면 영랑의 생가를 찾아 '모란이 피기까지' '워메 단풍들것네' 같은 주옥 같은 시를 접하고 ,강진만하고 가까운 만덕산 중턱에 자리를 잡은 다산 (茶山) 정약용선생이 18년 간의 긴 유배생활을 하였던 그 현장을 찾고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여기에서 강진만의 바닷가를 바라보며 , 다산의 둘째 형님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서 , 그형님을 그리워 할것 같은 만덕산 중턱의 다산초당은 기나긴 유배지이면서 18년간의 긴 유배지에서 목민심서,흠흠심서 경세유포등의 5백여권의 책을 쓰신 학문의 전당이기도 하다. 그 부근에 동암과 서암이 있는데 동암은 책을 보관한 장서각이고, 서암은 가르치는 학생들의 기숙사이다. 다산은 해남의 고산윤선도 해남윤씨가 외가집이다 화가로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증손자이다.그래서 해남윤씨 외가에서 많은 보살핌을 주었고 수많은 장서도 지원하였다. 귤동마을도 해남윤시의 외가집의 마을이다.
여기 강진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 '계산초등학교' 5학년을 가르치게 되었다. 서울에서 나의 자가용 에 이부자리 책, 내가 입을 옷등을 실코 뜨내기 같은 유랑의 길을 나서는 행자 같기도 하다. 학교 현장에 가면 어려움도 있지만 젊었을때에도 섬마을의 선생이 나의 꿈이어서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지를 않고 학교에서 오라고 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로 다려간다. 학교에 도착하니 교감선생 님이 교문까지 나와서 반갑게 맞이 한다. 사실은 나 같은 사람이나 몇 개 월 짜리 계약제교사나 하지 누가 그렇게 할려고 들지를 않는다. 서울에서 공직으로 마쳤으면 됐지 , 떠돌이 초등학교 땜방교사나 할려고 들까?
9월달의 가을철에 학교로 갔는데, 농촌의 벼들은 누렇게 익어가고 수수는 고개를 숙이고 과일은 가을의 태양에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었다 .정말 풍요로운 농촌의 가을의 풍성함을 느낀다. 처음5학년을 가르키니 이거 가르칠것을 무척이나 공부를 하여야 한다. 한가한 농촌에 있는 초등학교의 앞뒤의 문을 열어 놓으면 뒤에 있는 우둥봉에서 강진만으로 부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수가 없다. 이만한 장소에서 5학년 전체 과목을 가르치면서 나 스스로 공부를 무척이나 하여야 한다. 이거 내용이 만만치가 않다. 원래가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르칠려고하는 과목들을 원 없이 공부를 하였다.
어느날은 가을소풍으로 뒷산에 '우두봉'으로 소풍을 간다고 한다. 학생들을 인솔하고 전체 학생들과 가을철의 소풍길에 나섰다. 어떻게 보면 등산길이기도 하다. 조그마한 우두봉의 정상에서 강진만의 풍광을 보니 입이 벌어진다 . 벼들은 누랗게 익어가고 바닷가의 파란 모습들은 너무나 환상적이다. 내려오는길에 고성사라는 절에서 종각의 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는데 ,이거 못 쓰는 시 한 수가 나온다. 여기서부터 시를 쓴다고 끌적끌적하여 보았다.
시간이 있으면 다산의 초당을 찾으면서 올라가는 길에는 대나무들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노송의 바람 들이 시원히부는데, 그만한 낙원이 없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선생은 유배가 아니라 학문하는 장소로 정말 적격이다. 그래서 '목민심서를 읽어보게 되었으며 ,고전문학의 세계 서서히 빠져들게 되는 계기가 된것 같다.
또한 시간이 있으면 영랑의 생가를 툭하면 찾곤 하였다. 애석하게도 영랑은 6.25동란의 포탄에 맞아 돌아가시게 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주옥같은 시들을 우리들에게 선사를 하였을텐데 ,아쉬운 마음이며 결혼 2년만에 아내와 헤어지는 가슴 아픔도 겪게 되는 삶이었고,생가를 팔아서 강진군청에서 매입하여 군청에서 관리를 하고 있으며 ,남도의 문학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남도 답사1번지라는 말도 나왔는 모양이다.
서울시 공직을 마치고 고향의 산수가 좋은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강진만의 바닷가의 생활을 경험하니 생활은 어려우나 역사적인 그리고 문학적인 면에 서서히 나를 찾게되는 기회가 되는것 같다. 서울에 있는 가족들과 큰매형 누나들을 초청하여 강진만의 바닷가에서 맛있는 회를 대접도 하며 오랫만에 즐거운 삶을 살아 본 것도 같다. 암을 투병하는 아내를 바라보면 한편으로 가슴이 아픔을 견디면서 ,마음 한켠에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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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 글은 서울시 공직을 마치고 강진에 있는 계산초등학교에 2개월짜리 계약제 교사를
하면서 남도 답사1번지를 두서 없이 쓴 글임을 말씀드림니다
만장봉님 덕분에 영랑 생각를 몇번 눈으로 보는 호사를 누립니다
순수시인의 섬세한 내면을 그린
모란이 피기까지 아름다운 더 없이 아름다운 언어의 조탁이라고
일컫지요 다산의 목민심서 또한 귀한 유물이지요
만장봉님의 문학의 향기에 더해 고전을
이해하는 혜안에 늘 배우고 갑니다
초등학교 계약직으로
근무를 하시면서
다산 정약용님과 김영랑님의 문학작품을 통해 문학세계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되셨군요.
돌아보면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셨겠어요.
네 보아요. 역사를 보는 것 같아요
모르긴 해도
공직생활도 30년 넘게 하셨을텐데
정년 퇴직 하시고...
후학들에게 경험담과 미래의 삶을 교육하셨다니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그 또한 짧은 몇개월 계약직" 머리가 숙여집니다
퇴직후에도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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