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옛글자인 전(篆)을 모방하였고
훈민정음해례의 정인지서문
癸亥冬. 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옛글자인 전(篆)을 본떴고,
최만리 상소문
曰 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어떻습니까?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기록을 본 후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정말 그럴듯합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친히 지은것이 아니라 옛부터 전해온 전(篆)이라는 글자를 모방한 것에 불과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종대왕도 거짓말쟁이이고 창제원리를 밝힌 훈민정음해례도 거짓이며 우리는 4200년전 청동기시대에 이미 표음문자이자 문자역사에서 가장 발달된 형태라는 음소문자를 가진 자랑스런 민족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가림토란 문자로부터 일본의 신대문자, 인도의 산스크리트문자, 몽고의 파스파문자, 중국의 갑골문, 슈메르의 쐐기문자(그들은 슈메르가 수밀이국이며 단군조선의 식민지라고 주장하지요)들이 나왔으니 그야말로 우리민족은 인류문자의 祖宗이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쁘고 자랑스러우십니까? 아니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아 차근차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저 위의 기록들은 너무 단편적이니 그 문장의 앞뒤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세종실록 102권 42장입니다.
是月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몸소 언문 스물 여덟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였고, 첫소리•가운뎃소리•끝소리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룬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우리 말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되었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이른다
첫째로 왜 親制라는 말을 썼을까요? 단순한 모방인데 임금이 친히 지었다고 하는것은 뭔가 이상하군요. 조선시대의 사관들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고 배웠는데.
그리고 저 위의 篆이라는 글자는 정말 가림토를 가리킬까요? 그렇다면 가림토라 하지않고 굳이 篆이라 쓴 이유는 무엇일까요? 서예에서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할때의 그 전서(篆書)
계해년 겨울에 우리 전하께서 비로소 정음 28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例義)를 들어 보이시고 이름을 훈민정음이라고 지으셨다.
이 글자는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 모양은 고전(古篆)을 본떴고, 소리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였으므로 음은 칠조에 맞고, 삼재의 뜻과 이기(二氣,陰陽)의 묘가 다 포함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28글자를 가지고도 전환이 무궁하여 간단하고도 요긴하고 정(精)하고도 통하는 까닭에,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이를)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이 글자로써 한문을 풀면 그 뜻을 알 수 있고, 이 글자로써 송사를 심리하더라도 그 실정(實情)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는 創制라는 단어를 썼군요. 단순히 4200년전에 있던 가림토란 글자를 모방했을 뿐인데 창제라는 말을 쓰다니 정인지 이 양반은 과장이 심한 것 같습니다.
그 밑에 훈민정음의 훌륭한 기능에 대해 상당히 자랑하고 있군요. 이미 4200년전의 가림토가 가졌던 기능인데 뭘 새삼스럽게 이렇게 자랑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기네들이 새로 만든것도 아니면서. 그 다음의 글을 좀 더 보겠습니다.
공손히 생각하옵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인으로서 지으신 법도와 베푸신 시정 업적이 백왕(온갖 임금)을 초월하여,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先人)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라.
참으로 그 지극한 이치가 들어 있지 아니한 데가 없으니, (이는) 어떤 개인의 사적(私的)인 조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저 동방에 나라가 있음이 오래 되지 않음이 아니나, 문물을 창조하시고 사업을 성취시켜 주실 큰 지혜는 대개 오늘을 기다리심이 계옵셨구나!
아무리 자신의 임금이라지만 칭찬이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세종께서 없는것을 만든것도 아니고 단순히 4200년전부터 있었던 것을 모방했을 뿐인데 이런 칭찬이라니.
한데 저건 또 뭡니까? 정음을 지으심도 어떤 선인의 설을 이어 받으심이 없이 자연으로 이룩하신 것이다? 4200년전의 을보륵이란 사람이 지은 가림토를 단순히 모방한 주제에 어떤 선인의 설도 이어받지 않았다니 이건 거짓말이 너무 심하군요.
우리나라는 조종조이래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고,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를 준수하여 지금 동문동궤(同文同軌)의 때를 당하옵는데 언문을 창작하신 것을 듣고 봄에 이상히 여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글자를 근본으로 삼은 것으로 새로운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字形)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 용음(用音)과 합자(合字)가 옛것과 반대되는 일이며, 실로 근거할바가 없는 바입니다. 만약 중국에 흘러가서 혹시 옳지 못함을 의논하는 사람이 있을때는 어찌 사대모화(事大慕華)에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정말 읽고 있자니 사대주의의 극치를 보는것 같습니다. 기분 나쁘군요. 그렇지만 우리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일단 넘어가겠습니다.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죠.
밑줄 친 부분이 핵심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니 최만리는 훈민정음이 옛 글자인 篆文의 모양을 모방했다는 것을 누구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군요. 뭐 이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넘어가도록 하죠. 그런데 이게 뭡니까? 엄청난 말이 있군요.
훈민정음이 모양은 옛 글자인 篆文을 모방했는데 용음(소리를 표현하는 방법)과 합자(초성,중성,종성을 합하여 소리가 이루어 짐을 의미)는 옛 글과 전혀 관계가 없으니 실로 근거가 없다고 세종대왕께 개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림토를 주장하는 사람들로부터 4200년전의 가림토는 표음문자이며 문자사상 가장 발달된 형태의 음소문자라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증거로 내세운 위의 사료들로부터 가림토는 조선시대 역사기록에 고전(古篆)이라고 표현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古篆 즉 가림토의 모양이나 음가(音價) 그리고 초.중.종성을 합하여 소리를 형성하는 음소문자의 특질 이런것들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훈민정음은 최만리의 상소에서 이렇게 나타나야 하지 않을까요?
언문은 그 모양은 고전을 본떳고 용음과 합자역시 고전과 일치하니 이는 중국의 한자와 전혀 달라서 이를 이제 사용하려함은 사대모화에 위배되니 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최만리가 제정신이라면 위와 같이 말해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제까지 살펴보았지만 실록을 쓴 사관이나 정인지나 최만리나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요.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시겠지요.
조선조의 역사기록에 나타난 옛글자인 전(古篆)은 가림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가림토란 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록중에서 오직 한군데 1979년 이유립이란 사람이 발표한 환단고기란 책속에만 존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그 어떤 역사기록에도 그 어떤 유적이나 유물속에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글자로 쓰여진 어떠한 유물이나 유적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이 한조각 돌맹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대체 4200년전 청동기시대에 표음문자이자 문자사상 가장 발달된 형태의 음소문자가 만들어졌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어서(알고 있었다면 사용하지 않을리가 없겠죠. 사용했다면 어떤 형태로든 유물이나 기록이 남겠죠.)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없는 표의문자이자 음절문자인 한자를 3600년간 사용하다가 느닷없이 3600년 후 세종대왕앞에 갑자기 가림토가 다시 나타나서 세종대왕이 이를 보고 배꼈다는 저들의 주장을 믿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슈메르인들이 기원전 3000년경부터 약 3000년간 사용했다는 설형문자(쐐기문자)는 점토판에 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어느정도 발견되었을까요? 약 40만점정도가 발견되었습니다. 왠만한 박물관을 통째로 채우고도 남을 양이죠. 당연한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매일매일 말과 글을 몇 천년간 사용했는데 그정도의 기록도 적은거지요.
인터넷에서 가림토를 검색해 보면 엄청난 양의 자료들이 나타납니다.
가보면 위에 적은 저 사료의 기록들을 올려놓거나 가끔은 별 희안한 문양이 새겨진 돌맹이조각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것이 가림토의 증거이다라며 자랑스러워 하는 글들을 봅니다.
그들은 단지 이곳 저곳에서 자료를 옮기기만 할 뿐 그냥 남이 가림토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는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구나라고 좋아하죠.
정말 4200년전에 가림토가 있어서 40만여점의 유물은 아니어도 40점이라도 발견되어 줬더라면 내가 왜 이런 글을 쓰겠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림토가 있어야만 역사가 자랑스럽습니까?
세종대왕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전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감탄하고 찬양하는 문자창제원리가 기록된 훈민정음해례본을 거짓이 기록된 책으로 만드는 한이 있어도 가림토가 있어야만 역사가 자랑스러워 지십니까? 티끌만한 역사적 흔적도 없는 가림토를 주장해야만 애국자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끔 이 가림토에 대한 주장을 처음 했던, 그리고 지금도 단순한 주장만이 아니라 꾸준히 왜곡된 증거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합니다.
그들이 왜 저 위에서 봤듯이 역사기록에서 자신의 구미에 맞는 몇개의 글자만 취한 후 앞 뒤 문장 다 날려버리고 제멋대로 해석해서 왜곡된 증거들을 만들어서 퍼뜨리는지 그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가림토에 대한 저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가림토는 허구입니다. 물론 환단고기란 책의 진위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의 내용 중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지식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후대에 어떤 종교적 목적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필된 허구의 내용도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가림토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석기와 청동기가 혼합된 4200년전에 음소문자가 만들어졌을리도 없으며 문자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점의 역사적 흔적도 남기지 않은 문자.
이것을 믿기 위해서 소중한 우리의 역사들을 모두 거짓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짓은 전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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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솔직히 논란성이 많은것 같지만 한번쯤 읽어봤음 하는 글이라 퍼왔습니다.
첫댓글저도 환단고기를 무조건 믿지 않고 중국사료와 비교하면서 일치하는 부문만 수용합니다. 후대로 전해져 오면서 기록이 잘못될 수도 있음..일부에 잘못이 있다고 해서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곤란함..사료가 부족한 우리로선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사기와 일치한다고 해서 환국의 역사를 무조건 믿는 것도 아닙니다. 전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가 겹쳤다고 보고,환국의 마지막 환인 지위리가 배달의 환웅 자오지(치우천왕)와 동일인물로 봅니다. 배달국(환국?)과 단(박달나무=배달?)군(임금)의 고조선(배달국?) 두 나라의 역사는 대체로 수용하는 편..
딴얘기이지만, 대륙어쩌구론. 특히 대륙조선같은건 크기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로 느껴집니다. 단순히 땅 크기만 보고 생각하니 조선이 찌질스럽게 보일수 밖에 없겠죠. 조선왕조의 업적이나 문화수준따위는 태평양 건너 가있고 땅덩이를 키우기 위해 대륙조선이라는 해괴한 설이 나오니 원..
솔직히 전 가림토 어쩌구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한글이 어떻게 해서 나온 글자입니까? 세종대왕이 직접 고생해가며 어렵게 만들어낸 글자입니다. 진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의 글자를 만들어낼 경우 집현전 학자 등의 신하들이 "한자가 있는데 왜
새로 글자를 만들어야 되느냐"고 반대할까봐서, 도저히 글자 창제를 맡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스스로 연구해가며, 온갖 어려움을 겪어가며 만들어낸 것이 한글입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이 피땀흘려 한글을 만들어냈는데, 현대의 "가림토 팬"들은 세종대왕을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말입니다. 아마 세종대왕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백성들을 위해 힘든 노력 끝에, 쉽고 합리적인 문자를 만들어줬더니만, "원래 한글은 옛날부터 가림토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세종대왕이 만든 게 아니다! 세종은 그냥 글자를 다듬었을 뿐이다!"라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가림토 어쩌구 하는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말한 "옛글자를 모방했다" 이걸 가지고 한글은 세종대왕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데, 황당할 노릇이죠. 세종대왕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한자를 좋아하는 신하들을 달래기 위한 것 뿐입니다. 한자가 있는데 왜 새 글자를 만들었냐고 대드는 신하들에게
"사실 내가 만든 문자는 완전히 새로 만든 게 아니고 중국의 옛 글자에서 따온 것 뿐이다. 그러니 좀 봐줘라~" 라고 달랜 것 뿐입니다. 하지만 한글은 완전히 새로이 만들어진 문자엿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무시하고 세종대왕의 "옛글자를 모방했다"는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종대왕은 거짓말쟁이라고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제발 가림토 어쩌구는 그만둡시다. 정말이지 우리들은 세종대왕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우리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사용하기 쉽고 어떤 발음이든 표현가능한 글자를 주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거짓말장이라고 모욕하다니 심합니다
가림토와 한글은 모양이 비슷하나 표기법이 다름. 전자는 알파벳처럼 풀어쓰기..후자는 모아쓰기입니다. 세종 이전까지 옛 글자의 읽는 법이 지방마다 달랐음. 세종이 옛글자를 모방했어도 표기와 발음법을 확립해 독창적으로 한글을 만든 점이 중요..세종이 인류 사상 최고의 언어학자라는 건 부인할 수 없죠
그게 아닙니다. 신대문자라는 건 18~19세기나 되어야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에도시기에 말입니다.(신관들은 이전에도 존재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인들이 택도 없이 역사를 늘려잡는게 어제 오늘 일입니까) 이 말은 신대문자는 훈민정음이 나온지 한참 후에야 나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신대문자는 가림토가 아닌
훈민정음을 모방한 글자라는 겁니다. 가림토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닙니다. 가림토 운운은 저번의 "만주의 피라미드 문명"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영광스런 고대사의 환상"에서 비롯된 거죠. "지금은 이래도, 우리도 옛날에는 이렇게 잘나갔어!"라는 사고방식 말입니다. 이전부터 치우천님의 글을
그냥 저는 버나드 쇼가 남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애국심이란, 당신이 이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우월하고 고귀하다고 믿는 당신의 신앙심". 일부 재야사가들의 글은 버나드 쇼의 이 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한자로 씌여지지 않은 원문을 한자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뜻글자가 가진 한계로는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단어의 뜻을 합한 새로운 한자어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것은 [시경]이나 [서경] 등 춘추전국시대 편찬된 고사서에서 여실히 나타납니다.
가령 시경의 騶(추)라는 한자어를 해석하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달았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한나라 이후의 주석학이라는 학문도 이전 고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정확히 번역하지 못하는 지나인들의 아이러니를 반증하는 것이죠. 다른 곳에서는 그런 한자어의 용예를 찾을 길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동성 일대를 위시하여 양자강 중하류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 중에는 지나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일례로 '구름무늬 대뇨'(큰 징)에는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고 하죠. 게다가 산동성에서 발굴된 화살편(1991년)에는 한글과 너무 비슷한 문자가 씌여져 있었습니다.
의문이 드시는 분은 1991년(일자는 잊어버렸지만 조만간 찾아서 알려 드리죠........-_-) 자 동아일보 기사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나 역사학계에서도 한나라 초기에 한자가 확립되기 전까지 지나 대륙에 다른 문자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라 경제 때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벽장 안에서 공자의 저서(시경, 서경 등)를 발굴했는데 끝이 올챙이 머리처럼 동그랗다 하여 과두문자라 했는데 아무도 그것을 읽지 못해 당시 금문(한자)에 비교하여 고문이라 평했습니다. 그런데 공자의 후손 중에 공안국이라는 자가 있어 이를 한자(금문)으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자를 금문이라 부른 것은 고문인 다른 문자가 분명 있었다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한나라 초기에 한자의 어휘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다른 문자(고문)로 씌여진 원전을 금문(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한자어가 늘어나게 된 것이 이유였던 것입니다. 당나라 때 산스크리트 어로 씌여진
첫댓글 저도 환단고기를 무조건 믿지 않고 중국사료와 비교하면서 일치하는 부문만 수용합니다. 후대로 전해져 오면서 기록이 잘못될 수도 있음..일부에 잘못이 있다고 해서 환단고기 전체를 위서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곤란함..사료가 부족한 우리로선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사마천 사기의 삼황본기를 보면 인황씨 이후 오룡씨,수인씨,대정씨,백황씨(...)혁서씨,유소씨,주양씨(...)무회씨가 나옵니다. 여기서 비록 주우양을 줄여 주양이라고 표기했지만..환국의 일곱 명 환인 중 2대 혁서 환인과 4대 주우양 환인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죠.
사기와 일치한다고 해서 환국의 역사를 무조건 믿는 것도 아닙니다. 전 환국과 배달국의 역사가 겹쳤다고 보고,환국의 마지막 환인 지위리가 배달의 환웅 자오지(치우천왕)와 동일인물로 봅니다. 배달국(환국?)과 단(박달나무=배달?)군(임금)의 고조선(배달국?) 두 나라의 역사는 대체로 수용하는 편..
딴얘기이지만, 대륙어쩌구론. 특히 대륙조선같은건 크기에 대한 열등감의 발로로 느껴집니다. 단순히 땅 크기만 보고 생각하니 조선이 찌질스럽게 보일수 밖에 없겠죠. 조선왕조의 업적이나 문화수준따위는 태평양 건너 가있고 땅덩이를 키우기 위해 대륙조선이라는 해괴한 설이 나오니 원..
환단고기에는 나오지도 않는 대륙어쩌구론. 환단고기야 악감정 없지만 어째 저 대륙어쩌구론에는 도저히 정나미가 안가는군요. 디시의 말대로 '거물주의'같아서.
솔직히 전 가림토 어쩌구 하는 사람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한글이 어떻게 해서 나온 글자입니까? 세종대왕이 직접 고생해가며 어렵게 만들어낸 글자입니다. 진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닙니다. 우리만의 글자를 만들어낼 경우 집현전 학자 등의 신하들이 "한자가 있는데 왜
새로 글자를 만들어야 되느냐"고 반대할까봐서, 도저히 글자 창제를 맡길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스스로 연구해가며, 온갖 어려움을 겪어가며 만들어낸 것이 한글입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이 피땀흘려 한글을 만들어냈는데, 현대의 "가림토 팬"들은 세종대왕을 거짓말쟁이라고 모욕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말입니다. 아마 세종대왕이 이 사실을 알았다면 피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백성들을 위해 힘든 노력 끝에, 쉽고 합리적인 문자를 만들어줬더니만, "원래 한글은 옛날부터 가림토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세종대왕이 만든 게 아니다! 세종은 그냥 글자를 다듬었을 뿐이다!"라고?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가림토 어쩌구 하는 사람들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말한 "옛글자를 모방했다" 이걸 가지고 한글은 세종대왕 이전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데, 황당할 노릇이죠. 세종대왕이 그런 말을 한 이유는 한자를 좋아하는 신하들을 달래기 위한 것 뿐입니다. 한자가 있는데 왜 새 글자를 만들었냐고 대드는 신하들에게
네놈들이 운자를 아느냐. 라고 일갈하셨죠. (말끊어서 죄송합니다;;)(아차, 이게 아니군요. 아무튼 세종대왕께서는 신하들에게 저리 일갈하십니다.)
"사실 내가 만든 문자는 완전히 새로 만든 게 아니고 중국의 옛 글자에서 따온 것 뿐이다. 그러니 좀 봐줘라~" 라고 달랜 것 뿐입니다. 하지만 한글은 완전히 새로이 만들어진 문자엿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무시하고 세종대왕의 "옛글자를 모방했다"는 말을 이상하게 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종대왕은 거짓말쟁이라고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제발 가림토 어쩌구는 그만둡시다. 정말이지 우리들은 세종대왕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우리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사용하기 쉽고 어떤 발음이든 표현가능한 글자를 주었습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지는 못할 망정 거짓말장이라고 모욕하다니 심합니다
즉, 가림토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글은 세종대왕이 완전히 새로 창조해낸 문자입니다.
가림토와 한글은 모양이 비슷하나 표기법이 다름. 전자는 알파벳처럼 풀어쓰기..후자는 모아쓰기입니다. 세종 이전까지 옛 글자의 읽는 법이 지방마다 달랐음. 세종이 옛글자를 모방했어도 표기와 발음법을 확립해 독창적으로 한글을 만든 점이 중요..세종이 인류 사상 최고의 언어학자라는 건 부인할 수 없죠
가림토는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그 흔적이 많이 남은 게 일본의 신대문자입니다. 세종보다 연대가 앞서서 한글이 신대문자를 모방했다고 일본인이 주장하죠. 실제로는 고대 한국인이 미개한 일본인에게 문명을 전파한 겁니다.
그게 아닙니다. 신대문자라는 건 18~19세기나 되어야 역사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에도시기에 말입니다.(신관들은 이전에도 존재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인들이 택도 없이 역사를 늘려잡는게 어제 오늘 일입니까) 이 말은 신대문자는 훈민정음이 나온지 한참 후에야 나왔다는 걸 의미합니다. 즉, 신대문자는 가림토가 아닌
훈민정음을 모방한 글자라는 겁니다. 가림토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닙니다. 가림토 운운은 저번의 "만주의 피라미드 문명"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영광스런 고대사의 환상"에서 비롯된 거죠. "지금은 이래도, 우리도 옛날에는 이렇게 잘나갔어!"라는 사고방식 말입니다. 이전부터 치우천님의 글을
찬찬히 읽어봤지만, 아무래도 치우천 님은 재야사가들의 글을 너무 깊게 믿으시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솔직히 일부 재야사가들의 연구는 "신빙성" "합리성"보다는 "믿음"을 강조하는 게 많습니다.
그냥 저는 버나드 쇼가 남긴 말을 하고 싶습니다 "애국심이란, 당신이 이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 나라가 다른 어떤 나라보다 우월하고 고귀하다고 믿는 당신의 신앙심". 일부 재야사가들의 글은 버나드 쇼의 이 말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보다 열린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creios님이야말로 강단학계의 글을 너무 믿으시는 것 같아 안타깝군요. 재야사가들도 양식있는 분이 있어 합리적으로 고지도와 사서들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의문을 품고 나름대로 이론을 제시하는 것뿐인데..전체적으로 믿음을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역사의 비밀 사이트를 가보시면 하나만 수용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설들도 염두에 두고 있음. 다양성을 수용하는 거죠. 나쁘게 말하면 정리되지 않고 혼란스럽죠. 암튼 학문은 의심이 으뜸이니 계속 의심하면서 여러 가설을 연구해야죠.
이제 논쟁은 그만하고 싶군요. 저도 나름대로 연구하면 할수록 재야사관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님의 충고대로 재야도 강단도 아닌 중립사관을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역시 중립입니다.재야나 강단이나, 솔직히 둘다 루머퍼뜨리고 고집세우고 인신공격하는건 같습니다.
춘추전국시대까지 씌여진 문자는 한자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좌구명]의 [국어]와 같은 책에는 지나 대륙 곳곳의 사투리가 나오기 때문이죠. 뜻 글자는 사투리를 표현할 수 없음은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겁니다.
지금 옥편을 죽 읽어 보시면.......이상한 뜻글자(여러 의미의 단어가 결합된 듯한 한자)들이 눈에 띄이실 겁니다. 특히 획수가 많은 경우에 자주 나타나죠. 이러한 단어들은 사용 예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은 고사서들에만 나오는 한자들이 대부분이죠.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한자로 씌여지지 않은 원문을 한자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뜻글자가 가진 한계로는 원문의 의미를 정확히 번역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단어의 뜻을 합한 새로운 한자어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것은 [시경]이나 [서경] 등 춘추전국시대 편찬된 고사서에서 여실히 나타납니다.
가령 시경의 騶(추)라는 한자어를 해석하기 위해서 수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달았잖습니까? 이런 식으로 한나라 이후의 주석학이라는 학문도 이전 고서에 나오는 한자어를 정확히 번역하지 못하는 지나인들의 아이러니를 반증하는 것이죠. 다른 곳에서는 그런 한자어의 용예를 찾을 길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산동성 일대를 위시하여 양자강 중하류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 중에는 지나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일례로 '구름무늬 대뇨'(큰 징)에는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고 하죠. 게다가 산동성에서 발굴된 화살편(1991년)에는 한글과 너무 비슷한 문자가 씌여져 있었습니다.
의문이 드시는 분은 1991년(일자는 잊어버렸지만 조만간 찾아서 알려 드리죠........-_-) 자 동아일보 기사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나 역사학계에서도 한나라 초기에 한자가 확립되기 전까지 지나 대륙에 다른 문자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습니다.
한나라 경제 때 공자의 옛 집을 헐다가 벽장 안에서 공자의 저서(시경, 서경 등)를 발굴했는데 끝이 올챙이 머리처럼 동그랗다 하여 과두문자라 했는데 아무도 그것을 읽지 못해 당시 금문(한자)에 비교하여 고문이라 평했습니다. 그런데 공자의 후손 중에 공안국이라는 자가 있어 이를 한자(금문)으로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따라서 한자를 금문이라 부른 것은 고문인 다른 문자가 분명 있었다는 가장 확실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한나라 초기에 한자의 어휘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은 다른 문자(고문)로 씌여진 원전을 금문(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한자어가 늘어나게 된 것이 이유였던 것입니다. 당나라 때 산스크리트 어로 씌여진
불경이 들어와 번역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한자 어휘가 급증했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고문이 가림토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현재로서는 확실한 답을 할 수 없습니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때죠. 분명한 것은 한자와는 다른 표음문자가 지나 역사에서 존재했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나라 초기에 한자가 정립되기 전까지, 모든 고사서들은 한자가 아닌 고문으로 씌여졌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지나 문명사에 있어, 춘추전국시대 전례미문의 문예 황금기를 가져온 것이 다름아닌 과두문자로 표현되는 '고문'이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자는 그렇게 오래된 문자가 절대 아닙니다.
문에서 튀어나와 사람 깜짝 놀라게 할 획! 자라든지 죽은 사람 몸에 싸는 종이 강 자도 있죠.
탁구 팡 자도 있지요(ㅡㅡ)